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You Know My Name (3)
일주일 전.
에덴 파크 모텔.
“으응…….”
208호 방의 침대 위에 홀로 누워, 메리는 이불 속에서 그리운 이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들, 언제 오지…….”
유진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녀는 하루에 수십 번씩이나 208호를 들락날락했다. 혹시라도 그가 퇴원해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다 모텔 관리인 아가씨 페니한테 들켜서 출입 금지 명령을 당하기도 했지만, 메리는 개의치 않고 오늘도 몰래 208호 방에 들어와 있었다.
“보고 싶다…….”
베개와 이불에서는 유진의 냄새가 났다.
흐릿한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맡고 난 뒤에는 금세 잊어버리고 마는 냄새.
그러나 다시금 콧속에 누벼지면, 언제라도 금방 떠올려지는 그런 추억 같은 냄새.
그 희미한 내음 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 노곤히 감긴 눈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을 무렵.
똑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신사적인 노크.
“……누구……?”
누가 찾아온 걸까? 관리인 아가씨?
어쩌면 유진이 돌아온 걸지도 몰랐다.
메리는 얼른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현관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젖혔다.
끼익―.
열리기 시작한 문틈으로 보인 것은,
정장을 차려입은 한 사내의 실루엣.
검은 머리. 황금색 눈동자.
처음 보는 얼굴. 허나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와 분위기는, 어째서인지 유진과 많이 닮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뱀파이어의 촉은 날카롭다. 그것은 동물적인 본능이라기보다도 초자연적인 직감에 가까웠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 순간 메리는 겪어본 적이 없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 남자는 위험하다.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녀는 깨달았다. 문을 열자마자 열어서는 안 됐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른 시간에 실례 좀 하겠습니다. 혹시 카이ㅌ, 아니, 유진 연이라는 분이 여기 살지 않나요?”
“…….”
“으음, 208호, 여기 맞는 것 같은데……. 그쪽은 동거인이신가요? 여자친구? 아니면 여동생?”
“…….”
“무뚝뚝한 분이시네. 뭐, 알겠습니다. 지금 댁에 안 계신다면 나중에 들르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냥 제가 들렀다고 얘기나 좀 전해주시겠습니까?”
“…….”
“유클리드라고 하면, 누군지 알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곧 자리를 떴다.
메리는 현관문을 쿵 소리가 나도록 닫았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벌벌 떨었다.
“……왜…….”
지금 그녀의 두려움 속에는, 그녀가 유진에게서 느끼는 기묘한 애정까지도 함께 도사려 있었다.
“……왜, 나타난 거야…….”
콧속에는 남자의 진한 향수 냄새가 감돌았다. 독한 향기가 감각을 덮어 기억을 혼란에 빠뜨렸다.
“……아들…….”
어쩌면…….
그 남자는…….
***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다.
물론 약 올릴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런 상황에는 누구라도 눈이 뒤집어지겠지.
도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테스트.
제안을 거절당한 이상 어차피 언젠가는 맞부딪히게 될 운명.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이른 타이밍에 상대의 전력을 파악해 두고 싶었다.
마법사들의 재앙이라 불렸던 존재, 암귀.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그 무시무시한 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이다. 어찌 참고 배기겠는가.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화염탄의 포화 속에서,
유클리드는 혀를 내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앙―!
어둠을 붕괴시키는 화려한 폭발.
이번에도 가까스로 직격을 피했다. 허나 바로 그 직후 연이어 날아든 것은 술사 본인, 유진이었다.
“이봐! 빡친 건 이해하지만, 암만 그래도 너무 날뛰는 거 아냐? 이러다 애먼 사람까지 다치겠어!”
“닥쳐.”
성난 암귀는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상대를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기 위한, 파괴 마법의 맹렬한 연타. 유클리드는 기민하고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으로 그것들을 전부 회피했다.
‘공격 자체는 단순해. <강화>를 활용해 재현한 <폭렬파>나 <프로미넌스 번>. 출력만 보면 위력적이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특별한 부분은 없어.’
소문만큼 강력한 것 같지는 않았다.
마법사로서는 잘 쳐줘야 중상급 정도.
경험. 센스. 피지컬. 어느 것 하나 대단치 않다.
제대로 된 전투 장비를 갖추지 않은 지금의 유클리드에게도 그리 까다로운 상대는 결코 아니었다.
‘문제는…….’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단순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공격인데, 왜인지 궤적 하나하나가 위협적으로 급소를 스쳐 지나갔다.
나보다 느린 상대에게 계속해서 따라잡혔다.
놈은 어느 순간이건, 항상 자신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 그 움직임에 망설임은 없었다. 자신이 어디로 어떻게 향할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읽히고 있다.
수 싸움에서 밀린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애초에 유클리드는 누군가에게 읽힐 만한 정석적인 움직임을 펼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진은 그의 동향을 완전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백스텝. 점프 후 연사.’
‘장전 딜레이로 페이크.’
‘근접한 순간 장검 발도.’
마치―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이.
‘다 보여.’
유클리드가 칼을 뽑아 휘두른 순간, 그의 어깨가 미약하게 열렸다. 유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폭렬파>.”
피할 수 없는 타이밍에 가해진 <폭렬파>.
칼날이 유진의 코에 닿는 것보다 더 빠르게, 자색 폭발이 먼저 유클리드의 견갑골을 건드렸다.
투콰아아아아아앙―!!
어둠이 다시 한번 크게 붕괴됐다.
밤의 밑바닥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폭발의 기운이 멎고, 수유 잠잠해졌다.
피어오른 연기 속에서, 그림자가 드러났다.
“……하핫, 젠장! 진짜로 죽을 뻔했네!”
피와 먼지를 뒤집어쓴 유클리드가 거기에 있었다.
그는 콜록거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런 다음 멀찍이 떨어져 서 있는 유진을 바라보며 외쳤다.
“미안, 아까 그거 장난이었어! 메리였나? 실은 그 아가씨 살아있거든? 그러니까 그만 싸우자고!”
“…….”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나 싸우러 온 거 아니야! 그쪽도 이런 난리 펴서 얻을 거 없잖아? 안 그래?”
먼저 시비를 걸어 온 쪽의 휴전 제안.
우스꽝스러운 태도였지만, 실제로 이 싸움이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게 없다는 것만은 팩트였다.
그러니 평상시의 유진이었다면 약간 고민을 하는 척하다가, 몇 가지 자신 쪽에 유리한 조건을 붙여 어쩔 수 없다는 듯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평상시였다면, 말이다…….
“싸우러 온 게 아니겠지.”
줄곧 입을 닫고 있던 유진이, 입을 열었다.
“너는 굳이 나를 여기에 데려왔어. 후미진 데 위치한 버려진 공사장. 맘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고, 들키지 않게 뒷정리가 가능한 곳. 누구 하나 담가 버리기엔 그야말로 최적의 장소지.”
“…….”
“함정을 설치할 수도 있었고, 매복을 준비할 수도 있었지만, 정작 너는 그러지 않았어. 애초에 진심으로 싸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그는 강압적인 시선으로 유클리드를 노려봤다.
“진심으로 싸워도, 날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지금은 <사이버판타지>의 초반부 시점.
플레이어가 생성한 캐릭터가 이제 막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할까 말까 한 그런 단계다.
즉, 유진이 만든 캐릭터 ‘유클리드 진’ 역시, 현재 시점에서는 그닥 별 볼 일 없는 수준이란 것.
“네 말대로야. 너와 싸워서 내가 얻을 건 없어.”
“…….”
“다만, 이대로 널 살려 두면 안 될 것 같거든.”
강해지기 전에 죽여야 한다.
이제부터 ‘유클리드 진’이 벌일 짓거리들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래야만 했다.
“대화는 이걸로 끝이다. 유클리드.”
오싹―.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잠시 눈을 깜빡인 한순간.
어느새 눈앞에 유진이 있었다.
“……!?”
빠르다. 아까 전과는 움직임이 달라.
설마, 지금까진 전력이 아니었단 건가?
퍼억―! 유진이 뻗은 주먹이 유클리드의 배로 날아들었다. 허나 그냥저냥 평범한 펀치가 아니었다.
통상 수십 배 이상의 출력을 지닌 <강화>를 머금은, 공기 분자를 깨뜨리며 꽂힌 살벌한 권격.
“욱!?”
반응은 했지만 미처 피할 새가 없었다.
복부에 꽂힌 일격은 내장을 뒤집어 피를 토하게 했다. 몸뚱이는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튕겨졌다.
―또다시, 온다.
쓰러진 유클리드가 몸을 가누기도 전에, 순식간에 접근한 유진이 한 번 더 발차기를 날렸다.
두개골이 반으로 쪼개질 뻔한 것을 유클리드가 간신히 머리통을 뒤로 빼서 피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이다.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머리를 굴리고 있을 새는 없다. ‘살아남는다’란 단어만을 주입한 본능에 몸을 맡기고 따를 뿐.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바로 끝장이다.
‘눈에 띄게 빨라진 이유를 알았다.’
‘가속하는 순간 지면에까지 <강화>를 가해서 도움닫기를 안정화. 스피드를 극한으로 끌어올렸어.’
‘……그걸 실전에서 쓴다고? 이거 완전 미친 새끼잖아. 마나가 무한이라도 되는 거야, 뭐야.’
압도적인 위압감. 그리고 알 수 없는 위화감.
이건, 거대한 벽이라기보다도…… 일종의 거울이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대체 뭐냐고, 이 괴물은.’
머릿속이 들여다보여지는 듯한 오싹한 감촉.
시에라시티 제일의 칼잡이인 도그아이드 킴과 겨뤘을 때도 이 정도의 압박감은 느끼지 못했었다.
‘끝내주잖아, 제기랄!’
유클리드는 전율을 느꼈다.
쓰레기 같은 재능을 가진 인간이 과연 이 정도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니,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을까.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또 흘리게 했을까.
……역시나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이 남자는, 나와 매우 닮았다.
‘하나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왜인지 처음 공격 이후로 <부름>을 전혀 쓰고 있지 않다는 점이야.’
‘발동하기 위해서는 무슨 조건이 있는 건가? 리스크가 부담스러워서 사용이 꺼려지는 거려나?’
‘그게 아니면…… 단순히 제어 이슈?’
서로가 서로를 꿰뚫어 본다.
이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만약 제어를 못 한다면.’
본래 유클리드는 흑마법이란 개념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암귀의 소문을 듣기 전까지는.
그리고 <부름>의 실체를 직접 목격하게 된 순간, 그 강력함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을 느꼈다.
‘그걸 역으로 이용해 볼까.’
일전에 암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묘연히 흑마법에 대한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숱한 수소문을 거친 끝에, 외국의 어느 상인에게서 오래된 유물을 하나 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금지된 아티팩트. 흑마법 성물.
악마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낡은 투구.
“하데스.”
지옥의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목소리로,
흑마법사는 나지막이 그 이름을 불렀다.
“디스파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