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The Masterplan (1)
노스네스트 10구역.
<끈적한 용암 공방>.
“오오.”
철컥, 위이잉―.
마스크를 턱에 붙이자, 기계적으로 차곡차곡 형성된 가면이 피부에 착 달라붙으며 하관을 감쌌다.
“기본 형태는 그런 식이야. 겉보기엔 평범한 방진용 마스크랑 다를 게 없으니까 일상용으로 쓰고 다닐 수도 있고, 급하게 일반인으로 위장할 필요가 있다든가 그럴 때 유용할 거야.”
“실용적인데.”
“양쪽에 있는 스위치를 동시에 누르면 얼굴 전체를 가리는 발라클라바 형태가 돼. 그 상태에서는 플라즈마 잉크 컬러링 시스템이 적용돼서 머리 색이 가면 색깔에 맞춰서 염색한 것처럼 까맣게 변해.”
“진짜? 그런 것까지 된다고?”
“일단은 스마트 디바이스 기능도 추가해 봤는데, 최적화가 아직 불안정해서 제대로 써먹기는 어려울 것 같아. 그리고 내구성이랑 마법 저항력은 저번 대비 14% 정도 늘렸어. 대신에 무게가 살짝 늘어나긴 했지만, 엄청 체감될 정도는 아닐 거야.”
몽실몽실한 흰색 털을 가진 북극여우 수인종 꼬마 쥬 화이트테일은 이곳 공방의 맞춤가면 장인이다.
열두 살밖에 먹지 않은 꼬맹이였음에도, 가면 만드는 실력만큼은 가히 도시 최고라 칭할 만했다.
“어째 퀄리티가 갈수록 더 좋아지네.”
“알면 그만 좀 부숴 먹어. 기껏 새로 만들어 주면 뭐 해? 이틀도 안 돼서 망가뜨려 갖고 오는데.”
“망가뜨릴 때마다 퀄이 좋아지니까, 두 번 정도 더 부숴 먹으면 희대의 역작이 나오지 않을까?”
농담 삼아 던진 말에 쥬가 언짢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애라서 그런지 웃어넘기는 법을 모르는군.
“저기 그보다, 이번 거는 마무리 작업할 시간이 부족해서, 소켓 연결부 사이에 단차도 쪼끔 있고, 여기저기 마감이 덜 됐는데…… 정말로 괜찮아?”
“상관없어. 별로 불편한 부분은 없고, 당장 예비용으로 쓸 수 있는 가면도 한두 개 남아 있으니깐.”
나는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그리고, 오늘 밤은 중요한 볼일이 있거든.”
그때, 내내 쫑긋 뻗어 있던 꼬맹이 쥬의 귀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왠지 날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또 누굴 죽이러 가는 거야?”
“뭐?”
“……케네스 아저씨한테 들었어. 그 무시무시한 살인마, ‘암귀 카이트’가 바로 너라면서.”
쥬가 내 정체를 알아낸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처음 만났을 때 ‘카이트’란 이름을 알려주기도 했었고, 요새는 아예 대놓고 검은 가면을 쓴 채 돌아다니며 암귀 마케팅을 펼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 꼬맹이는 내가 나쁜 놈이길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를 간절한 눈동자로 쳐다보고 있었다.
“죽이러 가는 거 아니야.”
나는 녀석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살리러 가는 거지.”
물론―
거짓말은 아니었다.
***
수요일 밤.
사우스아치 6구역.
크릭드라이브의 한산한 길가에, 락카 스프레이로 온 차체가 더럽혀진 윙바디 트럭 열 대가 나타났다.
“케케케켁! 도올겨억!”
트럭의 지붕과 문짝 등에는 고래 배때기에 붙은 따개비처럼 스캐빈저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빠바바바밤―!
트럭들은 시끌벅적한 경적을 마구 울리며, 일직선 도로의 끝, 굳게 닫힌 물류창고 입구에 진입했다.
“박아 버려!”
쾅―! 트럭은 입구의 철제 차단기를 그대로 박살 내 버리고는, 시설 내부로 우당탕탕 굴러 들어갔다.
이토록 무식한 침입에도 불구하고 시설의 경보기는 좀처럼 울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CCTV를 포함한 보안 시스템이 모두 꺼져 있었던 탓이었다.
“케케켁, 그 노친네 말이 맞았구만! 야들아! 오늘 날 잡았다! 가서 싸악 다 쓸어 담고 냅다 토끼자!”
습격자들은 트럭에서 내려 창고를 향해 돌진했다.
얼마 만에 맛보는 대박인가. 이곳 <우드게이트 웨어하우스>에는 돈 되는 것들이 잔뜩 있다고 들었다.
잔칫날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행복한 기분으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 챙길 준비를 했다.
“……응……?”
허나,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산타클로스가 아니었다.
번쩍―.
마땅한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하던 시설에, 돌연 눈이 멀어 버릴 정도로 환한 조명이 비춰졌다.
갑작스럽게 안구에 가해진 섬광의 충격에 습격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당황하고 있었을 무렵.
누군가 확성기에 대고 말했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무기를 내려놓고 바닥에 엎드려라.」
이런 제기랄.
빌어먹을 짭새였다.
「다시 한번 말한다. 너희들은 지금 완전히 포위됐다. 즉각 투항하라. 저항할 시 발포하겠다―.」
어느새 하늘에 자리한 미니건 달린 헬기, 자기네 숫자의 배에 달하는 SCPD 특공대의 무장 병력들, 동서남북을 에워싼 넉 대의 베어캣 장갑차가 눈에 들어왔고, 곧 그들은 저항할 의지를 상실했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됐다.
“이 녀석들은 <스커미셔>였군.”
“일부는 무소속인 걸로 확인됐습니다. 체포 인원은 간부급 열네 명을 포함해 총 이백다섯 명입니다.”
“다른 곳 상황은?”
“방금 전 제2공단의 키웰과 테일로드에도 습격이 행해졌다고 합니다. 잭팟이 터진 건 여기 우드게이트를 포함해 현재까지 총 네 군데입니다.”
“8곳 중의 4곳이라…… 적중률은 반반인가.”
중년의 사내, 아서 깁슨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뭐, 어쨌거나 소득은 확실히 있구만. 하룻밤 만에 깡패 새끼들을 거의 1,000명쯤 족치게 생겼으니.”
이날 밤, <우드게이트 웨어하우스>를 비롯한 사우스아치의 물류창고들에 갱단의 습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제보가 경찰 쪽에 들어왔다.
그 제보자의 정체는 놀랍게도.
재계의 거물, 존 렘브란트 버미어.
굴지의 대기업 윌슨앤코 그룹의 수장인 그가 어떻게 뒷세계 조직들의 내부 정보를 알고 있었을까.
윌슨앤코가 갱단들과의 긴밀한 커넥션이 있는 회사란 것은 다들 쉬쉬하고 있는 사실이었다만…….
“설마 이런 식으로 사법 거래를 제안할 줄이야.”
바로 전날, 렘브란트는 자기 발로 직접 경찰국 본부에 찾아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윌슨앤코 그룹 내부에서 벌어진 횡령과 불법 밀수 등의 범죄 정황들, 그리고 그 증거들에 관해.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물품들 체크는 끝났나?”
“예. 일부 컨테이너에서 대량의 코카인과 에테르암페타민이 발견됐고, 일련번호가 삭제된 군용 장비, 밀수품 중에는 민간 소유 및 거래가 금지된 유물과 아티팩트도 몇 개 있었습니다. 지금 이송 준비 중입니다.”
빼도 박도 못하는 불법 행각의 증거들.
용감하게 내부 고발을 감행해준 렘브란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되겠으나, 이 정도 되는 양이라면 사법 거래로 어떻게 봐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검찰 쪽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최대한 참작해 준다고 해도, 윌슨앤코라는 기업의 존립에 매우 심각한 위기가 올 것임은 분명했다.
뭐, 굳이 이쪽이 걱정할 일은 아니지.
아서 깁슨은 담배 연기를 가볍게 빨아 당겼다가 힘겹게 꿀꺽 삼키고는 그 잔연을 스르륵 내쉬었다.
“아. 아. 한 경장. 들리나.”
그가 무전기를 켜고 말하자, 잠시 후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이즈 낀 목소리가 돌아왔다.
「네. 경위님.」
“그쪽 상황은 어떤가?”
「하아암, 두 시간째 이상 무. 아무도 없어서 너무 심심합니다. 끝말잇기라도 같이 해주시겠습니까.」
“깝치지 말고 사주경계 철저히 하라. 오버.”
「알겠슴다. 오버.」
치익―.
두 사람의 대화는 그걸로 끝났다.
“방금 목소린, 한태경 경장입니까?”
“그래. 지금 걔 혼자 4공단에서 경비 서고 있어.”
“허어, 이번 작전 사이즈가 정말 장난 아니긴 한가 보군요. 얼마나 인력이 모자라면 지원팀인 그녀까지 현장에 데려다 놨답니까. 그것도 혼자라니…….”
“자넨 전근 와서 모르겠구만. 그 녀석 원래는 현장에서 뛰었어. 어느 날 가정 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딸이 보는 앞에서 폭력범 아버지를 거의 죽여 버릴 뻔해서, 그날 이후 책상으로 쫓겨난 거지.”
“지, 진짜입니까……?”
“하여간 경찰학교 시절에도 초특급 유망주였다는데, 왜 SWAT이나 FBJ에 지원을 안 한 건지 몰라.”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고 있었을 동안.
‘…….’
어째서인지 아서 깁슨의 머릿속에서는 아까 전부터 묘한 생각들이 도통 떠나가질 않았다.
제보받은 습격 예상 지점은 여덟 곳.
그중 네 곳에 실제로 습격이 행해졌다.
상당한 규모의 전투 병력이 필요했던 작전.
각 지부의 경찰서에서 지원을 받아,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지점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
다만―
‘방어가 너무 쉬웠어.’
습격 예상 지점들의 위치는 우연찮게도 전체 병력을 나누기 딱 좋도록 알맞게 분포되어 있었다.
마치 경찰 내부의 사정을 굉장히 잘 아는 누군가가, 일부러 방어하기 쉬운 방향으로 노려서 만든 계획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의도성이 다분해 보였다.
‘정보를 역으로 흘린 녀석이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여길 습격한 스캐빈저 놈들은 시설 보안 시스템이 꺼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엇, 경위님? 어디 가십니까?”
아서 깁슨은 묵묵히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시설 입구의 경비실이었다.
‘경비원은 우리가 매복할 때부터 없었어.’
자리를 비운 것은 우연이 아닐 터.
어쩌면 경비원이 범인일지도 모른다.
아서 깁슨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경비실 안을 이곳저곳 뒤적거렸다.
그러다 한쪽 벽에 자리한 ‘이달의 우수 직원’ 게시판, 거기 붙어 있는 프로필 사진을 발견했다.
“이런 젠장.”
그리고 그걸 보자마자 진심으로 탄식했다.
뒤늦게 따라 들어온 부하 대원은 아서 깁슨의 충격 먹은 표정을 보고서 자기도 그 사진을 보았다.
무표정에 맹한 얼굴.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
“이 자는 누굽니까?”
전근을 온 그가 알 턱이 없었다.
아서 깁슨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주 좆같은 선배님이시지.”
“……예?”
“맥스 길리스. 은퇴한 지 10년 다 돼 가는 전직 경찰이야. 근근이 불법 용병으로 뛰면서 후배들한테 엿을 먹이는데, 경찰 돌아가는 시스템에 빠삭한데다, 뭔 지랄을 하든 증거 하나 안 남겨서 붙잡히는 일이 없지.”
상황이 복잡해졌다.
만약 갱단 쪽에 정보를 흘린 것이 이 인간이라 한다면, 반드시 무언가 다른 노림수가 있을 터였다.
놈들이 노리는 것을 찾아야 한다.
아서 깁슨은 머릿속 지도를 펼쳤다.
습격 예상 지점들에 분포된 병력들.
그로 인해 방어가 느슨해지는 지역.
….
….
노려질 만한 장소라고 한다면,
어떻게 봐도 딱 한 군데뿐이다.
‘경찰국 데이터센터.’
그걸 깨달은,
바로 그 순간.
치직, 칙―.
노이즈 소리에 이어서,
다급한 무전이 들어왔다.
「고, 공격받는 중!」
「지원 바란다, 여, 여기!」
「검은 가면을 쓴 남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