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드는 기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했다.?149회
연휴를 앞두고149.
이후엔 7대 던전에 대해 들려온 전설이라던가. 자그만 설화라던가 이야기하면서.
또 이전 사교회에서 가끔 만날 때처럼, 에우드와 디에스가 가볍게 담소를 나누던 무렵이었다.
덜컹-
뚜벅뚜벅-
도서실 쪽에 몇몇 학생이 들어왔다.
함께 몰려다니는 것이 아마 일행이었을까.
사람이 기본적으로 적은 도서실이지만, 그래도 출입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다 이제 막 안쪽에 온 학생들은, 에우드와 디에스를 보곤 깜짝 놀라버렸다.
“포, 포에닉스 막내.......!”
“디에스 교수님도 있어........!?”
“뭐지, 왜 저 둘이.......?”
“멍청아, 디에스 교수님도 10대 귀족분이잖아!”
“아앗!”
아마 귀족가가 아닌 일반 학생들이었으리라. 디에스와 에우드 쪽에 최대한 오지 않으려는 눈치가 보였다.
그러자 디에스도 슬쩍 회중시계를 확인하곤, 다소곳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도 일어나야겠네요.”
“네, 디에스 교수님. 그럼 또.......”
혹시 일반 학생들을 배려한 걸까.
학생들이 너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자리를 비켜주려는 것 같았다.
디에스는 어째서인지 살짝 촉촉해진 입가를 다소곳이 가리며, 에우드에게 기품있게 인사했다. 에우드 또한 그것을 약식으로 받아간다.
곧 디에스는 잠시 생각을 거듭하더니.......
“에우드. 이 도서관에 자주 다니시죠?”
“네? 아, 네. 일단 파벌 대전도 일단락됐으니까, 당분간은 또 그럴 거라 생각해요.”
“매번 이 시간에?”
“아마....... 그러지 않을까요? 아, 강의 다 끝나고 올 때도 많지만요.”
“그, 그렇군요. 흐응........”
고개를 홀로 꼭꼭 끄덕이는 디에스.
그리곤 약간 가까이 오더니, 에우드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입을 살짝 열었다.
“그럼...... 가끔씩 이렇게 찾아와도 될까요?”(소근소근)
“?”
“에우드 나름의 7대 던전에 대한 조사니까요. 그럼 조사인 만큼, 서로, 그,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소근소근)
가끔씩 와도 되냐는 말에, 에우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면 오는 거고, 말면 마는 건데.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에우드는 그것이 디에스의 예의라고 판단했다.
하긴. 예고도 없이 너무 불쑥불쑥 찾아오는 건, 귀족 사이에선 그리 권장되는 일이 아니다.
에우드도 그 예의를 받아, 밝게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에요. 언제든지.”
“........! 휴, 휴우! 그렇군요!”
디에스는 에우드의 대답에, 안도와 함께 살짝 웃었다.
에우드는 왜 안도가 나왔는지는 깨닫지 못했다만.
기분이 좋아 보였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럼! 에우드, 나중에 또 뵙도록 하죠!”
“네, 넵. 디에스 교수님.”
“후후훗.”
곧 디에스는 쥘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전체적으로 웃는 상인 여성이긴 하다만.
더욱 발랄해진 디에스의 행동에, 에우드는 다소 압도당하듯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이어서 디에스는 도서실 밖으로 나가던 중. 방금 들어와 있던 일반 학생들에게도 가볍게 인사를 전한다.
행동을 조심하던 일반 학생들은 10대 귀족에게 인사를 받았다는 것에 놀라 어버버하면서도, 서둘러 그것을 받았다.
귀족과 일반 국민에게 차별 없는 행동.
정말 디에스는 하나하나가 귀족의 귀감일까.
3년 전부터 그렇고. 에우드는 디에스에게 나름의 존경을 표하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기시감 넘치는 시선은 간간이 느껴졌지만.
‘생각해보면....... 그 시선도 제시카랑 비슷하지.’
제시카한테도 가끔 느끼는 시선이니, 별걱정은 하지 않는다.
제시카랑 친해졌다는 것도, 어쩌면 둘에게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에우드가 모르는 뭔가의 공감대가 있는 걸지도.
그렇게 디에스가 나가고 수십 분 뒤였다.
“에우드님, 에우드님!”
“라다루스, 강의 끝났나요?”
“네! 조금 일찍! 누님분들은 아직 오시지 않았군요?”
라다루스와 라그나릴 파벌이 도서실에 우르르 들어왔다.
어느새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난 건지.
에우드는 자신이 꽤 정신없이 책을 읽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라그나릴 파벌은 평소와 같이 밸런스를 맞춘 약 10명의 인원.
물론 하루 강의가 다 끝나면, 전원이 다 모여 2배로 불어난다만.
아까 왔던 일반 학생들은, 또 나타난 10대 귀족의 모습에 혼란스러워 보였다.
아직 디에스와 나눈 인사의 여운도 안 끝났는데. 또 엄청난 인물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아마 ‘우리가 오늘 도서관에 올 날을 잘못 잡았나......?’의 생각을 하고 있을 테지.
라다루스는 거기에 신경 안 쓰고, 뽈뽈 에우드에게 다가왔다.
언제나처럼 순수하고 작은(다만 누님들 의중은 잘 파악하는) 소년이, 에우드를 살짝 올려다본다.
여전히 저번 대전에서의 걱정이 남아있는 표정이었다.
“이제 괜찮으신 거 맞죠.......?”
“괜찮다니깐요. 티아나 누나가 만든 포션도 많이 마셨고. 휴식도 많이 취했고.”
“티아나님 포션은 저희 누님도 인정한 물건이니까, 확실히 믿을 수 있긴 하죠.”
카밀라가 인정한 티아나의 연금술 실력은, 라다루스도 상당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러다 라다루스는 손을 쭉 뻗어, 에우드의 이마를 짚었다.
“으으응, 그래도 걱정이 앞서네요......”
“열은 없어요, 라다루스~”
나름대로 에우드의 몸 상태를 확인해보려는 것이리라.
물론 에우드에게 열은 없다만.
기절하듯 잠들었을 때도, 두통만 조금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라다루스의 표정이 진중하다 보니, 에우드도 뭐라 할 순 없었다.
에우드는 잠자코 라다루스표 손바닥 온도계를 받아갔다.
그리고-
“라다루스님X에우드님......!”(속닥속닥)
“트루스님X라다루스님도 메이저하지만.......”(속닥속닥)
“역, 역시 이것도 나름대로.”(속닥속닥)
“전 예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어요.”(근엄)
“활동할 소재가 늘어났군요”(진지)
술렁술렁술렁.......!!
왜인지 뒤에 있던 라그나릴 멤버들이, 에우드와 라다루스 쪽을 뜨겁게 바라보고 있다.
감이 좋은 에우드이기에, ‘뭔지 모를 대화’와 ‘뜨거운 시선’은 충분히 전해지고 있었다.
‘......뭘 활동하고 있다는 거야?’
에우드로선 지식이 부족했던 건지. 이해가 잘 안되는 말이었다만.
라다루스는 그걸 눈치챘는지, 못 챘는지.
그저 열심히 에우드의 이마를 꼭꼭 만질 뿐이다.
* * *
아카데미의 학생회관에는 어느 도서관이 있다.
공식적으로는 ‘학생회관 도서정보실’이라 불리는 공간.
다만 실제로 그곳의 내부를 들어간 이들은 거의 없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거기엔 나라에서 금지한 책들이 있다던가.
첫 목차 페이지를 넘기기만 해도 광신도가 되어버리는, 이단 종교의 경전이 있다던가.
나라에서 숨기고 싶은 역사의 기록이 있다던가.
함부로 내용을 유출했다간, 모종의 세력에게 쫓기게 된다던가.
혹은- 도서관 자체에, 어느 정령이 살고 있다던가.
이러한 도서관의 소문은, 재학생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 들은 소문이다.
다만 소문이 무성한 것도 어쩔 수 없을까.
학생회관 도서정보실은, 어디까지나 ‘1등급 교수’와 ‘학생회장’ 정도만이 들어갈 수 있고.
심지어 출입 허가를 받은 이들 모두가, 내부의 정보에 대해선 최대한 함구한다.
출입자가 있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정보누수가,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소문 무성한 도서관에 현재-
아카데미의 학장, 베르네이가 들어와 있었다.
“‘누님’도 참, 또 이렇게 어질러 놓고.”
“아아, 마음대로 건들지 마. 그거 다 내가 바라는 형태로 놓고 있는 거라고. 손을 휙 뻗으면 휵하고 닿게.”
“그게 보통 어지르는 사람들의 변명이잖아. 애초에, 이 넓은 장소에서 어떻게 손을 뻗으면 휙휵이라는 거야.”
“거긴 내가 평소 자주 누워있는 곳이란 말이야.”
베르네이는 자신의 누이가 어지른 공간을 참으로 답답하게 바라봤다.
도서관은 이리도 넓은데, 어떻게 발 디딜 틈도 없게 어지른 것인가.
이곳은 학생회관 지도에선 어디까지나, 중소규모 도서실 정도로 표시되어있다.
실제로 그 표시는 어디까지나, ‘이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일 뿐.
진짜는 약 지하 5층으로 이뤄진, 대규모의 도서관.
현재 베르네이와 그 누이가 있는 곳은, 그중에서도 지하 2층이었다.
도서관은 전체적으로 어둡다.
자연광은 없고, 그런데도 공간은 정말 넓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장소임에도, 지하 5층부터 1층까지, 중앙을 꿰뚫는 ‘거대한 나무’도 존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도서관은 과거 ‘던전’이었던 곳의 ‘입구’를 개량해서 만든 장소니 말이다.
결국 이곳의 빛은 어디까지나, 곳곳에 둔 마석등과 휴대용 마석등 뿐.
그리고 베르네이와 그 누이가 만드는 ‘빛 마법’에 한정된다.
사실 이 둘 중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빛 마법을 퍼트릴 수 있다.
약간의 조정만 하면, 넓디넓은 장소에 밝게 불을 밝힐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베르네이. 너 지금 빛 함부로 퍼트리면 혼난다.”
“......누님. 난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렇게 어두우면 눈이 침침하다고.”
베르네이의 누이가, 그냥 어두운 공간을 좋아해서일 뿐이다.
도서관이 어두운 건, 어디까지나 자기 소굴의 분위기를 만들려는 것. 별 의미는 없다.
“나보다 어린 게.”
“그 몸을 가지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누님.”
베르네이는 이 말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그 누구라도 지금 베르네이와 누이의 모습을 보면 의문을 제기하리라.
‘대체, 왜 히끗한 노인이, 어린 여자아이에게 누님이라 부르는 거지?’라고.
베르네이의 누님- ‘루네 알페일’은, 그야말로 10대 초중반 소녀의 모습이다.
정말 밝은 분홍 머리칼에, 끄트머리가 웨이브치듯 말려 있는 장발.
분홍 머리는 이 어두운 공간에서도, 마석과도 같이 빛나고 있었다.
신비하면서도, 신체 나이에 맞게 활기찬 외모였을까.
그런데 정작 자세는, 세상살이 인생살이 다 겪은 것 같은 것처럼 도서관 한쪽에 느긋이 누워있다.
결코 소녀에겐 나오기 힘든 표정과 자세다.
그렇다. 몸가짐, 마음가짐은 완벽한 할머니다.
그 주위에는 책과 펜과 빈 종이들.
그리고 마석등을 비롯한 별별 물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루네가 자신의 마력으로 주변에 띄우고 있는 거였다.
베르네이는 그 모습을 보며, “저러니까 이렇게 주변을 어지른 거지.”라며 중얼거렸다.
주위의 물건들도, 전부 저런 식으로 띄우다가 그냥 내려뒀기에 이 꼬라지인 것이리라.
베르네이가 이전에 사 온 케인즈의 과자도, 주변에 부스러기와 함께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고.
“누님도 알고 있겠지만....... 이미 놈들이 이쪽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어.”
“그 안개 말이지? 이미 확인했지. 델베르크한테도 보고 했고.”
루네 알페일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다 신경 쓰고 있다고. 그 애에 대한 보호도, 델베르크 쪽에서 뭔가 생각하는 건 있는 거 같고.”
“요 몇 년, 왕족을 향한 암살시도가 조금씩 들려오고 있으니까. ......놈들과 같은 줄기라고 보는 게 맞겠지.”
이번엔 ‘안개’에 불과했지만.
언제 더 그와 같은 존재들이 올지 모르는 일이다.
가뜩이나 그런 위협을 피하는 목적으로, 그 왕족은 자신의 존재감을 팍 지우고 있다.
그 이전에, 왕족이면서 자신의 얼굴을 귀족가에 거의 알리지 않았다.
덕분에 그 정체를 알고 있는 이라고 해봤자 하워드와 악시우스. 그리고 트루스, 레니안느 정도일까.
그런 만큼 대놓고 호위를 붙여줄 수도 없는 상황.
그렇기에 루네는, 이 공간에서 몰래 그녀를 보호하는 중이었다.
바로 영상 마수정과 픽시를 이용한 모니터링, 그리고 자신의 마법으로 만든 작은 생명체들을 통해서.
작은 생명체라 해도 보통 것은 아니다.
하나하나가, B~A에 필적하는 몬스터와도 같다.
다만, 원격인 이상 한계는 명확하니 말이다.
루네는 도서관 바닥에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켰다.
“끄으읏.......!(기지개) 하아...... 그 안개와 싸운 아이도 한번 보고 싶긴 하네. 얘, 동생. 네가 보기에, 그 아이는 어때?”
“에우드말이야, 누님?”
“그래그래, 에우드. 그 가레스의 양아들.”
루네는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둥둥 떠다니는 물체 중 과자함 하나를 열더니, 과자를 입에 쏙 넣는다.
자신도 상당한 괴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누님의 행동은 차마 같은 귀족들에게 보이기 힘들겠다고 독백하며, 베르네이는 생각을 정리했다.
“.......어쩌면 황금의 기사,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재목이지. 이번 대전에서도, 확실하게 그게 증명되었고.”
베르네이의 표정 위로 루네 못지않은 괴짜의 분위기가 드러났다.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저번 대전은 ‘안개를 제외하고 봐도’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으니까.
베르네이의 이런 표정도 어쩔 수 없었을까.
“흐응, 트루스, 레니안느. 그리고 악시우스급이라는 거군.”
황금의 기사의 핏줄이 아니면서, 황금의 기사급의 재능.
이거야말로 이단이자 이변이 아니겠는가.
루네 또한 베르네이와 함께 흥미롭다는 듯 씨익 웃었다.
신체의 나이는 서로 완전히 다름에도, 웃는 방식은 쏙 빼닮았다.
두 사람이 남매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조금 뒤 뚜벅뚜벅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보안 마법으로 모두 채워진 장소.
들어올 수 있는 이는 한정되어 있으며, 이 시간에 들어올 이는 더욱 몇 없다.
때문에 루네와 베르네이는, 지금 누가 이곳에 오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하핫, 넌 언제나 불만 가득한 얼굴이니. 체르니.”
“맨날 바닥에서 세상만사 귀찮다고 굴러다니는 루네 만큼이나 할까요...... 아, 베르네이 학장님도 계셨네요.”
“오늘 강의는 다 끝났나 보군. 마침 좀 전에 자네의 이야기도 하고 있었네.”
베르네이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는 소녀에게, 인자한 웃음을 보였다.
“체리니아 오기스트 유그라시아 양”
“지금은 그 이름 말고, 체르니 윈릴로 부탁드려요.......”
베르네이가 자신의 본명을 부르는 것에, 체르니는 거북하다는 듯이 답했다.
체리니아 오기스트 유그라시아.
아카데미에서의 가명, 체르니 윈릴.
현왕 델베르크의 막내 동생이자, 아카데미 2년 차의 여학생이었다.
“체르니. 혹시 모르니 네 보호 수단을 더 늘리려 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아마 이번 연휴 때 델베르크도 말할 거 같은데.”
루네가 바닥에 누워 전하는 말에, 체르니는 고개를 홱 돌렸다.
“됐어요. 제 몸 지키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오라버니한테도 그렇게 직접 말할 테니까요. 신경 쓰지 마세요.”
“얘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