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34. 족쇄 (8)
황제가 돼지가죽으로 만든 공을 차고 논다는 건 지금도 테타우의 호사가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사냥 같은 즐거운 놀이를 마다하고 공이나 차고 논다는 게.
귀족의 사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축제와 같다.
힘 있고 권세 높은 군주일수록 사냥이라는 행위는 더욱 화려해지고 규모도 커진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필수 인원만 꼽아 봐도 사냥개 관리자, 총기나 석궁 관리인, 경호원, 다수의 몰이꾼, 사냥감을 실어 나를 수레와 마부, 사냥터 지기, 기타 귀족을 시중을 들 시종들이 필요하다.
이런 행사엔 동료 귀족이나 군주가 끼어 친목을 도모하기도 했다. 당일 잡은 사냥감을 비롯한 갖은 정찬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권세 높은 군주라면 으레 흥을 돋을 악단을 불러 흥겨운 곡을 연주시키기도 했으니, 감히 작은 축제라 아니 말할 수 있을까.
거기에 비하면 공놀이 같은 건 공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찮은 놀이다.
그런 걸 황제가 황궁의 뒤뜰에서 혼자 하고 있으니.
“혼자 하시는 건 아닌 거 같던데요.”
궁정에 자주 들락날락하는 귀부인이 호사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근 황제의 놀이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했다.
“슈발츠마인을 비롯해서 공을 잘 차는 사람을 불러서 함께 공놀이를 즐기신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들은 호사가는 모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혼자서 공을 차시나, 둘이서 공을 차시나 그게 뭐가 다르다는 거요?”
공놀이는 공놀이일 뿐이다.
고귀한 자의 놀이가 아니다.
그것이 제국에서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사고에 박힌 공놀이의 이미지다.
툭툭.
루페르트도 알고 있다.
자신의 취미가 욕을 먹는걸.
어쩌면 첩실을 들이고 추잡하게 노는 것보다 더 욕먹을 짓일지도 모른다.
후자가 도덕적으로 욕을 먹을 행위일지언정 돈이 없고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제국에서는 더 누가 되는 행위다.
‘뭔가 뒤틀려 있어. 이 나라는.’
언제부터 이런 풍조가 들기 시작한 걸까.
대륙의 패권을 장악한 이후부터 이상한 생각들이 사람들의 의식을 좀먹기 시작한 걸까.
루페르트는 룸 제국의 멸망을 생각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타락과 퇴폐로 룸 제국은 멸망했지만, 그들에게도 아름다웠던 시대가 있었다.
귀족과 평민이 일치단결하여 한때 그들보다 숫자가 많고 육체적으로 압도하는 체력을 가진 이민족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던 제국의 여명기가.
“자, 간다. 진심으로 막아 봐라. 실제 경기처럼 손을 써서 내 옷을 잡고 늘어져도 된다. 마르코스.”
눈앞에 있는 남자는 크고 장대하면서도 표범처럼 날랜 몸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평민이다.
부두조합에서 일을 하고 있고 거기에서 가장 공을 잘 찬다는 사람이다.
왕년의 루페르트처럼 다른 조합과의 친선전에 용병으로 나가 돈을 벌기도 하는 모양.
이 사람은 잘 알고 있다.
회귀 전에 몇 번 공을 차 봐서 안다.
“나에게 일부러 져 준다면 보수의 절반을 삭감할 것이다.”
마르코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인한 육체를 놀려 루페르트를 막으려 했다.
루페르트는 이를 악물기도 하고 그의 옷을 잡고 늘어지며 잡히기도 하고 정강이와 몸을 부딪치며 격렬한 몸싸움을 하기도 하면서 결국 그를 제치고 작게 만든 골대 안에 공을 차 넣었다.
“……!!”
마르코스의 표정 없던 무뚝뚝한 얼굴에 미세한 경악이 떠올랐다.
그가 조심스럽게 황제를 보며 물었다.
“다시 해 봐도 되겠습니까……?”
“좋다. 이번에는 전력을 다해라. 나는 하켄하임에서 공을 가장 잘 차는 사람이니.”
“하켄하임? 싹쓸바람 가우저라는 사람이 있었던 곳 아닙니까?”
“그 싹쓸바람 가우저가 나다.”
“오!!”
귀족들은 공 차는 사람을 무시하지만 공 차는 사람에겐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
몸이라는 신과 부모가 내려준 도구를 누구보다 잘 다루고 활용한다는 점에서.
싸움과는 다르다.
싸움은 그저 때려눕히거나 찔러 죽이면 그만이지만 축구는 시간이 다할 때까지 서로의 육체와 기량을 맞부딪히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그 분야에서 마르코스는 최상의 실력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지만 오늘 그는 임자를 만났다.
“아니.”
두 번째 골이 들어갔다.
어떻게 한지도 모르겠다.
그가 물었다.
“대체, 어, 어떻게?”
“아, 이거.”
루페르트가 공을 자유분방하게 놀리다가 뒤꿈치를 이용해 공을 살포시 넘기는 묘기를 보여 주었다.
“허억! 이런 기술이?!”
“뭐, 눈속임이지. 모르니까 당한 거야. 알면 아무도 안 당해 주겠지.”
“저, 저는 사람이 딱딱해서 아부 같은 건 잘하지 못합니다만, 폐하 같은 축구 솜씨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폐하의 몸이라고 해야 하나. 엄청 유연합니다. 뭐라고 해야 되나. 물속의 오징어? 오징어가 흐늘거리는 느낌? 무식한 저로서는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정말이지 대단했습니다.”
마르코스의 칭찬이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루페르트 본인이 잘 알고 있다.
그럴 인간도 아니고 같은 공을 차는 사람으로서 상대를 인정한 것이다.
“이만 해산하지. 다음엔 사람을 모아 경기를 해 보자고.”
“부, 불러만 주신다면!”
순간 루페르트의 눈앞에 카드 한 장이 떠올랐다.
‘뭐, 뭐냐? 영혼 동맹?!’
그때 루페르트의 마음속에 청량한 여인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울려 퍼졌다.
[ 하지 마세요. ]
여신님이다.
루페르트는 침을 꿀꺽 삼켰다.
[ 개나 소나 카드의 군단으로 받아들이면 제가 입장이 뭐가 될까요? 네? ]
목에 건 소라고둥이 갑자기 위아래로 움직이며 루페르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들겼다.
여신의 타박에 루페르트는 돌아서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만을 동맹으로 받아들여야겠죠.”
[ 전에 그 여자도 그래요. 자격도 없는 사람인데. 그 마법사도 그렇고. 아, 그 콧수염은 뭐, 나름 괜찮긴 하지만 뭐, 모를 일이죠. 그 능글맞은 얼굴 뒤에 어떤 추악한 모습을 숨기고 있을지. ]
“한스 징펠만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 당신의 첫 번째 영혼 동맹이니까요. 아무튼, 동맹을 소중히 여기세요. 당신의 가장 큰 재산일지도 모르니까요. ]
“그 말 명심하겠습니다.”
여신의 기척이 사라졌다.
루페르트는 하늘을 보았다.
정오가 다가오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행사가 남아 있다.
바로 울피아나를 만나는 일이다.
* * *
“커억!”
회귀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루페르트지만 가끔 회귀는 자신이 생각해도 웃기는 상황을 만들어내곤 한다.
지금이 그렇다.
“크으으으윽!”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여자에게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같은 기행을 벌이고 있다.
“폐, 폐하?!”
“어엌!”
혼신의 연기를 하며 루페르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이번에는 사람들을 안 부르냐고. 무안하게.’
그것뿐인가.
저 가증스러운 울피아나는 걱정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똑 부러지게 묻는다.
“폐하? 지금 뭐 하세요?”
저 눈.
틀림없다.
루페르트를 추궁하는 눈이다.
첫 번째 첩을 들켰을 때 그런 눈으로 봤었다.
‘이, 이런.’
루페르트의 눈이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흔들렸다.
“커어어억!”
다행스럽게도 그를 구원한 건 선제후였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어제 잠을 못 자서.”
“아버님. 왜 그러세요? 폐하께서는 가벼운 장난을…….”
“울피아나. 농담을 할 때가 아니란다. 오늘은 이쯤 하자구나.”
“폐하.”
울피아나가 루페르트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루페르트는 남쪽에 산다는 발톱벌레라는 징그러운 다지류 벌레를 생각했다.
그 벌레는 모습은 끔찍하지만, 감촉만은 벨벳처럼 부드럽다고 한다.
지금이 딱 그렇다.
과할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운 게 자신의 손등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다음에 뵙겠습니다.”
“폐하. 저 기다릴게요.”
루페르트는 온몸이 떨리는 걸 가까스로 참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후우…….”
달리는 마차 안에서 루페르트는 황제의 체통도 잊고 축 늘어진 채 질린 얼굴로 자신의 손을 몇 번이고 손수건으로 닦아 냈다.
닦아 내는 것도 모자라 냄새를 맡고 장미수까지 뿌려서 손을 씻어 댔다.
“젠장.”
노곤한 황제의 눈이 흘러가는 차창의 풍경을 담았다.
여전히 평화롭고 번영하는 제국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전혀 다른 풍경을 본 적이 있다.
대지가 불타고 도처에 헐벗고 굶주린 여인들의 흐느낌이 들려오고 시체 냄새가 밀려오던 종말의 풍경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잘해 오고 있다.
‘내전만 막으면 제국이 멸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피리스다.
그녀는 과연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
더 이상의 회귀는 안 된다.
여신이 말했다.
다른 핑계를 대고 그녀를 살리려는 시도 따윈 생각지도 않는다.
이제 피리스의 운명은 온전히 그녀에게 달려 있다.
“…….”
그녀가 살아남는 것이 루페르트의 바람이다.
하지만 그녀가 죽는다고 해서 루페르트는 회귀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답이 나올 것이다.
피리스는 울피아나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에 꼭 자신의 부고를 알렸으니.
미궁에 돌아가면 결과가 나올 것이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루페르트는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폐하.”
시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폐하가 아는 마법사 한 명이…….”
“죽은 건가?”
짙은 그늘이 루페르트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아, 아니요. 서찰 하나를 전해 달라고…….”
“그래?!”
루페르트가 마치 빼앗듯이 시종에게서 서찰을 낚아챘다.
그 서찰엔 울피나아의 역한 인공적인 향수의 향기와는 또 다른 기분 좋은 들꽃의 향기가 났다.
가슴이 뛰는 걸 느끼며 루페르트는 그 서찰을 펼쳤다.
[ 고마워요. 폐하. 저 더 앞으로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피리스 홀리바레스로부터. ]
“…….”
사람의 목을 매이게 하는 데엔 구구절절한 미사여구도 장문의 설명도 필요 없었다.
짧은 문장만으로 루페르트는 오랫동안 퇴색하고 있던 감정과 감각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흑백으로 보였던 황궁의 모습에 총천연색이 돌아오는 듯한 부활 또한 감지했다.
살아나고 있었다.
죽어 가던 황제가.
“살아났군.”
루페르트의 눈동자에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시종이 의아한 얼굴로 보지만 그가 루페르트를 이해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날 루페르트는 오랜만에 자신의 방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후우…….”
회귀라는 권능에 대해 생각했다.
그 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회귀에도 그늘이 있었다.
인연의 족쇄라는.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시간을 몇 번이나 돌려야 했던가.
이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신이 어려움을 말했다.
각오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잃을 각오를.
루페르트는 방에 걸린 초상화를 보았다.
철혈대제의 것으로 알려진 그림이다.
그 그림은 시시각각 변해 보였다.
이제는 다르다.
그 안에 담긴 노인은 자신을 닮아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노인을 자신이 닮았는지도 모르리라.
* * *
마를로네는 언제나 상점가를 거닐고 있었다
문득 어떤 골목이 그녀를 마술처럼 잡아당겼다.
아무도 없는 골목.
와 본 적이 없는 골목.
하지만 여기에 누군가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이쪽을 보고 자신을 향해 시종일관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단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은 남자가 있었던 것 같다.
‘누구지?’
그녀는 목걸이를 꺼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 목걸이.
처음엔 불길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적어도 지금 이 목걸이는 그녀의 기분을 좋게 해 주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