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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222화 (222/225)

222화 49. 스베아 왕 (7)

루페르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오각의 마법사 프리츠 에센바하가 함께했을 텐데?”

비스투라 쪽은 조금도 걱정한 바가 없다.

그는 그저 잔혹한 비적 떼에 불과하다.

그가 약탈하는 곳은 성벽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취락이 전부고, 성벽이 있는 쪽은 얼씬도 하지 못한다.

게다가 루페르트는 그들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저 강력한 오각의 마법사 프리츠 에센바하를 보냈다.

패배는커녕 물리적으로 비길 수조차 없는 싸움이다.

루페르트의 눈동자에 힐난의 빛이 드리운 것도 그 때문이다.

허위보고가 아닌가 하는.

‘제대로 조사를 하지도 않고 황제에게 보고를 올리는 건 문제가 있는 일이지. 나중에 알아봐서 이 부분에 대한 시정을 요구해야겠어.’

이에 장교가 루페르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프리츠 에센바하의 소식도 불명입니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나?”

“프리츠 에센바하도 기병대와 함께 소식이 끊겼습니다. 아울러 카렐리아 곳곳에서 구원 요청이 파다하게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심상치 않은 일이다.

기병대와 프리츠 에센바하의 실종.

그리고 이어지는 카렐리아의 구원 요청.

어쩌면 프리츠 에센바하가 패했을지도 모른다.

마법사를 육성하는 강력한 나라도 아닌, 동방 제국의 일개 봉신에 불과한 비적 떼에게 말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이 루페르트 앞에 벌어진 현실이다.

‘설마. 아니겠지. 프리츠 에센바하가 패배할 일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패했다면?!’

루페르트는 자신을 괴롭히던 강대한 적을 떠올렸다.

제국 성인.

역사의 이면에 존재하는 저 티그리트의 괴이한 수하들을.

‘설마 티그리트가 약속을 깨고 개입한 건가?’

그렇다면 프리츠 에센바하가 패할 수도 있다.

안정된 정국이 다시 한번 이면 세계의 존재와의 전투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결코 쉽지 않으리라.

어쩌면 저 스베아 왕을 처리하는 것보다 어려울지도 모른다.

심지어 회귀조차 자유롭지 않은 지금 시국에는.

루페르트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옆에 동석한 울피아나의 눈은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폐하?”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 부분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지요.”

루페르트는 필사적으로 태연함을 유지하며 다음 소식을 물었다.

“또 하나의 전갈은 무엇인가?”

목소리는 담담하고 위엄이 서렸고 일말의 흔들림도 찾을 수 없었지만, 루페르트가 지금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건 사실이다.

“노르드마르크 쪽에서 보낸 전갈입니다.”

“노르드마르크?”

루페르트는 간신히 균형을 잡은 마음이 다시금 요동치는 걸 느꼈다.

‘노르드마르크라고? 노르드마르크?’

거기는 지금 제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거기서 들려올 비보는 어쩌면 루페르트의 권력 그 자체를 분쇄할 수도 있는 사안이니까.

‘아니겠지. 노르드마르크에 간 건 만슈타인이 아닌 하벨이다. 만슈타인은 저 스베아 왕에게 패할 수 있겠지만 하벨은 아니야. 하벨은 아니다. 하벨은 불명예스럽게 죽을 때까지 불패의 명장으로 남았다. 나도 그걸 직접 보지 않았나?’

루페르트는 몇 번이고 마음속에 자문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황제의 시선을 받으며 장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안 좋은 예감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장교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가는 것이 보인다.

점점 날카로움을 더하는 울피아나의 시선을 옆얼굴로 받아 내며 루페르트는 다음 보고를 기다렸다.

“그게, 하벨 장군이.”

“말하게. 더듬거리지 말고.”

“……하벨 장군이 패했습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이 크게 휘청거렸다.

얼굴의 핏기가 전부 빠져나갈 정도의 충격이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을 한다고 버텨 낼 정도의 충격량이 아니다.

‘하, 하벨이 패했다고?’

울피아나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 시선의 온도는 해가 진 겨울밤보다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패, 패할 수도 있다. 전쟁이라는 건 그런 거니. 하지만 참패는 아닐 것이다. 하벨이 살아 있고 군대를 정비할 수 있다면, 시간은 우리 편이다. 스베아 왕에게 피해를 줬다면 전투에서는 패배하였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사적으로 마음을 지탱하며 루페르트가 그답지 않게 더듬거리는 듯한 말로 물었다.

“어, 어떻게 패한 거지? 석패(惜敗)인가?”

“……전멸에 가까운 패배라고 들었습니다.”

“!!!”

“그리고 하벨 장군은 전사……!”

그 대목에서 천하의 루페르트는 불타는 제국의 모습을 연상했다.

짐짓 취하던 태연함은 그 불길 속에서 타 없어졌고, 황제의 얼굴엔 불안과 공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단 하루 만에 모든 걸 잃게 됐으니.

‘어떻게 해야 하지? 회귀를 해야 하나? 회귀는 안 된다고 했는데. 만슈타인. 만슈타인, 그를 불러야 하나? 하지만 어떻게?!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물음 속에서 루페르트는 자신의 표정이 무너졌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황제는 자신의 황후를 보았다.

“…….”

늘 열렬하게 사모하고 그를 응원하던 울피아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황제 옆에 앉은 건 과거의,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했던 바로 그 울피아나였다.

“폐하?”

선망으로 가득 찼던 눈이 감정 없는 뱀의 눈으로 변해 가는 걸 보며 루페르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버렸다.

* * *

“마를로네 님. 오랜만이네요.”

한스 징펠만이 환한 얼굴로 마를로네를 맞이했다.

그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보다 상당히 나이가 들어 있었다.

그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다.

개구장이 소년처럼 보이던 마를로네도 이제는 훤칠한 한 명의 여성으로 자라났으니.

한스 징펠만이 정이 담긴 시선을 보내며 따뜻하게 말했다.

“마를로네 님은 볼 때마다 아름다워지시네요.”

“아. 총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하하. 변함이 없으시네요. 마를로네 님은.”

따뜻한 시선을 보내던 한스 징펠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부님의 소식은 이쪽도 유감입니다.”

“아니에요. 충격적이고 배신감을 느끼긴 했지만,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그래도 그 빌어먹을 인쇄소에 있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인쇄소를 싫어하시는군요. 하긴. 요즘 도펠죌트너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긴 하는데 그들 모두 인쇄소 욕을 하더군요. 직인을 죽이겠다. 장인의 집에 불을 지르겠다. 이런 살벌한 이야기를 주점에서 하면서 말입니다.”

“말뿐일 거예요. 그 사람들도 다 나이를 먹어서. 심술만 늘어났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이쪽으로 오시지요.”

한스 징펠만이 마를로네를 안내했다.

마를로네는 선제후의 여름 궁전에 들어갈 자격이 없지만, 한스 징펠만은 다르다.

황제의 사냥꾼인 그는 멀리서도 병사들이 먼저 인사를 할 정도의 지위를 누린다.

설령 그에게 그런 지위가 없다고 해도 그는 언제든지 노르드마르크에서 환영받았을 것이다.

명목상 노르드마르크의 역병을 종식한 영웅이니까.

노르드마르크의 장교 하나가 마를로네를 보고 물었다.

“이분은?”

“아, 저의 지인입니다.”

“그렇군요. 안으로 드시지요.”

한스 징펠만은 응접실에서 마를로네를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나름 좋은 옷을 입고 왔지만, 빈티가 나는 옷이다.

“옷을 좀 갈아입읍시다.”

“네?”

“선제후님에게 인사를 드릴 건데 최소한 린넨 소재의 옷은 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루!”

“네. 마이스터예거.”

“그 칭호는 됐으니, 가서 마를로네 님에게 어울리는 의복 하나를 입혀 드려라.”

“네. 스승님.”

루가 마를로네를 별실로 안내했다.

마를로네는 별실로 가면서 루에게 투덜거렸다.

“저는 꾸미지 않아도 기품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신감은 여전하네요.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꼬락서니는 영락없는 촌 동네 아가씨예요.”

“제가 꾸미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텐데.”

“그러니 친구가 없죠.”

“있어요.”

“언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

마를로네는 속으로 루가 그리 만만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말 없던 시절의 루는 귀여웠는데. 이런 발칙한 생각을 침묵 속에 감추고 있었을 줄이야…….’

순순히 루가 시키는 대로 옷을 걸쳤다.

아주 값비싼 옷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선제후 앞에 입고 나서도 될 정도의 기품은 있는 옷이었다.

전신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마를로네는 살짝 미소를 머금어 보았다.

“이거 정말 큰일 나겠는데?”

“빨리 가요. 스승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루를 따라 다시 한스 징펠만에게 갔다.

옷을 갈아입은 마를로네를 보며 한스 징펠만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전부터 느끼고 있었는데 마를로네 아가씨는 퍽이나 아름다우신 분이네요.”

“저 사실, 제국인이라기보다는 부르봉 사람에 가까운지라…….”

“가시죠.”

한스 징펠만은 마를로네를 기둥이 늘어선 커다란 복도로 안내했다.

황궁에 지낸 적이 있는 마를로네는 이 길이 예사롭지 않은 걸 발견하고 한스 징펠만에게 물었다.

“우리, 어디로 가나요?”

“선제후님에게 인사를 드릴 겁니다.”

“네? 제가요?”

“왜요. 마를로네 님도 저와 함께 신의 회초리를 해결하는 데 한몫하시지 않았습니까?”

“어, 저는 옆에 있기만 했는데?”

“큰 사람의 눈도장을 찍어 두는 게 앞으로 인생을 사는 데 있어 도움이 될 겁니다.”

한스 징펠만이 미소를 거두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마를로네는 어리지 않다.

‘큰 사람의 눈도장.’

알고는 있었다.

제국 아니, 이 세상에서 신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거의 대부분이다.

베르크 란이 얼마나 강하고 마를로네가 루에게 자신의 미모를 아무리 자랑해도 둘은 작은 사람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건 왕과 군주라 불리는 큰 사람들이다.

작은 사람들은 그들이 만든 질서 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당장 마를로네는 루페르트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기는커녕 만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 아닌가.

선제후만 해도 그렇다.

한스 징펠만이라는 큰 사람의 세계에 편입된 사람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선제후 알현은커녕 그의 궁전의 발치 안에도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스 징펠만은 배려해 준 것이다.

마를로네가 이 잔혹한 세계에 혼자 설 수 있도록.

“…….”

입 안에 배어드는 씁쓸함을 느끼며 마를로네는 서서히 자기도 어른이 되어 간다는 걸 느꼈다.

‘결국 이런 거겠지. 할아버지가 안젤리나, 그 사악한 할망구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 할망구만 쳐다본 것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

가을의 이슬처럼 차가운 것이 마음에 내려앉는 걸 느끼며, 마를로네는 한스 징펠만을 따라 선제후의 궁전에 향했다.

선제후 게오르크 아르님은 왕좌에 앉아 있었다.

겉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했지만, 그는 한스 징펠만과 마를로네가 오자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벌려 둘을 환영했다.

“여기, 또 다른 영웅이 오는군. 오. 상당히 아름다운 아가씨였군. 그러고 보니 대리결투에서 본 적이 있었지. 그때는 조그만 아가씨로 기억하는데.”

게오르크 아르님은 진심으로 마를로네를 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를로네는 성미에 맞지 않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정숙한 여성의 미소를 머금으며 선제후의 칭찬을 조금은 유지하기 어려운 미소를 머금으며 경청했다.

그런데 선제후 옆에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과할 정도로 하얀 피부와 붉은빛이 도는 금발과 수염을 기른 풍채 좋은 남자였다.

제국인, 아니 북부인이라는 단어가 마를로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누구지?’

그 사내가 마를로네를 빤히 쳐다보았다.

곧 그가 씨익 웃었다.

그는 아마 부하로 보이는 그처럼 키가 큰 남자들에게 뭐라고 말한 후 마를로네에게 다가갔다.

아직 선제후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그는 자리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성질 있기로 유명한 게오르크 아르님은 자신 앞에 나타난 사내의 얼굴을 보고는 군말 없이 물러섰다.

그 하얀 피부의 사내가 마를로네에게 어색한 제국 억양으로 말했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아가씨군요. 손에 입을 맞춰도 되겠습니까?”

과거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 마를로네는 새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가 마를로네의 손에 입을 맞추고는 가볍게 웃어 보인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마를로네가 한스 징펠만에게 귓속말을 했다.

“누군가요? 저 덩치 큰 사람은?”

이에 한스 징펠만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

“저분이 그 유명한 스베아의 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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