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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207화 (207/225)

207화 46. 카렐리아 전역 (1)

슈코브에 도착한 레벤호스트는 그 어느 때보다 고양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곧 천년기를 맞을 제국이 슈발츠마인의 전횡에서 벗어나 과거의 순수성을 되찾아 줄 제국의 구세주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날 작은 잡음은 아무래도 좋았다.

레벤호스트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가 아직 어린 시절에 그의 부친이 맨발로 행진해 저 클라우데 2세가 머무는 궁전 앞에서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던 장면을.

아무리 클라우데 2세가 황제라고 하지만 황제는 동등자 중의 일인자일 뿐이지, 선제후를 노예처럼 예속하는 주인이 아니다.

클라우데 2세는 단지 자신에게 반항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펠죌트너를 앞세워 트라이아를 혹독하게 벌했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의 짐을 부과했다.

실제로 루돌프가 잃어버린 금광을 되찾아 주지 않았다면 레벤호스트는 굳건한 동맹 없이는 이번 거사를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루페르트 가우저는 극도로 위험한 놈이다. 위버하임에서 보았을 때 그놈은 선제후 간의 전쟁을 예상했지.’

레벤호스트는 코웃음을 쳤다.

‘정확하게 봤군. 선제후와 선제후가 대립을 하고 있으니.’

레벤호스트는 이제 더 이상 루페르트를 황제라고 보지 않았다.

황제를 이루는 두 개의 왕관 중 하나를 빼앗긴 자가 어떻게 황제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레벤호스트는 실체도, 영지도 없는 룸 제국의 옛 월계관보다 카렐리아라는 막강한 영지가 있는 카렐리아의 왕관이 황제의 제관으로 더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레벤호스트는 고작 녹슨 월계관 하나만을 쓴 루페르트보다 황제에 가깝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남은 건 황제의 반응을 보는 것뿐이다.

예상과 다르게 골트문트가 빠르게 합류했다.

레벤호스트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울피아나가 집무실에 뻔뻔하게 상주한다는 점에서 레벤호스트는 둘의 밀월을 예상했다.

하지만 황제가 두 개의 군대를 일으키는 건 예상 밖의 일이다.

“만슈타인이라는 자는 어떤 자인가?”

대외적으로는 유능한 군주라고 불리는 레벤호스트답게 그는 곧 상대할 적장 중 하나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다.

잔뼈 굵은 그의 중신들이 곧 만슈타인에 관한 보고서를 가지고 왔다.

레벤호스트는 혀를 찼다.

“그 무쉬카멘 대령이라는 배신자가 만슈타인이라는 건가?”

“무쉬카멘은 만슈타인의 카렐리아식 이름입니다.”

“프리드리히 마티아스의 반란 때 사실상 장군을 맡은 그 애송이 장군이 카렐리아에 있었군.”

“사람들은 그가 전쟁 경험이 부족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아 장군이 됐다는 점을 들어 그를 얕잡아 보지만 만슈타인은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카렐리아의 군자금을 강탈한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교활한 인간인지 알 수 있지요.”

레벤호스트는 만슈타인에 관한 보고서를 눈으로 읽어 나갔다.

“주둔군 지휘관의 형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주둔군의 사정을 손아귀에 넣고, 결국 때를 봐서 선수를 쳐 카렐리아에게 한 방을 먹였군.”

레벤호스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가 물었다.

“그런 속임수가 있다고 해서 그가 전쟁을 잘하는 게 맞는 걸까?”

레벤호스트가 이해한 전쟁은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마에스트로들의 체스와 같다.

하찮은 잔재주나 속임수만으로는 전쟁에 이길 수 없다.

못해도 수만 명의 병정을 거느리고 그들을 장악해서 사지로 내몰아야 하는데,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명성이 필요하다.

명성이 부족하더라도 경력이 있으면 부족한 명성을 보충할 수 있다.

병사들은 조금 덜 유명하더라도 전장에 오래 있었던 사람의 명엔 따르는 법이니까.

“트라이아의 방어는 부크 방백에게 맡기는 게 좋겠군. 그는 누구보다 전쟁을 염원했고, 전쟁에 대한 기술도 많이 연구했어. 만슈타인 같은 애송이라면 부크 방백의 상대로는 적당한 난관이겠지.”

“하벨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벨은 내가 직접 상대한다.”

“골트문트의 하벨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흔들어야지.”

레벤호스트는 제국 전도 펼쳐진 책상 앞에 서서 두 개의 장기말을 카렐리아 위에 놓았다.

“이번에 고용한 용병 장군. 쇠르너라고 했나? 그 친구에게 황제파 도시의 공성을 맡기지. 아무리 하벨이라고 해도 보급이 안 되면 멀리 전진하지는 못할 터, 보급을 책임질 후방을 쇠르너가 흔든다면 필경 진격이 지지부진해지겠지. 한편 이번에 우리에게 가담한 외국인.”

레벤호스트의 눈동자에 잠시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드라쿨레아 공국의 비스투라라는 자였나. 그 동방 제국의 봉신이면서 우리에게 가담을 희망한 공작의 이름이.”

“이름은 아니고 별명이지만 모두가 그를 비스투라라고 부르지요.”

레벤호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또 하나의 장기말을 이번에는 렌타이어마르크 동쪽 국경에 놓았다.

“그래. 우리도 비스투라라고 부르지. 그 친구에겐 렌타이어마르크의 공격을 맡길 생각이야. 슈발츠마인의 동맹은 아니지만 사실상 예속된 관계이니 마을 한두 개가 불타면 슈발츠마인에 애타게 도움을 구걸하겠지.”

레벤호스트는 또 다른 3개의 장기 말을 꺼내 자신이 미리 꺼내 놓은 3개의 말 앞에 대치시켰다.

“아무리 하벨이라고 해도 3개의 전장에 모두 모습을 드러낼 순 없겠지. 슈코브 앞에 진을 치고 슈코브는 물론 카렐리아의 모든 지원을 받으면서 시간을 끈다면 그 하벨도 군사를 물리겠지.”

레벤호스트가 택한 건 적의 후방을 교란하여 한 곳에 제대로 전력을 집중하게 어려운 여건을 만든 다음, 유리한 위치에서 적이 오기를 기다려 유리한 전투를 벌이거나 그대로 시간을 끄는 것이다.

때마침 겨울이 오고 있다.

벌판에서는 식량은커녕 말에게 먹일 건초조차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카렐리아의 군자금이 그대로 있었다면 아예 하벨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었지만 말이야.”

레벤호스트는 자신만만했다.

그가 믿는 건 전장의 배치만이 아니다.

그는 이미 제국 의회에도 나름의 술책을 썼다.

그가 가장 신경을 기울인 것은 이 전쟁이 오로지 제국 군주만의 의견 불일치로 인한 분쟁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목적은 마법대학의 개입을 저지하는 것이다.

오각의 마법사가 전장에 서는 순간, 이 모든 유리함은 무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물론 외국 군주인 비스투라는 마법사를 피할 수 없겠지만, 비스투라의 운명 같은 건 레벤호스트에겐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동맹이라고 하나, 원래라면 동방 제국의 일개 봉신 같은 자는 감히 제국의 선제후인 레벤호스트와는 같은 자리에 동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신분이다.

한 명이라도 동맹이 아쉬워서 쓰는 거지, 디터팔츠 같은 강국이 가담했다면 비스투라가 동맹을 간청해도 무시했을 것이다.

‘그 인간은 시간만 끌어 줘도 충분해. 어련히 잘하겠지. 어차피 경기병 위주의 군대이니 도망은 잘 갈 거야. 오각의 마법사를 끝끝내 피하진 못하겠지만 말이야.’

전쟁 계획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비록 군자금이 만슈타인에게 강탈당하긴 했지만, 카렐리아는 여전히 부유한 영지다.

카렐리아 의회가 특별세를 거둬 기존에 있던 군자금에 뒤지지 않는 재원을 마련해 주변의 장정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미 여러 개의 연대가 도착해서 모병을 시작했고, 트라이아의 정예 기병과 보병대가 질서정연하게 디터팔츠를 거쳐 슈발츠마인의 외곽을 가로질러 카렐리아로 모이고 있다.

용병대장 쇠르너의 군대도 이미 카렐리아에 도착한 상태.

쇠르너는 무명의 용병대장이지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고 푼돈과 낮은 유지비로 다수의 군대를 모으는 재주는 있었다.

그리 많은 돈을 지급하지도 않았는데도 쇠르너는 2만 명의 보병과 5천 기의 기병을 모집했다.

그 수준은 신하들의 입을 빌리면 “조악”했지만, 어차피 양동으로 돌릴 미끼 군대이기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레벤호스트의 본대다.

그는 트라이아의 정예병을 포함한 4만 명의 보병대와 1만 2천 기의 기병대를 거느릴 예정이다.

그 막강한 군대를 슈코브로 통하는 요충지인 파스틀로프 언덕을 장악하고 그 언덕을 요새화하여 하벨의 군대를 막아설 것이다.

2만 기에 이르는 비스투라의 부대는 레벤호스트에겐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이 전쟁은 내가 승리하진 않겠지만 패배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차피 시간을 끌면 루페르트 가우저도 전쟁을 오래 지속할 수 없겠지.’

레벤호스트가 보기에 지금 더 중요한 건 정치다.

카렐리아는 레벤호스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단지 그가 이루려는 제국 선제후의 완전한 자치라는 제국의 이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적절한 시기가 오면 레벤호스트는 기꺼이 카렐리아를 포기할 생각이다.

물론 루페르트 가우저는 제위에서 물러나야 한다.

필요하다면 레벤호스트도 동시에 선제후직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슈발츠마인이 아닌 다른 선제후 가문에서 황제가 탄생한다면 레벤호스트의 이름은 제국 헌법의 수호자라는 이름으로 제국의 다음 천년기에 길이길이 기억될 터이니.

“시내를 돌아보겠다.”

레벤호스트가 생각하기에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카렐리아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특히 슈코브를 휘어잡아야 한다.

그들의 민심이 이 전쟁의 승부를 가를 핵심이다.

이를 위해 레벤호스트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카렐리아 의회를 구성하는 귀족들에게 뇌물과 선물을 줘서 환심을 사고, 쫓겨난 구교도 출신 귀족의 재산을 카렐리아 왕의 이름으로 적법하게 신교 귀족에게 재분배했다.

시민들에게는 성대한 축제를 열어 그들에게 즐거움과 맛있는 음식을 선사했다.

카렐리아 광장의 분수에서는 3일 내내 향긋한 포도주가 뿜어져 나왔다.

레벤호스트의 개인적인 장점도 빛을 발했다.

그는 상당한 미남에 보기가 좋은 풍채를 가졌고, 앙쥬 왕국 공주인 그의 아내도 대단한 미녀에 당찬 기품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슈코브에선 레벤호스트보다는 그의 아내 캐서린이 더 높은 인기를 끌었다.

한편 거리 곳곳에서 배부되는 팸플릿엔 레벤호스트의 본대가 오고 있다는 소식이 위풍당당한 삽화와 더불어 슈코브 시민들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슈코브 시민들은 대체로 레벤호스트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지 않아도 될 세금에 대한 불만과 다가오고 있는 제국군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축복과 불안 속에서 슈코브의 거리는 하얗게 물들어갔다.

* * *

하벨은 독실한 호라 교단의 신자다.

젊은 시절 고행을 하기도 했던 그의 신심은 어지간한 신부보다 훨씬 높다.

개인적으로 그는 겸허하고 예의 바르며 공손하였고,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한 명의 아내와 평생을 해로했다.

하지만 전장에서 그는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어김없이 수행했다.

필요하다면 적을 죽이고 적을 짓밟으며 도시를 약탈하고 사람들을 죽였다.

그때마다 그는 호라에게 기도를 올렸지만, 아직 호라가 그의 부름에 응답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하벨은 레벤호스트가 보았던 것과 같은 지도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선제후는 이 전쟁을 길게 끌고 갈 생각인 모양이야. 안타깝지만 슈코브의 요새는 저지대만큼 강하지는 않은 것 같군.”

3개의 장기말을, 그리고 다시 3개의 장기말을 지도에 올린 레벤호스트와 달리 하벨은 지도에 일직선의 줄을 그을 뿐이었다.

그 직선이 향하는 지점은 슈코브였다.

“선제후는 지금이라도 그의 모든 군대를 합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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