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49. 스베아 왕 (3)
황제와 울피아나의 결혼식 날짜가 정해졌다.
제국의 가장 큰 축일인 제국 건국일.
그러니까 티그리트가 테타우 대성당에서 대륙의 혼란을 잠재우고 강력한 부족을 무릎 꿇린 후, 자유인들의 제국을 선포한 날이다.
황제가 울피아나와 결혼을 선언한 날로부터 4개월이 지난 날짜지만, 고귀한 신분의 결합에서 결혼이 늦춰지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그들의 결합은 두 남녀의 결합이 아닌, 각 사회와 지역, 수많은 사람을 대표하는 결합이니까.
황제와 가장 강력한 선제후 골트문트의 동맹을 공고히 하는 날이다.
제국 건국절만큼 두 세력을 완벽하게 축하할 수 있는 날도 없을 것이다.
고어문트와 슈발츠마인 전역에서 결혼식을 위한 성대한 물자가 오가는 동안에도 제국 궁정에서는 그 특유의 고질병과 같은 궁정 암투가 끊이지 않았다.
황제의 정적들은 이제 더 이상 황제를 직접 공격하지 않는다.
사실상 제국을 제패한 황제를 공격한다는 건 자살행위와 다를 바가 없으니까.
그들이 다음 대상으로 삼은 건 만슈타인이었다.
이 총기 넘치는 젊고 대담한 장군은 이전에 렌타이어마르크 전역에서도 수많은 귀족과 군주, 호사가들의 비난을 샀다.
그의 방식이 지나칠 정도로 제국적이지 않고 제국의 헌법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만슈타인은 자신이 마치 제국의 군주인 것처럼 행동했다.
군대를 보내 마을과 도시를 협박해서 금전을 갈취하고 거기에 터 잡아 자신의 군대를 꾸렸다.
렌타이어마르크 전역에서는 전군이 아닌 기병대만을 가지고 그런 짓을 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을 가진 군대를 끌고 그 짓을 했다.
만슈타인이 트라이아 앞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한 건 사실이지만, 그 뒤에 만슈타인이 한 행보는 제국의 헌법주의자에겐 우려스러울 정도로 위험천만했다.
렌타이어마르크 당시보다 한술 더 떠 만슈타인은 트라이아와 그 동맹국 전체에 자신의 군대를 깔고 앉아, 마치 자신이 레벤호스트인 것처럼 행동하며 무자비한 전쟁배상금을 강요했다.
그의 약탈 징수꾼들이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레가 만슈타인의 진중으로 흘러가는 것 또한 제국 첩자들이 확인한 사실이다.
“만슈타인은 오로지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채우기 위해 제국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입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극도로 위험한 자이며, 곧 제국에게 반기를 들지도 모르는 인간입니다.”
“그에게 분수를 알려 줘야 합니다. 카렐리아의 소귀족에 지나지 않던 그는 경망스럽게도 어느 연회장에서 자신이 슈베린의 공작이라고 칭하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누가 그에게 제국 공작 작위를 주었습니까?!”
만슈타인에 대한 공격은 날이 지날수록 공격적이고 험해졌다.
물론 그동안에도 만슈타인이 태연하게 트라이아 위에 군대를 주둔한 채 운영비를 뜯어내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루페르트가 보기에 만슈타인의 군대는 제국에 여전히 필요하다.
내전이 끝났다고 해도 다른 외국에서 개입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또 루페르트가 순결서약을 깨뜨릴 때 공공연하게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막스 게오르크가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를 일이니까.
제국 첩자들은 부르봉과 스베아의 위협을 경고했다.
최근 신교도 반군을 정리한 부르봉은 약간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 훈련된 군대를 가지고 있고, 스베아도 야만적인 부족을 정리해 자신의 군대에 편입하고 다음 상대를 찾고 있다.
보다 위협적인 건 부르봉이지만, 일각에서는 스베아 왕의 천재적인 군략이 더 무섭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아니 두 나라가 동시에 올 경우에 대비해서라도 두 개의 군대는 유지되어야 한다.
솔직한 심정으로 트라이아의 사정은 루페르트가 알 바가 아니다.
거긴 반역자의 땅이고 괘씸하게도 레벤호스트는 결정적인 패전에도 불구하고 항복은커녕 용서조차 구하지 않고 있다.
그가 빠르게 고개를 숙이게 하려면 만슈타인으로 하여금 트라이아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레벤호스트.”
루페르트는 장미가 가득 한 별궁의 화원을 보며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 선제후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위버하임 장원에 있을 때 레벤호스트가 아들을 데리고 루페르트의 장원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위엄있고 날렵하고 세련되고 오만한 제국의 선제후였다.
그가 이 정도로 평범하고 나약하고 무능한 인물이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할 수 없었다.
모든 건 상대적이다.
이제 레벤호스트는 비참한 패배자고, 명백한 패배조차 인정할 줄 모르는 바보천치다.
그 잘난 고집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다시 선제후직을 회복하고 카렐리아에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황제의 별궁에 한 명의 총신이 방문했다.
그의 이름은 다름 아닌 요하네스다.
“폐하.”
“그래. 요하네스. 알아는 보았나?”
“네.”
루페르트는 요하네스에게 중요한 문제를 맡겼다.
다름 아닌 그의 가장 강력한 검인 만슈타인에 관한 문제였다.
페르트의 정적과 반항적인 군주들은 그 만슈타인을 빌미 삼아 또 다른 반루페르트 전선을 꾸밀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 선두에 선 건 막스 게오르크.
또 한 번의 내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내전을 억제하는 요인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만슈타인의 군대다.
두 개의 군대라는 강력한 무력이 있기에 반항적인 군주들이 다른 생각을 못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하네스는 자신이 조사하고 주변에서 들을 정보를 정리하여 그 생각을 루페르트에게 밝혔다.
“만슈타인 장군을 해임하고 그의 군대를 해산하시는 쪽이 보다 나은 결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만슈타인 장군이 있기에 선제후가 군대를 일으키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선제후와 신교도 세력이 외국의 군주에게 빈번한 사절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어쩌면 전쟁은 제국을 넘어 다른 외세까지 개입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
루페르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에도 그랬다.
몇 차롄가 내전이 있었고, 외국의 개입이 있었다.
제국 전역은 불에 탔고 재만 남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만슈타인 장군에 대한 반감은 깊어질 것이고, 그 반감은 정확하게 폐하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것도 맞는 이야기군.”
확실히 만슈타인의 반감은 점점 악화로 치닫게 될 것이고 그 반감이 황제에게 이어진다는 말은 루페르트가 보기에도 이치에 맞았다.
군대를 유지하는 건 능사는 아니다.
사실 지금 루페르트와 골트문트는 과할 정도의 군대를 운영하고 있다.
당장 하벨의 제국군만 하더라도 제국이 타국과의 전쟁 당시에 모집하는 규모와 육박한다.
그 자체로 제국을 대표하는 군대라는 이야기다.
“그래. 만슈타인의 군대를 해체할 수밖에 없겠지.”
“해임도 하셔야 할 겁니다.”
“해임? 만슈타인을 장군직에서 해임하라는 이야기인가?”
“네. 그쪽이 불만론자의 구실을 없애는 데 더 확실하지 않을까요?”
“음.”
황제는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그중에는 괴로운 선택도 있고 꺼려지는 선택도 있다.
과거에는 그러한 선택을 보고도 외면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울피아나마저도 선택했다.’
아직 둘이 합방을 하거나 부부의 연을 맺은 건 아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곧이다.
또다시 루페르트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겨다 준 결혼 생활을 재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루페르트는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그런 그에게 만슈타인의 해임은 가슴이 아픈 일이지만, 못할 일은 아니다.
황제가 서기를 불렀다.
“만슈타인에게 편지를 보내겠다.”
루페르트는 서기를 통해 만슈타인에게 장군직의 해임과 군대를 해산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만슈타인이 그 편지를 보고 개인적으로 무슨 반응을 보였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편지를 받고도 한 차례 배상금을 더 거두었고, 그 상태에서 군대를 해산하고 황제에게 받은 지휘봉을 반납했다.
황제에게 용서와 사죄를 요구하는 답장을 보내면서 말이다.
만슈타인의 군대는 그렇게 사라졌다.
만슈타인은 카렐리아 동북에 자리 잡은, 현재 주인이 공석인 슈베린 공작령을 매입, 거기에 장원을 꾸렸다.
그는 일체의 정치적인 활동도 견해도 표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작은 왕국에서 칩거했다.
그 만슈타인이 군대를 해산하고 슈베린에 칩거한 날, 노르드마르크의 항구도시 빌헬름스하펜에 여러 척의 군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높고 화려한 건현을 가진 범선과 길고 야만적인 북방인의 약탈선으로 구성된 기이한 함대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항구에 접안, 무장한 군대를 하역했다.
가장 크고 화려한 군함에서 하얀 피부와 은은한 붉은색이 도는 금발을 가진 풍채 좋은 왕이 항구에 내렸다.
그의 이름은 아돌푸스 4세 바사.
그는 스베아 왕이다.
그는 황제에게 도전하기 위해 이 땅에 도착했다.
2만 명의 스베아 보병과 8천 기의 스베아 기병만을 거느린 채 말이다.
그는 빌헬름스하펜의 시민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이 땅을 “정복”했다고 선포하며, 신교도를 탄압하고 그 대의를 짓밟는 황제에게 레벤호스트의 복위를 요구하며 전쟁을 선포했다.
* * *
모두가 경고했던 스베아 왕이 제국에 도착했지만, 제국 궁정은 그다지 놀란 분위기는 아니었다.
“고작 그 정도의 병력만을 끌고 온 건가?”
“스베아 왕국이 북방에서 이름을 떨쳤다고 하지만 그가 상대한 건 솔직하게 이류 국가야. 그가 저지대 연방이나 카스무어, 하다못해 저 겁쟁이 부르봉 놈 상대로 전공을 세웠다면 인정해 주겠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라로 승전보라.”
“그 춥고 척박한 땅에서 우리 군을 흉내 낸 군대를 만들어 본다고 해 봐야 얼마나 잘 싸우겠어? 그 잘난 움직이는 벽을 만든 그 엉터리 방백과 비슷한 결과가 아닐까?”
모두가 생각했다.
스베아 왕은 하벨의 상대가 아니라고.
노르드마르크 선제후는 황제에게 스베아 왕의 상륙은 자신이 모르는 일이며 스베아 왕의 감당할 수 없는 무력으로 어쩔 수 없이 도시를 빼앗겼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루페르트는 무시했다.
저 게오르크 아르님이 비록 역병 건으로 중립을 지켰지만, 그는 레벤호스트의 친우다.
레벤호스트가 비참하게 저지대 연방으로 쫓겨나는 걸 보고 여러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노르드마르크는 아무래도 좋다.
그들은 적어도 이번 전쟁에서는 방관자다.
“하벨을 움직이겠습니다.”
골트문트가 황제 앞에서 낭랑하게 말했다.
이제 결혼식은 앞으로 한 달.
오히려 잘됐다는 게 선제후의 생각이다.
제국의 천년기를 장식할 위대한 결혼을 위한 들러리로는 적당한 상대니 말이다.
골트문트의 명령을 받은 하벨의 5만 명에 이르는 대군이 카렐리아를 떠나 노르드마르크로 향했다.
그 중간에 막스 게오르크가 신교도의 대의를 주장하며 디터팔츠에서 황제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지만, 그게 전부다.
아직 그의 군대는 준비되지 않았다.
하벨은 스베아 왕을 바다로 몰아내고 기세를 몰아 디터팔츠도 정벌할 계획을 세웠다.
어렵진 않을 것이다.
스베아 왕은 왕족.
전쟁은 어디까지나 직업군인이 맡아야 한다.
왕 같은 책임질 것이 많은 사람이 할 일은 절대 아니다.
레벤호스트가 그러했듯이 스베아 왕 또한 무너뜨리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예순이 넘는 노장군은 호라에게 기도를 올리며 노르드마르크의 경계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