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November Rain (2)
“……으음, 뭐. 맞아.”
소중한 존재를 잃었냐는 타이퍼의 직설적인 질문에, 나는 담담하게 그 사실을 인정했다.
상대가 로봇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뭣보다 입에 담는 것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주인님. 만약 가능하시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간에서 흔히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부르는 방식이지요. 안드로이드와 쓰레기통의 차이는 기계 공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리 크지 않습니다.」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물론 들었다.
그렇지만 밤은 길었고, 낭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니 부디. 이야기해주십시오.」
바깥의 빗소리를 배경음으로 삼아.
나는 짧지 않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흑마법을 익히게 됐을 때의 이야기.
이 하드코어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그동안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 온 이야기.
그리고, 한때 무시하고 지나쳤던 흑마법의 대가로 인해, 끝끝내 자신의 손으로 소중한 존재를 죽이고 만 이야기까지―.
「힘든 일을 겪으셨군요.」
타이퍼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얘기를 경청했다.
얼핏 봐서는 듣는 내내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따금씩 고개를 까딱거린다든지 눈동자를 미세하게 굴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제 나름의 ‘듣는 이 자세’를 최선을 다해 표현하긴 했다.
「즉, 주인님께서는 일련의 비정상적인 과정을 거친 결과가 상정 가능한 최악의 값으로 도출되었기 때문에, 향후 행동 양식과 전반적인 미래 계획에 관한 인과적인 의문을 품게 되신 것이군요.」
그걸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겠다.’
“……그런 셈이지, 뭐.”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
폭주하는 힘을 막지 못해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결국 내 손으로 내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말았다.
이는 내가 흑마법사로서 살아있는 한,
어찌할 도리가 없는 필연적인 저주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근심 어린 어조로 타이퍼에게 물었다.
반쯤 진심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로봇이라면, 무언가 기상천외한 해답을 내려줄 것만도 같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수학 문제처럼 정답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은 이상 AI는 독단적인 의견으로써 판별을 내릴 수 없습니다. 향후 행동 양식에 관한 도움말을 드릴 수는 있지만, 그것 역시 지엽적인 조언에 불과할 것입니다.」
무얼 기대한 걸까.
씁쓸하게 입꼬리를 슥 올려 보이며, 결국에 의미라곤 없었던 이 무용한 대화를 마치려던 찰나.
「다만.」
그 틈을 파고들며,
타이퍼가 말해 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선택만은.」
「틀린 선택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또다시.
심장을 찔린 듯한 기분이었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해결할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주인님께서는 언제나 방법을 찾으셨습니다.」
「마법을 쓰지 못하기에 흑마법을 배우셨습니다. 강해지고 싶었기에 <부름>을 익히셨습니다.」
「끔찍한 대가를 치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마저도 결국 당면한 문제의 일환일 뿐.」
「해결할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고요.」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했다.
변함없이 무표정으로 떠들어 대는 타이퍼 녀석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혹 방법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십시오.」
「항상 그랬듯이. 저지르고 후회하십시오.」
「제가 아는 주인님이라면, 그럴 것입니다.」
주저하지 말라. 저지르고 후회하라.
그 단순하기 그지없는 어구들이 마치 구원의 속삭임처럼 들렸던 것은 도대체 어째서였을까.
「묻겠습니다. 주인님.」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까?」
녀석이 물었고,
나는 침묵했다.
기다란 정적 끝에.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래.”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슬비 내리는 새벽, 메이드복을 입은 안드로이드와 짤막한 대담을 나눈 바로 그 시간이, 최근 몇 주 동안 내게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
오전 7시.
<에덴 파크 모텔> 208호.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멍하니 깨어 있었다. 버릇처럼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고, 오늘은 출근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눈을 뜨자마자 깨달았다.
투두둑―.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마가 끝날 때쯤엔 한껏 싸늘해진 공기와 함께 겨울이 찾아올 터였다. 이제 곧 떠나갈 계절이 마지막 울음보를 터뜨린 듯, 11월의 비는 서럽게도 흐느껴 댔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나온 순간.
부엌 쪽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
….
스칼렛이었다.
죽은 메리의 첫째 딸. 열두 살 소녀. <상대가 거짓말을 믿게 하는 능력>을 가진 에스퍼.
언제부터 내 방에 들어와 있었던 걸까. 그 애는 식탁 의자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내게서 살짝 등을 돌려, 눈살을 잔뜩 찌푸린 볼멘 표정의 옆모습만을 조금 보여준 채로.
“오라방.”
내가 일어난 것을 확인했는지.
묵묵히 있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마더는 오라방이 죽인 거지.”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동안 몇 번이고 말했었다.
―메리가 죽었다고. 나 때문이라고.
용서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한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오라방은 진짜 암귀가 아니지?”
“…….”
“숨길 필요 없어. 애초에 오라방이 가짜라고 뭐라 할 생각은 없거든. 왜냐하면 나도 가짜니까.”
잠깐 피식 웃어 보이고는.
스칼렛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라방도 알겠지만, 나랑 시안은 연구소에서 자랐어. 거긴 진짜 끔찍한 곳이었지. 바퀴벌레 좀 나오는 모텔 방이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말이야.”
“열 살이 되던 해에 우린 간신히 거길 탈출했어. 추적을 피하려고 하수구에 숨어서 버텼는데, 계속 아무것도 못 먹어서 둘 다 굶어 죽기 직전이었지.”
“그때 마더가 우릴 발견한 거야.”
나는 그 애가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왜인지 그 이야기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마더는 자기한테 쌍둥이인 자식이 있다고 했어. 하지만 아주 예전에 헤어져서,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우릴 보고 그 생각이 났대.”
“그때는 별생각 없었어. 그냥 그 사람은 어른이니까, 잘만 하면 이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나는…… 능력을 썼어. 나랑 시안이 당신 딸이라고. 마더한테 그 말을 믿게 만들었지.”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녀석의 눈에서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마더가 죽은 건, 전부 나 때문이야.”
“그때 그 이상한 남자한테 속아서, 마더를 속이고, 오라방을 속였어. 다 내가 저지른 거라고.”
“전부, 나 때문…….”
한 방울씩 떨어지던 눈물은 결국 한 줄기 울음이 되어 쏟아졌다. 슬픔은 꾹 눌러 참아 왔던 세월만큼 불어나 멈추지 않는 빗줄기처럼 흘러내렸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아이를 안아줬다.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것뿐이었다.
“괜찮아.”
위로해 줄 자격은 없다는 것을 안다.
말 한마디 건네는 정도만이 최선이다.
“윽, 흐윽, 마더가, 보고 싶어…….”
“나도야.”
“이제, 다시는, 못 보는 거지……?”
저지른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정말로 그럴까?
“아니.”
나는 분명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미 결심했다.
“방법은 있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슨 짓이든지 하겠다고―.
***
이스트포레스트 1구역.
<메이슨 타워> 최상층.
띵―.
경쾌한 도착 알림 소리와 함께,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151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도심 속 드래곤의 둥지, 숨겨진 비밀의 화원이 바로 이곳에 있다.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어 나오자,
어김없이 드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방 안의 더러움 역시 변함없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훨씬 막장으로 어질러진 쓰레기장이었다.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피자 박스와 만화책 사이를 헤쳐, 겨우겨우 방 중앙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TV 속 게임 화면을 들여다보며 조이스틱을 붙잡고 있던 여인이 내 등장에 건성으로 반응했다.
―청룡 미르각시.
고무줄로 대충 묶은 초록색 머리에 빛바랜 추리닝을 입은 이 천상 히키코모리 같은 여자가 사실은 지구 최강의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그 누가 믿을까.
“오랜만입니다. 청룡님.”
“그래. 오랜만이야. 으응.”
대답도 물론 건성이었다. 아무래도 게임에 집중하고 있느라 나한테 신경 쓸 여지가 없는 듯했다.
“메탈슬러○ 하고 계시네요. 2인가요?”
“아니. X다. 지금 1부터 깨는 중이거든. 하여간에 마침 잘 왔다. 혼자 하기 좀 적적했는데.”
미르각시는 고갯짓으로 자기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는 내가 올 줄 알고 미리 준비한 것 같은 조이스틱 컨트롤러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그대도 같이하지 않겠는가?”
나는 군소리 없이 그녀의 제안에 따랐다.
어깨에 힘을 주고 시작했지만, 오랜만에 하는 게임이라 그런지 조작도 그렇고 영 익숙하지 않았다.
“이런, 시작하자마자 죽어버렸구먼.”
결국 이거다 싶은 활약도 딱히 하지 못한 채, 캐릭터의 목숨을 허무하게 날리고 말았다.
“동전 넣어서 다시 살려야겠군그래.”
나는 컨트롤러의 버튼을 눌러 동전을 이었다. 그러자 죽었던 캐릭터가 멀쩡히 다시 살아 돌아왔다.
“그대는 내게 뭔가 용무가 있어 찾아왔을 테지.”
“…….”
“뭐어, 서두르지 말게나. 게임이나 마저 하자고.”
어느덧 마지막 보스를 물리쳤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왔다. 게임사 로고가 올라오고 나서 검은 화면으로 변했다가, 도로 시작 화면으로 돌아왔다.
“다 깼네요.”
“무슨 소리. 아직 시리즈 절반도 못 깼다.”
“예? 그럼 설마…….”
“아직 깨야 할 게임이 여섯 작품이나 더 남았다 이거지. 그리고 이제부터는 각자 코인 10개씩으로 제한이다. 동전 다 쓰면 처음부터 다시. 알겠는가?”
“아…….”
“꾸물대지 말거라. 시작한다.”
청룡은 나와 어깨를 맞댄 채 싱긋 웃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때 아닌 게임 삼매경에 빠졌다. 도대체 그놈의 게임을 몇 시간을 했는지 모르겠다.
“후우, 괜찮게 시간을 보낸 것 같군.”
미르각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허리가 아파 도중에 몇 번이나 일어서서 스트레칭을 해야만 했거늘, 그녀는 정말이지 멀쩡해 보였다.
“와줘서 고맙구먼. 그대 덕분에 꽤 즐거웠다. 어디, 내게 청할 것이 있다면 한번 말해 보거라.”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어쨌거나 주어진 미션은 완료했으니 이제 용건을 얘기할 차례였다.
“귄터 사지타리우스를 만나고 싶습니다.”
<나인서클>의 제 3원.
세계수의 수문장이자 아케인 마스터. 살아 있는 마법계의 역사라 불리는 현자. 귄터 사지타리우스.
“으으응? 그 노친네를?”
“예. 부디 자리를 주선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못 할 건 없다만, 당최 무슨 이유로?”
“그분에게 마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어떤 마법을 말이냐?”
나는 청룡에게 말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죽은 자를 살리는 마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