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Dancing for Money (3)
옛날 옛적 제2공화국 시절.
노스네스트 8구역은 중국인들의 동네였다.
어스테이트에 최초로 건너온 1세대 이주민 중에 중국인의 비율은 그닥 높지 않았으나, 차츰 바다 한가운데 있다는 신세계의 소문이 지구촌 곳곳에 퍼지게 됐고, 곧 빈집에 빈집털이가 들르듯 자연스럽게, 시에라시티에는 화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낙점한 차이나타운 후보지는 바로 노스네스트 8구역이었다. 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기 좋도록 적당히 개판인 치안과 더불어, 중국인들이 숫자 8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꽤나 유명하지 않나.
처음에 8구역을 차지한 이들은 <홍룡파>였다.
20세기 초 미국 서부에서 악명을 떨쳤던 중국계 마피아 단체인 홍룡파는 인구수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손쉽게 차이나타운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독재의 영광이란 오래가지 못하는 법.
홍룡파의 지배 체제는 홍콩 출신 삼합회 <신제천>의 등장으로 인해 최근 위기를 맞이했다.
“신제천의 보스는 장제광. ‘배드 피플 50’ 리스트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거물이지.”
“나도 들어는 봤어.”
사실 그냥 들어 본 정도가 아니었다.
장제광은 <사이버판타지> 초반부 메인 스토리라인에서 제법 큰 존재감을 발휘하는 네임드 NPC.
이만하면 잘 키웠다 생각한 캐릭터를 순살 치킨마냥 순살 시켜 버리기로 유명한 뉴비 절단기다.
“쪽수로는 홍룡파가 압도적이긴 하지만, 간부급 인물끼리의 전투력을 비교하면 신제천 쪽이 위야.”
“그러고 보니 신제천에는 장일천도 있었지.”
“잘 아는구만 그래. 장제광이 동생 장일천도 꽤나 무시무시한 놈이지. 소문으로는 장씨 형제 둘이서 홍룡파 애들 200명을 조져 버린 적도 있다더군.”
아마도 그 소문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단순 조직 규모로는 홍룡파에 쨉도 안 되는 신제천이 지역 패권 싸움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장씨 형제 개인의 강함 덕분일 테니까.
“아무튼 며칠 전인가 그쪽 동네서 또 한바탕 패싸움이 치러졌나 봐. 이번엔 그냥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는지, 홍룡파 보스가 결국 전쟁을 선포했어.”
“그래서 용병을 구하고 있다는 얘기군.”
“맞아. 신제천 쪽도 마찬가지지. 어느 쪽이든 보수는 비슷하게 빵빵해. 이길 것 같은 쪽을 골라도 되고, 아니면 그냥 맘에 드는 쪽을 골라도 될 거야. 좀 위험하긴 해도, 단기간에 바짝 땡길 거면 이만한 게 없지 않나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흐음.”
홍룡파와 신제천, 둘 중 어느 쪽 편에 설 것인지 고민한 게 아니었다. 주제는 아예 다른 것이었다.
“꼭 한쪽 편에 서야 하나?”
“잉? 무슨 소린감?”
“애초에 용병 보수가 좋아 봤자 평소에 받는 일반적인 의뢰의 고작 두어 배 수준이잖아. 전투를 여러 번 뛰어서 실적을 쌓으면 벌이가 늘기야 하겠지만, 그것도 그다지 만족스러운 액수는 아니겠지.”
“에, 그럼 어떡하겠다는 건가?”
“관점을 달리해보자고.”
싸움에 끼어드는 것은 미련한 짓.
전쟁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따로 있다.
“무기를 파는 건 어때?”
수요와 공급이라는, 매우 간단한 이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에게는 무기가 필요하다.
군인은 목숨값으로 푼돈을 받지만,
장사꾼은 무깃값으로 목돈을 챙긴다.
“……중국인들한테, 무기를 팔자고?”
“그래. 근데 그냥 평범한 무기 말고, 예를 들어 <슐츠텍>의 플래그십 배틀기어 같은, 길거리 총포상에서는 구하기 힘든 그런 고급 장비들 말이야.”
“으음, 뭐, 판다고 하면 웃돈 주고서라도 사 가긴 하겠지만…… 그런 걸 어디서 어떻게 구하려고?”
“방법은 있지. 대기업에 연줄 있는 몸이라서.”
윌슨앤코는 규모만 보면 1등급인 무역회사.
정부의 규제로 민간 유통이 제한된 하이스펙 장비들을 100% 합법적인 루트로 구할 수 있다.
게다가 윌슨앤코 인터내셔널 내에는 이미 무기 밀수를 하고 있는 몇몇 불순분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노하우를 빌린다면 뒷골목 깡패들에게 무기를 몰래 파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닐 터.
“무기 장사를 한다면 전쟁에서 굳이 한쪽 편을 들 필요도 없어. 양쪽 다 소중한 고객이니까.”
“……으으음, 나는 잘 모르겠군. 과연 중국인들이 진상 안 부리고 얌전히 넘어갈까? 뭣보다 암거래 시장은 바로 그 <페르골리치 패밀리>가 꽉 쥐고 있지 않나. 자기네들 구역에서 물건을 팔아먹은 걸 놈들이 알게 되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텐데…….”
“그거는 뭐, 내가 알아서 할 문제지.”
주인장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이내 그는 찡그린 표정을 풀더니, 평소처럼 호탕하게 웃음소리를 냈다.
“크핫! 하여간에, 블랙 대거즈 간부를 냅다 후려갈길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자네도 참 일 벌이는 건 선수라니까! 역시 내가 사람 하난 잘 골랐어!”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주인장의 말에 나는 대꾸하지 않고서 가만히 있었다.
“좋아, 거래할 준비 끝나면 나한테 얘기해. 중국인들이랑 만날 약속은 내가 잡아주지.”
“아, 혹시라도 실망할까 봐 미리 말해 두겠는데, 이번 건은 수수료 많이 못 떼어 줄 거야.”
“어허, 내가 뭐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아나?”
“돈 때문이 아니면 뭣 때문인데?”
“그거야―.”
주인장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자네는 내 생명의 은인이니까.”
그저 허투루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눈빛과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이래 봬도 내가 그렇게까지 속물은 아니거든. 적어도 목숨 살려준 값은 갚아야지. 안 그런가?”
주인장은 다시 크핫 하고 웃었다.
그러고는 본인이 말해 놓고도 쑥스러웠는지, 약간 멋쩍어하는 동세로 내 시선을 피했다.
“…….”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특히나 이곳 시에라시티에서는, 신뢰와 신용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신뢰에는 믿음의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다.
“목숨값을 갚는다니, 말은 번드르르하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인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음료값은 매번 꼬박꼬박 받는 주제에.”
“그러는 자네는 여태 팁도 한 번 안 줬잖나.”
“커피에서 연탄 맛이 나는데 팁을 주겠냐고.”
다만,
신용하고 있을 뿐이다.
***
금요일 오전.
나는 회사에 나오자마자 <슐츠텍>에 보낼 거래 제안 메일과 포트폴리오 작성에 열을 올렸다.
<슐츠텍>은 독일의 천재 공학자 에릭 슐츠가 설립한 복합 제조업체로, 특히 안드로이드와 에너지 무기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어스테이트 최고의 산업체 중 하나다.
무기회사로서 <슐츠텍>의 브랜드 가치는 No. 1.
게임상에서도 ‘믿고 쓰는 슐츠’라 말할 정도로 슐츠 딱지가 붙은 장비템은 기본 성능이 보장됐다.
“오케이, 끝.”
두 시간여의 씨름 끝에 제안서 작성이 끝났다.
시간을 많이 쓰지 않은 것치고는 꽤나 괜찮은 내용의 제안서였다. 포트폴리오도 완벽했다.
나는 곧바로 슐츠텍의 영업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제 그쪽의 답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의외로 답변 메일은 빠른 시간에 돌아왔다.
“오?”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답장이 도착해 있었다.
나는 얼른 메일을 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친애하는 유진 연 씨에게,
문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사의 거래 제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향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슐츠텍 영업 담당자 월터 네프
─“……엥?”
답장의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본문은 겨우 세 줄. 그마저도 통속적인 문구들에 불과했다.
이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거절의 의사가 담겨 있는 메일.
“……이상하네. 뭔가 잘못 썼나?”
나는 내가 보냈던 메일을 다시 살펴보았다.
거래 제안서의 내용에는 문제가 없다. 아니, 솔직히 거의 완벽하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제안은 거부당했다. 왜지?
CTA가 약했나? 포트폴리오 설득력이 별로였나?
이유를 찾으려 애썼으나 도통 성과는 없었다.
스몰필드 씨에게 한번 봐 달라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오늘 몸이 안 좋아 휴가를 냈다.
“하, 젠장. 뭐가 문제인 거야…….”
나는 답답함에 뒷머리를 박박 긁었다.
이러면 무기 공급업체를 다른 곳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데……. 썩 좋은 대안은 아닌 것 같다.
군수기업으로서 <슐츠텍>은 넘버원을 떠나 온리원에 가까운 업체다. 롤스로이스를 찾는 손님에게 렉서스를 갖다주면 아무래도 실망하지 않겠나.
계획이 완전 틀어지게 생겨,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싸맨 채 끙끙 앓으며 괴로워하고 있던 무렵.
“무슨 일 있나?”
문득,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아보자, 거기엔 답지 않게 무뚝뚝한 표정을 한 하인즈 사장이 있었다.
“아, 사장님.”
“자네 신음 소리가 사장실까지 들리더군. 난 또 무슨 게이 포르노라도 틀어놓은 줄 알았네.”
“……죄송합니다. 안에 계신지 몰랐습니다.”
“일이 잘 안 풀려서 그러나? 뭐가 문젠데?”
하인즈 사장은 툭 던지듯이 물었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이 바지사장 같은 인간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
결과적으로는,
망설임보다 절박함이 강했다.
“그게……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겠습니다.”
“흠?”
“슐츠텍 쪽에 거래 제안 메일을 보냈는데, 퇴짜를 맞은 것 같아서요.”
하인즈 사장이 말했다.
“보여줘 보게.”
어쩐지 평소에 없는 무게감이 있었다.
나는 곧장 워드로 작성해 둔 거래 제안서와 포트폴리오 파일을 열어 모니터 화면에 띄웠다. 하인즈 사장은 그걸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렸다.
“잘 썼군.”
“아, 감사합니다.”
“답변 메일 왔다고 했지? 그것도 보여주게나.”
나는 하인즈 사장의 분부대로 했다.
그는 슐츠텍에서 보낸 메일을 보자마자 쯧쯧쯧 하고 여러 번 혀를 찼다.
“이건 글렀구만.”
“예? 글렀다니요?”
“슐츠는 기존에 커넥션 없는 곳이랑은 엔간해선 신규 거래를 트지 않아. 이 답장 형식은 그쪽 영업부에서 쓰는 매크로 2번. 고놈들은 자네가 보낸 제안서를 아예 읽지도 않았단 게지.”
하인즈 사장은 나직하게 한숨을 지었다.
“잠깐만 기다리게.”
그렇게 말하더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난데. 그래. 오랜만이야. 잘 지냈나?”
그는 전화기를 들고 창가 쪽으로 갔다.
이야기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확실한 것은 안부 인사가 거의 절반이라는 사실.
그렇게 3분 내외의 짤막한 통화를 마친 뒤, 하인즈 사장은 내 자리로 돌아왔다.
“12시 15분. 이스트포레스트 2구역. 노턴 12번가에 있는 카페로 가게.”
“……예?”
“슐츠 쪽에서 사람을 한 명 보낼 거야. 물론 얘기를 아주 진지하게 들으려 하진 않겠지만, 어떻게 자네가 한번 잘 구슬려 보든가 하라고.”
나는 벙쪄서 할 말을 잃었다.
“빨리 안 가고 뭐 하나?”
하인즈 사장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사장님.”
“왜?”
“지금 처음으로 사장님 같았습니다.”
“난 언제나 자네의 든든한 사장이네만.”
“이번 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됐네. 이런 게 참된 상사의 본분이지, 무얼.”
“앞으로는 사장님만 바라보면서 살겠습니다. 사장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드릴게요.”
“아, 거 아침 댓바람부터 자꾸 낯 뜨겁게 왜 이러나? 무슨 게이 포르노 도입부 같잖아!”
“게이 포르노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건 실수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