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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190화 (190/225)

190화 43. 도둑 (1)

그 괴도는 고장 난 음악을 의미하는 슈레게 뮤지크라는 이명으로 알려졌다.

범행을 저지를 때마다 작은 피리로 음정도 박자도 엉망인 기괴한 음악을 연주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슈레게 뮤지크의 범행이 시작된 건, 그레나스 공성전이 황제의 중재로 끝난 지 한 달이 지나서다.

처음에 슈레게 뮤지크는 테타우에 자리 잡은 군주들의 별장을 털었다.

제국회의 같은 큰 행사가 생기면 테타우 안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군주와 귀족, 그 수행원이 몰려들어 여관은커녕 마구간에서 자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지라 여유가 있는 고위층은 저마다 테타우의 고급 주택지구에 집 하나를 사 놓았는데, 그런 집은 늙고 연로하거나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관리인에 의해 관리된다.

그런 집을 슈레게 뮤지크가 전문적으로 털기 시작한 것이다.

애당초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들르는 집이라 그리 값비싼 패물이나 그림 같은 건 두지 않았지만, 은제 식기 같은 꽤 거슬리는 고급품이 깡그리 털리는 건 일 년에 수만 탈러의 수입을 올리는 군주에게도 은근히 짜증이 나는 일이다.

테타우의 치안을 책임지는 테타우 경찰대가 사건을 인지하고 요원을 파견하여 슈레게 뮤지크를 체포하려 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슈레게 뮤지크는 경찰대의 활동에도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대담하게 이제는 군주들의 저택을 털었다.

슈레게 뮤지크의 이름이 황제 루페르트의 귀에 들어간 건, 슈레게 뮤지크의 가장 대담한 범행인 하스 상회 테타우 지회 금고 강탈 사건일 것이다.

황제의 신임 아래 매해 두 자릿수 숫자로 성장하던 하스 상회는 여간한 세습 귀족은 물론이고 군주마저도 쩔쩔맬 정도의 자금을 쌓아 두고 있었다.

무역에도 힘을 써 빙해에서 오는 일각수의 뿔 교역을 독점하여 상당한 이윤을 남겼고, 그 돈을 돈이 급한 귀족과 군주에게 고리로 빌려 그것을 갚지 못할 경우 토지 이용권 등을 받아 더 큰 이윤을 냈다.

그 상승가도의 하스 상회를 상대로 슈레게 뮤지크가 예고장을 보냈다.

-그대들의 탐욕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약간의 교훈을 주고자 하오. 그믐달 발, 그대들의 금고를 조심하시라.

악명이 자자한 괴도 슈레게 뮤지크의 대담한 예고장을 받은 하스 상회는 가만있지 않았다.

막강한 재력과 연줄로 최고의 경비대를 마련해 본사 주위를 철통처럼 경계했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 호위를 맡은 사람 중엔 대학의 마법사, 그것도 사각의 마법사도 둘이나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금고는 터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스 상회는 오히려 슈레게 뮤지크가 최근 둔중한 성장세를 보이는 상회에 활력과 명성을 줄 거라고 내심 반기기까지 했다.

슈레게 뮤지크마저도 막아 낸 하스 상회의 신뢰도를 믿고 더 많은 고객이 돈을 맡기게 될 것이니까.

그런데 털렸다.

어떻게 무슨 수로 그 괴도가 30명이 있는 금고실의 금고를 따고 금고 안의 담보 증서를 훔쳐 갔는지 알 방법이 없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마법사의 입을 빌리자면 마술 같았다고 한다.

갑자기 음정도 박자도 없는 엉터리 노랫가락이 들리는가 싶더니 금고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고, 금고를 여는 순간 슈레게 뮤지크가 남긴 검은 장미 한 송이가 은은한 향기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고.

정확한 피해는 추측할 수 없지만, 그 담보 증서의 하나의 가치만 해도 수십만 탈러에서 수백만 탈러에 이른다고 한다.

천하의 하스 상회조차 휘청거릴 정도의 피해다.

자신만만하던 그들은 이제 저자세로 슈레게 뮤지크와의 협상을 애걸했다.

루페르트의 귀에 슈레게 뮤지크의 소문이 들린 건 그즈음의 일이었다.

“괴도라.”

루페르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최근 수염을 기르고 있다.

예전에야 젊고 새로운 도전자의 이미지를 주기 위해 면도를 했지만, 어느 정도 기반에 오른 현재는 도전자의 이미지보다 제국의 황제로서의 위엄을 강조하는 쪽이 낫겠다는 조언을 들어서다.

그 조언의 주체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겠지만, 울피아나다.

“폐하. 수염이 잘 어울리시네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여전히 울피아나는 루페르트에게 있어 금기와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매일 얼굴을 보고 무해한 날이 쌓이다 보니, 전처럼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경기를 일으키는 일은 없었다.

“폐하. 이상이 슈레게 뮤지크라는 괴도에 관한 자료입니다.”

일개 도둑 같은 건 황제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도둑이 테타우는 물론이고 제국 전체에 악명을 떨친다면 그건 또 별개의 이야기.

다른 도시도 아닌 황제가 머무는 제국의 수도에서 그런 도둑이 함부로 날뛴다는 건 황제의 평판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일개 좀도둑도 못 잡는 황제가 제국의 큰 도둑을 잡을 리 만무하니까.

안 그래도 최근 몇 가지 큰일을 처리한지라 잠시 한가하기도 했다.

한스 징펠만이 가지고 온 신의 회초리의 치유법은 대단히 뛰어난 효능을 발휘했다.

만들기도 쉽고 보관이 용이한지라 집 안에 비축해 두고 역병의 징후가 생기면 복용하는 것만으로 노르드마르크를 파탄으로 몰아넣던 역병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 위대한 발견에 노르드마르크 선제후 게오르크 아르님은 황제와 치료법을 발견한 한스 징펠만에게 친필로 쓴 감사의 편지를 전했다.

친필로 썼다는 건 어떤 군주가 최상급의 격식을 갖췄다는 이야기다.

레벤호스트만큼 세련되진 않지만 오만하기로는 레벤호스트보다 한 수는 더 뛰어난 저 게오르크 아르님이 황제에게 그런 편지를 보냈다는 건, 황제와 노르드마르크 사이의 밍숭맹숭한 관계가 보다 좋은 관계로 진전될 수 있다는 걸 예고했다.

실제로 그 소식을 들은 레벤호스트는 궁정 의사들을 불러 모아 놓고 왜 치료제를 조기에 개발하지 않았냐고 성토했다고.

‘한스 징펠만 덕분에 또 하나의 문제를 덜었군. 레벤호스트가 거사를 치른다고 해도 노르드마르크는 분쟁에서 당연히 물러날 것이다. 북쪽의 위협이 사라진다는 이야기지.’

슈발츠마인 북쪽의 노르드마르크, 서남쪽의 렌타이어마르크가 이제 중립 지역이 됐다.

루페르트가 이제 바라볼 방향은 동쪽.

레벤호스트의 트라이아와 그와 동맹 관계인 잡다한 군주령이 전부다.

전선이 하나밖에 없다는 건 그만큼 군대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큰 군대로 압박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

레벤호스트가 프리드리히 마티아스보다 세력이 강하다고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는 황제군의 무게에 짓눌려 깔려 죽게 될 것이다.

‘레벤호스트도 골치 아프겠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물론 레벤호스트에게도 방법은 있다.

외국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선제후직 박탈은 물론이고 제국에서 영원한 추방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심지어 중립을 지킬 대학의 마법사조차 중립을 깨고 기꺼이 황제의 군기 아래서 그들의 이능을 유감없이 펼칠 것이다.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레벤호스트는 자신의 왕조가 가진 재산을 루페르트와 그의 동맹이 나눠 가지는 걸 지켜봐야 할 것이다.

물론 목숨이 붙어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한스 징펠만의 맹활약으로 또 한 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루페르트는 슈레게 뮤지크라는 일개 좀도둑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있었다.

보고서를 가지고 온 건 요하네스였다.

안젤리나가 데리고 온 세 명의 총신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리고 가장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지만, 현재 그는 다른 두 명보다 더 깊은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 원인은 여럿 있겠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도펠죌트너에 관한 처우를 정할 때였다.

오토 브라에와 베르너는 도펠죌트너의 복권을 강하게 반대한 반면 요하네스는 황제가 듣고 싶어 하는 답을 세련된 형태로 변형에 제출했다.

당연히 이쪽에게 더 많은 신뢰를 줄 수밖에 없다.

“그래. 요하네스. 이게 그 소문의 괴도 슈레케 뮤지크라는 자의 기록인가?”

“네. 그렇습니다.”

보고서를 가지고 온 것도 요하네스다.

루페르트가 명하지 않았지만 미리 루페르트의 기분을 살펴 자료를 준비했고, 루페르트가 슈레케 뮤지크에 대한 보고서를 요구했을 때 즉시 꽤 많은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확실히 통찰의 만화경대로 요하네스가 가장 뛰어난 인재인 건 맞아. 충성심이나 양심의 문제는 뒤로하고서 말이야.’

뒤에서 지켜보는 두 총신의 시선을 무시하며 루페르트는 조용히 보고서를 눈으로 읽어 나갔다.

“흐음.”

터무니없다.

하지만 루페르트의 입에서 터무니없다라는 말이 나오는 건 자신에 대한 비아냥이다.

누구보다 터무니없는 권능으로 무장한 게 바로 황제 본인이니까.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단지 이상한 피리 가락을 들려준 뒤에 보물을 턴다라. 보통내기는 아닌 모양이군.”

“대학의 마법사들은 그 친구가 마법사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요하네스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토록 신출귀몰하게 잇따라 삼엄한 경비를 뚫고 누군가의 금고를 털어 간다는 건 마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보고서에 의하면 대학의 마법사들이 지키는 곳도 털었다는데. 무려 사각의 마법사가 있는 곳을 말이야.”

“대학 마법사가 만능은 아닙니다. 다들 장기가 있지요. 그들은 전쟁에서 적을 제압하거나 강력한 적을 제압하는 데는 능하지만, 시궁쥐 같은 도둑을 잡기에는 과한 느낌입니다. 이를테면 덩치 큰 사냥개더러 민첩하고 재빠른 여우를 잡으라는 것과 같지요. 아시다시피 여우 사냥은 좀 더 작고 똑똑하고 재빠른 사냥개를 쓰지 않겠습니까?”

“흠. 그럴지도.”

보고서를 읽던 중 루페르트는 말미에 적힌 문구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친구. 정신이 나간 건가?”

보고서의 말미엔 조금은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슈레게 뮤지크가 카렐리아의 왕관을 훔치겠다고 주점에서 공공연하게 떠들었다는 첩보가 있음

“황제의 관을 훔치겠다고?”

루페르트는 실소를 터뜨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회귀 전을 생각했다.

괴도 슈레케 뮤지크 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정치보다는 요상한 시사에 관심이 많았던 당시의 루페르트에게 슈레케 뮤지크 같은 게 나타났다면 오히려 신이 나서 파헤쳤을 것이다.

무엇이 그 괴도를 이번 시간 축에 등장하게 한 지 알 수 없지만, 능력이 특출난 건 맞다.

그 신출귀몰하고 마술적인 능력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능과 달리 루페르트가 오랫동안 상대했고, 그를 괴롭혔던 끔찍한 괴이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이를테면 제국 성인이라든가.

‘……티그리트는 그날 이후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리프니에의 중재 이후에 제국 성인의 활동이 보고된 바는 없다.

황제의 밀명을 받은 첩자와 대학의 사냥개-마법사가 제국 전역은 물론 인근 외국의 으슥한 뒷골목까지 뒤져 가며 제국 성인의 흔적을 찾고 있지만, 상상도 할 수 없는 괴이로 무장한 그들은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제국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카렐리아의 왕관을 훔치는 건 불가능하다.

황제의 두 관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은밀하고 파헤칠 수 없는 곳에 놓여 있다.

도르니에의 퍼즐이라고 불리는 허락받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열 수 없는 경이 속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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