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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거기로 가면, 다 죽습니다 (4/94)


4화 거기로 가면, 다 죽습니다
202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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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아파라…….’

이리저리 부딪히는 엉덩이를 부여잡은 채, 델리나는 커튼을 열어 지금 이곳이 어디쯤인지 가늠해 보았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델리나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무사히 빠져나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자신의 외출에 실력 좋은 기사들을 붙여 줄 니엘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자신을 호위하던 기사들의 눈을 피해 빠져나오는 것쯤은 쉬웠고, 예전에 모아 놨던 비상금으로 어느 마차 짐칸에 탄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짐칸의 상태가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하긴 돈이 그렇게 풍족하지도 않았으니.

게다가 아이 혼자 무언가를 타려고 움직이니 주변의 시선이 쏟아졌다. 결국 델리나는 최대한 자신을 신경 쓰지 않을 짐마차를 골랐다. 그런데 승차감이 영 좋지만은 않았다.

“악!”

순간 예고도 없이 멈춘 마차 때문에 델리나는 짐칸 안에서 데구루루 굴렀다. 델리나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바깥에서 마부와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바깥에서 말을 탄 채 움직이는, 다른 여행자들이었다.

“지금 어디로 간다고 하셨습니까?”

“말 그대로야. 곧장 쭉 가라고. 그러면 지름길이잖아.”

“지금 쭉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고서 하시는 소리십니까? 절대 안 됩니다.”

현재 델리나의 짐칸 일행들로는 마차를 이끄는 마부와 상당히 불량스러워 보이는 여행자들 몇이 전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품행이 단정치 못했고 그 때문에 델리나도 바싹 긴장한 채 짐칸에 올라탔었다.

“못 들었어? 이대로 가라고.”

“절대 안 됩니다. 그 너머가 어디인지 알고 계십니까? 울피림 대공가의 영지란 말입니다!”

울피림!

마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뭐야. 그 저택 가까이에만 안 가면 되잖아.”

“안 됩니다! 당신들은 이 길이 초행이라 모를 수 있는데 벨리온 대공은 자신의 영지를 밟은 자로 결코 살려 두지 않는다고요! 직진했다가는 전부 죽을 겁니다!”

마부는 완강했다. 하지만 여행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면 이 쉬운 길을 두고 뺑뺑 돌아서 며칠씩이나 가자고?”

“…….”

“그리고 말이야. 애초에 대공이 신도 아니고 무슨 수로 자신의 영지에 들어온 이들을 하나하나 다 알겠어? 그건 그냥 벨리온 대공가의 악명 때문에 퍼진 소문이겠지.”

“그건…….”

“어차피 몇 시간이면 영지에서 벗어나잖아. 그 짧은 시간 안에 벨리온 대공이 어찌 알고 우리를 죽이러 오겠어? 안 그래?”

마부는 여전히 머뭇대고 있었다. 그러자 크게 헛기침을 한 여행자 한 명이 제 검을 만지작댔다.

“뭐, 확실히 이 근처는 위험하긴 하니까, 여기서 마부 하나 없어졌다고 이상할 건 없겠지. 안 그래?”

그는 마부를 협박하고 있었다. 그러자 벨리온 대공 때문에 무서워하던 마부가 곧장 말들을 재촉했다. 짐마차는 지름길을 향해 나아갔고 곧 울피림 대공가의 영지에 들어섰다.

‘여기가 울피림 대공가의 영지…….’

마차 짐칸에서 모든 이야기를 들은 델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는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델리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대공가의 영지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황량한 곳이었다. 사람 하나 꽃 하나 보이지 않는 삭막한 곳이었다. 날이 완전히 지고 달이 뜨자 으스스하기도 했다.

영지라면 분명 이 근처에 저택도 있다는 소리인데.

땅을 눈으로 조용히 살피던 델리나가 저택을 찾기 위해 눈을 돌리던 그 순간이었다. 달빛이 구름에 가려지며 급격하게 어두워진 시선 너머로 수십 쌍의 눈들이 번뜩이고 있었다.

“늑, 늑대다!”

“……!”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짐칸이 더욱 심하게 덜컹대기 시작했다.

“윽……!”

마차 벽에 부딪혀서 절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성난 짐승의 소리가 마차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늑대가 왜 이렇게……!”

“당, 당황하지 마! 자극 시키지도 말고!”

이어 짐칸 밖으로 사람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늑대들의 등장에 잔뜩 겁먹은 말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아악!”

마부가 비명을 지르며 마부석에서 떨어졌다. 그의 비명이 신호라도 된 듯 서서히 다가오던 늑대들이 하나둘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아악!”

“살, 살려 줘!”

애초에 사람 몇몇이 수십 마리의 늑대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여행자들이 공격을 할 새도 없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

그런 상황 속에서 델리나는 숨을 죽인 채 마차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하지만  늑대들의 예리한 후각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어느새 짐칸 문마저 박살 낸 늑대들은 웅크려 있는 델리나를 바라보았다.

‘침, 침착해, 침착…….’

사방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바로 앞에는 수십 마리의 늑대가 델리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델리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크게 숨을 쉬었다.

델리나와 늑대들이 대치하는 것도 잠시, 무리 중 가장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델리나에게 다가왔다. 델리나는 재빨리 가방에서 병 하나를 꺼내 제 몸에 들이부었다.

“…….”

순간 퍼지는 강한 향에, 늑대가 코를 씰룩이다 델리나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델리나도 마른침을 삼키고 다시 그 늑대와 대치했다.

제발, 제발…….

“……!”

얼마 지나지 않아 늑대가 몸을 돌려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늑대들이 이제 하나둘 몸을 돌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델리나는 그 모습을 숨조차 내쉬지 못한 채 지켜보았다. 곧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거대한 늑대 또한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

그렇게 늑대들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델리나는 계속해서 마차에 웅크려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델리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살, 살았다…….”

역시 울피림 대공가에서 훈련받은 늑대들인 거야.

영지를 함부로 드나들었던 자들이 죽음을 면치 못했다는 것은 소문이 아니었다. 자신 또한 이 병이 없었더라면 이미 늑대들에게 사지가 찢겼으리라. 델리나의 목뒤로 소름이 쫙 끼쳤다.

울피림 대공가가 몰락한 후 밝혀진 비밀들.

그중에는 늑대들에 관한 것도 있었다.

머래 열매 기름을 바르면 공격하지 않도록 해 놨다고 했었지.

너무 급했던 나머지 온몸에 부어 버리긴 했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마차 밖을 빠져나온 델리나는 바닥에 널린 시체들을 보고서 눈을 꾹 감았다. 끔찍했지만 빨리 달아나야 했다. 피 냄새를 맡고 다른 짐승들이 올지도 모르기에.

델리나는 눈을 거의 감은 채로 빠르게 내달렸다. 캄캄한 어둠 속, 의지할 것이라고는 달빛밖에 없었다. 하지만 델리나는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리고 달렸다.

“헉, 헉, 헉…….”

얼마나 그렇게 뛰었을까. 마차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다고 판단한 델리나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돌들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뿐이었다.

‘일단 지도를…….’

울피림 저택으로 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델리나는 지도를 펼쳐 들었다. 지도에는 울피림 대공가가 표시되어 있었지만 대공가 저택으로 가는 정확한 길은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책에서 저택에 대한 묘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돌산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붉은 나무가 있는 숲…….”

기억하던 묘사와 지도의 지형을 하나하나 대조해 보던 델리나의 손가락이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찾았다.’

이제 길은 명확해졌다. 신발을 고쳐 신은 델리나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울피림 영지에 들어섰으니 저택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다만 늑대들이나 각종 함정 같은 것이 있어 들어가기가 힘들 뿐이었다. 하지만 델리나는 그런 것 역시 알고 있었기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곧 어둠 속에서 커다란 저택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바로 그…….’

과연 수많은 괴소문을 이끌고 오는 울피림 대공가답게 저택의 분위기 또한 으스스했다. 한눈에 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저택 위로 까마귀가 날아다녔고, 가시덩굴이 저택 벽을 에워싸고 있었다. 음침했다.

“……풍경 한번 끝내주네.”

누가 봐도 사람 하나 살 것 같지 않은 분위기의 저택이었다. 저택을 살펴본 델리나는 곧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건가?’

저택에 왔으니, 누군가를 만나리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저택은 불빛도 보이지 않았고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정원에도 없는 건가?’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델리나가 정원 쪽을 살펴보기 위해 정문 쇠창살을 양손으로 잡고 그 사이로 목을 집어넣으려면 순간이었다.

“……!”

그 순간 바람 소리와 함께 델리나의 목덜미 쪽으로 거대한 도끼 하나가 휙 지나갔다. 퍽, 소리를 내며 벽에 단단히 박힌 도끼를 본 델리나의 입이 쩍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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