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I’m Only Sleeping (2)
이스트포레스트 9구역.
샌제이비어 국립마법대학교.
대마법사가 되기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메카.
입학하기 어렵기론 하버드나 예일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마법학교.
샌제이비어에 위치한 본교 제1캠퍼스는 연간 입학생이 총 100명도 되지 않는 극악의 입시 난이도를 자랑하나, 이곳 시에라시티에 위치한 분교 제2캠퍼스는 연간 입학생이 600명 내외로 본교에 비하면 준수한 수준이다.
“명색은 대학이지만 합격생 중에 20대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아요. 내로라하는 마법사들이 어스테이트뿐 아니고 전 세계에서 몰려드니까, 경쟁률이 장난 아니라서 10년쯤 재수하는 일은 예사거든요.”
“넌 40수 정도 한 거냐?”
“…….”
“여기 교수님들은 너랑 동년배겠네.”
“저기, 나이 얘기 좀 그만하면 안 돼요?”
캠퍼스 부지는 넓고 쾌적했다.
잘 관리된 조경, 바로크풍의 옛 건물과 신식 교사의 조화, 거기에 이스트포레스트의 깨끗한 파란 하늘이 더불어져, 꽤 청춘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까 얘기했다시피, 오늘 유진 씨는 청강생 신분으로 멜리에스 교수의 강의에 들어갈 거예요.”
“나 같은 A급 전과자를 용케도 침투시켰군.”
“뭐, 정규시민증도 아무 문제 없이 위조하는 마당에 임시학생증 만드는 것쯤이야 껌이죠.”
비너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보다 얼굴은 어때요? 따갑거나 그러진 않죠?”
나는 얼굴 표면을 손으로 슥 훑듯이 만졌다.
코의 크기나 광대뼈의 위치 등에서 평소와 다른 어색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피부가 살짝 땡기긴 하는데 그게 다야.”
“마나가 닿지 않게만 주의하세요. 전체 술식 기반은 환영 마법에 국소 영역 결계 마법, 거기에 바우어식 연금술을 더한 트릭성 혼효 마법이라, 변형 마법에 비해 외부 마나 자극에 예민하거든요.”
지금 내 얼굴은 원래 내 얼굴과 달랐다. 비너스의 마법으로 얼굴 전체가 통째로 변화된 상태였다.
“참고로 기본 유지 시간은 12시간 이상으로 상당히 길어요. 제 마력이 녹색 마력이다 보니까 유지력 하나는 그나마 쓸 만한 수준이라서요.”
비너스는 자기 마법 실력에 회의감이 있는 듯했다. 하긴 마나통이 다른 마법사랑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니 자격지심이 생길 만도 한가.
“강의를 듣는 인원은 몇 명이지?”
“다해서 90명 정도일걸요. 최대 정원은 120명인데, 보통 수강 신청 마감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잠깐, 멜리에스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거물 마법사 아니었나? 마법계의 유명인이 직접 하는 강의라면 당연히 인기가 엄청날 줄 알았는데.”
“멜리에스가 유명한 건 사실이죠. 워낙 바쁘신 몸이라 강의 일정도 일주일에 딱 두 번뿐이고, 실제로 강의별 T/O가 정해져 있는 1년 차 신입생들 사이에선 나름대로 자리 경쟁이 있기는 해요.”
“근데 왜 생각보다 인기가 덜하지?”
“가서 들어보면 알 거예요. 멜리에스 교수가 하는 강의는 진짜 더럽게 재미가 없거든요. 일단은 그게 제일 큰 이유죠. 뭐, 다른 이유도 있지만요.”
그녀가 언급한 ‘다른 이유’에 내가 관심을 보이자, 비너스는 해당 화제로 말을 이어나갔다.
“소문이 있어요. 멜리에스 교수에 대한.”
“무슨 소문?”
“저희 학교 사람들끼리만 드문드문 아는 이야기인데요. 최근 10년 동안 멜리에스 교수 밑에 연구생으로 들어간 학생들 중에, 돌연 자퇴를 하고 학교를 떠나 잠적한 사람들 비율이 꽤 높다나 봐요. 들리는 얘기로는, 멜리에스 교수가 연구생들에게 무시무시한 짓거리를 서슴지 않고 벌인다고 하더라구요.”
“평범한 대학원생 얘기 같은데.”
“그냥 학교마다 흔히 있는 괴담이긴 하죠. 출처도 없고 단서도 없고 알맹이도 없는 그런 거요.”
비너스는 그 외에도 멜리에스 교수의 강의가 인기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몇 가지 더 설명했다.
그의 전문 분야인 신성 마법은 전공자 숫자 자체가 다른 계통에 비해 적고, 멜리에스는 수업 도중 이런저런 이유를 들먹여 수강생에게 벌점을 부여하는 일이 매우 잦아, 일반 학생들은 학점 보호를 위해서라도 그의 강의를 피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건 그렇고, 어쩔 셈이에요?”
“뭐가?”
“유진 씨 목적은 멜리에스 교수에게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는 거라고 했잖아요.”
멜리에스의 사생활은 베일에 싸여 있다.
공식적인 행사나 중요한 일정 이외에 사적인 파티 따위에 참석하는 일은 일체 없음.
도시 외곽에 위치한 자택에 혼자 은거한다는 듯하나, 그 집이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멜리에스가 경호원 없이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는 때는 일주일에 두 번, 이 학교에서의 강의 시간뿐이야. 그에게 접근하려면 이때밖에 없어.”
멜리에스를 암살하기 위해선 나와 그가 외진 곳에 단둘이 있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교수랑 친해지고 싶은 모양인데, 오늘내일 강의 두 번 듣는 것만으로 그게 가능하겠어요?”
비너스는 나를 강의실에 들여보내 주는 것과 얼굴 변장을 시켜준 것에서 이미 역할을 다했다.
“글쎄, 뭐 어떻게든 해봐야지.”
나머지는 내 몫이다.
임무를 받은 건 나니까.
멜리에스를 죽인다.
그리고 무사히 돌아간다.
최강최악의 테러리스트 단체를 계속해서 내 편으로 두기 위해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일이다.
“여기예요.”
어느덧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캠퍼스 중심에 위치한 본관은 베르사유 궁전을 연상케 하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었다.
“자, 들어가죠.”
수업이 열리는 강의실은 2층에 있었다.
강의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심플한 폰트로 쓰인 고급스러운 목제 문패가 달려 있었다.
[ 신성 마법의 개념적 이해 ]
- 스테파노 멜리에스 -
강의실 내부는 시청각실처럼 널찍했다.
좌석은 얼추 다 들어차 있었으나, 확실히 군데군데 빈자리가 있어 만석까지는 아니었다.
비너스와 나는 중간 자리에 앉았다.
오후 2시가 다가왔다. 강의 시간이었다.
덜컥―.
문이 열리고, 누군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웅성거리던 소음은 순식간에 죽어 조용해졌다.
째진 눈매. 숱이 적은 하얀 머리.
회색 정장 겉에 백의를 걸친 노인.
스테파노 멜리에스는 단상 앞에 섰다.
얼굴 여기저기에 성긴 거뭇한 사마귀와 주름살은 그를 본래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게 했다.
“9주 차 강의를 시작하겠다.”
“…….”
“교재 136페이지 두 번째 문단부터다.”
무익한 인사치레 따위는 없었다.
그는 대본 리딩 현장의 의욕 없는 조연 배우처럼 무기력하면서도 냉담한 태도로, 100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 유유히 강의를 시작했다.
“신성 마법의 술식 작동 원리는 무엇이냐? 이 원론적인 주제를 논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마법 계통의 특징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
“우선 짚고 넘어가자면, ‘에인션트’는 엄밀히 말해 계통 분류라 볼 수 없다. 그건 1252년 아리아 공의회에서 정립된 개념인 ‘현대 마법’에 비준되는 고대 언어 기반 마법들을 싸잡아 부른 통칭이지.”
멜리에스는 그다지 좋은 교육자가 아니었다.
다루는 내용은 너무 지루하고 복잡하고 하드했다. 목소리도 별로 듣기 좋은 톤이 아닌데다, 연신 웅얼대기만 해서 발음이 잘 들리지도 않았다.
“신성 언어의 문법적 기반은…….”
“사지타리우스 방정식에 의거해…….”
“이로써 당면한 마나 패러독스 문제는 타르코프스키 정리를 통하여 해결할 순 있지만…….”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강의였다. 그것은 강의라기보다도 일방적인 정보의 투척에 가까웠다.
거기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지 여부는 전적으로 듣는 이들의 집중력과 이해력에 달려 있었다.
솔직히 말해, 타이퍼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대치동 1타 강사급 마법 강의에 익숙해져 있는 나로서는 거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이상, 첫 번째 논제에 관한 풀이와 해답이다.”
1시간 가까이의 비정한 독주 끝에, 멜리에스가 처음으로 청중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질문 있나?”
학생들은 침묵했다.
마치 호랑이에게 토끼 사냥법을 교육받은 개구리들 같았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은커녕 최소한의 완력마저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이, 여기서 질문을 하려고 한들 당최 무슨 질문을 하겠는가.
그럼에도, 번쩍―.
와중에 손을 든 놈이 딱 한 명 있었다.
“질문 있습니다, 교수님.”
그놈은 똑 부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강의실 중간에 앉은 청강생― 바로 나였다.
“방금 풀이하신 과정 중에 위상술식의 다차원 개입 부분에 대해 조금 여쭤보고 싶습니다.”
“계산 과정을 이해했다면 물을 게 없을 텐데.”
“네, 물론 계산식은 전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궁금한 건 변수로 설정하신 알파 값이 특수연속변형으로 이뤄진 값인지 아니면 이중쌍곡차원에서 귀납된 값인지, 그 점이 약간 헷갈려서요.”
멜리에스는 솔깃한 듯이 반응했다.
그는 고개를 살며시 가로로 내저었다.
“둘 다 아니야. 대수적 위상마법학에서 양적 변수를 지정할 땐 특수연속변형이 아니라 일반연속변형을 쓰지. 범주형 변수인 베타 값의 집합 개수만 체크했어도 알아낼 수 있는 간단한 문제였어. 계산식을 정말로 모두 이해했다면 굳이 질문할 필요까지도 없었다는 게지.”
“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핵심을 잘 파악했군.”
교수는 엷은 미소를 띠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유클리드입니다.”
게임을 할 때 즐겨 쓰던 닉네임.
지금은 대충 둘러댈 때 쓰는 가명이다.
“유클리드…… 멋진 이름이구먼.”
멜리에스는 허공을 보며 고개를 끄덕댔다.
그러고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듯이 말했다.
“기억해 두지.”
***
강의는 두 시간여 만에 끝났다.
나와 비너스는 강의실을 나왔다. 넋이 나간 꼴의 수강생들 사이로 노교수의 뒷모습이 보였다.
“멜리에스는 어디로 가는 거지?”
“수석교수실이겠죠. 신관 2동에 있는데, 거기는 경비가 삼엄해서 아무나 함부로 못 들어가요.”
멜리에스는 강의 후 수석교수실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논문 작성과 개인 연구에 치중한다고 한다.
내일 10주 차 강의가 끝나면 그는 시에라시티를 떠나 샌제이비어의 본교로 돌아갈 것이다.
시간제한은 앞으로 하루.
오늘의 성과는 멜리에스에게 내 이름과 얼굴을 먼지보단 뚜렷하게 기억시킨 정도.
“저기, 유진 씨?”
“왜.”
“교수한테 접근하려는 이유가 뭐예요?”
“안 알려줄 건데.”
“에휴, 그러시든가요. 암튼 아까 전에 제가 한 말 기억나요? 교수에 대한 소문 얘기했잖아요.”
“근데 뭐.”
“최근에 멜리에스 교수 밑으로 들어간 연구생 중에 마커스란 선배가 있는데, 그 사람한테 물어보면 괜찮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비너스를 흘겨봤다.
“너 왜 이리 친절하냐. 기분 나쁘게.”
“도와준다는데 뭔 말을 그렇게 해요?”
“혹시 모르지. 그 마커스란 놈이랑 같이 짜고서 나를 엿 먹일 속셈일지 누가 알아.”
“아니, 저 그 사람 풀네임도 모르거든요?”
“내 심장에 대해 얘기하고 그런 거 아냐?”
“허, 미쳤어요? 로또 1등 당첨된 종이 여기 있다고 동네방네 광고하고 다니게?”
“아직도 내 심장에 미련을 못 버렸나 보군.”
“앗, 크흠…….”
비너스는 모르는 척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만약 네가 날 죽이거나 해서 심장을 얻었다 치자. 그러면 그다음엔 어쩌면 되는 거냐? 심장 이식 수술이라도 해? 그거 안 위험한가? 혈액형 같은 건 어떡하는데? 애초에 그런다고 마나통이 너한테 옮겨지는 건 맞아?”
내가 묻자,
녀석은 말했다.
“몰라여.”
얘 그냥 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