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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210화 (210/225)

210화 47. 트라이아 전역 (1)

렌타이어마르크가 비스투라의 약탈자 무리에 혹독하게 당하고 있다는 소문은 즉각 루페르트의 귀에도 들어갔다.

루페르트가 조치를 취한 건 렌타이어마르크에서 온 가신단이 도움을 간청하러 오기도 전이었다.

“마법대학에 지원을 요청해라.”

제국 제후 사이의 일에 제국 마법사는 개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외국의 군주라면?

그것도 제국의 백성을 가혹하게 죽이고 약탈하는 자라면?

망설일 게 없다.

마법대학은 즉각 최고의 마법사를 동원해 비스투라 사냥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형형한 눈빛을 갈무리한 백발의 마법사가 루페르트 앞에 고개를 숙이고 로브를 휘날리며 알현실을 나설 때 루페르트는 황제가 된 이후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제국의 국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이것이 제국이다. 아무리 제국이 다른 나라의 시기를 받고 견제를 받으며 모자란 선제후와 군주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이 흔들리지 않는 강력함이야말로 제국의 속성이지.’

마법대학이 나선 이상 렌타이어마르크는 걱정할 게 없다.

남은 건 하벨이 어떻게 레벤호스트를 잡고 어떻게 트라이아를 무릎 꿇리냐다.

레벤호스트의 성정을 잘 아는 루페르트는 그가 카렐리아에서 패배한다고 해서 바로 무릎을 꿇지 않으리라고 보았다.

선제후의 기반인 선제후령 자체를 군화로 짓밟아야 한다.

그를 위한 군대는 이미 훈련과 편성을 마치고 이제 막 테타우를 떠나려 하고 있었다.

루페르트는 떠나가는 자신의 장군을 따로 부르진 않았다.

멀리서, 황궁의 발코니에 선 채로 만슈타인의 진군을 지켜볼 뿐이다.

이미 군주로서 해야 할 일은 전부 했다.

정치적으로 그를 비호했고, 그에게 책임과 황제의 검을 주었다.

하벨이 지휘하는 군대가 제국군이라면 만슈타인이 지휘하는 군대는 황제군이다.

카렐리아의 일개 경비대장에 지나지 않던 만슈타인이 대체 어디서 돈이 나서 3만 5천 명에 달하는 군대를 편성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일부는 만슈타인의 죽은 아내의 재산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고 만슈타인이 그 돈으로 투자에 성공해 그렇게 큰 거금을 마련했다 하고 또 일부는 황제가 은밀하게 자신이 총애하는 장군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가장 널리 퍼진 설은 만슈타인의 횡령이다.

그가 황제를 위해 프라덴의 금고를 턴 건 맞지만 만슈타인은 대담하게도 절반 이상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고 그 돈으로 마치 생색을 내듯 군대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황제에게 돌아갔어야 할 돈으로 말이다.

황제가 이 일에 언급하지 않는 이상, 사실 호사가들의 입씨름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만슈타인은 보병 2만 8천, 기병 7천에 달하는 군대를 일으켜 트라이아를 향해 곧장 침공을 시작했다.

이에 맞서 트라이아 가문의 방계이자 트라이아 선제후 가문 구성원 중 하나가 자신의 영지에서 진군을 시작했다.

레벤호스트의 먼 친척이자 트라이아 선제후 가문의 일원 중 하나인 부크 방백이다.

그는 자신이 전쟁의 천재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가 진짜 천재인지 아닌지는 두고 볼 일이다.

* * *

전쟁이 군주에서 직업군인의 시대로 넘어간 지는 2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여전히 일부 군주는 선조의 전례를 따라 자신이 직접 군대를 지휘하고 적을 격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빌헬름 리트리에 폰 부크.

흔히 부크라고 불리는 40대의 군주도 그런 전통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오랫동안 책을 통해 전쟁을 공부했다.

직접 전쟁에 나가서 군대를 지휘하고 전쟁을 이끈 경험은 거의 없지만, 옛 선조처럼 영지의 군대를 이끌고 전사에 이름을 새기겠다는 굵직한 야망을 갖고 있었다.

그를 위해 그가 힘쓴 것이 기술자의 초빙이었다.

제국에서 화포로 가장 유명한 건 불과 철의 형제단이지만 그들은 폐쇄적인 집단이고 가격도 높게 불렀다.

그다지 부유하지 않는 방백령으로는 그만한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

차선책으로 부크는 옛 룸제국 영역에 난립한 도시국가 중에서 이름 있는 기술자 하나를 초빙했다.

그의 이름은 마르코 지오반니라는 자로 고향에서 무한동력을 만들어 낸 또 다른 천재로 높은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일부 가신은 그 지오반니라는 자가 고향에서 사기꾼이라 불리며 빚쟁이에 쫓기는 믿을 수 없는 자라고 비난했지만 부크의 결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지오반니가 부크를 위해 몇 가지 “전쟁 기계”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는 움직이는 성채다.

짐말이 끄는 마차에 장갑판과 무두질한 가죽으로 만든 강철의 방벽을 만들어 두었다가 적과 싸울 일이 있으면 그 방벽 마차를 일렬로 세워 마치 성벽처럼 적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다.

성벽 위의 병사와 성벽 아래의 병사가 싸울 때 누가 유리한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압도적으로 전자가 위다.

그러한 우세를 전투마다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부크의 책략이다.

움직이는 성채.

적은 전투마다 공성의 불리함을 감수하게 할 것이다.

물론 그 움직이는 성채를 지휘할 사람은 부크 본인이다.

“만슈타인? 나는 하벨이 오기를 바랐는데. 나의 움직이는 성채에 대비했을 때 너무나 약한 상대가 아닌가?”

부크는 자신의 상대방을 아주 얕잡아 보고 있었다.

“야전을 유도해 보자. 황제의 군기를 직접 받은 황제의 총애하는 장군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자.”

그는 트라이아에서 슈발츠마인과 연결되는 중간 지점인 데니치 마을 다리 뒤에 진을 치고 만슈타인의 군대를 기다렸다.

어차피 트라이아를 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목이다.

정석적으로는 다리 앞에 군대를 배치해서 적이 강을 건너는 걸 막아야 하지만 부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리로부터 멀찌감치 병력을 뒤로 물려 적이 강을 쉽게 건너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그렇게 다리를 포기한다고 해서 수비를 하기엔 좋은 지점은 아니다.

주변에 늪지와 숲이 있지만, 중앙 개활지는 약간 융기됐다는 걸 제외하면 수비 측에 별다른 이점은 없다.

그 개활지에 부크는 움직이는 성채를 설치하고 만슈타인의 군대를 분쇄할 생각이었다.

이미 머릿속에서 몇천 번의 승리를 거듭한 부크가 현재 주목하는 건 적을 어떻게 이길 것이 아닌, 어떻게 적을 추격하여 전과를 확장하냐다.

다리를 내준 것도 그 때문이다.

쉽게 다리를 내줘 적을 건너게 한 후 회전에서 격파해 좁은 다리 앞에서 적을 학살한다.

이것이 부크가 생각하는 자신의 완벽한 전략이다.

데니치에 죽음의 덫을 놓은 채 오매불망 만슈타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부크에게 곧 운명의 날이 왔다.

멀리 기마 무리가 다리 앞을 어슬렁거렸다.

만슈타인의 정찰대다.

부크는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결국 왔군. 만슈타인! 그 애송이 장군이!”

실제로 정찰대는 만슈타인의 주력이 데니치 앞쪽까지 행군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병력의 숫자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

만슈타인은 다리를 건너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수비를 취하는 것처럼 다리 앞에 진을 치고 군대를 머물게 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만슈타인의 행동에 부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또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만슈타인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대체 만슈타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부크의 마음에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자칭 전쟁의 천재인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

또 하루가 지났다.

부크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 * *

“딱히 서두를 필요는 없다.”

만슈타인이 휘하 연대장과 부하 장군에게 한 말이다.

“어차피 주공은 하벨의 제국군이다. 우리는 조공이라는 걸 잊지 마라. 중요한 건 우리가 공세를 취하고 있다는 상태다.”

데니치가 트라이아와 슈발츠마인으로 통하는 대로의 중간 지점에 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많은 물자가 오가는 통로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리라.

만슈타인이 주목한 건 부크 따위가 아니다.

그는 데니치를 중심으로 레벤호스트에게 동조하는 군주령으로 통하는 수많은 길목을 보았다.

만슈타인은 그 길을 이용할 생각이다.

당장 레벤호스트를 분쇄하는 것이 아닌, 레벤호스트의 동맹을 약화하고 협박하여 금원을 갈취하는 창구로서 말이다.

부크의 주력 앞에서 진을 친 채 레벤호스트는 대담하게도 기병대를 내보내 인근 지역에 파견했다.

그가 거기서 실시한 방법은 렌타이어마르크에서 행했던 짓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세금 강요다.

그때와 다른 건 이제 만슈타인은 오롯한 군대의 지휘관이라는 것이다.

상관이라는 장벽조차 사라진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그의 황제뿐이지만, 그의 기병은 가깝고 황제는 멀다.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반역자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다면 우리에게 협조를 해 줘야겠소.”

“이 정도 금전으로는 우리를 만족할 수 없소이다. 돈이 부족하다면 식량이나 물자를 내놓으시오.”

“내일까지 시간을 주리다. 원망은 우리에게 하지 말고 당신들의 왕에게나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소. 정 억울하면 우리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크보고 움직이라고 간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싶군요.”

적을 앞에 두고 적의 동맹과 우호 세력에 가혹한 세금을 뜯는다.

그 세금은 모두 온전히 만슈타인의 배로 들어갔고, 만슈타인은 그 돈으로 전처럼 대담하게도 현지 모집을 시도했다.

“어차피 우리는 신교도 구교도 구분하기 전에 다 같은 제국의 백성들이다. 현지 고용이라는 게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지. 당장 저 카렐리아에서 첫 승전보를 울렸다는 그 가짜 백작도 구교도 아닌가?”

일이 이렇게 되자 난감하게 된 건 부크였다.

만슈타인의 군대를 분쇄하는 것도 모자라 글자 그대로 전멸시키려는 죽음의 덫을 팠는데, 그 덫에 들어가기는커녕 덫 앞에서 자신의 얼굴에 실시간으로 먹칠을 하고 있다.

각지의 영지에서 온 수많은 사절과 독촉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군대를 움직여라.

군대를 움직여서 만슈타인을 몰아내라.

“……만슈타인 놈! 잔꾀를 부리는군!”

부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그가 죽음의 덫으로 구상한 장치 중 하나인 저 다리를 스스로 건너 만슈타인의 군대에 맞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의 천재인 그가 볼 때 좋은 방식은 아니다.

그러자 그의 참모이자 전쟁 기계의 발명자인 지오반니가 경박한 룸식 억양을 섞어 그에게 간언했다.

“부교를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부교?”

“그렇습니다. 저는 대륙의 누구보다 훌륭한 부교를 만들 수 있지요. 굳이 하나의 다리를 건너 대포 세례를 받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부교를 만들어서 여러 곳에서 도하를 시도한다면 만슈타인은 황급하게 놀라 군대를 뒤로 놀리지 않을까요?”

지오반니의 계획을 들은 부크는 어두웠던 마음에 광명이 찾아오는 걸 느꼈다.

“좋은 생각이군. 즉시 시행하게.”

부크의 병사들이 뗏목과 나무를 징발해 부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당연하게도 만슈타인의 병사의 눈에 포착됐고 곧 만슈타인의 귀에도 들어갔다.

만슈타인은 코웃음을 쳤다.

“좀 더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방백이 스스로 죽겠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 모든 군대를 소환해라.”

만슈타인의 눈동자에 언제나처럼 확신 어린 빛이 번득였다.

“반역자에게 가르침을 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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