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25화 (125/201)

125화. The Murder Mystery (5)

암귀 카이트.

<블랙 대거즈>를 집어삼키고,

<홍룡파>를 홀로 박살 낸 괴물.

신흥 조직 <헬터 스켈터>의 수장이자,

시에라시티 최악의 살인마라 불린 악당.

“으, 아…….”

싸움을 걸어야 할 대상을 잘못 고르고 말았다.

하필이면 상대가 도그아이드 킴에 암귀라니. 운이 지지리도 없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항복하자.

벅스는 생각했다. 눈과 입과 피부가 와들와들 떨리고 있던 와중에, 간신히도 해결책을 떠올렸다.

맞아, 그래야만 한다. 이제 그녀가 살아남는 방법은 당장 엎드려 싹싹 비는 것뿐이었다.

해야 할 일을 깨달은 그녀의 다음 행동은 권총을 뽑았을 적의 스피드보다도 몇 배는 더 빨랐다.

양손에 쥔 총을 얼른 바닥에 던져 버리고, 쏜살같이 무릎을 꿇어 진실로 경외심을 표하려 했다.

“사, 살려…….”

입을 뗀 그 순간.

타아앙―!

어디선가 총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묘한 감촉이 돌았다.

“……?”

벅스는 자기 목을 어루만졌다.

가운데 부분이 뻥 꿰뚫려 있었다.

“허윽…….”

울컥―.

핏물이 총구멍으로 줄줄 새어 나왔다.

“아아, 벅스.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그리고, 여장부의 등 뒤 너머 아득히 먼발치에, 한 남자가 비스듬한 자세로 오뚝이 서 있었다.

“일이 이렇게 돼서 참 유감입니다.”

“……왜……?”

“쉿. 그렇게 굳이 묻지 말아 주세요. 당신은 합리적인 인간이잖습니까. 언제든 실리를 추구해 온 당신이라면 분명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곱슬머리 펩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손에 들린 총에서는 격발의 진동을 여전히 머금은 푸르른 잔연이 내뿜어져 나왔다.

“필요 없어진 물건은, 버리는 게 맞잖아요?”

“…….”

“고마웠습니다. 지금까지 협력해줘서.”

폐부에서부터 차오른 바람 빠진 신음이 잠시간 처량하게 이어지다, 끝내 그녀는 목을 부여잡은 채로 쓰러졌다. 그러고 나서는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후우. 누굴 죽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인생이란 정말이지 덧없는 것 같아요. 고작 총알 한 방에 이리도 쉽게 죽어 나자빠진다니. 하여간에 사람을 죽이는 건 쉬워도 너무 쉽죠. 질릴 정도로요. 그래서 저는 항상 일하는 기분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밥벌이는 아무리 질려도 해야만 하는 거니까요.”

펩은 짧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노장 연극배우의 연기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유클리드?”

“…….”

“뭐, 당신에게도 자기만의 철학은 있겠죠. 살인에 관해서는 저보다도 전문가일 테니 말입니다.”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입을 놀리기보다 먼저 상황을 판단하는 것에 사고를 주력했다.

펩은 분명 지옥못 건너편에 있었을 것이다.

절벽에서 폴란드인의 죽음을 목격한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어림잡아 2시간은 소요될 거리를 겨우 10분 만에 뚫고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것.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놈이 머무른 자리에 푸른색 마나 파동이 어렴풋이 잔재해 있다. 아마도 <디멘션 스루>와 같은 고위 기동 마법의 흔적이다.

펩의 직업은 마총사.

사격술 위주로 싸우는 시티헌터에 가까우나, 구태여 클래스를 분류하자면 일단 마법사이긴 하다.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출중하다면 고위 마법 한두 번쯤은 구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디멘션 스루>는 마나 소모량이 장난 아닌 스킬이다. 킬로미터 단위의 거리를 돌파하는 데 사용하려면 MP가 통상의 수십 배는 되어야 한다.

―님로드 스톤의 힘인가.

3억 달러짜리 유니크 아이템.

별 볼 일 없는 마법사라 할지라도 단숨에 가이우스급 수준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전설의 파워스톤.

펩은 님로드 스톤과 상성이 완벽한 청색 마력의 보유자였기에 시너지를 100% 끌어올릴 수 있었다.

더욱이 더 높은 효율을 위해 이미 고유 파장의 합수율과 마나 공명 조율까지 마쳐 놓은 상태였다.

즉,

무시무시하게 강해져 있다.

“처음에는 여러분을 포섭하려고 했는데, 어쩐지 하다 보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 뭡니까.”

곱슬머리 펩은 흥얼거리며 웃었다.

압도적인 힘을 손에 쥔 자의 여유였다.

“고로, 여기서 죽어주셔야겠습니다.”

검붉게 물든 시온의 하늘 아래.

지옥못을 목전에 둔 낭떠러지 앞.

유진은 긴장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팟―!

무언가 번쩍하며 움직였다.

도그아이드 킴이었다. 가만히 있던 그가 갑자기 대뜸 펄쩍 뛰어올라 허공을 답보하듯 땅을 건넜다.

그의 손에는 어느 틈에 주웠는지 모를 적당한 크기의 철근 막대기가 쥐어져 있었다.

또한 그 막대기로 겨냥한 상대는…….

“어?”

실로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편인 유진이었다.

터어엉―!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큰 진동이 울렸다.

공기를 타고 전해진 떨림은 그것만으로도 살결에 미약한 통증을 줄 정도로 강렬했다.

“호오, 막았어?”

도그아이드 킴은 깔보듯이 감탄사를 뱉었다.

유진은 <강화>로 이룩한 <포스 배리어>를 통해 가까스로 개눈깔의 참격을 버텨낼 수 있었다.

“뭔 짓거리야, 할배.”

“어디 이것도 막나 보자.”

“아니, 이봐, 잠ㄲ…….”

바로 이어진 두 번째 참격.

터어어어엉―!! 이번에 울린 소리와 진동은 첫 번째 것에 비해 갑절은 되는 크기였다.

“큭……!?”

콘크리트 건물에 내려쳐진 듯한 엄청난 무게감이 팔뼈에 다이렉트로 내리꽂혔다. 얇디얇은 철근 따위가 어떻게 이런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일까.

“잘 막는구마이. 방어가 특기냐?”

양손도 아니다. 한 손으로 휘두른 거였다.

게다가 팔뚝만 썼다. 팔심만으로 이 정도다.

‘강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경이로울 만치로 순수한 강함. 괴물 트롤 자그말렉 피터스에게서 느꼈던 바로 그 느낌과 같았다.

“이봐, 지금 우리끼리 이럴 때가 아냐……!”

유진은 방호 마법을 유지하느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도그아이드 킴은 피식 웃었다.

“이럴 때가 아니긴 뭐가 아냐?”

“내가 암귀라니까 눈 돌아간 건 알겠는데, 지금은 좀 참아 달라고, 제발.”

“허, 내가 뭣 땀시 이러는 줄 알고?”

물론 유진은 노인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

“요도 무라사메.”

흠칫―.

개눈깔은 정지했다.

“그 칼을 뽑고 싶은 거지?”

“…….”

“뽑을 수 있게 도와줄게. 그니까 지금은 협조 좀 해주라, 이 노망난 영감탱이야……!”

노인은 유진의 눈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이 녀석, 뭔가 알고 있구나.

그때.

“<확산 폭파 술식>.”

하늘에서 탄환의 세례가 쏟아졌다.

그러나 단순한 총알들이 아니었다.

투콰과과광―!!

하나하나에 굵직한 파괴 마법이 깃든 마탄.

탄환들이 땅에 부딪힌 순간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키며 연이어 폭발했다. 낭떠러지 일대는 네이팜탄이 흩날린 황무지마냥 푸른 불길에 휩싸였다.

“허억…….”

죽을 뻔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유진이 순간적으로 주위에 강화된 마나를 응축시켜 보호막을 형성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타 죽었을 것이다.

주변은 완전히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는 물론이요, 땅속 깊은 안쪽의 단단한 지반마저도 녹아내리기 직전이었다.

간단한 영창만으로 이 정도 위력이라니.

확신을 가지고 말하건대 방금 비전 마법의 위력은 <나인서클>에 준하는 급이다. 적어도 그 밑 단계에까지는 확실하게 다다랐음이 틀림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위험한데…….”

예상을 한참 웃도는 강함이다.

상대를 얕보고 있던 건 아니지만, 설마 가공도 안 된 님로드 스톤으로 저렇게까지 세질 줄이야.

“어이, 할배. 봤지? 저것부터 해결하자고.”

“쯧, 칼만 있었어도 저딴 건 한 큐에 컷이야.”

“알아. 아는데 지금 칼이 없잖아.”

“그래서, 뭐 어쩌자는 긴데?”

“힘을 합쳐야지. 그쪽이랑 나랑.”

도그아이드 킴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길 수는 있냐?”

유진은 두뇌를 굴렸다. 불꽃과 연기로 서로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재빠르게.

상대는 좀 전부터 줄곧 공중에 머물러 있다.

<스카이워크>를 유지 중인 건가. 사치스러운 짓을 다 하시네. 마나 소모가 겁나지도 않나 보군.

직업이 마총사인 것과는 별개로 다룰 줄 아는 마법의 종류가 상당히 다양한 것으로 보인다.

비너스와 같은 타입의 트릭스터 스타일. 거기에 님로드 스톤으로 수십 배는 뻥튀기 된 출력이라.

“뭐.”

어느 마법사가 덤빈다 해도,

저걸 이기는 건 무리겠지만―

“출력은 내가 이겨.”

***

무한한 마나.

모든 마법사들의 꿈.

마나 보유량은 선천적인 재능이다.

후천적으로 갈고 닦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마나 수련은 그 효율이 턱없이 낮아 현대에 와서는 사실상 정신 단련의 개념으로써 행해진다.

태생적으로 부족한 마나 보유량의 한계를 해소하는 방법은 많지 않다.

마석을 활용한 마나 증강이 대표적인 예시다. 일시적인 펌핑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매력적이라 많은 마법사들이 그 방법에 의존한다.

완드. 소서리젬. 매직링.

알맞게 가공시킨 파워스톤을 삽입한 장비를 통하여 마법의 위력을 보다 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

펩은 모든 마법사들의 꿈을 이뤄냈다.

님로드 스톤은 사용자의 기본적인 마나 출력을 수십 배 이상 늘려줄 뿐만 아니라, 마력의 효용성까지 월등히 증가시켰다. 1을 쓰는 것만으로 100을 쓰는 듯한 효과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한은 아니다. 하지만 무한에 가깝다. 평소에는 쓸 엄두도 못 냈던 고위 마법을 아무리 써 댄들 마나가 고갈 날 일은 없다.

암귀라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도그아이드 킴은 우스울 뿐이다.

지금이라면, 그래. 드래곤이라도 이길 수 있다!

펩은 이제까지의 인생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진득한 고양감에 소리 없이 전율했다.

자아, 놈들을 죽이고 돌아가자.

그리고 도시를 지배하는 거다. 님로드 스톤의 힘으로. <나인서클>에도 들어갈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용병 생활은 청산이다. 인생 역전인 것이다.

때마침―

놈들이 나타났다.

흐드러진 불길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철근 막대기를 들고 있는 하찮은 노친네가 한 명 있고, 바로 뒤에 가면 쓴 애송이가 자리해 있다.

무얼 할 셈인지는 몰라도,

나한테 상대가 될 것 같으냐.

“<광선 집탄 술식>.”

총구에서 푸른 섬광이 반짝였다.

그리고 펩이 전개한 술식의 구사에 맞춰, 그의 목에 걸려 있는 님로드 스톤이 반응했다.

투콰아아아앙―!!

마력 에너지가 핵융합을 하듯 모이더니, 태양처럼 빛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광자탄이 발사됐다.

그 출력은 티베리우스급.

웬만한 대마법사에 준한다.

지구마저 녹일 듯한 기세의 웅대한 에너지 광선이, 땅에 붙어 서 있는 두 사내를 노리고 날아갔다.

“무장류 비(非)검술.”

푸른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서,

강철 막대기를 든 노인이 읊조렸다.

“철근참鐵筋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