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Money For Nothing (4)
오후 8시경.
사우스아치 10구역 제3공단.
이곳 일대의 공장지대는 규모가 남다르다.
최저임금 노동력과 스모그를 조합하여 온갖 공산품들을 만들어내는, 그야말로 시에라시티라는 거대한 레스토랑의 초대형 주방 같은 곳이다.
물론 손님들을 먹일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음식물쓰레기 또한 적잖이 배출되고, 또 그 음식물쓰레기조차도 당연스럽게 접시 위에 올라가곤 한다.
주방 안을 볼 일 없는 손님 입장에선 멋도 모르고 그저 냠냠 쩝쩝 쓰레기를 탐식할 뿐이다.
“윌슨앤코에서 나오셨다고요?”
“예.”
“사장님께 연락받았습니다. 공장 출입구는 열려 있어요. 시큐리티도 해제해 두었고요. 여기 ID카드랑 비상구 열쇠요. 문단속은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 공장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까?”
“아침에 경비가 출근하기 전까지는요.”
“그렇군요.”
사무실 건물 앞에서 근무복 차림의 신타케미컬 직원에게 ID카드와 열쇠를 건네받았다.
“근데, 무슨 일로 오신 거지요?”
“저희 쪽에서 납품받아야 할 물건들이 출하가 안 되고 있다고 하길래, 직접 가지러 왔습니다.”
“물건을 직접 가지러 오셨다고요?”
“예.”
“그, 죄송한데, 어떻게요……?”
그는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봤다.
“사람을 불렀습니다.”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물건 보관 중인 곳은 후방 라인이에요. 거긴 에테르 농도가 워낙 높아서 CCTV도 작동 안 되고, 평범한 사람은 방진복 입고 들어가도 10초 안에 식물인간 돼 버린다고요.”
“압니다. 그래서 안 평범한 사람을 불렀죠.”
“……?”
“마법사 말입니다.”
그제야 그는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직원이 떠난 뒤 곧장 공장 건물로 향했다.
바깥서 보이는 낡은 그림과는 달리 공장 안쪽의 풍경은 꽤나 현대적이었다. 지금은 가동되고 있지 않았지만, 각종 기계 설비와 로봇 등이 쭉 늘어선 생산 라인은 완전 자동화가 이루어져 있는 듯했다.
나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쓰인 철제문을 지나 계단 위로 올라가 깊은 곳에 들어갔다.
곧 복도 끝에서 노란 삼각형 표지 안에 불꽃놀이 비슷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경고문을 발견했다.
[ 주의 ]
[ 에테르 오염구역 ]
이곳 문 너머는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냉장고만 한 두께의 문을 두 번 통과하자 폭이 겨우 2미터 남짓 되는 밀폐된 통로에 도착했다.
「경고.」
「2급 에테르 오염구역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항에테르 수치 84 이상의 특수방진복 착용을 권장합니다.」
천장 스피커에서 컴퓨터 음성이 들려왔다. 안쪽 문 앞에 누르면 안 되게 생긴 빨간 버튼이 눈에 띄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버튼을 꾸욱 눌렀다.
「문이 열립니다.」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이내 검붉은 공기로 가득 찬 공간이 드러났다.
“윽.”
‘마나 방사선’이라 불리는 에테르.
내성이 없는 일반인에게 에테르가 잔뜩 퍼진 이런 장소는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이나 다름없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죽음의 냄새가 짙은 곳이었지만, 당장은 숨이 약간 거칠어졌을 뿐이었다.
“뭐, 생각대로군.”
<사이버판타지>에서 캐릭터가 에테르 오염구역에 진입하면 HP 대신 MP가 먼저 까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MP가 바닥나면 그때부터 HP가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에테르 저항력이 낮더라도 MP 양이나 회복력이 충분하다면 에테르 오염구역에서도 별다른 문제 없이 멀쩡히 활동할 수 있다.
즉, 마나통이 무한대인 나는 방진복 같은 것 없이도 여기를 마음껏 드나들 수 있다는 얘기다.
“물건은…… 저쪽인가?”
시설 구석의 움직이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피라미드처럼 쌓인 컨테이너 박스들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박스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 보았다. 얼추 100개 정도인 듯했다.
“어디…….”
시험 삼아 박스 하나를 들어 보았다.
윽, 꿈쩍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가공이 완료된 마나 전해질은 금보다 밀도가 높다고 했던가.
“한 1-2톤쯤 되려나, 이거.”
순전히 내 육체의 힘만으로 이것들을 옮기기란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나는 이런 상황에 딱 맞는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였다.
금요일 밤의 감각을 떠올렸다.
기계 팔의 남자와 맞짱을 깠던 그때, 내 몸에 깃든 마력을 이용하는 법을, 분명히 익혔었다.
“<강화>.”
마력을 주입해, 근육의 힘을 늘렸다.
보랏빛 불꽃이 전신을 감싸며, 이제 코끼리라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거란 확신을 내게 주었다.
“흐읍!”
박스를 들었다.
조금 힘겨웠지만 일단은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어찌저찌 다리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이걸 공장 밖으로 들고 나가는 방법은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나는 2톤짜리 박스를 껴안은 채 뒤뚱뒤뚱 걸었다. 복도, 문, 계단, 통로, 계단, 통로, 문을 지나, 드디어 공장 밖에 물건을 갖고 나올 수 있었다.
“와, 나, 존나 무겁네, 시팔…….”
공장 출입구 쪽 아스팔트 바닥에 박스를 내려놓자마자 저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하여간에, 이 동선대로 박스 하나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3분 정도인가.
“100개면…… 300분…….”
지랄 맞게 쉬운 계산이었다.
머리가 비교적 편할 동안 몸은 실시간으로 뒤져만 갔다. 이렇게까지 개고생한 것은 대학생 때 택배 상하차 알바 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사실 머리라고 그리 편하지도 않았다.
박스를 옮기는 동안 조금만 집중을 풀어도 강화 마법이 금세 풀려 버려, 그때마다 2톤짜리 부하가 관절과 근육에 가감 없이 더해졌다. 박스 3개에 한 번 꼴로 시원하게 넘어져 땅바닥을 굴렀다.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한 250번 정도 하고 나니, 어느덧 박스 100개가 공장 밖에 가지런히 쌓여져 있었다.
“허억…… 후우…….”
그 시점에 몸 상태는 아주 그냥 말도 아니었다.
팔다리는 감전된 듯 후들거리고 허리는 아예 척추째로 뽑힐 것 같았다. 심각한 육체적 피로에 잠식된 눈꺼풀은 감는 순간 영원히 못 뜰 듯했다.
좌우지간 일은 끝냈으니,
이제는 돌아갈 수 있었다.
공장 앞 도로에서 가까스로 택시를 잡았다.
나는 땀범벅이 된 셔츠와 바지를 갈아입지도 못한 채 택시 뒷자리에 지친 몸을 실었다.
땀내 탓에 택시 기사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보다는 표정이 훨씬 더 밝았을 것이다.
“어디까지 가쇼?”
“…….”
이대로 집에 가 버리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 없는 몸이었다.
“웨스트록 3구역, 퀸즈스트리트요.”
회사에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 있었다.
사무실 문도 안 잠그고 나온 거였으니, 애초부터 정해진 수순이기도 했다.
피곤함에 못 이겨 잠깐 눈을 붙였다 뗀 사이, 택시는 빠르게도 회사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게 오전 2시경. 나는 사무실에 돌아왔다.
자리에 가서 철퍼덕 주저앉자, 의자라는 게 이토록 편안한 것이구나 싶었다.
“후우.”
새벽 사무실의 적막 속에서 긴 숨을 내뱉었다.
이윽고 지금 내가 죽을 정도로 목이 마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도저히 의자에 앉은 몸을 일으켜 정수기 앞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쯤.
“……?”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아보니, 스몰필드 씨가 거기에 있었다.
“나 참, 뭐 하다 이제 오시는 거예요.”
“스, 스몰필드 씨? 왜 퇴근 안 했어요? 지금 새벽 두 신데…….”
“일 엄청 밀렸잖아요. 야근 한 번 하는 편이 일요일에 출근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그녀는 어쩐지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팀장님, 신타케미컬 다녀오신 거죠?”
“아, 예. 운송기 문제 해결하고 왔습니다. 신타에서 납품 일정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스몰필드 씨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팀장님도 참 우직하시네요.”
“예?”
“엄청 고생하고 오신 것 같은데, 보통은 그렇게까지 안 하잖아요. 그냥 다른 업체 찾고 말지.”
“…….”
“아까도 그쪽 사장님한테는 굉장히 엄하게 말씀하셨으면서. 뭐랄까, 의외로 좀 상냥하신 것 같아요.”
“……종합적인 면에서 신타케미컬과의 계약을 지속하는 게 최선이라 판단했을 뿐입니다.”
나는 가능한 한 냉정해 보이도록 말했다.
그 무렵에 그녀는 살짝 머뭇거리는 눈치를 보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운을 띄었다.
“혹시, 저 때문에 그러신 건 아니죠?”
“예?”
“에, 그게, 그러니까, 신타케미컬이 제가 품의 올린 업체라는 거 들어서, 그, 혹시라도? 저 기죽지 않게 하려고 그러신 거는…… 아닌 거죠?”
내가 멍하니 있자 스몰필드 씨는 괜히 물어봤다는 식의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아예 답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듯했다.
“아참, 스몰필드 씨. 이거 받으세요.”
“네?”
“아까 빌린 30달러요. 빌려줘서 고마웠어요.”
“어, 천천히 갚으셔도 됐는데…….”
“아까 오후에 월급 들어왔잖아요.”
“그러면 아까 갚으시지 그랬어요?”
“그땐 이게 제 돈이란 확신이 없었거든요.”
“네에?”
오늘 내 통장에 들어온 급여 3만 4,300달러.
선뜻 받아먹기에는 아무래도 께름칙한 돈이었다. 그야 액수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기에.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이건 내가 떳떳하게 일해서 번 돈이다.
오늘 밤 흘린 땀이 그 사실을 보증한다.
“세상에 공짜로 버는 돈은 없으니까요.”
금액이 큰 만큼 위험한 돈이다.
나중에 자칫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스크 없이는 리턴도 없다.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 비너스 님이 입장했습니다 ]
비너스 : 하이염
비너스 : 부르셨어용???
돌다리는 위험하지만,
두드려 볼 수는 있다.
yjy343 : 마법에 대해 잘 아신다 하셨죠
yjy343 : 만나서 얘기 좀 나눠보고 싶습니다
두드린다면 열릴 것이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