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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돈보다 값진 것 (49/94)


49화 돈보다 값진 것
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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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다!’

어떻게든 살고자 델리나는 연신 제 손발을 움직여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델리나와는 다르게 노아는 평온했다.

“뭐 해?”

“뭐 하긴, 헤엄치지!”

“여기 발 닿는데.”

“응?”

그 말에 델리나의 몸이 멈춰 섰다. 동시에 델리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제 발에 닿는, 땅의 감촉을.

“……나갈까?”

민망해진 델리나가 슬며시 땅 쪽을 향해 눈짓했다. 하지만 노아는 연신 쫄딱 젖은 델리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공작님 따라서 왔지.”

델리나의 말에 노아는 옆쪽을 바라보았다. 언제 왔는지 물에 빠진 저를 바라보는 에드윈이 있었다. 그때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며 델리나가 노아의 팔을 붙잡고서 걸음을 옮겼다.

“아무튼 빨리 나가자. 자꾸 다리 사이로 물고기들이 움직이는데, 영 느낌이 이상해.”

“그러게. 너 지금 머리 위에 개구리도 있는데.”

“와아아아악!”

그 말에 비명을 지르며 제 머리를 강렬하게 흔드는 델리나였다. 그런 델리나의 행동에 드디어 웃음을 찾은 노아가 큭큭댔다.

“그러게, 개구리도 무서워할 거면 왜 들어왔어.”

“그럼 네가 빠졌는데 어떻게 안 들어와?”

“…….”

제 머리에서 개구리를 떼어 내고서 누구보다 빠르게 물 밖으로 나가던 델리나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 델리나의 말에, 순간 노아의 눈이 커졌다.

“아주 둘 다 꼴이 보기 좋네.”

땅으로 올라오자 기사들은 황급히 담요를 가져와 두 사람의 몸에 둘러 주었다. 노아를 보던 에드윈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찬물 좀 뒤집어쓰니까 정신 좀 차렸어?”

“…….”

“물에 빠졌을 때 표정이 말이 아니었는데.”

에드윈의 뒤로 기사들에게 구속당한 채 여인이 끌려오고 있었다. 기사들에게 붙들려 오면서도 제 돈만은 지키겠다는 듯, 여인은 주머니를 강하게 붙들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보는 건 처음인가?”

“…….”

“그래도 그냥 조용히 살게 둘까 싶었는데 말이지. 디아몬 공작가 후계자 살인 미수는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기 힘들 것 같네.”

“살, 살인 미수라니요!”

살인 미수라는 소리에 안색이 창백해진 여인이 급히 에드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정말 오해세요, 공작님! 제가 어찌 제 아들을 죽이려 하겠어요. 친엄마인데!”

“아니. 살인 미수가 처음은 아니지 않나? 사람 하나 없는 집에 아이를 홀로 놔두고 굶기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건, 그건 돈이 없어서……! 돈을 벌려고 잠시 아이만 두고 나갔던 거예요, 공작님! 돈만 벌면 금방 돌아오려고 했다고요!”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는 소리에, 에드윈의 서늘한 눈빛이 여인을 향했다.

“지금 디아몬 공작가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려고?”

“…….”

“네 도박 빚이 얼마나 많은지는 잘 알고 있지. 노아가 매년 주는 돈마저 몇 주도 안 되어서 다 써 버린다던데.”

“그건, 그건…….”

“난 내가 제일 돈에 지독한 놈인 줄 알았는데 아닐지도 모르겠어. 적어도 난 애는 안 굶기거든.”

에드윈이 말하는 사이에 기사 하나가 여인에게 다가오더니 들고 있던 돈주머니를 가져갔다. 돈주머니를 빼앗기자 여인의 눈이 돌아갔다.

“내, 돈! 내 돈 내놔!”

저를 구속하는 기사들을 뿌리치려고 여인은 온몸을 비틀었다. 물론 에드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기사들을 향해 손짓했다.

“데려가.”

“예.”

에드윈의 한마디에 기사들이 여인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린 여인이 노아를 향해 외쳤다.

“노아! 노아! 엄마 좀 도와줘! 노아!”

여인이 노아를 향해 간절히 부르짖었지만, 아예 뒤로 돌아선 노아는 끝끝내 끌려가는 여인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 노아 옆에 있던 델리나가 눈을 가만히 굴렸다.

“……괜찮아?”

“아니.”

하긴.

아버지 무덤에 왔다가 돈 달라는 어머니에 의해 물에 빠진 꼴이라니. 차마 빈말로라도 괜찮다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노아가 자리에 주저앉더니 제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웃기지? 우리 집안.”

“…….”

“집안 꼴 진짜 잘 돌아간다니까.”

중얼거리는 노아의 말에, 가만히 옆에 앉은 델리나가 답했다.

“아니. 하나도 안 웃겨.”

“…….”

“그거보다는 내 공연이 더 웃길걸.”

그 말에 노아가 어이없다는 듯 픽 웃으며 수긍했다.

“그래. 그건 맞을지도.”

“…….”

델리나는 가만히 노아의 머리 위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호수 안에서 붉게 빛나고 있던 글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도 멍청했지. 그렇게 매년 만나면서도, 저 여자가 바뀌길 내심 바라고 있었던 거야. 결국은 다 돈 때문에 그러는 건데.”

노아의 손안에는 금화 하나가 들려 있었다. 방금 전 여인이 난동을 피우다 떨어져 나온 것이었다.

“내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들었지?”

“응. 공작님한테서 들었어. 몇 년 동안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맞아.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침대에만 있었는데 말이야. 사실 대화하기도 힘들었고.”

“…….”

“그런데 맨정신인 날이면 매번 날 보면서 웃더라. 뭐가 그렇게 좋다고. 다 허물어져 가는 집에서. 그렇게 행복한 곳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당시를 회상하며 노아는 무덤이 있는 언덕 위를 바라보았다. 그런 노아를 보며 델리나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지. 솔직히 네 아버지가 행복했는지 아니었는지는 그분만이 아시겠지.”

“글쎄. 그렇게 돈도 없는 곳에서 행복했을까 싶네.”

“그러니까 말했잖아. 그건 네 아버지만 아실 거라고. 음, 그래도, 네 아버지는 널 낳으신 건 후회 안 하셨을 것 같은데.”

“왜?”

“왜긴.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매번 웃을 수 있겠어? 그것도 몸이 아프신 분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린 델리나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디아몬 가문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아버지께서는 네가 돈보다 훨씬 값진 사람이었다는 거지. 그러니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서도 웃으셨던 거고.”

노아가 침묵했지만 델리나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그건 공작님도 마찬가지일걸?”

“…….”

“공작님 성향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그러신 분이 아무런 조건 없이 너를 이렇게 데리고 왔다는 건, 결국은 네 아버지랑 비슷하다는 거 아닐까? 너를 그만큼이나 아끼시는 거지.”

“우리 광대 영애는 날 그렇게 생각했어?”

“!”

갑자기 위에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놀란 델리나가 고개를 들자 언제 왔는지 에드윈이 웃으며 서 있었다.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네. 그것도 내 이야기를.”

“어……. 그게…….”

놀라 하는 델리나를 지나, 에드윈의 시선이 노아에게 향했다.

“내가 그 형이랑 비슷하다라……. 정말 우리 가문 사람들이 놀라 쓰러질 말이긴 한데.”

“…….”

“글쎄. 그건 모르겠지만 말이야. 굳이 말하자면, 언제 이득을 볼지 알 수 없는 투자 정도라고 해 둘까.”

에드윈의 말에 입꼬리를 올린 노아가 받아쳤다.

“괜찮으시겠어요? 상당히 위험 조건이 많은 투자일 텐데요.”

“그 정도 위험 감수도 못 하고 발을 빼면, 진정한 디아몬이라고 할 수 없지.”

투자니, 위험 감수니. 참으로 감동적이지 않은 단어가 튀어나왔지만 두 사람은 뭐가 좋은지 마냥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델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두 사람이 참 많이 닮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무튼 햇빛에 몸 좀 말리고 있어 봐. 언덕에 다녀올 테니까.”

“무덤에, 가시려고요?”

“그래. 간만에 가 봐야지.”

그렇게 말한 에드윈이 기사들과 함께 언덕길을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런 에드윈의 뒷모습을 델리나와 노아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희 아버지와 공작님. 많이 친하셨을까?”

“듣기로는 자주 대화를 나눴다고는 하던데. 서로 성격 같은 건 달랐던 것 같지만.”

“응. 그래도 뭔가 서로 그 뜻은 통한 거 같으니까……. 그래, 그러지 말고 너도 한번 찾아봐. 인생에서 돈보다 더 값진 거.”

“내가?”

“응. 그러면 네 아버지가 무슨 느낌이었는지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델리나는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금화를 손에 올렸다.

“금화보다, 혹은 그 어떤 값나가는 물질로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사람이 생기는 거지.”

“…….”

“지금까지는 없었더라도, 나중에 안 생기리라는 법은 없는 거니까.”

살랑이는 바람결에 델리나의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그런 델리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노아의 눈매가, 서서히 휘어졌다.

“글쎄. 다른 건 몰라도 나한테 값진 사람은 이미 있긴 하지.”

“벌써? 누군데?”

“너.”

“……응?”

훅 들어온 노아의 말에, 델리나가 손에 들고 있던 금화를 놓쳤다. 떨어진 금화를 주워 들던 노아가 큭큭대며 웃었다.

“제국 하나만큼의 값어치를 가진 사람을 어디 만나기 쉽겠어?”

“아, 그런 의미로……. 아니, 그렇지 않아도 그거 말하려고 했는데, 너 진짜 그거 다 받을 셈이야? 제국 하나 값을?”

“그러니까 계약 전에 정확한 금액을 들어 뒀어야지.”

“야, 이……!”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힌 델리나가 어깨를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델리나를 보며 노아가 눈매를 휘고 웃었다. 그 누구보다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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