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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59화 (59/225)

59화 16. 모독자들 (2)

지겔슈타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농민 폭도라고 했나?”

“네. 대부분은.”

지겔슈타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루페르트 쪽을 돌아보았다.

“농민 폭도 따위라면 걱정하실 건 하나도 없습니다.”

지겔슈타트의 눈에서 은은하면서도 기이한 빛이 번득였다.

루페르트는 순간 질식해 버릴 것 정도로 강도 높은 마법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마법사의 후각을 발동하지 않아도 냄새가 후각으로 밀려들 정도의 마력이 지겔슈타트 쪽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다.

루페르트는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것이 사각의 마법사인가. 전쟁 마법사 아래라고 하나 그야말로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군. 저 삐쩍 마른 몸 안에 몇 인분의 힘이 축적되어 있을까?’

제국의 마법사는 강하다.

타국에 마법사가 있다고 하나 견줄 수가 없다.

실제로 루페르트는 전쟁 마법사가 성벽 위에서 성을 포위한 대군을 상대로 파멸의 불꽃을 비처럼 쏟아내며 물러서게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단 한 명이 수천 명에 달하는 군대의 진격을 멈춰 세웠다.

지겔슈타트는 그 정도까진 이르진 못하겠지만 그 바로 아래 단계까지는 이른 자다.

“도펠죌트너. 폭도의 숫자가 5천 정도라고 했나?”

“네.”

마를로네는 무표정으로 답하며 과자를 더 집어 입에 가지고 갔다.

“걱정하실 건 하나도 없습니다.”

지겔슈타트가 자신감을 드러냈다.

늘 신비스러웠던 눈동자엔 가벼운 흥분이 약동하는 게 보였다.

“산악의 폭도 따윈 이 사각의 마법사 지겔슈타트가 홀로 쫓아내 보이겠습니다.”

가능한 일이다.

제국 마법사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루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지요.”

지겔슈타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며드는 찰나였다.

“저기. 전하.”

마를로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나칠 정도로 차가운 느낌이 들어 그녀 쪽을 응시했다.

그녀는 이미 특유의 흐릿한 눈동자로 루페르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할아버지가 그러던데 폭도 안에 상당한 강자가 있다던데요?”

“그래?”

“잘은 모르겠지만, 이 마법사분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지겔슈타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마를로네를 노려보았다.

어김없이 그의 눈동자엔 경멸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마법사가 있다고?”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네 느낌 따윈 중요하지 않아. 도펠죌트너.”

“폭도들이 자기들한테 마법사가 있다고 떠들어 대는 것도 들었어요.”

지겔슈타트의 눈동자에 섬뜩한 살기가 떠올랐다.

“……마법사라고?”

그 살기는 장내의 공기를 싸늘하게 얼어붙게 할 정도로 현실적인 힘으로 변환하며 루페르트와 마를로네의 피부에 두드러기를 돋게 만들었다.

“아, 실례했습니다.”

지겔슈타트가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마법사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모르게 그만, 부족한 힘을 드러내고 말았군요.”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제국의 마법사가 가장 증오하는 건 도펠죌트너도 마법 대학 폐지론자도 아니다.

도펠죌트너는 오히려 경멸의 대상에 가깝다.

제국의 마법사들이 가장 증오하는 건 다름 아닌 그들과 같은 마법사다.

정확히는 대학에 속하지 않는 마법사.

제국 마법 대학만이 진정한 지식의 요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들은 마법 대학 이외에 마법사를 배척하고 경멸하며 용서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타국의 마법사가 제국의 마법사에게 살해당했던가.

지겔슈타트가 드러낸 분노는 그만의 분노가 아니다.

거의 천 년간 쌓아 올린 마법 대학 그 자체의 분노이리라.

“전하. 저는 이쯤에서 실례하겠습니다. 상대방이 마법사이니 이쪽도 만반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상세한 계획은 내일 다시 연대장 쪽과 의논하는 게 옳을 듯싶군요.”

자리가 파하고 지겔슈타트가 자리를 떠났다.

떠나가는 그의 얼굴엔 아직 식지 않은 분노의 잔열이 남아 있었지만, 그 발걸음은 자신만만했고 확신에 차 있었다.

마를로네가 흐릿한 눈으로 사라져 가는 사각의 마법사를 보다가 과자를 입에 넣었다.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지자 그녀는 루페르트에게 다가가며 귀를 빌려달라는 시늉을 했다.

루페르트가 귀를 내밀자 그녀가 서기와 자부아 사람을 힐끗 쳐다보며 속삭였다.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폭도를 이끄는 건 저 건방진 사각의 마법사보다 더 강한 마법사라고.”

“뭐라고?”

루페르트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지겔슈타트보다 더 강하다고?!”

“네.”

“불가능한 이야기다.”

제국 전쟁 마법사는 오직 제국만이 보유하고 배출할 수 있는 마법사의 정점.

그 어떤 나라도 제국 전쟁 마법사급을 보유하지 못한다.

최고의 지식, 최고의 스승은 물론이고 최고의 인재가 필요하니까.

제국 마법 대학은 그 모든 걸 갖췄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마법사의 꿈을 안고 제국으로 찾아오는 재능 있는 소년 소녀들이 부지기수다.

‘당장 지겔슈타트만 해도 타국에 가면 능히 대마법사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인재다. 그런데 그보다 더 뛰어난 자가 이런 곳에 나타났다고?’

루페르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제국 마법대학 사람인가? 아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마법대학의 정점 오각의 마법사들은 허투루 움직이지 않는다.

한 명, 한 명이 그야말로 군대와 다를 바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대학 밖에 나가려면 황궁에 통지해야 하고 자신이 지나가고자 하는 땅의 군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 오각의 마법사는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그들이 진리라고 부르는 마법의 지식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도 없었을 터이니.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마법대학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지만 적어도 그 급이 아닐까 하는?”

“네 조부는 어디에 있지?”

“폭도의 뒤를 따르고 있어요. 기회가 오면 그 마법사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겠죠.”

“터무니없군.”

“어쩌겠어요? 그게 할아버지 성격인데.”

갖은 눈치를 주고 구박하던 지겔슈타트가 사라지자, 마를로네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몸을 편안하게 기댔다.

루페르트는 마를로네를 가만히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네가 한 말이 진실이냐?”

“황제가 되실 분한테 왜 곧 들통날 거짓말을 말하겠어요? 거기다가 상대는 폭도만 있는 게 아니에요.”

“폭도만 있는 게 아니라고?”

“저지대 사람으로 보이는 소규모 용병대가 폭도 안에 있었어요.”

“왜 말을 안 했지?”

“10명도 채 되지 않아서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말하길 그들도 평범한 용병은 아니래요.”

“군사 고문인가.”

“군사 고문이 뭔가요?”

“전문가인가?”

“그런 느낌?”

아무튼 마를로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자부아 공국으로 다가오고 있는 폭도는 그냥 폭도가 아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전쟁 마법사급의 마법사를 갖추고 전문적인 군사 집단까지 동반했다.

평범한 농민 반란군과는 성격이 다르다.

“전하.”

마를로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 흐릿한 기운 대신 날카로운 빛과 결의가 그녀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연막을 친 얼굴에서 감정을 읽어 내는 건 불가능했지만, 심상치 않은 말이 나오리라는 건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마를로네는 고개를 끄덕이고 흐릿한 눈으로 루페르트를 바라보았다.

“반란군이 오기 전에 우리끼리 몰래 성을 탈출해요.”

“호위대를 남겨 두고?”

마를로네는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서 황제가 되고 싶으시다면요.”

* * *

다가오는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 호위대 몰래 혼자 탈출해 마를로네 일행과 함께 제국으로 향한다.

극적인 이야기다.

두고두고 사람들 사이에 전해질 정도의 낭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우선 위험을 동반한다.

현재 루페르트를 지키는 건 제국의 최정예 연대와 기병대, 그리고 마법사다.

이들보다 든든한 방패가 어디 있겠는가?

제아무리 강대한 위협이라고 해도 이 방패를 과연 뚫어 낼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호위대를 버려 두고 혼자 달아나는 건 정치적으로도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일반 백성 사이에서야 재밌는 이야깃거리로 오가겠지만, 궁정 사회에선 평판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당장 분더발트 일행의 체면을 바닥으로 처박는 건 물론이거니와 마법대학과 사이가 나빠지는 것도 불 보듯 뻔하다.

‘베르크 란이 본 위협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수많은 불이익을 무릅쓰고 지레 달아날 정도로 큰 것일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

루페르트에겐 소라고둥이 없다.

과거를 돌릴 수 없는 지금 그는 가장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리프니에의 말마따나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니까.

그의 목숨도, 그의 인연도, 그리고 제국의 운명마저도.

“…….”

루페르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파였고 비강에선 짙은 근심이 어우러진 날숨이 새어 나왔다.

마를로네가 갈등에 잠긴 루페르트를 빤히 쳐다보다 과자 하나를 입에 가지고 갔다.

“역시 안 되겠죠?”

루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마를로네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다운 빠른 행동이라고 할까.

“그럼 전 빠져나가게 해 주세요. 또 그 마법사한테 잡혀서 사슬에 묶이는 건 사양이니까요.”

“잠시 여기서 대기해라. 내일 보내 주지. 일단 네가 본 건 분더발트 일행도 들어야 하니.”

루페르트는 시종에게 그녀를 위한 방과 편의를 제공하게 지시했다.

마를로네는 사양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모처럼 침대에서 잘 수 있겠네요.”

마를로네는 루페르트에게 예를 표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게 전부였다.

사소한 눈빛도 사적인 말도 없었다.

보이지 않지만 명백한 벽이 느껴졌다.

두 번의 인연에도 그녀는 마음을 열 생각이 추호도 없는 듯 보였다.

섭섭하긴 하지만 사소한 문제다.

마를로네가 사라진 이후에도 루페르트는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

“…….”

짙은 한숨이 젊은 왕의 입에서 한탄처럼 토해졌다.

‘젠장.’

생각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떠오르는 게 없다.

머리가 움직여 주지 않는다.

처음 겪는 상황, 불길한 예감,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던 것이다.

미간에 주름을 새긴 채 루페르트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전쟁 마법사급에 상궤를 넘어선 우수한 용병 집단. 뜬금없는 폭도. 대체 이건 다 무어란 말인가.’

문득 오싹한 무언가가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기묘한 전율 속에서 터무니없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해 갔다.

어쩌면 이 세상이 그를 원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가 황제가 되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는 거대한 흐름이 앞에 놓인 건 아닐까?

끔찍한 가정을 고개를 가로저어 털어 버리며 루페르트는 의자에 푹 기대며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여신님은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던 건가.”

소라고둥의 빈자리가 어느 때보다 크다.

잔혹한 일이지만 그 빈자리가 클수록 루페르트는 자신의 작음을 오롯이 직시할 수 있었다.

* * *

슈발츠마인주.

선제후의 집무실.

선제후가 황제로 선출되어 룸왕의 의례를 치르기 위해 남쪽으로 떠나면서 집무실은 자연스레 사람이 없는 공실이 되었지만, 하녀와 경비 사이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건 현재 제국 각지에서 영웅적인 활약으로 회자하는 루페르트 가우저의 평판과는 상반된 오싹한 소문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선제후의 저택에서 일하는 경비 하나가 주점에서 술잔을 쿵 하고 내려놓았다.

“그 석상 말이야. 분명 움직였어! 돌로 만든 물건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인다니까?”

주변 사람들이 깔깔 웃어 대며 그를 비웃자,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허공을 공포스럽게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틀림없어. 그 조각상……!! 그날 저녁 분명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다음 날 아침엔 문 쪽. 그러니까 내 쪽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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