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저놈이랑 나 중에 누가 더 잘생겼지?
(82/94)
82화 저놈이랑 나 중에 누가 더 잘생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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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저놈이랑 나 중에 누가 더 잘생겼지?
2023.08.21.
‘뭐였을까.’
셀린과의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났지만, 델리나는 여전히 그날의 일이 신경 쓰였다. 나중에 만난 셀린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했지만, 그날의 일은 델리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분명 심각한 악몽 같은 걸 꿨겠지.’
그랬으니 잠에서 깨어나고서도 현실 구분을 하지 못하고 제게 소리쳤던 것이다. 델리나는 그 악몽이 무엇인지 얼추 짐작했다.
‘분명 반역으로 온 마을이 불타 없어지던 그때 꿈일 거야.’
뜨겁다고 중얼거리던 셀린의 얼굴은 당시 그녀가 겪었을 공포를 짐작게 했다. 괴로운 듯 식은땀까지 흘리던 그 모습. 그래. 그렇게 고통스러운 얼굴은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 끔찍한 일은 너만 겪은 것이 아니니까.’
고요한 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이따금씩 떠오르는 악몽 같은 그날. 가족이 죽고, 건물이 불타오르고, 사람들은 연신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쳤다.
그날의 뜨거웠던 열기를 떠올리면 델리나는 저도 모르게 호흡이 거칠어졌다.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좋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
그때 델리나의 앞으로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있었다. 바로 칼릭스였다.
“……뭐해?”
사뭇 심각해 보이는 델리나의 모습에 걱정된다는 듯 칼릭스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델리나가 답했다.
“그냥, 날이 좋아서 정원 구경.”
“…….”
“별거 아니야. 그냥 좀 고민할 게 있어서.”
살랑이는 바람에 칼릭스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칼릭스가 입을 열었다.
“디저트 만들어 줄까?”
갑작스레 나온 디저트 이야기에 델리나가 웃었다. 이것이 칼릭스의 위로라는 것을 아는 탓이었다.
“그래, 고민 많을 때는 역시 단 거지. 나도 만드는 거 도와줄게.”
“먹고 싶은 거 말해.”
“음……. 간만에 쿠키 만들까? 초코칩이 엄청 올라간 쿠키로.”
“거기에 데운 우유도.”
“아주 좋아.”
그렇게 두 사람이 디저트 메뉴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때였다. 정문 쪽에서 마차 소리가 들리더니 사용인들 몇 명이 마차에 탄 이를 마중하려는 듯 나오고 있었다.
‘음?’
칼릭스와 델리나도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멈춘 마차에서 노아가 내리고 있었다.
‘노아?’
노아가 델리나 쪽으로 다가왔다. 그와 델리나의 눈이 서로를 마주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노아를 보고 놀란 델리나가 물었다.
“지금 온 거야?”
“응.”
“……왜?”
화려한 디아몬 공작가의 마차를 타고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델리나는 생각했다.
“공식적인 목적은 울피림 대공가와의 상품 거래.”
노아가 오는 것을 알았던 듯, 저 멀리서 펠릭이 다가오고 있었다. 델리나가 다시 물었다.
“그럼 비공식적인 목적은?”
“궁금해?”
“……아니, 아니. 안 궁금해.”
‘알려 주는 게 공짜는 아니겠지.’
점점 올라가는 노아의 입꼬리에 정신을 차린 델리나가 빠르게 대답했다. 그때 곁으로 온 펠릭이 노아를 안내했다.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펠릭의 안내를 받으며 노아가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노아는 눈매를 휘며 웃고 있었다.
‘뭔데, 진짜?’
저 멀리로 사라지는 노아를, 델리나가 눈으로 좇았다. 그러자 칼릭스가 델리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우리도 가자.”
“아, 응…….”
칼릭스의 말에 발을 움직이면서도 델리나는 연신 노아가 걸어간 방향을 힐끗거렸다. 그리고 그런 델리나를 칼릭스가 가만히 바라봤다.
* * *
“들어가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말하며 펠릭이 집무실 문을 열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벨리온 곁으로 노아가 다가갔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부르십시오.”
펠릭이 눈치껏 자리를 피해 주며 말했다. 노아를 본 벨리온이 고개를 까닥였다.
“앉지.”
그의 말에 노아가 맞은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잠깐의 침묵 후, 벨리온의 입이 열렸다.
“네가 올 줄은 몰랐는데.”
“따지자면 심부름이죠.”
그렇게 말하며 노아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책상 위로 종이를 올려 두고서 노아가 설명을 덧붙였다.
“길드에 의뢰하셨던 내용입니다.”
“…….”
“자세한 건 읽어 보시면 아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벨리온은 종이를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곧 그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노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디아몬 공자가 심부름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워낙에 거물 고객 아닙니까, 그만큼 신경을 써야지요.”
“…….”
“그리고 또 다른 거물 고객도 뵙고요.”
이곳에서 벨리온보다 더 큰 고객이라 함은 뻔했다. 그러자 벨리온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광대가 의뢰를 했나?”
“아뇨. 줄 것이 좀 있어서.”
“뭔데.”
“고객 비밀입니다.”
벨리온 앞에서도 태연히 답하는 노아였다. 그러자 못마땅한 얼굴이 된 벨리온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간만에 대련이라도 할까.”
“어딘가 감정이 많이 실린 대련이 될 것 같아서, 거절해도 되겠지요?”
여차하면 바로 자기를 날려 버릴 듯 핏줄이 불거진 벨리온의 손등을 본 노아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의자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던 벨리온이 입을 열었다.
“광대는 나같이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는데.”
“…….”
“재력, 권력도 있어야 하고.”
벨리온이 델리나의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하자, 방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노아의 얼굴에 흥미로운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답은 여전히 태연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제가 전부 다 가지고 있어서.”
자신에 찬 노아의 태도에 벨리온이 옆에 있던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빠르게 문이 열렸다.
“예, 부르셨습니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펠릭은 진지한 벨리온의 얼굴을 보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물어볼 게 있는데.”
“예. 말씀하십시오.”
“저놈이랑 나 중에 누가 더 잘생겼지?”
“……예?”
긴장하고 있던 펠릭이 제가 잘못 들었나 싶은 얼굴로 되물었다. 하지만 벨리온이 펠릭을 재촉했다.
“얼른.”
“어, 그러니까…….”
펠릭은 노아와 벨리온을 번갈아 보며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그는 빠르게 마음을 정하고 답했다.
“당연히 전하 아니겠습니까.”
제가 모시는 주인과 다른 사람 중 한 사람을 택해야 한다면, 펠릭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가만히 앉아 계시기만 해도 후광이 나는 얼굴! 살짝 시선만 돌려도 전하의 외모에 쓰러지는 여인들의 수가 셀 수도 없고요! 가면을 쓰셔도 가면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 해내는 게 문제입니다. 가면 밖으로 잘생김이 뿜어져 나오시니까요.”
그 누구보다 열렬히 벨리온의 외모를 찬양하는 펠릭이었다. 그러자 벨리온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 봐.”
“예. 빨리 나가 봐야 하겠는데요. 지금도 전하의 외모에 너무 눈이 부셔서 시력이 나빠지는 것 같거든요. 조만간 안경을 사든가 해야겠습니다.”
마지막까지 펠릭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돌아서자마자 죽을상을 하고 중얼거렸지만 말이다.
“내가 진짜 빨리 은퇴를 하든가 해야지…….”
상당히 지친 듯 처진 어깨를 하고서 터덜터덜 방을 나서는 펠릭이었다. 그가 나가자 한껏 자신만만해진 벨리온이 고개를 치켜올렸다. 노아는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언제 봐도 참 충직한 보좌관입니다.”
“정직해서 늘 곁에 두지.”
펠릭의 눈물 나는 외모 찬양을 끝으로 분위기는 자연스레 바뀌었다. 종이를 가져간 벨리온이 물었다.
“이 안에 무슨 정보가 담겨 있는지는 아는 건가?”
정보의 가치를 짐작게 하듯 종이봉투는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노아가 답했다.
“의뢰하신 것이 뭔지는 듣지 못했지만 대충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디아몬 가문은 비밀 엄수를 정말 철저히 했다. 에드윈과 노아 또한 각자 의뢰받은 것을 서로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원칙이었다. 이번 의뢰에 대해서도 노아는 들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노아는 이것이 누구와 관련이 된 정보인지 알 수 있었다.
셀린 울피림.
최근 사교계에서 모를려야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노아 또한 로즈립 후작가에서 셀린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울피림 대공가 특유의 분위기는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외모만큼은 벨리온을 닮아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녀가 대공가의 일원임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저기 담겨 있을 만한 정보는…….’
셀린의 친어머니인 마리엔에 대한 정보, 혹은 그녀가 살았던 마을에 관한 정보이리라, 노아는 그렇게 추측했다. 물론 정보를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기에, 노아는 제가 생각한 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래.”
짧게 답한 벨리온이 종이봉투를 뜯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노아가 자리를 피해 주듯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벨리온은 나가려는 노아를 딱히 잡지 않았다. 그저 제 앞에 펼쳐진 종이에 주목할 뿐이었다. 디아몬 공작가 문양이 찍힌 종이에는 벨리온이 의뢰한 내용에 대해 빽빽이 쓰여 있었다.
<반역 혐의로 무너져 내린 프로트 마을에 대하여.>
당시 화재로 인한 마을의 피해 상황과 사망자 수에 관한 것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지만 벨리온이 주목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맨 밑에 적힌 글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죄목은 반역죄. 하지만 황제의 개입이 있게 된 원인이 있었음을 발견. 프로트 마을에 숨어 있던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벨리온은 묵묵히 이어지는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