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드의 손을 잡은 소녀가 그것을 다시 한번 물었다. ?190회
그림자와 도둑190.
대체 뭔가 저 천장에 있는 것은.
지금 저기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대체.
붉은색의 눈들이, 에우드와 포에닉스 소녀들을 향해 가차 없이 번뜩이고 있다.
마치 박쥐가 거꾸로 매달린 듯.
그런데 또 가끔씩 고개를 갸웃갸웃하는 게 더 무서웠을까.
붉은 눈 아래에서는 뭔가 모를 ‘투명한 것’이 은근히 반짝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천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하나 둘, 어두운 거실 곳곳에 붉은 눈동자가 나타난다.
소형의 검은 그림자들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에우드의 피부에도 느껴진다.
이 뭔지 모를 그림자의 군세, 상당히 많다.
아니지아니지.
지금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에우드, 손에 그거 뭐야.......?!”(티아나)
“흐, 흐에에에에에.......?!”(셀레나)
에우드의 손을 잡은, 이 소녀의 정체다.
“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결국 에우드와 플로라 둘 다, 다시 한번 비명을 내지르며 소녀에게서 떨어졌다.
에우드의 손을 놓쳐버린 소녀는, 멍하니 그걸 바라봤다.
그리곤 똑같이 붉은 눈을 번뜩인다.
[“어딨지......?”]
[“어딨을까.”]
[“정말로 어딨을까.”]
[“찬장에 있을지도.”]
[“2층일까.”]
[“여기 있을지도 몰라.”]
[“물어볼까.”]
[“왠지 안 알려줄 거 같아.”]
[“겁먹었어. 겁먹었어.”]
싸아아아아......!
소녀의 말에, 천장에 다닥다닥 붙은 귀신 같은 것들이 말을 이어간다. 그 와중 또 꿈틀꿈틀 움직임이 보였다.
“뭐냐고뭐냐고뭐냐고?! 저거 다 뭐야!!”
“전능하신마이아신이시여날영원한빛으로보호하소서전능하신마이아신이시여날영원한빛으로보호하소서전능하신마이아신이시여-!!!”
“드로와, 그게 더 무서우니까 그만그만그만!!”
기묘한 기도문을 읊는 드로와의 입을, 티아나가 허둥지둥 틀어막았다. 읍읍거리던 드로와는 이미 울기 직전이었다.
셀레나도 마석등을 든 채 몸을 어버버하면서 떨었다.
그때였다.
아까 에우드의 손을 꼭 잡았던 소녀 유령(?)은, 자신의 손바닥을 잠시 바라보더니-
[“아. 알겠다. 저거야.”]
거실의 의자 하나를 작은 손으로 꼭 가리켰다.
처저저저저저적!
그 순간 천장과 거실 곳곳의 붉은 눈들이, 그 손가락 끝으로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히이이이이익!!”””
붉은 눈들의 움직임에, 다 같이 또 비명을 질렀다.
다만 비명을 지르는 도중. 에우드는 자그만 소녀의 손끝이 어딜 가리키는지 봤다.
“히이이이-! ........으잉?!”
붉은 눈들은 일제히 움직이더니, 자그만 소녀가 가리킨 의자-
‘에우드의 가방’이 있는 의자로 다가간다.
그리곤 에우드의 가방을 이리저리 뒤지면서, 속닥속닥 기웃기웃. 에우드와 가방을 번갈아 봤다.
[“맞아. 저 애의 가방이야.”]
[“그럼 이게 맞지 않을까.”]
[“찾았다.”]
[“칭찬받을 거야.”]
[“근데 어떤 게 언니 걸까.”]
[“다 똑같은 거 같아.”]
[“잘 모르겠어.”]
그리고 인형처럼 자그만 소녀 또한, 자기가 가리켰던 곳으로 다가가더니-
[“그럼, 통째로 가져갈게. 다들 도와줘서 고마워~”]
[“““그러자. 그러자.”””]
소녀의 말에, 붉은 눈의 그림자들이 함께 에우드의 가방을 들었다. 그리곤 그걸 소녀 품에 포옥 가져다준다.
“......엥?”
에우드가 거기에 뭐라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그럼, 해산~ 고생했어~”]
[“““와아~ 해산~”””]
와다다다다!
붉은 눈의 작은 그림자들은, 순식간에 밖으로 우르르 나가기 시작했다.
정문은 물론, 곳곳의 나무 새시 창문을 열곤,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나간다.
아마 다 나가는 데 3초 정도 걸렸으리라.
아이들 모두 멍하니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미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설치류들과 같았을까.
재빨리 나타났다가, 눈을 떼면 어느새 사라지는, 그런 모습.
“““.......”””
방금까지 칠흑과 공포로 꿈틀거리던 아지트엔, 어느새 찬바람과 달빛만이 남아있었다.
근데 대체 이게 뭔 상황인가.
결과만 보자면......
지금 에우드의 가방만 강탈당한 게 아닌가.
곧바로 2층에서부터 두 명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 뭔 일이 일어난 거야?! 습격이야?!”
“설마 다른 파벌이 쳐들어온 건가요?! 비공식 파벌 항쟁?! 지옥 기간 밤에 습격하다니, 아주 간덩이가 부었어요! 전부 유효타야!!”
자고 있던 아나트와 프란시느가 비명을 듣고 깨어난 듯하다.
엄청난 전의를 불태우며, 순식간에 1층까지 뛰어 내려왔다.
둘 다 귀여운 파자마 차림이긴 하다만.
““......???””
그러나 두 사람 다, 막상 1층에 오니 분위기가 묘하다는 걸 눈치챘다.
다른 소녀들도, 히끅히끅거리면서도 어째서인지 어리둥절.
“무슨 일이야......?”
그리고, 아나트가 조용히 그것을 물어본 순간-
“-이 망할 새끼들이, 내 가방 내놔?!”
드디어 에우드의 분노가, 공포를 앞서기 시작했다.
서둘러 플로라에게 리퀴드 팽까지 되돌려받은 후, 욕설을 터트리며 아지트를 뛰쳐나간다.
* * *
포에닉스 아지트의 근처, 녹음이 우거진 숲 사이.
체르니는 그곳의 수풀과 나무 틈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후드도 쓰고. 전체적으로 시커멓게 입고 왔을까.
.......솔직히 멀리서 보면, 아무리 좋게 봐도 도둑이다. 순찰을 도는 직원에게 단번에 잡힐 분위기다. 참으로 왕족답지 않았을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의 노트.
분명 오늘 낮에 도서관에서 에우드와 부딪혔을 때. 그때 섞였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특수한 능력’으로 아카데미를 감시할 수 있는 루네도, 에우드가 가지고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그렇기에, 체르니는 자신의 노트를 회수하기 위해 이렇게 직접 온 것이다.
물론 어쩌면, 내일 에우드가 분실물 신고 같은 걸 해줄지도 모른다만.
그래도 혹시 그대로 계속 노트를 눈치 못 챌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로 모르쇠로 노트를 가질지도 모르고.
......물론 체르니는, 델베르크에게서 에우드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들었으니 말이다. 아마 거기까진 안 가겠지.
뭐가 됐든 돌려받을 수 있긴 했으리라.
하지만 그랬다간, 노트를 되찾는 과정 중 에우드와 다시 접촉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아무리 인식저해 안경을 쓰고 있다 해도 문제다.
마력에 민감한 이들일수록, 밀접한 접촉이 반복되면 인식저해의 효과가 떨어진다.
그러다 또다시 접촉했다가 도서관처럼 사고가 난다면.
그 이상으로 점점 ‘구면’이 되어버리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기에 체르니가 고른 방법이 바로-
‘새벽에 몰래 노트만 살짝 빼 오기’.
접촉 없이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었다.
다행히 에우드가 오늘 밤을 보내는 건 포에닉스의 아지트다.
기숙사면 몰라도, 파벌 아지트들은 비교적 ‘그 아이들’로 침입하기가 쉬운 장소다.
기숙사는 보안 마법이 꽤 강하니 말이다. 침입하는 데 조금 고생한다.
파스슥. 파스스스슥.
“히익!”
그러다 풀숲이 갑자기 흔들리는 것에, 체르니는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놀라는 건 잠시. 곧, 수풀을 헤치고 나온 소녀를 보곤 바로 안도한다.
[“-가져왔어요, 언니.”]
“아! 쿠, ‘쿠루루’였구나...... 휴, 깜짝이야......! 고생했어~!”
방금까지 포에닉스 아지트에 있던, 인형같이 자그만 소녀-
‘쿠루루’라는 인간이 아닌 소녀의 도착에, 체르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체르니가 포에닉스 아지트에 몰래 들어가, 노트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한 존재였다.
쿠루루가 무사히 노트를 가져왔다고 생각하며, 체르니는 고개를 꼭꼭 끄덕였다.
쿠루루의 자그만 머리도 함께 쓰담쓰담.
그러나 얼마 안 지나서였다.
체르니는 쿠루루가 들고 있는 물건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부탁한 노트가 아니었다. 소박하면서도 캐주얼한 멋이 있는 가방이었다.
“응? 가방? 내 노트가 아니라?”
“네.”
“......어째서?”
쿠루루가 가방을 건네자, 체르니는 어리둥절 그것을 받았다.
동시에 체르니의 주머니에서 콩콩 소리가 울린다.
루네가 준, ‘아카데미 내부 통신 기능’을 가진 회중시계의 신호였다.
찰칵-
“루, 루네?”
[“체리니아, 들리니?”]
“무슨 일이에요? 저, 저도 지금 좀 바쁜데요......”
체르니는 본명을 말한 것에 대해서도 따지고 싶었다만. 그럴 틈이 없었을까.
체르니가 가방을 보며 혼란스럽게 답하자, 상당히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 그게 말이야.”]
루네는 생각도 못 했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일이 꼬였어.”]
“네?”
무슨 소리인가 싶어, 체르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던 중-
지금 자신이 받은 가방이, ‘오늘 에우드와 부딪쳤을 때 본 가방’임을 깨닫는다.
[“아무래도 쿠루루랑 애들이, 노트가 든 에우드의 가방을 통째로 가져온 거 같아.”]
“.......아.”
“뭐가 체르니 노트인지 몰라서, 한 번에 가져왔어요.”
일단 내용물을 보자 자기가 잃어버린 노트는 있었다.
문제는....... 에우드 것으로 보이는 책들도 가득 있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체르니도 이제부터 루네가 할 말이 대충 예상됐을까.
루네의 보고를 들으면서, 체르니는 숲 너머 아지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인다.
쿠과가가가가가-!!
그렇게도 죽어라 피해 다니던 소년인데.
그렇게도 안 엮이려고 작정했던 소년인데.
아지트에서부터 엄청난 기세로 질주해오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화난 얼굴로.
[“쿠루루랑 내 픽시들이 그 가방을 가져가는걸, 에우드가 봤다는 얘기지.”]
“쫓아오고 있어요.”(쿠루루)
“엑.”
[“그러니까 체르니, 아마 지금부터 전력으로 뛰지 않으면-”]
루네의 말이 끝나기도 전.
체르니가 쿠루루와 가방을 들고, 전력으로 뛰려는 그때-
방금까지 멀리서 뛰어오고 있었을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5초 안에 잡힐걸?”]
굉음이 들린 건 바로 그다음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쿠르르르! 구르르르.......
수풀의 10m 정도 너머.
굉음과 함께 도달한 소년은, 어둠 속에서 흙먼지를 흩뿌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분명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장애물들이 가득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수풀과 나무를 순식간에 넘나든 것일까.
게다가 한 손에는 마법 지팡이까지 든 채로?
그야말로 ‘축복’을 받은 것과도 같은 천부적인 신체와 전투능력- 아니아니아니.
지금 거기에 감상을 표할 때가 아니겠지.
“너 이 새끼 뭐 하는 새끼냐......!”
“히이이이이익!!”
그 번뜩이는 눈이, 이번엔 체르니 쪽을 향하기 시작했으니까.
이날, 체르니는 ‘눈 마주치면 기절’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실감했다.
* * *
도망가야 한다. 도망가야 한다.
보통 신체 능력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눈앞에서 보는 것은 또 달랐을까.
그러나 체르니 또한 전투 능력엔 자신 있는 소녀.
이래 봬도 왕국의 훈련 또한 받아오기까지 했다.
무투파이기도 한 만큼, 고속의 움직임은 체르니 또한 가능했다.
아직 거리는 10m.
이쪽을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한 순간이다.
체르니는 쿠루루와 가방을 함께 품에 안고는 죽어라 뛰기 시작했다.
수풀을 가로지르며, 나무를 넘나들며, 전력의 질주를 거듭해간다.
“기다려, 이 망할 자식! 너냐?! 네가 주모자냐!!”
“히야아아아악!”
그러나 역시 에우드 쪽의 속도도 엄청나다.
아니, 먼저 알고 도망치기 시작해서 앞서고 있을 뿐.
아마 정말로 바로 안 뛰었다면, 순식간에 덜미를 잡혔으리라.
“미쳤어미쳤어미쳤어! 너 진짜 왜 가방을 통째로 가져온 거니, 쿠루루!!”
“.......시켜서 갔다 온 건데, 너무해요.(시무룩)”
허리춤에 잡힌 인형 같은 소녀가 침울해졌다.
하긴, 부탁한 건 이쪽이고.
노트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도 이쪽이긴 하다만-
-라는 생각을 하며 질주를 이어갈 때였다.
‘그, 그래 맞아! 어렵게 생각할 거 없었잖아!’
체르니는 번뜩,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애초에 원초적으로 생각하면 되는 거였다. 이렇게 오래 끌 일이 없다.
나무를 박차며, 굵은 가지만 밟고 수풀을 피함과 동시.
체르니는 에우드의 가방에서 재빨리 자신의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즉시-
부우우우웅-!
“호이이이입!”(체르니)
“!?”(에우드)
휘이이이이익-!!
짐이 남은 가방을, 전력으로 에우드에게 집어던졌다.
그 와중 내용물이 안 터지도록 가방 단추를 확실하게 닫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체르니의 성격이 드러나는 점일까.
체르니를 추격하던 에우드는, 갑작스레 돌려받은 가방을 얼떨결에 캐치했다.
그리곤 잠깐 질주에 급정지를 걸고, 그 내용물을 확인한다.
“.......”
“.......”
스륵. 톡톡.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
우다다다다다!
가방을 닫은 후 지팡이를 들고 질주 재개.
“-히에에에엑?!”
조금 방심하고 있던 체르니는, 다시 식겁하며 도주를 시작했다.
“어, 어째서?! 아니 왜?! 뭐야?! 가방 돌려받으면 된 거잖아?!?!”
“우와아아아-”(쿠루루)
어쩔 수 없었을까.
지금 에우드에게 주황빛 머리 소녀- 즉, 체르니의 노트는 내일 돌려줘야 할 물건이었으니까.
“기다려라, 이 도둑 새끼가-!!”
“으아아아아!?”
노트만 쏙 빼서 가져가는 건, 에우드로선 더 용납 못 할 일이었다.
사실 노트의 주인은, 이미 그걸 돌려받았습니다만.
[“우하하핫! 그렇게 피하더니, 아주 재밌게 돌아가네!”]
“지금 웃을 때예요, 진짜?!”
회중시계 너머에서 빵 터져버린 루네에게, 체르니는 당혹감을 담아 따져간다.
[“그냥 잡혀도 상관은 없을 거 같은데. ......뭐, 시험 삼아 내 애들 좀 살짝 보내볼까.”]
루네는 새 장난감을 받은 것처럼 키득키득 웃었다.
그건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웃음.
그러면서도 참 ‘어린아이답지 않은’ 음흉한 웃음이었다.
“아, 아아아앗?! 오, 온다?! 더 쫓아온다?! 알겠으니까! 뭐든 좋으니까 어떻게 좀 도와줘요! 히야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