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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55화 (155/201)

155화. You Know My Name (4)

사흘 전.

에덴 파크 모텔.

똑똑똑―.

210호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남자의 이름은 유클리드. 며칠 전 유진의 집에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말쑥한 정장 차림에 신사적인 노크, 산뜻한 미소로 위장한 채였다.

“안녕하십니까.”

“…….”

“우리 전에 봤었죠? 방은 달랐지만.”

메리는 문틈 사이로 엿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두려운 듯 흘겨봤다. 우물쭈물하던 끝에, 그녀는 용기를 내었다. 문을 열고 방 밖 복도로 나왔다.

“……왜 왔어……?”

눈을 마주하고 있는 것조차 그녀에게는 더없이 큰 공포였다. 어찌저찌 입을 열 수는 있었다.

“유진 연 씨가 어제 퇴원했다고 들었습니다만.”

“…….”

“제가 드렸던 부탁은 기억하시죠? 생각해보니 연락처를 남긴다는 걸 그만 깜빡해서요. 그 친구는 출근한 모양인데, 혹시 저녁에 돌아오면 여기 이 쪽지 좀 대신 전달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

“‘왜 직접 하질 않고?’란 표정이시네요. 물론 다리 건너 컨택하는 게 번거롭긴 하지마는, 일면식도 없는 마당에 대뜸 들이대는 것보다야 이렇게 인맥을 거쳐 소개받는 편이 더 자연스럽잖습니까.”

남자는 유독 말이 많았다.

그러나 메리에게 있어 그 많은 말들 가운데 영양가 있게 들리는 소리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메리.”

이름을 알려준 기억은 없었다.

남자는 떠났고, 메리는 그에게서 건네받은 포스트잇 종잇조각을 꽉 쥐고서 방 안으로 돌아왔다.

“……흡…….”

그녀는 한참을 부들부들 떨며 괴로워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구토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기억의 단편이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듯한 쓰라린 감각. 도대체 이 질 나쁜 위화감은 무엇일까.

“마더?”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보고, 침대 뒤편에 숨어있던 스칼렛이 걱정스러운 듯 물음표를 띄웠다.

“방금 그 사람 누구야?”

“…….”

“왜, 무슨 일인데 그래?”

메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야 돼…….”

“뭐?”

“……빨리, 구하러 가야…….”

스칼렛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설마, 또 오빠한테 가려는 거야?”

메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더, 어제도 하루 종일 208호에 있었지.”

“…….”

“비프스튜 만들어준답시고 재료 사다가 그 집 냉장고에 처박아 놨잖아. 근데 그거 알아? 나랑 시안은 며칠째 라면이랑 통조림밖에 못 먹었다는 거.”

메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칼렛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마더는 요즘 이상해졌어.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놈이 살아 있다고 말해주는 게 아니었는데.”

“……미안…….”

“미안은 개뿔이. 웃기지 마, 나는 다 알아. 마더는 우리보다 그놈이 더 소중한 거지? 그치?”

이번에도 메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스칼렛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놈은 당신 아들 아니야.”

소녀는 자신의 초능력을 사용했다.

<양치기소년의 세 치 혀>라 칭해진 힘.

“당신 아들은, 어디에도 없어.”

<상대가 거짓말을 믿게 하는 능력>을―.

***

사라졌다.

문자 그대로, 일순에.

“……뭐야……?”

놈의 꽁무니를 뒤쫓고 있던 나는 순간 정지했다.

부리나케 주위를 살폈다. 달빛이 비추는 공터 그 어디에도, 유클리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투명화> 마법인가?

만약 그렇다면 꽤 의문스러운 상황이었다.

<투명화>는 환영계 마법사 캐릭터라 해도 레벨 50은 넘어야 겨우 익힐 수 있는 고위 비전 마법.

주문서 변환 등의 꼼수를 쓴다면 좀 더 일찍 배울 수도 있겠지만, 쌍권총과 카타나를 쓰는 것으로 보아 저 ‘유클리드 진’의 클래스는 시티헌터 계열.

정통 마법사도 아닌 놈이, 지금 시점에 <투명화> 같은 고위 마법을 쓰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러고 보니, 아까 사라지기 직전, 무슨 영창 비슷한 말을 중얼대는 걸 들은 것 같기도 한데…….

“…….”

나는 우선 차분하게 태세를 가다듬었다.

어쨌거나 상대가 은신 상태에 돌입했다는 것만은 확고한 사실. 다른 사족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숨을 머금고, 그대로 뱉었다.

정적 속에 의식을 집중시켰다.

<투명화>는 말 그대로 투명해지게 하는 마법.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놈은 이곳 어딘가에 있다.

….

….

불현듯―

기척이 느껴졌다.

감촉의 방향은 등 뒤였다.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러고 나서 주저 없이 오른손에 장전한 마나를 터뜨릴 준비를 했다.

허나,

내 움직임은 도중에 멈췄다.

“……어……?”

등 뒤에 있었던 것은,

검은 머리의 한 여인.

―메리였다.

“……뭣…….”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진 사이.

다시금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까꿍.”

반응이 늦었다. 한 템포 늦게 고개를 돌렸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권총을 든 유클리드.

타아아아앙―!!

붉은 섬광이 번쩍였다.

코앞에서 쏘아진 마탄. 막지 못하면 죽는다.

채 정제를 하지도 못한 순수한 마나 불꽃으로 무식하게 맞받아치는, 방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방식으로나마 일단은 그 총격을 막는 데 성공했다.

“윽!?”

허나 총탄 자체의 물리적인 에너지는 크게 감소되지 않았다. 방탄의 충격은 마나 방벽을 뚫고 그대로 흉부를 때려 갈비뼈에 곧이곧대로 전달됐다.

“크윽…….”

나는 통증을 못 이겨 몇 발짝 뒷걸음질 쳤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가슴팍 안쪽에 시퍼런 피멍이 부어올랐음은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유클리드는, 또다시 모습을 감췄다.

총격 직후에 시선을 맞대자마자 사라졌다. 씨익 웃고 있던 놈의 썩소가 기억에 남아 열이 뻗쳤다.

그보다 방금 분명,

메리가 보였었는데…….

“……환영 마법……?”

왜인지 기묘한 느낌이었다.

질 나쁜 위화감. 현실적이지 않은 붕 뜬 감각. 어떠한 무시무시한 것의 편린을 맛본 듯한 기분.

문득 처음으로 흑마법을 썼을 때가 떠올랐다.

평범한 <강화>였지만 그건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마법의 이치를 거스른 마법. 그러고 보면 흑마법은 어딘가 뒤틀려 있다고들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 눈앞에서 목격한 마법들 역시―

어딘가 뒤틀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핫, 놀랐어?」

그때.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놀랐지? 표정에 다 드러나걸랑.」

“…….”

「거 아까부터 너무 신나 보이길래 아니꼬와서 장난 좀 쳐 봤는데, 감상이 어떤가 모르겠네.」

싱글벙글한 목소리였다. 기형적으로 울리는 메아리 탓에 놈이 있는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흑마법이냐?”

내가 묻자, 놈이 곧바로 외쳤다.

「정답!」

짝짝짝―.

경박하게 박수 치는 소리.

「‘하데스의 투구’라는 걸 운 좋게 구했거든. 그쪽이 계약에 썼을 ‘카인의 단도’만큼은 아니지만, 흑마법 성물 중에선 나름대로 네임드라 하던데.」

“…….”

「그나저나 알고 있어? 흑마법사에게 보이는 ‘악마’의 외양은 술사 본인의 무의식 속 죄악에서부터 비롯된다는 모양이야. 내 악마는…… 아무것도 안 보였어. 투명한 모습이더라고. 마치 공기처럼.」

나는 조용히 놈의 말을 계속 들었다.

<투명화>로 인한 은신 상태에서는 행동반경에 페널티가 생겨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없을 터.

소모되는 마력의 한계도 분명히 있을 테니, 언젠가 모습이 드러나는 때가 반드시 생겨날 것이다.

놈이 시간을 끄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도망치지 않아 준다면 이쪽에게는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저놈을 죽일 작정이니까.

「1차로 받은 마법은 <현혹>이었어. 심장을 바친 대가치고는 아무래도 꽤 초라하구나 싶었지.」

「그리고 <부름>은……. 듣던 대로 굉장하더군. 선후 딜레이가 전혀 없는 <투명화>! 간단한 기술인만큼 다루기도 쉽고 사용 방법까지 무궁무진!」

「<부름>의 대가로 악마의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는 솔직히 조금 걱정했는데, 나중 가서 보니, 그건 괜한 걱정이었지 뭐야…….」

굳이 시간을 더 끌 필요는 없다.

떠벌리고 있는 틈에 족쳐야 한다.

놈의 위치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주변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은 안다.

아무 데나 막무가내로 공격을 날려 볼까?

멍청한 짓이다. 나는 놈을 볼 수 없지만, 놈은 내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있다. 맞아줄 리가 없지.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스으읍.”

나는 숨을 힘껏 들이마셨다. 단전에 호흡을 집중. 체내의 마력을 있는 그대로 다 끌어모았다.

아주 예전에, 시 외곽에서 비너스와 싸웠을 때.

내 심장에 깃든 마력을 가능한 한 최대로 폭발시켜, 반경 수 킬로미터까지 방출했던 적이 있다.

그때만큼의 에너지는 필요 없다.

그리고 나는, 그때보다 더 강하다.

두근―.

심장은 준비됐다.

남은 것은 각오뿐.

움켜쥔 주먹 틈으로 불꽃이 타닥거렸다.

명치에서 시작된 자색 화염의 씨앗은, 곧 하나의 작은 태양이 되어 순식간에 사방으로 뻗쳐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주변 일대를 집어삼킨 보랏빛의 화마.

이어 그 불꽃에 불꽃다운 열기를 심었다.

“<강화>.”

뜨겁게. 더 뜨겁게. 더욱더 뜨겁게.

활활 타올라 공기마저 익어 버리게.

데워진 모래가 바짝바짝 튀어 오르고, 공사장 한 편의 철골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정도의 열기.

<투명화> 상태의 유클리드가 어디에 있든, 근처에 있다면 이 불꽃 속에서 무사하진 못할 터였다.

나라면 곧바로 은신을 풀고,

화염을 막을 방법을 취할 터.

부릅뜬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유클리드. 놈을 찾아야만 한다.

―놈은 어디에 있지?

내가 뿜은 불꽃의 열기는 나에게도 똑같이 데미지를 주고 있었다. <강화>로 겨우 버티고는 있었지만, 더 끌었다간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게 뻔했다.

….

….

“거기냐.”

저편에 아른거린 반영反影.

<투명화>가 해제된 흔적이다.

―놓치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통한의 일격을 먹일 찬스.

어정쩡한 공격으로는 마무리를 지을 수 없다.

“카인 나호르.”

망설임 없이 입에 외운 <부름>.

“<강화>.”

후회하지 않아야 할, 폭주 유도.

―카하하학!

―크카카카카카칵!

격렬한 열기를 머금은 보랏빛 화염 폭풍 사이로, <부름>의 벌레들이 폭죽처럼 솟구쳐 올랐다.

한 차례 <강화>된 <부름>은 뜨거운 불꽃 속에서 다시 또 몇 겹씩 더 연이어 <강화>를 품었다.

제어할 수 없는 악마의 힘이 세찬 폭풍을 타고 주변의 온 방향으로 쉴 새 없이 번져 나갔다.

<부름>의 직격. 피할 공간은 없다.

「이런.」

그즈음.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짓이야, 친구.」

어째서인지.

한참 떨어진 곳에서부터.

「메리가 아파하잖아.」

….

….

뭐라고 한 거지?

누가 아파한다고?

왜인지 기묘한 느낌이었다.

섬뜩한 기시감.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한 감각. 무간지옥에 제 발로 한 발짝 다가선 죄인의 기분.

나는 내뿜고 있던 불꽃을 잠재웠다.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저편의 땅을 바라보았다. 달밤 아래에 머무른 그림자의 지점을.

“……어……?”

거기에 있었던 것은,

검은 머리의 한 여인.

―메리였다.

「말했잖아.」

폭풍에 무너져 내린 돌무덤 옆에,

그녀가 홀연히 쓰러진 채로 있었다.

「그 아가씨 살아있다고.」

입술이 떨렸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근데, 어이쿠! 이거 어쩌나?」

그것이 환영 마법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네가 죽여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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