〈 44화 〉44화 - 숙주 죽이기
‘완전히 잠들었군.’
새벽 4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한아름의 방 안에 잠입한 남자는 조용히 입매를 말아올렸다.
꽤나 큰 건물에는 야간 경비원이 몇 명이나 있었지만, 그들의 눈을 피하는 것 정도는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고작 이런 일을 맡기다니…… 에이전트님도 꽤나 조심성이 있단 말야?’
코사 노스트라.
자신과 같이 뒷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거대한 집단.
그곳의 에이전트가 직접 의뢰할 정도로, 그의 실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특히나 ‘잠입’이나 ‘암살’의 영역에서, 그는 스스로를 최강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상대가 깨어난다면 모를까, 그에게 있어서 소리를 죽이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물론, 일을 처리하고 빠져나가는 것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죽음이 알려지는 것은 아마 내일 오후나 되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이미 자신은 피렌체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품에서 자그마한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곤히 잠들어있는 한아름의 목에, 그 칼을 찔러넣었다.
“으아아악!!”
“……?!”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 순간, 옆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지않았다면.
‘젠장, 뭐지……?’
아주 잠깐 망설임을 보인 그.
그것이 그에게는 크나큰 실수였다.
“넌 뭐야, 이 개자식아!”
“이런?!”
조금 전의 비명으로 한아름이 눈을 뜬 것이다.
아니, 단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헌터 아카데미의학생이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그녀는 곧바로 손을 뻗어 자신의 도끼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자신에게 휘둘러왔다.
후우웅!
“!!”
어린 여학생의 손으로 휘둘렀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역도.
스치기만 해도 그 상처는 깊을 것임을, 남자는 직감했다.
낮게 혀를 찬 그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몸을 피했다.
이이상 고집을 부리는 것은 만용이었다.
“잘 자고 있는데 무슨……!”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며 그녀는 불을 켰다.
그리고는 이미 비어버린방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방금 비명소리는………?”
망설임 없이 문을 박차고 나가는 한아름.
그녀는 은가람과 은서현이 잠들어 있는 옆방으로 몸을 날렸다.
쾅!
“가람아! 괜찮………어…?”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뭐야, 뭘들 그리 놀라시나?”
이미 은가람과 은서현은 잠에서 깨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진심으로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한아름이 아주 잘아는 누군가였다.
“……언니…?”
“여어, 일어났냐?”
가볍게 인사를 받아치는 한주희.
그리고, 은가람과 은서현은 경악했다.
“……뭐…?”
“언니라고……?”
*
“…머리통 깨지겠네.”
“우으……머리아파…”
몸에 긴장이 탁 풀리자, 은서현과 한아름은 잊었던 숙취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주희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고.
“크하하핫! 벌써 술을 쳐 마셔?! 한아름 많이 변했다?”
“……”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아름이 타락(?)했다는 사실에 더없이 기뻐하고 있는듯한 모습이었다.
‘뭐…… 어느 정도 공감이가기는 하지만.’
답답할 정도로 규칙과 규율에얽매이는 친구가 내비치는 의외의 모습.
그건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조금 더 인간적인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지금 나는 그런 기분에취해있을 여력이 전혀 없었다.
그런 ‘사소한’ 것보다 훨씬 큰 무언가가 바로내 코앞에, 마치 안방에라도 있다는 듯이 앉아 있었으니까.
“그래서…… 여기는 어떻게 온 거냐?”
머리를 짚은 채로 묻자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너희를 미행했지!”
그러니까,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신 건데요?
현화 쌤이 말한 정체모를 미행은 아마 한주희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코사 노스트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 적의를 느꼈을 리도 없고.
‘거기다 한아름의 언니라니……?’
사실 그게 가장 충격적이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회귀 이후 가장 충격적이었을 정도로.
사실 같은 성씨를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지만, 그 성격의 차이가 워낙 컸기에 당연히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만…… 그것도 아닌가?’
고삐가 풀렸을 때의 한아름이라.
데스메탈에 봉인이 풀린 한아름을 떠올리던 나는 그제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자매 맞구만!’
내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아름이 미간을 좁힌 채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언니는 왜 우리를 따라온 거야?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야 당연히 있지!”
“……?”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은서현과 한아름.
그에 한주희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붙어보고 싶어서!”
“……”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인생 진짜.
지금 가장 다행이었던 점은, 그녀의 여동생인한아름이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아름은 곧바로 한주희에게 면박을 가했다.
“언니!! 내가 그러지 말자고 했잖아!”
“……쳇.”
“하지 마! 분명히 말했어?! 이번 여행만큼은 좀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
그녀의 말에 한주희는 양 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알았어, 안 할게. 쳇……”
“하아……”
나는 깊게한숨을 내쉬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는데도 숙취가 몰려오는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한 편으로는 한주희의 과거 행동이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듯했다.
‘그래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타워를 오르려고 했구만……’
언젠가 한 번 내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타워를 오르는 이유가 뭐냐고.
그 때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죽은 동생을 살리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이 있다면 부딪힐 거다.]
그 동생이 누구였는지는 끝내 알지 못했지만…… 설마 그게 한아름이었을 줄이야.
과거의 추억에 잠시 잠겨 있는데, 한아름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전히 숙취가 가시지 않는지, 그녀는 양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현진은 대체 어디 간 거야? 벌써 4시가 다 돼 가는데……”
그녀의 말에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제는 알려줄 때도 되었으니까.
“아마 오늘 안 돌아올 수도 있어. 내일 올 수도 있고…… 어쩌면 여행 끝날 때 까지 안 돌아와서 우리가 기절한 놈을 끌고가야 될 가능성도 있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린 그냥 놀러온 게 아냐. 이현진의 계획에 끼어든 것 뿐이지.”
“끼어들다니……? 아니,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무슨 말이야?”
“지난번, 호주에서……”
나는 간략하게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현진의 몸에 무언가가 기생하고 있다는 것 부터, 현화 쌤이 갑자기 휴가를 신청한 이유나, 현진의 안대에 관한 것 까지도.
그에 한주희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고, 한아름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그게 정말이야……? 그러면…… 지금 현진은 제정신이 아니란 거라고?”
“그 놈은 원래 제정신이 아니었어.”
“조용히 해, 은서현.”
“……쳇.”
“어쨌든, 그래서 내가 추적장치를 달아 둔 상태야. 아마 돌아온다면 계속 그 사실을 숨기면서 정보를 빼 볼 생각도 있고……”
내가 그렇게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현화쌤……?”
그녀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한주희를 발견한 그녀는 잠시 미간을 좁혔다가, 곧바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계획 변경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죠?”
“놈들이 추적장치를 발견했어. 조금 전에 추적장치가 파괴된 참이다.”
벌써……?
나는 미간을 좁혔다.
언젠가는 꼬리가 잡힐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빨랐다.
“좌표는요?”
“피렌체. 아마 중간중간에워프 게이트를 이용한 것 같아. 그보다…… 이대로 있다가는 녀석이 위험할 수도 있어.”
그녀의 말에 한아름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요? 빨리 찾으러 가야죠!”
“지금 당장 가는건 너무 위험해. 함정일 가능성도 충분하고.”
“따로 생각이 있으신 거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직 나에 대한 건 모를거야. 그리고 알아 본 바로, 그놈은 변태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돌아올 가능성이 커. 피렌체에는 내가 가 볼 테니까…… 너희들은 일단 남아있어. 혹시라도 돌아오면, 은가람.”
“네.”
“알아서 잘 하리라 믿는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한아름이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잠깐만…… 그러면 ‘그 놈’도 코사 노스트라에서 나온 녀석이란 말야?”
“응……? 무슨 소리야,아름아?”
“가람이가 소리질렀을 때, 내 방에 있던 놈이 있었어. 조금만 늦었어도 난 죽었을지 몰라.다행이 다치지는 않았는데……”
“……”
“조금…… 무서웠어.”
살짝 몸을 떨며 말하는 그녀.
짧은 순간, 나는 한주희에게서흘러나온 살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
‘하아…… 가능하면 엮이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나?’
어쨌건 그녀가 합세하면 전력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면, 오늘 밤은 일단 한주희가 한아름이랑 자는게 좋을 것 같아. 아니, 여행일정동안 잘 붙어있어 줘.”
“네가 안 시켜도 그렇게 할 거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나는 현화 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쌤도 조심하세요. 이진명 회장도 한 번 당했던 놈들이니까……”
“걱정 붙들어 매라. 난 그 철댕이 영감이랑 다르니까.”
*
“제기랄!”
쾅!
자신에게 찾아온 숙주를 살펴보던 에이전트는,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그 위에 올려져 있던 갖가지 도구들이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뭐지…? 대체 뭐냐고! 왜! 왜 친구 몸에 추적장치 같은 걸 달아 둔 거야, 으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초조한 감정을 고스란히드러내며 자신의 연구실을 배회하는 그.
실성한 사람처럼 그는 혼잣말을 계속했다.
“눈치챘나? 눈치 챈 건가…? 아닐텐데! 그런 낌새는 없었어. 그런데…… 제기랄! 왜! 추적장치 따위를 달아서! 내 위치가 노출되잖아!!”
퍼억!
그는 가만히 서 있던 현진에게 주먹을 날렸다.
인형처럼 그 자리에 서 있던 현진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현진의 몸을 밟아대더니, 이내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의자로 돌아왔다.
“허억……!하악! 하아…….아니야…… 아직은 숙주를 죽일 수 없어…!”
이진명은 지금 중태에 빠져 있었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 그의 아들만큼 좋은 카드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 아들이죽는다면 이진명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
“이용해야 돼…… 어떻게든 이진명을 죽여서…!”
-그래서 상부에 인정받아야만 해!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책상을 팔로 휩쓸었다.
책상 위에 수북히 쌓여 있던 자료들과 필기구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한 쪽에서 종이 한 장과 펜하나를 꺼내든 그는 빠르게 손을 놀려 무언가를 써내려 갔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중얼 거리면서.
“일단은 인정받아야 돼… 이진명을 죽여야 해! 이진명을 죽이고…… 그런데그놈의 꼬맹이들은… 으으으! 어떻게 된 거지?! 왜 추적장치를 달았지?! 개같은 꼬맹이들…… 일단 놈들을 죽여야겠어……”
그는 미친 듯이 종이를 채워 가던 펜을 갑자기 멈췄다.
“후우……일단은 놈들 앞에서 숙주의몸을 망쳐버려야겠어. 그리고…… 놈들을 죽여버리는 거지… 히히히히! 그래, 그 다음에 이진명을 죽이면 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금 종이를 채워갔다.
*
“후우……! 대체 방금 그건 뭐야?”
다급하게 어둠을 가르며,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뭔 어린 년이 적의를 그렇게나……’
오랜 뒷세계의 생활로 꽤나 단련이 된 그였지만, 한아름의 날카로운 기세는 그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다시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 사실이, 그는 한편으로 열받았다.
“내게 이런 치욕을 안기다니……!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이를 갈며 말을 내뱉는 그.
누군가를 향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건 당신이 할 일이 아닙니다.”
“?!!”
남자의 두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은신과 잠행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자신있었기에 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목은 주인을 잃은 채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피를 뿌리며 차갑게 식어가는 그의 몸.
그를 내려다보던 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냈다.
“연님, 처리했습니다.”
*
이현진이 돌아온 것은 아침 7시가 채 되지 않아서였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꽤나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온 녀석을, 우리는 아주 ‘반갑게’맞아 주었다.
“돌아왔냐? 어딜 그렇게 갔었어?”
“급하게 만났던 사람이란게 대체 누구였길래?”
“……”
나와 한아름의 말에 녀석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우리를 하나씩 훑어볼 뿐.
잠시 후, 녀석은 의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한테…… 추적장치를 붙였더라?”
“아아, 그거야 그랬지. 어떻게 알았대?”
“왜…… 왜 그런 거야?”
녀석의 말에, 나는 곧바로 직구를 던졌다.
“너도 알잖아? 그 ‘몸’을 살리려고 그런 거지. 다행이도 이렇게 잘 살아왔네? 다행이다, 야.”
“……뭐라고……?”
“그러니까, 개수작 그만 부리고 본색을 드러내라고. 피렌체에 거주하는 기생충 새끼야.”
내 말에 녀석의 표정이 변했다.
고개를 숙이고몸을 떨던 녀석은 이내, 실성한 사람 마냥 웃음을 터뜨렸다.
“큿……크하핫…!! 이런 개같은 꼬맹이 자식들! 역시나 다 알고 그랬구나!”
“어이구야, 이제야 본모습 나오네.”
“원래도 정상이 아니었잖아.”
“그건 그렇지만.”
어쨋건 간밤에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녀석이 살아돌아온 이상, 우리가 절반은 이기고 들어간 것.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현진…… 아니, 녀석의 몸을 지배한 놈은 가소롭다는 듯 소리쳤다.
“멍청한 놈들…… 이미 늦었다!”
그렇게 말하며 놈은 평소에 차고 다니던 도를 빼들었다.
“뭐가? 그래봐야 네 몸이 아니니까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거면서? 그리고 제대로 싸워도 나한테 질걸?”
“바보같은 녀석! 내가 굳이왜 그래야 하지?”
“……뭐라고?”
“내가 말한 건 반대라는 말이다! 넌 이 녀석을 못 살려!”
그렇게 놈이 칼을 역으로 쥐어하늘로 들어올렸다.
“자,잠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