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 푸푸, 나나 모두,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루네에게 간지럼을 당했다.?238회
세 가지 조건238.
“정말, 조심하라고 했는데. 괜히 접촉해도 된다고 허락했네.”
[“히야아아……”]
[“우힛, 우히히…….”]
[“숨 차~”]
그로부터 몇 분 동안 간지럼을 당한 카카, 푸푸, 나나는, 루네의 테이블 위에서 색색 호흡을 반복했다.
세 픽시의 불투명한 날개가 파르르 파르르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 고문의 일종에, 간지럼 피우기가 있다고 했었나.
프란시느 말로는, 신학의 어두운 면이라 했지.
그런데 픽시들의 몸은 정말 인형처럼 작다.
그걸 도구도 없이 핀포인트로 간지럽힐 수 있다는 건, 참 대단한 기술이긴 하다.
그만큼 루네의 손이, 섬세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뭐, 당연한 것이- 에우드의 카틀레야 회중시계를 전혀 무리 없이 개조하는 인물이니 말이다.
루네는 간지럼을 끝낸 손가락을 또독또독 풀었다.
그리고 ‘비밀 읽기’에 관해 물은 에우드에게, 입을 살짝 삐죽였다.
“이런 거 물어보러 오라고 열쇠를 준 건 아니었는데~”
루네는 딱!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 이제는 친근한 오베론과 티타니아가 어둠속에서 바로 나타났다.
곧바로 신속히 주변을 정리하며, 주인이 앉을 의자와 아이들이 앉을 의자를 후다닥 마련해준다.
그새 또 루네가 아까 한 말대로, 머그잔과 동그란 쿠키까지 쟁반에 담아 가져오기도 하고.
……대답의 유무는 둘째 치더라고, 이야기의 장은 마련해준다는 거겠지.
에우드는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의자에 앉았다.
플로라도 재빨리 에우드의 옆자리로 다가와 앉았다.
그와 함께 가짜 플로라를 함께 꼭 안다 보니 딸깍딸깍 소리가 들려온다만. 무서워요, 왠지 무서워.
체르니는 묘하게 무서운 인형을 스리슬쩍 피하며, 남은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비밀 읽기라뇨? 그게 무슨 이야기인가요?”
플로라가 에우드의 팔을 꼭 안으며 물었다.
“연구를 들키지 않으려는 이들이, 자신의 연구 기록을 특수한 패턴을 가진 언어나 문장을 이용해 ‘전혀 다른 내용을 써 놓은 문서’- 그걸 읽는 방법을 말하는 거야. ‘본인’ 혹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만이 알 수 있도록.”
루네는 우유를 홀짝홀짝, 그리고 쿠키를 뽀샥 입에 물며 말했다.
“……? 잠깐, 연구 결과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복잡하게 하는 거죠?”
“내용이 알려져서는 안 되니까.”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요?”
“세상엔 ‘알려져선 안 되는 지식이 있다.’ 이 말이지.”
알려져선 안 되는 지식, 즉-
“7대 던전의 지식은, 원래부터 알려져선 안 된다는 건가요?”
“그거지.”
“!!!”
에우드의 말에 끄덕이는 루네.
플로라는 거기에 깜짝 놀라, 먹던 쿠키의 부스러기를 떨어트려 버렸다.
체르니는 아까 대충 픽시들에게 상황을 들었으니까, 알고는 있었다만.
“이거부터 물어야겠지. -에우드, 얘들한테 어디까지 들었어?”
“많이 들은 건 아니에요. 그 애들이, 낮에 제 노트를 보다가 루네의 야설- 케흡, 소설엔, 7대 던전에 대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고 말한 것뿐. ……그리고 바로 입을 꼭 다물어버려서.”
에우드는 자신이 따로 챙겨온 조사 노트를 꺼내며 말했다.
“흐응.”
루네는 에우드가 꺼낸 노트를 살짝 펼쳤다.
그리고 그것을 팔락이길 몇 분, 꽤 놀랐다는 표정으로 노트를 내려둔다.
그 표정을 해석하자면, ‘잘도 여기까지 조사했네.’라는 걸까.
“근데 잠깐…… 그 야설에요?! 그 에우드 님 취향이라는 야설에?!”
“으아아, 플로라, 그거 제 취향 아니라니까요, 진짜……!”
“……어라? 저는 근데, 7대 던전이라던가, 그런 내용이 있다곤 생각도 못 했는데요……?”
역시, 에우드의 생각대로.
루네의 소설을 읽은 플로라도, 그에 대해선 알아채지 못했던 거 같다.
“그래. 그냥 읽는 거론 절대 드러나지 않아.”
“……루네의 비밀 읽기는, ‘픽시들이 사용하는 고대언어’의 패턴을 이용해 만든 거니까요.”
“거기에, 내 취향까지 이리저리 섞어서 만들었고.”
“체르니 선배는 읽을 수 있으신가요?”
“전혀요. 예전에 한 번 도전해봤는데, 감이 전혀 안 잡혀요…….”
체르니도 아카데미에선 수재로 여겨지는 학생일 텐데.
그리고 에우드나 플로라보다 학년도 하나 더 높고.
일단 루네의 비밀 읽기를 하기 위해선, ‘픽시 고대언어’를 숙지하는 것과 더불어, 그 외 수많은 지식이 필요하다고.
즉- ‘아카데미 학생의 지식’으로는 손대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픽시들이 읽을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일까.
근데 ‘픽시 고대언어’라니, 그런 언어가 있다고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고대어를 숙지한 디에스라면, 알고 있으려나.
“어쨌든, 에우드 넌 그 비밀 읽기가 뭔지만 물어보려 한 건 아니겠지.”
루네는 머그잔에 담긴 우유와 쿠키를 순식간에 완식하곤 말했다.
“역시, 뭐라도 ‘7대 던전에 관한 단서를 듣고 싶다’, 라고 해석하는 게 맞으려나.”
“……네.”
“허튼 생각 않도록 제일 먼저 답하지. 안돼.”
“으으으…….”
역시 즉답.
지옥 기간 때와 다를 바 없는 대답이었다.
솔직히 예상은 했다만. 그래도 힘이 살짝 빠지긴 했을까.
루네의 고민조차 이뤄지지 않은 빠른 대답에, 에우드가 입을 꼬옥 다물어버렸다.
그런 버려진 강아지 같은 모습에, 괜히 루네의 마음이 약해졌다만.
휩쓸리지 않도록, 루네는 고개를 붕붕 휘저었다.
“아니! 일단 오해하지 않도록 말하겠는데, 난 저번부터 너한테 심술부리는 게 아니야. 그저 ‘자격이 안 되니까’ 거절하는 거야.”
“자격…… 인가요?”
“우와, 심술이 아니었군요.”
“저도 솔직히, 저번부터 루네가 에우드한테 심술부리는 줄 알았어요…….”
“요 맹랑한 애들이, 날 대체 어떤 사람으로 보는 거야…….”
플로라와 체르니의 반응에 루네가 투덜투덜.
이어서 루네는 최대한 마음 약해지는 걸 막으려는 듯, 큼큼 헛기침했다.
“잠깐,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할까. 아까 우리는 말했지. 비밀 읽기- 즉, 연구 문서의 비밀화는 ‘알려져선 안 되는 지식’이기에 쓰는 거라고.”
루네의 빈 머그잔에, 티타니아가 조용히 우유를 한 잔 더 따라줬다.
“지식은 평등하다. 학생이든. 배움을 바라는 자든. 그게 단순한 흥미든. 뭔가 세상에 이바지하고 싶은 숭고함이든. 돈을 벌고 싶거나 출세하고 싶은 욕망이든-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루네는 도서관 곳곳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호로록) 대중에게 평등. 그게 지식의 절대적인 원리야. 뭐, 결국 지식을 얻는 과정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노력에 의한 것이지만.”
도서관에 꽂혀 있는 것은 수많은 책.
‘최신 연구가 적힌 책’은 물론,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오래된 책’, ‘해외에서 공수해온 책’, ‘고대언어로 적힌 책’ 등- 수많은 책이 꽂혀 있다.
다만 그것은 책을 구할 수 있냐 없냐를 떠나, ‘알려져도 되는 지식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아마 전자겠지.
보유만 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읽음으로써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어있으니까.’
그건 즉, 방금 루네가 말한 ‘평등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7대 던전의 지식’은-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엔 알려져선 안 되는 지식들이 있어. 누군가는 ‘아는 것은 힘이다’라고 하지만, ‘아는 것이 곧 악용의 여지’일 지식. 흔히들 ‘금서’로 분류하는 책에 적힌 것들이지.”
바로 후자이리라.
“물론 금서에도 적히지 않은 지식도 많고. 그런 지식들은 보통 이렇게 해석되겠지.”
루네는 세 소년 소녀들을 향해, 오른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말했다.
“알아서 좋을 것 없다.”
“알았다간, 악용의 여지가 있다.”
“알았다간, 얼마나 이 세계가 작은지 이해한다.”
“알았다간,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알았다간, 이 세상의 뭔가 ‘텅 비어있는 부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루네는 손가락이 모두 접힌 자신의 손을, 살짝 허망하게 바라봤다.
“웬만한 사람은 알아봤자, 어떤 활용도 못 한다. 오히려, 말해줘봤자 못 믿는다.”
그것은 마치, 자기 자신을 개미와도 같은 사소한 존재로 인식하는 느낌이었을까.
“이 세상의 밤하늘에서 보이는 별조차, 실제론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과 똑같은 세계임을 알려줘도, 딱히 믿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처럼. 그 이상으로 이 거대한 세계보다도 더욱 거대한 세계가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잠, 잠깐, 어라? 뭐, 뭐라고요?”
“짜잔. 거봐, 플로라 얘도 이런 반응이잖아?”
플로라의 어리둥절함에, 루네가 키득키득 웃었다.
“내가 지금 말한 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일단 듣는 것만으로도 의심하게 되잖아? ‘그런 지식’이야. 그 이상으로. 설령 그 지식을 손에 넣어도, 어떻게 할 수 없다가 사실이지만…….”
루네는 이 정도면 이해해줬으려나, 라는 느낌으로 에우드를 바라봤다.
당연하다만-
“…….”
‘에휴, 이건 겁줘도 소용없는 애네.’
겁주듯 말한 건데, 오히려 에우드가 눈을 밝히고 있는 것에 한숨을 내쉰다.
‘대충 알고 있는’ 체르니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금 입을 꼭 다무는데.
에우드의 반응은 그 이상으로 지식욕이 상당해 보였을까.
올곧다고 해야겠지.
가레스나 리퀴아처럼.
크로나스나 솔렌처럼.
그리고 데우트처럼.
이건, 좋든 나쁘든 조정자의 자격을 갖춘 기백에 가까웠다.
곧, 에우드는 놀라던 것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
“저, 루네. 그러면-”
“그러면?”
“아버지랑, 리퀴아 님. 데우트 님이라던가- 그런 ‘황금의 기사’ 분들은…… 다 알고 계시는 건가요?”
에우드의 질문에, 루네는 짧게 생각을 거듭한 후 답했다.
“‘다 아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야, 아마. 하지만, 웬만큼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나를 포함해, 7대 던전에 출입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렇군요.”
그건 즉, ‘가레스 또한 알고 있는 쪽’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아버지는.’
하지만 가레스는- 에우드의 아버지는, 에우드가 개인적으로 하는 조사를 막거나 하진 않았다.
물론 7대 던전에 대해서도, 그리 이야기해주진 않았고.
그건 어디까지나, 에우드의 행동이 아이의 범주니까 그냥 놔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루네가 말하는 ‘자격’을, 언젠가는 스스로 쥘 거라 생각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루네.”
“……뭐야?”
그리고 에우드의 분위기가 살짝 바뀐 걸, 루네 또한 느꼈을까.
플로라와 체르니 또한, 에우드가 전혀 물러나지 않았음을 알아챈다.
“루네에게 이야기를 들으려면……. 제가 최소한의 자격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푸핫!”
열세 살짜리의 당돌함에, 루네는 마시던 우유를 조금 흘릴 뻔했다.
며칠 전, ‘라피스가 아카데미에 왔을 때’ 떠올렸던 리퀴아의 말- ‘에우드가, 엄청난 열쇠를 쥘 것 같다.’라고 했던 걸 다시 떠올린 덕이겠지.
“하아, 거 참. 리퀴아가 말한 대로네.”
“어, 리퀴아 님이요?”
“됐어, 그냥 혼잣말이야…….”
마음 같아선 좀 더 겁을 줄까 했다만…….
‘쯧, 하긴.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애야. 이 어린 나이에 이 정도로 구른 녀석은, 세계의 조정자들 사이에서도 많이 없지.’
루네 또한, 에우드가 보통 싹수가 아님을 인정하고 있으니까.
겁을 줘봤자, 느낌도 안 올 거라는 걸 깨닫는다.
뭐, 내심 ‘자신의 목적을 도울 수 있을 만한 인재’라는 걸 인정하고 있기도 했고.
“……하아, 지금은, 체르니 얘 쪽에 집중해주면 참 고맙겠는데.”
“그건 당연하죠. 그것도 절대 대충하지 않아요.”
에우드 또한, 자신이 맡은 일들이 많음은 알고 있다.
그래도-
“그래도, 단서를 얻을 확답도 미리 얻고 싶어요. 저한테 주어진 시간은 결단코 많지 않아요. 그러니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유효하게 쓰고 싶어요.”
막내이자 방패로서 누나들을 지키고,
의뢰를 받은 대로 체르니를 지키고.
앞으로의 대비와 더불어-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 그 이후’를 위한 준비까지.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에우드는 주어진 시간을 더더욱 알차게 사용하고 싶었다.
일단 자신을 지키는 일도 확실하게 하겠다는 말에, 얼굴을 붉히는 체르니는 둘째치고.
결국 루네는 한숨을 크게 한 번 더 내쉬면서 말했다.
“하아, 그래……. 진짜로진짜로 네가 7대 던전에 대해서, 내게 뭔가를 듣고 싶다면.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고 싶다면- 조건이 있어.”
루네는 아까 손가락을 전부 접었던 손을, 이번엔 에우드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피며 말을 이어간다.
“최소 조건 첫 번째. ‘내 소설에 적용된 비밀 읽기 방법을 너 스스로 알아내고, 그걸 참고해 네 개인 조사 노트도 100%에 가깝게 완성하기’.”
“……!!”(에우드)
“이어서 최소 조건 두 번째. 이 망할 천재 자식들이 싸그리 모이고, 변수도 가득한 아카데미의 대회- 그래, 2주 후에 열리는 뱅퀴시에서.”
루네는 집게 모양으로 손가락을 펼친 손을, 눈앞에 붕붕 휘저으며 말했다.
“-이번에 우승하기. 네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플로라와 체르니는 그걸 듣자마자 경악했을까.
다만 에우드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뱅퀴시 우승이라면, 마침 바라는 대로네요.”
뱅퀴시의 우승-
어차피 에우드도 10대 귀족 파벌의 강자, 수인 파벌 강자, 그리고…….
‘첫째 누나’까지 포함해 수많은 강자가 즐비한 대회에서, 이겨나갈 각오는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의욕 가득한 에우드의 모습에-
“-아니아니, 얌마, 에우드. 나 아직 말 다 안 끝났어.”
“엡.”
“응??”(플로라&체르니)
에우드 얘가 벌써 뭔 소리를 하는 거냐는 느낌으로, 루네는 말을 더 이어갔다.
“자, 최소 조건 세 번째.”
뒤이어 손가락 하나를 마저 하나 더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