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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8화 (18/201)

18화. Paranoid Android (1)

「어젯밤 시에라시티 외곽순환도로 북서부 톨게이트에서 약 10km 떨어진 지점에 원인불명의 전파장애가 관측되었습니다.」

「해당 지점은 어스테이트 제2공화국 시절 도시근교개발사업 택지로 지정되었던 장소이며, 전문가들은 택지 지하에 설치된 마공학원자발전시스템의 과부화로 인한 폭발이 이번 사고의 원인일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화요일 아침.

리타 스몰필드는 멍한 눈으로 뉴스 화면을 쳐다보며 에너지바 한 입을 우물우물 음미했다.

‘출근하기 싫다…….’

그러면서 이 세상 모든 직장인들이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에 반드시 하게 되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 운석이라도 안 떨어져 주려나.’

물론 예전에 비하면 그녀가 하는 상상의 매운맛 강도는 지극히 낮은 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녀는 전기톱과 도끼로 무장한 연쇄살인마였다. 망할 상사 놈을 하루에 10번씩 죽이곤 했다.

‘…….’

그녀는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요즈음은 매일같이 맛볼 수 있는 오후 5시 30분의 칼퇴근. 어제 역시 그녀는 5시 40분경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를 나왔다.

모처럼 월급도 나왔겠다, 오랜만에 백화점 지하 매장에서 바움쿠헨이라도 사 올 생각이었다.

하트스트리트의 번화가를 지나던 중.

리타 스몰필드는 우연히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했다.

‘팀장님, 여자랑 있었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일행은 제법 세련된 스타일의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풍성한 초록 머리 사이로 길쭉하게 튀어나온 귀를 보아 엘프임이 분명했다.

‘이종족 취향인가……?’

리타 스몰필드는 자기 귀를 만져보았다. 별로 길쭉하단 느낌은 없이, 끝부분만 조금 삐죽했다.

‘……에잇, 몰라! 내가 왜 그런 걸 신경 쓰고 있는 거야. 쓸데없이.’

그녀는 에너지바 귀퉁이를 와작와작 씹었다.

여전히 출근은 하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이 지루한 일상이 마냥 싫은 것은 또 아니었다.

‘죽지 못해 산다지만, 안 죽는 게 어디야.’

그저 아무 일도 없이 평안하게,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

소시민의 입장에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요즘은 이 동네도 꽤 안전한 느낌이니까.’

웨스트록 일대는 원래 치안이 좋은 편이었지만, 최근 들어 위험한 범죄가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특히나 이번에 3선으로 유임한 시장 그레고리 메이슨의 역량이 돋보였다.

도시 정비. 경찰력 강화. 범죄 근절 캠페인.

한때 ‘악의 도시’라고까지 불렸던 시에라시티의 범죄율을 시카고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은 전부 메이슨 시장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음 뉴스입니다.」

「……」

「……」

「기, 긴급 속보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오전 6시 52분, 그레고리 메이슨 시장이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깜짝―.

열심히 에너지바를 씹고 있던 리타 스몰필드의 입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엥?”

그녀는 눈을 마구 끔뻑댔다.

“어, 뭐야? 오늘 만우절? 어어? 아닌데?”

해괴한 뉴스는 계속 이어졌다.

「……마지막 목격자는……」

「……모든 일정은 전면 취소……」

「……경찰은 타살로 보고 있으며……」

메이슨 시장이 사망했단 소식에 당황한 리타 스몰필드는 오갈 데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큰일 난 거 아냐, 이거……?”

세상이 본격적으로 흉흉해지기까지,

3개월도 채 남아 있지 않은 무렵이었다.

***

회사 근처의 폐건물 지하 주차장.

지난주 금요일 밤, 스크랩몽크와의 격전을 벌였던 바로 그 장소다.

“여기다 두면 되겠지.”

나는 로마냐를 그곳에 주차해 놓고 나왔다.

가뜩이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이런 고급 차를 자가용인 양 끌고 다녀봤자 이득 될 게 없었다.

더욱이 차 주인이 오매불망 찾아 헤매고 있을 테니 말이다. 노리는 건 물론 나겠지만.

차 안에서는 녀석의 지갑을 발견했다.

그런데 시민증이 세 장씩이나 들어 있었던 데다 이름은 전부 제각각이었다. 어젯밤 민증의 주소로 찾아가 봤지만, 거기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죄다 가짜 신분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투성이.

결국 내가 녀석에 대해 아는 건 인터넷 닉네임과, 내 심장을 노리고 있다는 것 정도뿐이다. 모쪼록 경찰이 잘 잡아갔으면 좋으련만.

좌우지간.

앞으로는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겠지.

13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젯밤 비너스에게 당한 상처가 따끔하고 저려 왔다.

어제 응급처치를 할 때에 비해선 귀여운 통증이었다. 그냥 병원에 갈까도 고민했었지만, 오늘 아침에 일어나 상태를 보니 많이 나아져 있었다.

사실 조금 의아한 와중이다.

특히 어깨는 상당히 깊은 상처였는데, 이렇게 반나절 만에 금방 회복되는 게 정상인 건가?

게임 뇌로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체력 재생 능력치가 높다거나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좋은 아침입니다, 스몰필드 씨.”

“아, 팀장님. 오셨어요.”

“사장님 지금 안 계시죠?”

“당연하죠. 9시도 안 됐는걸요.”

사장한테 인력 문제에 대해 한 번 더 다그칠 필요가 있는데, 오늘은 느낌상 어려울 듯하다.

“저번 주에 신청한 수출신고서는요?”

“베트남 건 말씀이시죠? 그게, 아무래도 재수출 건이라 통관 심사가 늦어지는 것 같아요.”

“일단은 인보이스랑 포장명세서만이라도 미리 준비해 둡시다. 본사에도 전달해주세요.”

“네, 팀장님.”

여기서 내가 말한 ‘본사’라는 건 자회사인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을 의미한다.

명목상의 본사는 당연히 지주회사인 우리 ‘윌슨앤코’지만, 실제 업무 상황과 그룹 내 관계도를 보면 이쪽은 거의 말단 하청인 수준에 가깝다.

특히나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은 어스테이트의 무역-물류-유통 기업들 가운데 명실상부 일인자.

그야말로 윌슨앤코 그룹을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수장이자 본체― 사실상의 본사나 다름없다.

보고서 검토. 잡다한 서류 신청.

홈페이지 수정. 인트라넷 게시판 관리까지.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에서는 실적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잡일들을 모조리 이쪽에다 떠넘긴다.

하루가 멀다고 잔업을 하고 있음에도 일이 줄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 볼 수 있다.

“후우.”

돌아가는 복사기 앞에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마법을 쓸 수 있으면 뭐 하나, 남의 회사 자료 복사나 하고 앉았는데.

“…….”

그러고 보니, 강화 마법으로 강화할 수 있는 것은 ‘기능’과 ‘강도’, 그리고 ‘에너지’라고 했었나.

혹시 근육의 기능을 강화한 것처럼,

복사기의 기능을 강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연찮게 떠오른 호기심.

한 번쯤 시험해 볼 가치는 있었다.

“강화 마법.”

나는 복사기에 대고 마력을 쏘았다.

손바닥에서 피어난 자색의 불꽃이 복사기의 내부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퍼엉―!

안쪽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새까만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복사기는 그대로 멈췄다.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다.

고장 난 것 같다.

“으음.”

공기의 강도를 강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근육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보다시피.

복사기의 기능 강화는 실패.

“왜지?”

복잡한 구조를 지닌 물건이라서?

전기에너지를 쓰는 전자제품이라서?

기능이란 게 너무 뭉뚱그려진 개념이라서?

제기랄.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비너스와 만난 것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강화 마법의 원리와 활용법에 관해서 한 수 배울 수 있었으니까. 물론 바로 이후에 심장을 물리적으로 빼앗길 뻔했지만 말이다.

하여간 스승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

나에게 마법에 대해 알려주면서도, 되도록이면 내 목숨을 위협하지 않을 착한 사람.

―역시 그 블로그밖엔 없나.

나는 자리로 돌아와 인터넷을 켰다.

그다음 곧장 <마녀일기> 블로그에 접속했다.

“답글은 아직 없네…….”

그저께 달았던 질문 댓글에 아직도 주인장의 답변은 달려 있지 않았다.

나는 일단 다른 게시글에도 질문하는 댓글을 몇 개 더 달았다. 하나쯤은 봐주길 기대하면서.

그때 문득.

인터넷 채팅 메신저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싶어 들어가 보니, 어제 비너스와 대화를 나눴던 채팅방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앞으로 또 언제 어디서 비너스 같은 녀석이 튀어나와 내 심장을 노리고 올지 모른다.

게다가 3개월 뒤, 우드게이트 웨어하우스 습격 사건을 기점으로 이 도시는 아수라장이 될 거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강해져야 한다.

지금처럼 심기체 3방면으로 팔푼이인 상태로는 언제까지고 살아남을 수는 없을 테니까.

“저기, 팀장님……?”

그즈음, 스몰필드 씨가 말을 걸어왔다.

어쩐지 잔뜩 우물쭈물해 하는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죠?”

“그게, 잠깐 화장실 다녀왔는데요. 현관문에 보니까, 이런 게 붙어 있길래…….”

그녀는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전단지인가 싶었으나, 그런 게 아니었다.

─유우진에게

22만 2700달러

4주 남았음

도노반퓨처스

─그것은 독촉장이었다.

샛노란 종이에 빨간색 사인펜으로 휘갈겨 쓴 필기체는 꽤나 무서운 사람이 쓴 것처럼 보였다.

“이 양반이 회사로까지 이런 걸 보내네.”

“팀장님, 사채 쓰셨어요……?”

“옛날에요. 별일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저어, 제가 뭐라 할 자격은 없지만, 22만 달러나 되는 돈을……. 대체 어쩌시려고 그래요?”

“괜찮습니다. 충분히 갚을 수 있어요.”

딱히 전전긍긍해 하는 스몰필드 씨를 안심시키려고 그냥 던진 말이 아니었다.

“최근에 목돈 들어올 데가 생겼거든요.”

“어딘데요, 그게……?”

나는 종이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회사요.”

***

나는 통장을 확인했다.

어제 입금된 3만 4,300달러가 그대로 있었다.

“흠.”

잠깐 들어왔다 도로 빠지는 돈이 아니다.

정말로 내 통장에 들어온 내 돈인 것이다.

“써도 되는 돈이란 건 알겠는데…….”

가장 큰 미스터리인 것은, 바로 지난주까지 입금된 3주치 주급 10만 달러의 행방이다.

내가 ‘유진 연’이 된 날짜는 지난주 월요일.

그 당시의 기억과 의식은 조금도 뚜렷하지 않다. 아마 빙의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시점이라서가 아닐까, 일단은 그렇게 추론하고 있다.

어찌 됐건, ‘유진 연’이 된 후로 나는 3만 달러 이상의 큰돈을 내 손으로 만져 본 적이 없다.

통장에는 있어야 할 돈이 없다. 돈을 빼돌린 것은 필히 원래 이 몸의 주인인 ‘유진 연’일 터.

어딘가에 돈을 썼거나.

어딘가에 모아 두었다.

“만약 후자라면―.”

4주간 내가 받을 주급 12만 달러.

그리고 ‘유진 연’이 숨겨 둔 10만 달러.

“도합 22만 달러.”

그 돈이 내 수중으로 들어온다면,

당장 갚아야 할 돈을 갚을 수 있다.

뭐, 그렇긴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단서가 전혀 없으니, 그 사라진 10만 달러는 현재로선 그림의 떡일 뿐이다.

보물찾기는 플랜B.

우선은 다른 방식으로 10만 달러를 벌어야 할 거다. 가능하면 4주 안에.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방법은 몇 가지 있었다.

***

찰튼 애버뉴의 상점가.

마법 상점 <마제스틱&도메스틱>.

초 특 가 창 고 대 방 출

무조건! 옆집보다 싸게드림!

주문서/마법서 전품목 1+1

여전히 쌈마이한 감성이 풀풀 풍기는 광고전단들을 지나쳐,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짤랑―

문간에서 울리는 맑은 종소리에 이어, 새하얀 생머리의 여주인이 손님인 나를 맞이해 주었다.

“어머, 또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장사 잘되시나요?”

“후후, 전혀요. 사실 손님이 오늘 우리 가게 첫 손님이세요.”

“어째 데자뷰네요.”

“찾으시는 물건 있으신가요?”

“아뇨. 오늘은 팔러 왔습니다.”

나는 들고 온 물건을 주인 앞에 내보였다.

비닐로 감싼 1미터 넘는 나무 지팡이였다.

“완드인가요?”

“예. 밖에 보니까 중고 마법 도구 매입도 하시는 것 같아서요. 혹시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일단 물건 좀 확인할게요.”

여주인은 비닐을 풀어 완드를 꺼냈다.

그녀는 카운터의 매대 위에 완드를 올려놓고 돋보기까지 써 가며 이곳저곳 살펴보기 시작했다.

“흐으음, 어디…… 바르베이라 GS300…… 바디는 마호가니 베이스에 주목으로 더블 우드 다이캐스팅, 손잡이 밑 부분은 오픈 포어 피니시로 매끄러움을 살렸고…… 음각 룬 문자로 적은 고대 정령들의 일곱 속담, 요새는 드문 방식인데…….”

그렇게 5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손님.”

여주인은 혼자서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더니, 갑자기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이거, 어디서 났어요?”

여주인의 눈빛이 매서웠다.

나는 물론 당황하지 않았다.

“지인한테 선물 받은 건데요. 왜 그러시죠?”

“손님이 갖고 오신 이거, 좀 비싼 거거든요.”

“그렇습니까? 가격은 듣지 못해서 잘 모르겠는데……. 혹시 얼마짜리 물건이길래요?”

가격은 당연히 알고 있다.

여기 오기 전에 검색해 봤으니까.

“출시 때 정가가 7만 7,000달러. 지금은 프리미엄 붙어서 옥션에서 최소 10만 달러는 받죠.”

“허얼? 이게 그렇게 값나가는 거였어요?”

“정품이란 건 딱 봐도 알겠는데, 혹시 보증서는 갖고 계실는지요?”

의심의 눈초리.

나는 싱긋 웃었다.

“여기요.”

완드의 제품 보증서는 차 안에 있었다.

혹시 몰라서 구매 날짜까지 기억해 뒀다.

“…….”

“선물 받은 물건이긴 한데, 전에 확인해 주셨다시피 저는 마법을 못 쓰잖습니까. 애물단지로 두느니 그냥 팔아서 살림에나 보태려고요.”

“으으음, 저엉말 현명하신 선택이에요!”

비로소 여주인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장물이란 의심을 완전히 거둔 모양새였다.

“그럼, 매입해 주시는 건가요?”

내 물음에 여주인은 즉각 응답했다.

“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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