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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110화 (110/225)

110화 29. 성 크리오네 (1)

“만슈타인이란 자의 행위가 도를 넘어선 건 맞지만, 렌타이어마르크는 반역을 일으킨 자의 영지. 반역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건 노예제부터 이어진 제국의 전통 아니겠는가? 반역자는 법의 보호를 요구할 권리가 없는 법. 만슈타인의 행동은 권한을 넘어선 것뿐이지, 황제의 이름을 팔아 권리를 남용했다고 볼 수가 없다.”

아카이아 대주교가 루페르트를 위해 나선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만슈타인을 빌미로 황제의 권위에 흠집을 내려고 시도했던 레벤호스트는 이에 대해 장문의 반박문을 작성해 대주교에 보냈지만, 대주교는 그보다 더 긴 서신으로 화답했다.

레벤호스트는 그의 영지인 트라이아로 돌아갔다.

그의 패배였다.

만슈타인은 보호받았고, 그의 보호자인 루페르트의 권위 또한 지켜졌다.

렌타이어마르크에서의 승리가 공고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승리의 순간에 만슈타인이 루페르트를 찾아왔다.

늘 그렇듯 그는 놀라움을 가지고 왔다.

“저를 해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확신에 찬 눈동자로 만슈타인이 말했다.

“해고라고?”

“네, 그러합니다. 법률상의 죄는 면했지만, 여전히 저는 선제후들의 눈 밖에 난 상태지요. 저 같은 사람을 데리고 있어 봐야 폐하에게 이득이 될 일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저 같은 군인 평화의 시기에 뭘 할 수 있는지도 저 스스로도 알지 못합니다.”

만슈타인을 잡아 두고 싶은 마음은 있다.

지난 전쟁에서 만슈타인은 자질을 증명했다.

비록 그 승리의 근저엔 제국 성인이라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지만, 그 과정을 만들어 낸 건 만슈타인의 번뜩이는 기지와 대담한 상상력이다.

다가올 전장에서 그의 능력은 루페르트의 가장 날카로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슈타인의 뜻이 너무나 확고하다.

“저를 해고해 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폐하와 제국을 위한 길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루페르트도 알고 있다.

허수아비라고 하나 밑바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길렀다.

‘확실히 만슈타인의 말이 옳다. 그를 계속 내 휘하에 놔둔다면 선제후들은 계속해서 그를 빌미 삼아 나를 공격하겠지.’

루페르트의 가장 날카로운 검인 만슈타인은 양날의 검이다.

한 면은 황제의 적을 베지만 다른 한 면은 황제의 권위를 벨 수도 있다.

오랜 고민 끝에 루페르트는 만슈타인의 청을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군. 그대의 청을 수락하겠다.”

만슈타인과 황제의 계약은 만료됐다.

만슈타인은 루페르트의 보호를 벗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루페르트는 미련이 남았다.

“어디로 가고 싶은가?”

한직이라고 하나 만슈타인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리 정도는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그것이 언젠가 터질 내전에서 만슈타인과 자신을 잇는 가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만슈타인은 그마저도 이미 생각해 둔 듯 막힘없이 자신의 희망을 밝혔다.

“카렐리아 쪽이 좋겠군요. 경비 기마대 지휘관 자리가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고향에 있는 친구의 편지를 보고 알았습니다.”

“카렐리아?”

루페르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카렐리아는 황제의 직할지.

루페르트의 입김이 미치는 곳이다.

루페르트는 흔쾌히 승낙했다.

“좋아. 카렐리아라. 내 오토 브라에에게 일러두겠네.”

“그럼 언젠가 다시 폐하의 곁에 머물 날을 기다리며.”

만슈타인은 사라졌다.

루페르트는 떠나가는 자신의 가장 날카로운 검을 담담하게 배웅했다.

‘이것이 끝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루페르트는 만슈타인을 떠나보내면서도 내심 이것이 그와 자신의 마지막 만남이길 원했다.

모호한 통찰의 만화경의 결과만은 아니다.

만슈타인은 전쟁에서만 쓸모 있는 사람이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제국의 내분을 막아 내는 것.

그것이 현재 루페르트가 당면한 제1 과제다.

가장 날카로운 검을 떠나보낸 루페르트의 시선은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 * *

황제의 침소.

루페르트는 의자에 걸터앉아 과거를 회상했다.

루페르트가 생각하는 건 트라이아의 선제후 레벤호스트다.

레벤호스트는 위험한 인물이다.

회귀 전엔 프리드리히 마티아스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제국의 역사를 쥐고 뒤흔들었다.

무엇보다 레벤호스트는 내전에 연루된 세 명의 선제후 중 하나다.

다른 둘은 고어문트의 골트문트와 디더팔츠의 막스 게오르크다.

다만 이 중에서 막스 게오르크는 달리 봐야 한다.

막스 게오르크는 내전을 직접 일으킨 주범은 아니다.

내전의 직접적인 범인으로 지목받는 건 골트문트와 레벤호스트다.

막스 게오르크는 내전이 격화되자 자신의 군대를 소집하여 골트문트를 돕거나 레벤호스트를 돕는 등 이중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가 한쪽의 편만 들었다면 제국의 내전은 의외로 빠르게 종식됐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을 말했다.

막스 게오르크만큼 제국의 균형을 중요시여기는 사람은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쓸데없는 공평함이 제국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그러므로 그의 책임은 막중하다 볼 수 있다.

하지만 내전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막스 게오르크는 그가 신교 선제후라는 걸 감안해도 중립적으로 봐야 한다는 게 루페르트의 생각이다

‘그래,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 그가 왜 그러는지, 왜 그런 이중적인 행보를 보였는지.’

수많은 말과 억측이 있었다.

당시 루페르트의 측근이라고는 얼치기 귀족과 글자도 쓸 줄 모르는 하찮은 신분의 시종이 전부였다.

루페르트 본인조차 사실상 문맹 취급받았는데 제대로 된 인간이 옆에 모이겠냐마는.

회귀한 현재에도 막스 게오르크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루페르트도 알지 못하지만 루페르트는 일단 그를 중립에 두었다.

이튿날 루페르트는 자신의 총신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평상시와 달리 하급 관리는 물론이고 호위까지 내보내고 단 네 명만이 모였다.

황제의 태도를 본 총신 3인방은 평범한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저마다의 표정을 지은 채 황제의 의중을 헤아리려 했다.

루페르트는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자신이 걱정하는 미래를 말했다.

제국이 반드시 피해야 할 멸망의 씨앗.

바로 내전을 말이다.

루페르트는 단지 내전만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소 혼란스러운 서순과 정려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그는 내전이라는 거대한 주제 가운데서 자신이 가장 염려스러워하는 부분을 콕 짚어 말했다.

“내가 볼 때는 골트문트나 레벤호스트. 이 둘 중 하나가 내전의 원인이 될 것이다.”

당장 문제가 되는 건 레벤호스트다.

그는 이미 황제에게 공공연히 이빨을 드러내고 황제에 반하려는 연대를 결성하려 한다.

하지만 레벤호스트만을 탓할 수만은 없다.

골트문트는 레벤호스트 이상으로 위험한 자다.

그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루페르트는 골트문트는 레벤호스트 이상으로 강한 황제가 들어서는 걸 염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처리해야겠는가?”

신중한 베르너가 먼저 답했다.

“일단은 이쪽의 힘을 비축하면서 두 선제후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이 옳을 듯싶습니다. 이미 황제 폐하께서는 제국은 물론 대륙에서도 가장 강력한 군주시나 모든 선제후를 아우르기에는 다소 전력이 부족합니다. 허나 선제이신 클라우데 2세만큼의 힘을 가지신다면 선제후들이 어떤 마음을 품건 폐하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타당한 의견이다.”

루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토 브라에를 응시했다.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저는 골트문트 선제후와 미리 손을 잡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쉬우면서도 간편한 방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루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다.

일곱 선제후 중 최강이라는 슈발츠마인을 가진 루페르트와 제국은 물론 대륙에서도 가장 부유하다는 골트문트가 손을 잡는다면 감히 누가 맞서려 들겠는가?

너무나 직관적인 승리의 공식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난점이 있다.

골트문트를 동맹의 열에 세우려면 그와 친해져야 한다.

그것은 루페르트의 아픈 과거와 맞닿아 있다.

루페르트는 표정을 관리하며 오토 브라에에게 물었다.

“그대도 알고 있겠지만 만슈타인 건으로 제국 의회가 들썩일 때 골트문트는 같은 구교를 믿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편을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그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겠는가?”

오토 브라에가 고개를 숙이며 겸허하게 답했다.

“폐하는 아직 독신이십니다.”

“울피아나. 그 여자와 결혼을 하라는 건가.”

“마침 울피아나 님도 외국에서 온 청혼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일설에 따르면 울피아나 님은 폐하의 이야기를 주변에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소문만 가지고 쉬이 판단해서는 아니 되겠지. 게다가 골트문트와 너무 친해지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않아.”

오토 브라에가 의문을 안고 루페르트를 응시했다.

루페르트는 먼 곳을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는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사람이다. 게다가 야심가이기도 하지.”

“그런 뜻이.”

“다른 방법이 떠오른다면 의견을 주시게.”

“알겠습니다. 폐하.”

마지막으로 루페르트는 셋 중 가장 뛰어나다고 믿는 요하네스를 기대를 담아 응시했다.

요하네스가 특유의 서글서글한 눈웃음으로 화답하며 영리한 목소리를 발했다.

“레벤호스트 선제후는 극도로 위험한 사람입니다. 제2의 프리드리히 마티아스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극단적이군. 방법은 있나?”

“황송하오나 그건 아직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멀리서 볼 때 제국에 가장 덜 피해가 가는 방법은 레벤호스트 선제후를 미리 제거하는 게 가장 옳다고 봅니다. 허나 그렇게 한다면 막스 게오르크 선제후가 행동을 취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건 그때 가서 볼 일이겠지요.”

“흐음.”

루페르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친구의 발상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통찰이 있지만, 세상이 따라가기엔 너무나 앞서가 있군.’

레벤호스트를 미리 제거한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다.

확실히 레벤호스트를 미리 죽인다면 반란의 씨앗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프리드리히 마티아스는 반송장이고 게오르크 아르님은 겉으로 큰소리를 치지만 선제후령의 내부 사정은 그리 순탄치 않다.

빙해 약탈자가 기승을 부리고 신의 회초리라 불리는 괴이한 역병이 퍼지고 있으니.

한스 징펠만이 목격한 바 있는 그 역병이 잘 퍼지지 않는 건 그 병에 걸리고 죽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노르드마르크는 어찌 보면 이미 뼈대부터 삭아 버린 무너져 가는 집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노르드마르크는 내전 시기 너무나도 쉽게 몰락했다.

정식 군대도 아닌 약탈자의 모임한테 영지 전체를 내줬으니.

당시엔 루페르트도 여기저기 피난을 가느라 정확한 사정을 알 방법은 없었지만, 게오르크 아르님은 제대로 된 전쟁 한번 해 보지 못한 채 영지 전체를 잃고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그는 겉모습과 달리 무능한 사람이다. 회귀 직후엔 그의 기세에 위압감을 느꼈지만, 황제가 된 지금은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군. 그의 풍채도 걸걸한 목소리도, 목에 두르고 다니는 짐승의 가죽도 말이야.’

막스 게오르크는 섣불리 움직일 사람이 아니다.

그는 상황이 악화되어야 비로소 움직이는 무거운 사람이다.

아무튼 이것이 대략적인 총신들의 계획이다.

루페르트의 생각은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았지만, 베르너의 기본적인 전략엔 찬동했다.

‘결국은 내 힘이 중요하다. 선제의 방식을 답습하고 싶지 않지만,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군대를 거느릴 힘이 있다면 누가 감히 나에게 맞서겠는가? 힘을 통해 유지되는 평화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자리를 파하려 할 때였다.

오토 브라에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푸른 눈을 반짝이며 루페르트를 빤히 쳐다보았다.

“폐하.”

“무슨 생각이라도 떠올랐나? 그리 무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볼 정도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농담이네.”

“하하, 제 말도 약간의 농담이라고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군요.”

“호오. 한번 들어나 볼까?”

루페르트가 차를 음미하며 편안하게 의자에 기대앉으며 총신의 새로운 생각을 기다렸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오토 브라에에게 낭랑하게 말했다.

“선대 황제 중에 순결제라는 분이 계십니다.”

요하네스가 헛기침을 했다.

억지로 기침을 위장하지만 틀림없다.

웃음을 참으려 한 것이다.

베르너는 좀 더 늦게 오토 브라에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루페르트는 아직 오토 브라에의 진의를 알지 못했다.

침묵 속에서 오토 브라에가 말을 이었다.

“과거의 황제셨던 순결제 루트비히 3세는 슈발츠마인의 가계 중에서 방계 출신이라 폐하처럼 가문의 지지도 선제후의 지지도 크게 받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마치 최고의 곡예사처럼 정치의 외줄을 능수능란하게 타셔서 위태로웠던 제국을 정상으로 돌려놓으셨죠. 그분이 가문과 선제후의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방법이…….”

오토 브라에가 말끝을 흐렸다.

그제야 루페르트는 오토 브라에의 진의를 파악했다.

“독신 선언이었지!”

루페르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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