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The Murder Mystery (4)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였다.
두 가지 이유로, 최후의 한탕을 위한 그들의 살인 계획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첫째.
상정 외의 괴물들의 출현.
본디 시온 퀘스트에 참가하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대부분 수준급의 실력자들이기는 하다.
당연히 그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어쨌거나 웬만한 녀석이라면 죽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규격을 한참 벗어난 강자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메인 플랜트로 향하는 루트를 혼자서 뚫어내는 등 사실상 솔플 공략에 성공한 신인, 유클리드.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데다가 시온 퀘스트 1회차라는 초짜가 언감히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냈다.
심지어 괴물은 그놈뿐만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도시 제일의 흉검이라 불리는 악당 칼잡이 도그아이드 킴까지 한 파티에 끼어 있었다.
개눈깔의 실력은 소문대로 무시무시했다.
어떻게 죽이거나 할 수 있는 상대가 절대 아니란 것쯤은 잠깐 지켜본 것만으로 뼈저리게 느껴졌다.
또한 그 두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잭 린든이란 오크 녀석도 꽤나 전투에 능한 작자였다.
나머지 둘인 폴란드인 쌍둥이는 팀에서 그나마 만만한 존재긴 했으나,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지라 해치울 기회를 마련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형국.
다시 말해, 신규 지원 그룹 다섯 명을 몽땅 죽여버린다는 이번 계획의 원초적 시나리오는 실현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그들은 깨달았다.
둘째.
예상치 못한 재물의 습득.
콜로니를 공략하던 중에 획득한 님로드 스톤. 그것은 특품 마석 중에서도 특출한 고급품이었다.
시온에서 희귀한 아이템을 얻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지만, 시가 3억 달러짜리는 경우가 달랐다.
퀘스트의 기본 지급 보수 10만 달러 따위는 껌값으로 느껴지게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값어치.
그 물건을 발견한 것만으로, 돈을 위한 살인 같은 짓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계획은 중단하는 편이 좋겠어.”
플랜트 공략을 마치고 캠프로 돌아가는 길.
파티 멤버들이 신경 쓰고 있지 않은 틈을 타, 벅스는 조용히 리더에게 다가가 몰래 말을 붙였다.
“이번에 온 녀석들은 너무 강해. 솔직히 우리끼리 도무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잖아?”
“…….”
“값나가는 물건도 얻었겠다, 이쯤에서 관두자고. 어차피 이제부터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수익은 역대 최대치로 먹고 화려하게 끝낼 수 있어.”
벅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님로드 스톤으로 벌어들일 돈은 그들이 지금까지 부업으로 벌어온 액수를 까마득히 초월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가만히만 있어도 억만금이 절로 주머니 속에 들어올 테니까.
그때.
“……분배…….”
리더인 펩이 중얼거렸다.
“뭐?”
“사망 신고한 두 사람분의 몫은 기관에서 챙겨주지 않아요. 우리 몫에서 따로 떼어 줘야 합니다.”
그의 말에 벅스가 멈칫했다.
신규로 지원을 올 인원을 늘리기 위해, 그들은 지난번 보고 때 캠프의 생존자 숫자를 조작했었다.
실종 처리시킨 기존 멤버 2인은 지원 멤버를 모두 죽인 다음 캠프에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살인 계획을 이행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러운 복귀는 불가능.
파티가 전원 생존한 지금 그 둘을 다시 캠프로 불러올 타이밍은 아무래도 애매했다.
하물며 나눠 먹을 입이 8에서 10으로 늘어나는 만큼 각자의 몫은 줄어든다. 눈에 띄게.
“그럼, 어떻게 할 셈인데……?”
“우리가 님로드 스톤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지옥못에 숨어 있는 그 두 사람은 아직 모릅니다.”
그들은 계획을 정정했다.
바뀐 부분은, 살인할 대상.
“설마 그 둘을 죽이잔 얘기야?”
“그렇습니다.”
거기까지는 분명 합리적이었다.
이미 사망 보고를 올린 기존 멤버 2인을 죽인다면 별다른 트러블 없이 이득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리스크는 크지 않으면서도 리턴은 아주 확실했다.
“…….”
허나 그 무렵―
리더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
님로드 스톤.
푸른빛의 영롱한 자태가 주는 도색적인 아름다움, 손에 쥔 순간에 느껴진 파괴적인 마나의 공명, 그 잊지 못할 감동의 떨림을, 그는 떠올리고 있었다.
마법사라면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가지고 싶다― 라고.
“네 명.”
펩은 읊조렸다.
“최소 네 명을 더, 죽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용기가 밀려왔다.
두뇌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회전했다.
“벅스. 지금부터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그날 밤.
먼저 그는 외부에 숨어 있는 멤버 중 한 명에게 연락하여 캠프 근처로 오도록 불렀다.
“이 계획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도그아이드 킴과 유클리드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 두 사람을 약화시켜야 해요.”
베이스캠프 뒤편의 타이어 숲에 잠복해 있다가, 녀석이 방심한 틈을 타 가볍게 목숨을 뺏었다.
시체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 다음 자기 옷을 입혀, 죽은 게 자신인 것처럼 위장했다.
“일단 그 둘을 용의자로 만드세요. 자기들한테 의심이 몰리게 된다면 분명 서로를 경계하겠죠.”
“놈들을 범인으로 몰고 가라 이거지…….”
“상황이 받쳐 준다면 그들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도그아이드 킴은 칼잡이니까 칼 없이는 전투력이 한참 낮아질 테고, 유클리드도 가방 속에 무기를 주렁주렁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아마 맨손 상태에선 그닥 위협이 되지 않을 겁니다.”
시신이 입은 옷 주머니에 표시가 그려진 지도를 넣어 두고서, 펩은 해당 지점으로 향했다.
지옥못 근처의 은신처에서 두 번째 멤버를 사살. 그러고 나서는 파티가 도착할 때까지 대기.
벅스의 무전을 받아 팀이 나눠진 것을 확인한 뒤, 대기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2팀을 공격했다.
환영 마법을 이용해 파티의 추격을 유도. 팀을 분산시킨 이후 폴란드인 쌍둥이를 먼저 처리.
“근데, 오마르까지 죽일 셈이야……?”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우리 파티에서 가장 약골이니, 가장 죽이기 쉬운 친구 아닙니까.”
한패였던 오마르에게도 바뀐 계획에 대해서는 일러주었다. 물론 자기 역시도 사살 대상에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최후의 한탕, 멋지게 해내 봅시다.”
“…….”
벅스는 왜인지 썩 느낌이 좋지 않았다.
허나 리더에게 반기를 들 수는 없었다. 펩은 항상 차분하고 푸근한 인상의 사내였지만, 그런 타입의 사이코패스가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을 누가 모를까.
발을 뺐을 때의 후환이 더 두려웠다. 펩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무슨 역풍이 불어닥칠지 몰랐다. 적어도 오마르와 같은 꼴이 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현재.
“정말로 죽은 게 맞나?”
그녀는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시체는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어. 일련의 사건 역시 내통자가 있었다기보다도, 애초에 파티 멤버들끼리 벌인 범행이었다고 하는 편이 훨씬 그럴싸해.”
유클리드란 놈은 감이 날카로웠다. 그것도 제법 많이.
설마 아무런 증거도 없는 마당에, 펩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더해 공범 여부까지도 꿰뚫어 볼 줄이야.
“왜 말이 없지?”
“…….”
“혹시 정곡이었나?”
당황해서 반박할 타이밍을 놓쳤다. 이제 와서 둘러대려고 해봤자 둘러대려는 의도가 너무 뻔히 보였다.
‘어쩌지?’
잡아뗀다고 해서 불리할 일은 없었다. 어쨌든 지금 당장 그의 주장에 물증은 없는 실정이니까.
포기하고 전부 털어놓는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눈앞에 있는 상대가 미친 괴물들이니까. 이미 거의 다 들켰으니 차라리 다른 라인으로 갈아타는 게 조금이나마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근데…….’
그즈음.
벅스는 홀연 그런 생각을 했다.
‘……얘들 지금 무기가 없잖아…….’
도그아이드 킴과 유클리드는 비무장 상태였다.
유력한 용의자라는 핑계를 들먹여 칼과 무기 가방을 캠프에 두고 오게 만들었다.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벅스의 허리춤에는 언제든 뽑을 수 있는 대구경 권총 두 자루에 대 괴수용 철갑탄까지 장전돼 있었다.
아무리 강한 자라 해도 사람인 이상 급소에 총을 맞으면 죽는다. 유능한 칼잡이는 검술로 총알을 튕겨낸다고 하지만, 개눈깔은 지금 빈손이었다.
그러나 그는 검기를 다룰 줄 아는 검성.
맨손으로 검기를 쏘는 게 가능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으나, 검성이라 불릴 정도의 S급 칼잡이로서 단련된 피지컬을 마냥 얕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총알을 눈으로 보고 피해 버릴지도.
그렇다면,
노려야 할 쪽은―
‘유클리드.’
일전에 언뜻 그의 가방 속을 보았을 때, 안에는 칼과 총 따위의 무기가 마구잡이로 널려 있었다.
다양한 무기술에 강점을 가진 시티헌터 계열, 그중에서도 아마 웨폰마스터Weapon Master겠지.
역시나 피지컬은 상당히 좋을 것이다.
허나 검성과 비교한다면 한 단계 아래일 터.
―좋아. 저놈이다.
벅스는 조져야 할 상대를 결정했다.
유클리드를 먼저 빠르게 해치우고 나서 바로 냅다 튄다. 도망치는 건 자신 있고, 리더와 둘이 힘을 합친다면 도그아이드 킴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미처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양손을 기민하게 움직여, 허리 양쪽 총집의 권총을 뽑았다.
이어서 신속한 연사.
유클리드의 머리통을 노리고, 방아쇠를 연달아 당겨 순식간에 십수 발의 탄환을 발사했다.
타타타타탕―!
벅스의 속사 실력은 나름대로 우수한 편이었다.
용병들 중에서는 1등급. 어지간한 상대는 그녀가 총을 뽑는 동작조차도 눈치채지 못할 터였다.
다만,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
한때 권총 속사 분야의 정점에 섰던 자.
<홍룡파>의 전 보스, 상하이맨 토니 웡.
상하이맨의 속사에 비하면, 벅스의 속사는 거북이가 담뱃불을 태우는 것만큼이나 느릿했다.
상위 호환이나 다름없는 그를 죽인 인물이,
하필 오늘 그녀가 점찍어 놓은 상대라는 것.
“……어……?”
탄환들은 너무나도 손쉽게 가로막혔다.
기습을 당한 쪽이 오히려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마법사였다.
마나로 만든 보호막이 총알을 방어했다. 철갑탄을 쉬이 튕겨낼 정도로 출력 자체가 범상치 않았다.
또한 놀랍게도,
그 마나의 색깔은.
“……자색……?”
마법을 쓰지 못한다 알려진 기타 색채.
보라색 마나의 불꽃이 술사의 주변을 모닥불의 아지랑이처럼 흐느적거리며 일렁이고 있었다.
그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
벅스는 벌벌 떨기 시작했다.
유클리드란 놈은 처음부터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체를 그녀는 알아버리고야 말았다.
“……아, 아…….”
뒷세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이름.
자색 마법을 쓰는 흑마법사는 한 명뿐이다.
“……아, 암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