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12. 성 판텔레온 (5)
동공이 회백색으로 변해 버린 그 눈은 분명 맹인의 눈이다.
판텔레온은 그 멀어 버린 눈으로 어떻게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일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이자는 괴물이다.
‘이런 것이 존재했다고?’
꼭두각시 황제였다고는 하나 황제는 황제다.
선제후 같은 강력한 군주의 내막까진 알 도리가 없지만, 세간을 어지럽히는 흉흉한 사건들은 빠짐없이 황제의 책상 위로 올라왔다.
물론 모든 문서를 꼼꼼히 읽어 보진 않았다.
그 방대한 문서를 전부 다 읽을 인내도 문서를 수정할 재량도 없었으니.
그러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은 모를 수가 없다.
적어도 루페르트의 치세에서 제국 성인이라 불리는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크를 거느리는, 그것도 스스로를 제국 성인이라 칭하는 자가 나타났다면 모를 수가 없다. 아무리 그 시절의 나라고 해도 크로지우스가 퍼뜨린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알고 있었을 테니까.’
판텔레온이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 눈에 강렬한 호기심의 빛을 번들거리며.
“루페르트 가우저라고 했나? 제법 흥미로운 구석이 있군.”
“…….”
루페르트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다시금 그의 육체가 그의 용기를 시험하려 한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어금니를 꽉 깨물어 필사적으로 멈춰 세운 후 루페르트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먼저 소라고둥에서 손을 뗐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판텔레온이 흉측한 치열을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자마자 루페르트의 눈동자가 다시금 거칠게 흔들렸다.
판텔레온이라는 존재가 루페르트에게 어느 정도의 공포로 다가왔는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루페르트는 저항했다.
‘정신 차리자. 루페르트 가우저. 너는 황제다. 이보다 더한, 더 끔찍한 상황도 겪었어. 이번은 단지 상대가 상상도 못 할 존재였을 뿐이다.’
그 순간, 루페르트는 한 여성의 얼굴이 운명처럼 시야를 뒤덮었다.
울피아나. 전생의 황후의 냉랭한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 것이다.
‘그 여자……!’
젊고 수려한 귀족을 옆에 데려다 놓고 룸어로만 떠들며 보란 듯이 그를 모욕하던 그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됐다.
수치심, 분노, 무력감.
당시 느꼈던 감정은 지금도 생생히 가슴 한구석에 살아 있다.
마치 마음에 박힌 유리 조각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 유리 조각도 쓸모는 있는 모양이다.
과거의 분노가 현재의 공포라는 감정을 이겨 낸 것이다.
‘그래, 그랬었지.’
황제의 얼굴에 참담하기 짝이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흔들리던 마음이 진정됐다.
덕분에 루페르트는 저 맹인을 직시할 수 있다.
여전히 공포스럽고 기괴해 보이는 외관.
그러나 루페르트는 더 이상 압도당하지 않는다.
‘최소한 저 괴물은 내게 호기심이라는 걸 가졌어.’
“제게 흥미를 느끼신다고요?”
‘그 여자는 그렇지 않았지.’
루페르트는 조심스럽게 판텔레온의 옆을 돌며 마를로네를 찾았다.
역시 있다.
그녀는 그늘에 몸을 숨긴 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루페르트는 그녀의 손에 한 정의 피스톨이 들린 걸 놓치지 않았다.
‘귀엽군.’
판텔레온이 등을 돌렸다.
“따라오게. 비두킨트의 후예여.”
“따라오라니요?”
판텔레온은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오늘 이 숲에 들어온 인간은 전부 죽일 생각이었지. 그런데 운명이라는 건 늘 예외성이 있는 것 아닌가? 해서 한 명 정도는 살려 주기로 했다네.”
단차가 심하고 성긴 나무뿌리가 발목을 걸고넘어질 정도로 높게 자란 지형이건만, 판텔레온의 발걸음엔 거침이 없었다.
맹인의 발걸음이 아니다.
두 눈으로 대지로 보고 걷는 자의 발걸음이다.
‘일단은 따라가는 수밖에 없나. 그나저나 여신님은 대체…….’
저런 괴물이 나타났건만 리프니에는 아무 말도 없다.
순간 야속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곧 고개를 흔들어 그 마음을 지워 버렸다.
‘아니, 아니야. 이건 내가 자초한 일이다. 자초한 위기 속에서 여신님을 찾는 건 얼마나 꼴사나운 일인가.’
지금 루페르트가 믿는 건 따로 있다.
피스톨을 만지작거린 채 나무 위에 서 있는 금발의 소녀다.
루페르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판텔레온이 오크들을 완벽하게 복종시킨 건 확실했다.
그가 다가오자, 오크들은 둘로 갈라지며 그들의 주인이 갈 길을 열어 주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는 장면이다.
문득 드는 생각 하나.
‘설마, 슈발츠마인 가문에서 선제후를 배출하지 못한 건.’
루페르트는 듬성듬성 머리가 빠진 판텔레온의 볼품없는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설마, 이 괴물 때문인가?’
판텔레온 본인 입으로 말했다.
오늘 숲에 들어오는 자는 모두 죽이겠다고.
그런데 오늘 이 숲에 들어오는 자는 모두 선제후가 되고자 하는 자들이다.
루페르트는 자신의 경쟁자들을 생각했다.
무려 슈발츠마인 가문에서도 쟁쟁한 후보로 불리는 강력한 군주건만 루페르트의 치세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슈발츠마인 가문의 위세를 생각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것인가. 내가 위버하임에서 술이나 퍼먹고 카드놀이나 하는 동안 이 숲에선 이 괴물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군.’
그 괴물은 보통 괴물이 아니다.
일찍이 제국을 반으로 갈라놓았단 파멸의 예언자, 얀란트의 크로지우스가 예고한 종말을 몰고 온 여덟 개의 재앙이다.
성 판텔레온.
‘크로지우스의 예언은 진짜였던 건가.’
“바로 여기다.”
숲과 하나가 된 듯한 스러진 폐허가 루페르트 안에 나타났다.
무수히 많은 오크가 그 폐허를 점거하고 있었는데, 주변의 공기가 상상 이상으로 좋지 않다.
인분 냄새, 고기가 썩는 냄새, 구역질 나는 모든 악취를 응축한 듯한 공기다.
‘이건 죄수들이 타는 연안 갤리선에서 맡을 법한 냄샌데.’
폐허 속에서 돼지와 비슷한 웅얼거림이 들려온다.
‘돼지를 키우는 건가. 하긴 이 많은 오크를 먹여 살리려면 가축이라도 키워야겠지.’
호라교의 신앙에 따르면 인간은 본시 곡식을 먹고 소화시킬 수 없었으나 호라신의 은총으로 곡식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몸이 됐다고 한다.
당연히 호라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저 오크라는 마물은 곡식을 먹지 못한다.
그것들은 이끼나 고기를 먹어야 한다.
인간과 달리 썩은 고기도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저 정도 숫자를 유지하려면 확실한 고기 공급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폐허 곳곳엔 도살대가 있었다.
엉겨 붙은 피와 버려진 부속 부위, 해체 중인 고기들이 보였다.
루페르트는 해체 중인 피와 장기, 살점과 뼈를 드러낸 사체를 보았다.
‘돼지인가? 돼지처럼 보이는데. 아무튼 이 썩은 공기는 이 가축들 때문에 나는 것이었군.’
루페르트는 알 수 없는 혐오감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마를로네의 위치를 가늠했다.
그녀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오크의 숫자도 많거니와 가까이에 몸을 숨길만 한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판텔레온이 오크 하나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소리쳤다.
‘이렇게 오크를 부리는 건가.’
그보다 저 광인 뭘 꾸미는 것일까.
그보다 약점을 찾아야 한다.
그게 지금 루페르트가 해야 할 일이다.
‘양팔만 단단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부위는?’
“루페르트 가우저.”
판텔레온이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일행이 있지?”
“무슨 말씀입니까?”
“날다람쥐처럼 나무 위를 잘도 타고 다니는 계집 하나가 있던데.”
“!!”
“내가 말하지 않았나? 우리 같은 사람들은 눈이 멀었기에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고.”
루페르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설마, 다 알고 있었던 건가.’
“뭐, 그렇게 화약 냄새를 풀풀 풍기면 눈이 보이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으니. 뭐, 이렇게 된 이상 재밌는 유희를 해 보자고.”
판텔레온이 양팔을 벌렸다.
“네 계집에게 그 연기 나는 무기를 쏘라고 말해 봐.”
“무, 무슨 말씀이신지?”
“네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아나?”
다 알고 있었다.
제국 성인은.
그럼에도 그는 속은 척을 했다.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뭘 해도 당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것이 이 상황을 만들었다.
“자, 어서! 어디든 좋아. 머리를 노리건 심장을 노리건.”
판텔레온이 허연 눈을 희번덕거렸다.
“어서! 내 즐거움이 사라지기 전에.”
‘하지 않겠다면 날 죽이겠다는 소린가.’
루페르트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좋아. 오히려 바라는 바다.’
루페르트는 숲속 어딘가에 있을 마를로네를 향해 손짓했다.
탕!
‘이렇게 빨리?!’
거침없는 탄환이 판텔레온의 몸에 박혔다.
심장을 정확히 겨냥했다.
‘놀라운 사격술이군. 피스톨로 이 거리를 맞추다니.’
하지만 상대는 판텔레온이다.
판텔레온은 득의만면한 얼굴로 앙상한 손을 뻗어 자신의 피부 위에 박힌 둥근 탄환을 꺼내 보였다.
“이 정도인가?”
판텔레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툭툭 털어 내고는 루페르트를 향해 돌아섰다.
“이제는 자네 차례군.”
“제 차례라니요?”
“나처럼 총에 맞으라는 소리가 아니야. 수수께끼를 하나 낼 거야.”
“수수께끼?”
“그대가 맞춘다면 그대를 해치지 않겠다 약속하지. 하지만 틀린다면?”
판텔레온은 도살대 위에 해체 중인 돼지를 닮은 무언가를 응시하며 소름 끼치게 웃었다.
“오크가 인간 고기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겠지?”
“…….”
선택의 여지는 없다.
따르는 수밖에.
하지만.
‘이 괴물의 피부는 팔뚝만 두꺼운 게 아니야. 전신 전체가 갑옷보다 더 질긴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확실해.’
약점을 찾아야 한다.
그걸 위해 여기까지 왔다.
‘검도, 총도 통하지 않는다면. 대체.’
그때 오크가 뭔가를 끌고 왔다.
루페르트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이건 뭐냐?’
그건 일견 돼지처럼 보였다.
분홍빛 피부와 비대한 살집, 킁킁거리는 들창코와 분변과 진흙이 묻은 하복부는 영락없는 돼지의 그것이었으니.
그런데 어딘가 다르다.
이질적인,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를 루페르트는 저 알 수 없는 짐승에게서 느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꼬리.
꼬리가 없다.
그리고 팔다리가 알려진 돼지보다 길다.
그것도 기분 나쁠 정도로.
“이 짐승이 무엇인지 알아맞힌다면 그대를 살려 주겠다.”
판텔레온이 허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이 괴물. 뭘 노리는 거지?’
모르는 동물이다.
단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생물이다.
오크가 기르는 알려지지 않은 가축인 것일까.
“자, 어서. 난 성질이 급하다고.”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은 없다.
이미 통찰의 만화경을 쓴다는 걸 들켰다.
한 번 더 쓴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좋아. 한번 해 보자. 일단 여기까지 온 거 최소한 나름의 끝은 보고 가야겠어.’
루페르트의 눈동자에 불경한 초록빛이 서렸다.
판텔레온이 히죽 웃었다.
‘그런데, 이 눈. 짐승도 볼 수 있는 거였나.’
아무래도 좋다.
괴물도 볼 수 있는데 하물며 짐승이랴.
루페르트는 통찰의 만화경으로 알 수 없는 짐승을 응시했다.
곧 빛나는 문자가 루페르트의 눈을 덮었다.
< >
공백.
그리고.
[ 사람이었던 것. ]
그 순간 루페르트는 보았다.
그 짐승의 눈을.
살과 누런색의 털에 파묻혀 있지만, 그 동공의 형태는 루페르트와 같은 것이다.
거기다가 그 발.
그 발에 달린 건 발굽이 아닌, 자라다 만 퇴화된 다섯 개의 손가락이었다.
‘……이, 인간이었나. 어, 어떻게 그런. 대체 어떻게 해야 인간이 이런 모습으로……!!’
머릿속의 줄 하나가 끊어졌다.
동시에 루페르트의 몸이 거칠게 휘청거렸다.
‘어떻게 이런…….’
“자, 루페르트 가우저. 대답은?”
대답을 종용하는 판텔레온을 향해 루페르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대답했다.
“사람…… 인 거 같네요.”
“정답이다.”
판텔레온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정확한 건 아니야. 정답은 사람이었던 것이지.”
“네……?”
“원래는 사람이었지만, 대를 이어 개량했어.”
“…….”
“개나 돼지처럼. 용도에 맞게 사육하며 개량을 했지. 물론 우리만의 비법이 있긴 했지만.”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그 결과가 이거야. 보통 인간보다 훨씬 빨리 자라고 살이 빠르게 차오르지. 뭐든지 잘 소화시키고 많은 새끼를 낳지. 물론 지성의 편린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지만, 가축에게 그게 필요한가?”
판텔레온이 자신의 군단을 보며 앙천대소했다.
“오크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사람 고기인데. 그래, 이 비대하게 살 오른 가축 덕에 나는 내 군단을 만들 수 있었지. 날 굶겨 죽인 비두킨트의 영지에서 말이야!”
“…….”
처음부터 광인이라고 생각했다.
그 광인은 상상보다 더 미쳐 있었고 뒤틀려 있었다.
“자, 그럼 다시 묻겠다. 루페르트 가우저. 어떻게 알았지?”
광인이 루페르트의 두 팔을 덥석 붙잡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거리를 좁혔다.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역시,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군. 너에겐 뭔가 있어!”
판텔레온이 루페르트를 붙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시큼한 악취와 더불어 판텔레온의 정수리가 루페르트의 시야 대부분을 채웠다.
경악 속에서 루페르트는 더 믿을 수 없는 걸 목격했다.
판텔레온의 정수리 안에 뭔가 있다.
정수리에 동전 크기의 허여멀건 구멍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인간도 이런 조직은 가지지 못한다.
[ 저것이 그 괴물의 눈이에요. ]
여신이 말했다.
[ 열등한 미물에서나 볼 수 있는 두정안(頭頂眼)이죠. ]
“자, 그럼 어디 한번 제대로 살펴볼까?!”
두정안이 똑바로 루페르트를 채웠다.
동공은커녕 안구라고도 부를 수 없는 창백한 피질 위에 루페르트의 상이 흐릿하게 맺혔다.
‘이, 이건.’
기분 나쁘다.
내면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느낌.
그러나 그 끔찍함 속에서 루페르트는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이게 놈의 약점일 수도!’
루페르트는 두 손을 움직여봤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잠시만 가만히 있게. 당혹스러운 건 알지만 길진 않을 테니.”
판텔레온이 두정안으로 들여다보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난 그대를 살려 주기로 했어. 물론 오늘 본 건 다 불문에 부쳐야겠지만.”
“…….”
“나름의 계약이지. 억울하게 생각하지는 마. 우리 같은 존재, 제국 성인을 봤다는 것만으로 영광이니. 그대는 그대의 영지에 가서 선제후 놀음이나 하게. 뭐, 어차피 이 제국은 곧 우리 손에 멸망의 길을 피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그 순간 루페르트의 얼굴이 무서우리만치 차갑게 굳었다.
“…….”
누구에게나 역린은 있다.
루페르트도 그렇다.
비록 꼭두각시 황제였지만,
그도 황제다.
천년을 향해 나아가는 위대한 제국의 황제다.
망국의 황제였던 그의 역린은.
“방금 뭐라고 그랬나?”
제국의 멸망이다.
“!!”
마치 꾸짖는 듯한 준엄한 물음에 판텔레온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지? 이 애송이 놈이 이런 목소리를 낸다고?’
“방금 뭐라고 했냐고 물었다. 판텔레온.”
‘정신이 나간 건가. 고작 그 정도의 진실을 보고?’
판텔레온이 자신이 사육한 가축을 보며 비열하게 미소 지었다.
“판텔레온.”
아니다.
이 청년은 제정신이다.
‘이놈이!’
“감히 내 앞에서 제국을 멸망시키겠다고 말한 건가?”
“네놈이 무엇인데? 나는 제국 성인이다! 내 앞에서 감히…….”
“나는 제국의 황제가 될 사람이다.”
“황제……?”
판텔레온이 코웃음을 쳤다.
다음 순간.
“마리!!!!”
포효와 같은 고함이 루페르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동시에 내면에서 북부인의 함성이 눈사태처럼 울려 퍼졌다.
루페르트가 판텔레온의 두 팔을 움켜잡았다.
서릿발과 같은 두 눈이 맹인의 얼굴을 꿰뚫을 듯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너를 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