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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209화 (209/225)

209화 46. 카렐리아 전역 (3)

쇠르너가 라토비츠를 함락시켰다는 소문은 빠르게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소도시 하나가 점령당하고 말고는 전체 전황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너무나 빠르고 손쉬운 승리는 황제의 귀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파급력을 갖고 있었다.

“라토비츠를 함락한 쇠르너라는 자는 누군가?”

루페르트는 과거에 자신이 기억하는 옛 내전의 장군들을 떠올렸다.

가장 유명하고 가장 위대한 하벨은 이미 모습을 드러냈다.

트라이아엔 거기에 비견될 만한 장군은 없다.

레벤호스트는 하벨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루페르트가 기억하는 레벤호스트는 카렐리아의 왕관을 쓰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막무가내 같은 사람도 아니었다.

분수를 아는 그는 고어문트에 공격해 들어가는 대신 트라이아와 그 동맹국의 영토에서 전쟁을 벌였고, 하벨의 주력을 피해 성벽에 의지하거나 하벨의 보급로를 공격하는 유격전으로 일관했다.

하벨이 그 유격전에 꽤 애를 먹은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고 결정적인 전투에 선제후를 내몰아 선제후의 꿈과 야망을 동시에 분쇄했다.

레벤호스트는 저 일곱 개의 머리를 가졌다는 히드라에 비견될 만한 여러 장군을 거느렸는데, 루페르트는 그 장군 중에 쇠르너라는 이름이 있는지 떠올리려고 했다.

“쇠르너라. 그런 자가 있었나.”

이름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과거의 루페르트는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꼭두각시인지라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식으로 승부가 나는지에 대해서 조금도 알지 못했다.

장군의 이름도 하벨이니까 그나마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라이아에게도 유명한 장군이 하나 있긴 하다.

하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최소 하벨의 발목 한 번을 잡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장군은 악마와 비견될 정도로 난폭한 군대를 거느린 것으로 유명했다.

“트라이아의 용병대장이 휩쓸고 간 곳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

제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이야기다.

그 장군의 이름이 쇠르너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 장군이 몇 안 되는 푼돈으로 다수의 군대를 일으키고 유지하는 재주가 있는 건 사실이다.

‘아마 그 장군이 쇠르너는 아닐까.’

지켜볼 일이다.

푼돈으로 군대를 유지하고 모집하는 배경엔 병사들로 하여금 보다 많은 약탈과 만행을 저지르게 하겠다는 숨은 의도가 있으니까.

융커스 베샤문트가 등장하기 전, 악마의 군세라 불린 트라이아의 용병 집단은 글자 그대로 쟁기 다신 칼로 밭을 갈았다.

멀쩡한 가축을 총을 쏴 죽이고 곡식이 익어 가는 농장에 불을 지르며 아녀자를 겁탈하고 사람들을 협박해 모든 재산을 내놓게 했다.

나무마다 사람들이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앙쥬 왕국의 특사가 트라이아 외곽을 여행했을 때 그는 수십 킬로미터를 오가면서 남자를 한 명도 보지 못했고 오로지 앙상한 여인과 아이만을 봤다고 전했다.

그 악마 같은 장군이 쇠르너라면 문제가 된다.

그런 인간이 두 번 다시 내전에서 활약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융커스 베샤문트가 등장하기 전에 최악의 인간이라 불리는 자였다. 그는 반드시 처단해야 한다. 그가 오랫동안 군권을 쥐게 놔두면 안 될 터이다.’

하지만 악명으로 치면 하벨도 만만치 않다.

그는 한 도시를 파괴했다.

그의 잘못은 아니다.

오랫동안 굶주리고 지쳤으며 대가 없이 전장에 선 병사들이 홧김에 저항한 도시 주민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우연히 발생한 불길이 트라이아의 수도 전체를 불태웠다.

수만 명이 죽고 죽을 운명에 처했다.

그럼에도 그 악마적인 장군과 하벨과는 달리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하벨의 악명은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이니.

아무튼 쇠르너라는 이름은 황제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됐고,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혔다.

그 사실을 알았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 시점의 쇠르너는 점령한 도시에서 나름의 선정을 베풀었다.

최소한 약탈은 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 * *

쇠르너에 의한 라토비츠 점령을 먼저 알게 된 건 당연하게도 레벤호스트였다.

“그자가 라토비츠를?”

계산 외다.

쇠르너는 글자 그대로 버림 패다.

하벨의 막강한 대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그 대군을 쪼개 전략을 분산하게 만드는.

도시의 공략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쇠르너가 개전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해냈다.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일단 쇠르너라는 인간에 대한 처우부터 달라져야 한다.

예전 서신엔 백작이라는 칭호를 삭제했었다.

레벤호스트도 쇠르너가 전 쇠르너 백작의 아들일 거라고 믿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새롭게 보내는 서신엔 글자 세공인의 멋들어진 필체로 쇠르너라는 성 뒤에 백작이라는 칭호를 추가했다.

레벤호스트는 트라이아 선제후이자 카렐리아의 왕 자격으로 쇠르너 백작에게 승전에 대해 축하한다는 헌사를 보냈다.

주변의 시선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쇠르너는 사생아조차 아닌 출신이 불분명한 자이고 게다가 그는 구교도입니다. 그런 그에게 백작 칭호를 인정하는 게 주변의 불편한 시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도시를 점령하면 당연히 군주에게 그 도시를 바쳐야 하는데 쇠르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라토비츠에 군대를 깔고 앉은 채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그의 의도가 의심스럽습니다.”

“그가 부르봉 내전에서 활동한 당시 그는 작은 마을을 하나 장악하고 거기에 눌어붙은 채 뻔뻔하게도 적국의 수뇌부와 배반의 조건을 모의했다는 혐의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책략을 꾸밀까 걱정되는군요.”

구교 세력 내에서도 쇠르너는 인간 취급받지 못하는 비천한 인물이지만, 그 악감정은 신교 세력 내에서도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비판의 날카로움은 적군보다 더했다.

하지만 레벤호스트는 적어도 자신의 주관은 뚜렷한 군주였다.

그는 남에게 끌려다니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려 했다.

“쇠르너에 대한 악담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 그는 우리 신교도에게 첫 승리를 가져다준 장군이다. 그가 구교를 믿건 신교를 믿건 그는 신교의 깃발 아래 서 있으며 기적적인 승리를 일궈 냈다. 그대들도 알지 않나? 쇠르너가 라토비츠를 점령하고 그 길목을 장악하는 것만으로 하벨이 얼마나 큰 부담을 느낄지?”

레벤호스트는 쇠르너를 중용하기로 했다.

그에 대한 책망과 문책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하벨의 행방이다.

레벤호스트는 이번 승리로 하벨이 군대를 나누기를 원했다.

실제로 렌타이어마르크에선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 * *

“전부 죽이고 불태워라.”

비스투라.

드라쿨레아 공국의 군주이자 동방 제국의 봉신인 이 잔혹한 사내에게 피와 시체와 아녀자의 비명은 궁중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과 음악 소리, 간혹 들려오는 신하들의 고성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일상적인 소리다.

그가 아직 어른이 되기도 전에 동방 제국이 공국을 공격했고, 갖가지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사람이 방앗간의 맷돌에 갈렸으며 여인과 아들이 가득 찬 교회가 불에 탄 채 10km 밖에서 맡을 수 있는 살이 탄 악취를 실어 날랐다.

그런 곳에서 평생을 자라 온 비스투라에게 불에 타는 거리와 죽어 가는 사람들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 비스투라의 발밑에 아이를 안은 사내가 헐레벌떡 뛰쳐나와 엎드렸다.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나으리! 저는 괜찮으니! 제 아이만이라도 살려 주시길 바랍니다!”

비스투라는 아이를 받아들고 아이를 물끄러미 보았다.

겁에 질린 선량한 눈망울이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촉촉하게 젖어 있다.

비스투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를 뒤로 집어 던졌다.

“죽여라.”

“아, 아아아아악!”

눈앞에서 아이가 죽는 걸 본 부친이 고함을 질러 보지만, 병사들이 그를 걷어차고 때려눕혔다.

비스투라가 돌아서며 말했다.

“이 자를 산 채로 꼬챙이에 꽂아라.”

비스투라가 흉포한 말 등 위에 올라탔다.

“이 거리에 사람으로 이루어진 숲을 만들어야겠다.”

불타는 거리를 뒤로하며 비스투라는 소수의 근위대를 이끌고 거리를 빠져나갔다.

매캐한 연기가 그의 비정한 폐부에 스며들었다.

좋은 냄새다.

그렇게 생각하며 비스투라는 중얼거렸다.

“황제를 부르려면 더 많은 숲이 필요할 것이다.”

* * *

“움직이지 않는다.”

하벨은 유순하고 검소한 사람이다.

누구도 그가 큰 소리로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는 사석에서 길을 걸을 때 마치 수도사처럼 겸허하게 땅만을 보고 걸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그는 확고한 지휘관이다.

결정을 내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결정을 하면 여간해서는 번복하지 않는다.

눈앞에서 실패해도 명령을 바로 돌리지도 않는다.

신중하게 계획을 수립한 후 멈출 수 없는 산사태처럼 나아가는 것.

그것이 장군으로서 하벨을 상징하는 특징이다.

그의 작전 계획은 하나였다.

곧장 슈코브로 가서 레벤호스트의 주력을 격파하고 선제후의 굴복을 받아 내는 것.

그것은 진군로상에 있는 중요한 병참기지인 라토비츠의 함락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라토비츠를 대체할 지원 도시를 선정해라. 급료가 밀리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빠른 시간에 슈코브를 점령해야 한다. 병사들이 불만을 터뜨리면 슈코브에 대한 제한적인 세금을 거둬서 보충하겠다고 해라. 반역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라면 황제 폐하도 동의하실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큰 죄를 저질렀다. 죽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중죄를 말이야.”

하벨의 대군은 강과 운하를 따라 느릿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기세로 슈코브를 향해 나아갔다.

중간에 트라이아의 기병대가 후방을 노리고 보급대를 공격했지만, 하벨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렌타이어마르크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들었을 때도 그는 호라 신에게 기도만을 올릴 뿐 거기에 대해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았다.

장군으로서 그의 목표는 하나이고 그는 그것만을 생각한다.

‘레벤호스트의 왕위는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하벨의 대군이 온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레벤호스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후방이 교란당하고 보급에 차질이 있는데도 싸움을 하겠다고?”

그가 알기로 보급이 안 되는 군대는 군대가 아니다.

보급받지 못하는 군대는 제대로 싸울 수 없고, 싸움이 시작되면 뭘 해 보기도 전에 적의 공격 앞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하벨은 보급을 소홀히 하는, 장군으로서는 어찌 보면 가장 어리석은 실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하벨은 명장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볼 때 소문보다는 한참 못한 느낌이군.”

주위의 장군들이 답했다.

“슈코브의 성벽이 약하다는 걸 알고 빠르게 포위를 한 다음 도시째로 항복을 받아 낼 생각으로 보입니다. 일단 포위를 하면 우리 주력은 모두 성벽 안에 갇히게 될 테니까요.”

“성벽 밖으로 군대를 빼면 될 일 아닌가?”

레벤호스트가 코웃음을 쳤다.

도시를 방벽 삼아 하벨이라는 거인을 지치게 기다린다.

완벽한 계획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한 계획이란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슈코브는…….”

장군 하나가 수심 어린 얼굴로 말꼬리를 흐렸다.

“슈코브가 뭐 어쨌단 말인가?”

레벤호스트의 말에 장군이 음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우리 손을 떠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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