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혈왕-315화 (310/450)

61화. 요선 (2)

“우와아아아아아!”

갑자기 배후에서 들이닥친 적들의 함성.

요선의 ‘배려’로 섭혼술의 영향을 받지 않은 태화문의 간부들은 당황했다.

“어, 어째서 저들이...!?”

“이놈들, 기어이 반역을 할 셈이냐-!”

몇몇 간부들이 역정을 냈지만, 선두에서 달려오는 이들은 코웃음으로 받아쳤다.

“웃기는군! 혈교에 태화문을 팔아넘긴 배신자들이!”

“너희는 매국노나 다름없어!”

풀려난 이들은 숫자도 적은 데다 오랜 시간 핍박당해 싸울 상태도 아니었지만, 결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났다.

선두를 달려오는 앳된 소년이 진녹색의 독장을 뿌리면서 간부들을 짓이겨버린 것.

피떡이 되어 날아간 간부들을 힐끔한 완안극이 힘껏 외쳤다.

“진통약까지 줬으니 잘 싸워라! 나의 주인님, 강 무사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하도록!”

오랜 고문과 감금으로 피폐해진 이들이 함성까지 지르면서 싸울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을 지하감옥에서 꺼내준 완안극이 통각을 마비시키는 단환을 주었던 것이다.

통각은 마비시키면서 정신을 고양시키는 효과도 있어, 단순히 혈도를 짚어 통각을 차단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약.

자유를 되찾은 이들이 호응했다.

“우오오오오오!”

“이공녀님께 영광을! 배신자들에게 죽음을!”

완안극은 강엽에게 감사하라고 했으나, 정작 그들이 연호하는 사람은 조영옥이었다.

흥분할 대로 흥분한 이들은 반쯤 정신이 나가서, 완안극이 하는 말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이다.

“이 배은망덕한 것들이 진짜...!”

“아하하하....”

완안극이 이를 갈자 옆에서 함께 달린 금사하가 어색하게 웃었다.

“...저도 정신 나갈 것 같네요.”

이렇게 큰 싸움은 처음이었다.

맹월림주의 꼭두각시로서 점창파에서 싸우긴 했지만, 그때의 기억은 이지를 되찾으면서 날아갔다.

“쯧쯧, 정신 잃으면 쓰나. 전장에 데려가달라고 부탁한 건 너 자신이 아니냐?”

“걱정 마세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싸울 테니까.”

비록 기억은 날아갔다지만 혈교는 그녀에게도 불구대천의 원수.

금사하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사부와 사형제를 죽인 놈들인데요!”

슈와아아아악!

신속하게 뽑혀나온 검이 시린 궤적을 그리고, 앞길을 막은 태화문도의 몸을 일격에 절단냈다.

불괴강시가 된 지금, 그녀는 가녀린 몸과 어울리지 않는 초월적인 괴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완안극은 도리어 눈살을 찌푸렸다.

“힘조절이 미숙하다! 완급 조절 역시 고수의 덕목이거늘!”

상대는 재생력을 가진 괴물이 아니었다.

굳이 반으로 갈라버리는 것은 잔인하기만 할 뿐 아무 효용도 없는 짓.

금사하도 하얗게 질려서 기겁했다.

“으헥!? 아, 아니, 이렇게 반으로 갈라질 줄은....!”

그냥 벨 생각인데 설마 반으로 갈려죽을 줄이야?

“아이고....”

이 어린 것을 어엿한 무인으로 성장시키려면 고생 꽤나 하겠구나.

불길한 예감을 느낀 완안극은 달리는 와중에도 편두통이 이는 이마를 짓눌렀다.

* * *

세력과 세력의 충돌.

본래라면 지극히 난상으로 얽혀야 마땅할 터.

하지만 강엽이 강제로 열어젖히는 길은 그 어떠한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행 중 세 사람이 천하팔존을 막기 위해 빠진 뒤로, 등 뒤에 태화문의 조씨 남매를 둔 뒤로.

쿠르릉...! 쾅! 꽈아아아앙!

양손 가득 움켜쥔 뇌기를 절세보검처럼 휘둘렀다.

꺾이고 구부러지며 전방으로 뻗치는 뇌광의 빛줄기.

그렇게 강엽이 맨손으로 싸우고 있는 동안, 주인의 손을 떠나 하늘을 겨누는 자성검은 벼락을 부르며 강엽에게 무한한 공력을 전해주었다.

혈라지망도, 일월신마공도, 가장 강력한 손패인 심상절예도 봉인하고 철저히 천뢰만 고집하는 이유.

‘다루기 까다로운 무공이지만... 다루기만 하면 장기전에서는 이 이상 가는 무공이 없지.’

어찌 보면 흡성대법을 익힌 대공자와 비슷했다.

하늘의 벼락이 자성검을 통해 정수리의 상단전에 떨어지는 동안엔 내공이 흘러넘친다.

그렇다고 위력이 부족하거나, 속도가 느려서 적들에게 대응할 틈을 주는 것도 아닌 바.

꽈지직...!

뇌기에 꿰뚫린 적은 머리칼이 쭈뼛 서고, 이내 새카맣게 탄화되어 힘없이 널브러진다.

필중의 정확도와 빛살 같은 속도, 경맥과 신경을 태워버리는 살상력.

전설 속 뇌공(雷公)으로 현신한 강엽을 막을 자들은, 적어도 태화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강엽이 열어젖힌 길을 따라가는 조씨 남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인간의 무공이 아니군요.”

“그는 이미 천하팔존이야.”

조영옥은 확신했다.

만약 무림의 호사가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틀림없이 강엽을 천하팔존의 반열에 올렸을 거라고.

그 누가 있어 하늘의 벼락을 받아들여 자유롭게 휘두르겠는가?

무림 강호에 기인이사가 많다 하나 누구도 강엽처럼 싸우지 못하리라.

“하지만 누님, 이렇게 문도들이 죽는다면 본문을 되찾더라도....”

조영옥은 동생의 우려를 이해했다.

강엽의 손에 죽어간 문도들만 해도 기백 명을 훌쩍 넘었으니까.

설사 문주가 된다 한들 문도들이 전부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일까.

두 사람의 우려가 깊어지는 그때였다.

“귀여어어어어엉!”

은색 장삼을 나부끼는 대공자가 하늘에서 검을 내려치고, 양 측면에서 두 교왕이 각각 강기를 두른 검과 대겸을 휘둘러왔다.

“큭, 오라버니...!”

조영옥이 나서려고 했으나, 그보다 빨리 강엽이 수인을 맺었다.

검지를 바깥으로 빼내서 합장하는 법라인(法螺印)을 시작으로, 선정인(禪定印)을 결하며 진언을 영창.

절세고수의 보신경보다 빠르게 술법을 완성시켰다.

-사상봉절(四相封切) 뇌벽(雷壁).

술법과 호신강기 뇌벽의 합작.

뇌기의 벽이 천지사방 육합을 감싼 채 초고수들의 절초를 막고, 뇌기를 암경처럼 침투시킨다.

전력으로 발한 호신강기로 간신히 뇌기를 흘려낸 혈룡검군이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술법으로도 이만한 경지라니....”

“너희들만 싸울 건가? 요선은?”

강엽이 세 사람을 오시하면서 광오한 말을 지껄이자 혈안사군이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

“시건방진 새끼, 처음에 재미 좀 봤다고 다 이겼다고 생각한 거냐?”

화아악!

그녀가 왼쪽 눈을 감싼 가죽안대를 거칠게 뜯자 황금처럼 찬란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일전에 요선이 언급했던 금호요안.

금안을 감싼 동자료혈이 불룩 불거지는 것과 동시에 사이한 기운이 뿜어지자 강엽이 눈매를 좁혔다.

‘남아있던 내상도 완전히 치유됐고, 단전의 내공은 세 배 이상 증폭됐다.’

잠력을 격발했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공능이다. 일 갑자 내공이 삼 갑자 내공이 된 셈 아닌가?

강엽도 내공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혈안사군의 내공은 그의 두 배를 웃돌고 있었다.

상황의 변화를 직감한 강엽이 헛웃음을 흘렸다.

“인정하지. 혈음마군도 그렇고 혈산패군도 그렇고, 교왕들은 비장의 무기가 있는 모양이야.”

“혈음마군은 우리 중에서 가장 최약체였습니다.”

차가운 인상 가득 살기를 피워올린 혈룡검군이 다섯 자루의 검을 동시에 꺼냈다.

두 자루는 자신이 쥐고, 세 자루는 이기어검으로 다루면서 강엽의 빈틈을 엿본다.

“양의심공을 익혀서 동시에 여러 무공을 쓰는 건 인정할 만했지만 그뿐. 그는 다른 교왕들처럼 특별한 은혜를 하사받지 못했습니다.”

“은혜?”

“본교의 시조에게 받은 은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혈산패군은 짐승처럼 변하고, 혈안사군이 정체 모를 눈을 받지 않았던가.

교왕들이 각기 특별한 능력을 물려받았다는 뜻이겠지.

“넌 무슨 능력을 받았지?”

“글쎄요. 그것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는 것 같군요.”

강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제 죽고 죽이는 혈전을 벌일 텐데 말을 오래 섞을 필요는 없었다.

혈룡검군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는 이미 짐작되기도 했고.

‘아무리 삼화취정이라도 세 자루의 이기어검을 다루는 건 말이 안 돼.’

일전에 낭왕이 여러 병장기를 다루는 걸 보긴 했지만, 혈룡검군의 기도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혈룡검군이 세 자루의 이기어검을 다루는 것은 그가 갑옷처럼 두른 기운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힘. 허공섭물이나 격공과 비슷하지만 내공으로 일으키는 힘은 아니야.’

굳이 말하면 주력과 비슷한 기운.

“염동(念動)인가?”

“...!”

기습적으로 내뱉은 말에 혈룡검군이 헛바람을 삼키는 찰나 앞쪽에서 검격이 쇄도했다.

흰자위가 시뻘겋게 물든 대공자가 으르렁거렸다.

“네놈이 본문을 망치는 걸 두고 보진 않겠다.”

“글쎄....”

강맹한 검격을 손에 깃든 수강으로 쳐낸 강엽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 말은 요선한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네 부하들을 시간벌이용 칼받이로 던져준 건 그 여자인데.”

“....”

대공자가 멈칫했다. 어쩌면 그 역시 알고 있겠지만, 그걸 순순히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혈교와 손을 잡은 것을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셈이니까.

“그리고 네 상대는 따로 있다.”

투아아앙!

강엽의 뒤에서 솟구친 인영.

혈룡검군의 개입으로 인해 끝을 보지 못했던 조영옥이 대공자를 향해 대도를 내려쳤다.

대공자 역시 무슨 수를 쓴 건지 잠깐 사이에 상처가 아물었기에 어렵지 않게 그녀의 공세를 막아섰다.

“너....”

“아까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오라버니가 정녕 문주를 자처한다면, 정정당당하게 싸우세요.”

“하, 바라던 일이다!”

동시에 대공자와 두 교왕의 뒤편에서 앳된 소년이 달려오면서 독기 어린 쌍장을 날렸다.

“주인님! 제가 왔습니다!”

“저놈은 또 뭐야?”

혈안사군이 짜증을 내면서 독장을 쳐내자 혈룡검군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역시 이기어검으로 독장을 베고, 남은 두 자루의 검을 완안극을 향해 쏘아냈다.

“저자는 제가 맡겠습니다, 누님.”

“오냐. 빨리 처치해라.”

혈룡검군이 완안극을 상대하고, 대공자가 조영옥을 맡은 구도.

홀로 남은 혈안사군이 이빨을 드러냈다.

“오만한 새끼. 명성 좀 얻었다고 네깟 놈이 정말 뭐라도 된 줄 알지?”

“조영빈, 최대한 멀리 떨어져라.”

혈안사군을 눈빛으로 견제하면서 경고하자 조영빈이 긴장한 낯빛으로 걸음을 물렸다.

“조, 조심하십시오!”

고수들의 격전은 필연적으로 넓은 공간을 가져가는 법. 조영빈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강엽은 주변을 둘러보며 다시 물었다.

“요선은 지금 당장 나설 생각이 없나 보군. 아니면 나설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건가?”

“마음대로 생각해라.”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그녀가 대겸을 휘둘렀다.

“아까처럼 맥없이 당하진 않아-!”

파지지지지직...!

뇌기가 호신강기를 타고 흘렀지만, 이번엔 단숨에 뚫지 못했다.

뇌기를 흘려버린 혈안사군이 대겸을 휘두른 순간, 거대한 짐승이 발톱을 휘두른 것처럼 대기가 찢겨나가고 지반이 길게 뭉개졌다.

콰아아아아앙...!

단 일격에 십여 장을 뒤집은 경파.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듯이 혈안사군은 온갖 절초를 휘두르며 압박을 가했다.

연계된 초식이 회피 방위를 차단하고, 그 안의 공간을 헤집고 다니며 파상공세를 퍼붓는다.

어찌나 빠른지 강엽도 암신을 병행해도 만만치 않다고 느낄 정도.

혈안사군이 광기 어린 조소를 터뜨렸다.

“왜 그러냐, 귀영! 아까 그 건방진 기세는 어디 갔지!? 설마 본교의 대적이 겁먹은 거냐!”

진신전력을 다하는 혈안사군은 아까 전의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고강했다.

이기어검이나 심극처럼 고절한 기예를 쓰지 않고도 태화문의 경내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쾅! 투아앙!

일격에 거대한 전각이 주저앉고, 시체들이 잿더미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참상.

살아있는 천재지변으로 화한 그녀가 대겸을 앞으로 내밀자 거대한 이무기가 아가리를 벌렸다.

쿠와아아아아아앙!

핏빛의 이무기가 강엽이 서 있던 지면을 삼키며 토룡(土龍 : 지렁이)처럼 지면을 파고든다.

그 상태로 수십 장을 나아가며 전각군을 짓이겨버리고, 하늘 높이 용트림을 하는 순간.

-구어어어엉...!

콰아아아아앙!

이무기의 거체가 산산조각 찢겨나가고, 그 사이로 창백한 뇌기가 춤추듯 넘실거렸다.

“유형화된 강기라... 확실히 이만한 규모로 강기를 다루는 걸 보면 혈음이나 혈산보단 강하겠어.”

하나 이만한 힘이 대가 없이 주어지진 않을 터.

동자료혈이 불거진 금안 아래로 점점이 떨어진 피눈물이, 땅바닥에 빨간 혈화를 수놓고 있었다.

“얼마나 싸울 수 있지?”

“...닥쳐.”

“일 각? 아니, 반 각도 안 가겠군. 엄청난 내공을 선사하지만 몸의 반동도 심한 거야.”

“닥치라고, 이 엿 같은 새끼야!”

투아앙!

투명한 충격파가 물결칠 정도로 빠르게 도약한 혈안사군의 신형.

삽시간에 강엽의 배후를 점한 그녀가 사선으로 대겸을 내리긋는 찰나.

“...엇?”

핏빛 방울들이 상리를 무시하고 공중에 떠올랐다.

-혈뢰옥(血雷玉).

혈공진기와 뇌기, 수류의 능력을 결합해서 창안한 무공.

전장에서 죽은 시체들에서 흘러나온 피가 대겸과 충돌하자 연쇄적으로 폭발한다.

콰콰콰콰콰쾅!

“커어!”

“위치가 안 좋았다.”

절세고수의 기감이 사방을 아울러도 등 뒤는 육안이 닿지 않는 사각.

적이 취약점을 노리면 자가당착에 빠지도록 함정을 짜둔 것이다.

“크, 이 자식...!”

호신강기 덕분에 치명타는 면했으나, 격산타우의 묘리로 들어온 내가중수법이 장기를 흔들었다.

직후 강엽의 손을 타고 흐른 뇌기가 헐거워진 호신강기를 뚫고 육신에 처박혔다.

“......!”

금호요안의 공능 덕분에 단숨에 목숨을 잃진 않았으나 상당한 충격을 받은 혈안사군의 입이 떡 벌어졌다.

머리가 구불구불 타고 전신에서 새하얀 연기를 피워올린 참혹한 몰골.

실핏줄이 터져서 별호대로 혈안이 된 그녀가 강엽을 노려보며 이를 딱딱 부딪쳤다.

“나, 난... 지지 않...!”

“아직도 말할 기력이 남았나?”

강엽은 그 끈질긴 생명력에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의 복부에 어검을 꽂아버렸다.

동시에 바닥에서 올라온 혈목 다발이 관영신창의 묘리를 발하면서 그녀의 전신을 꿰뚫어버렸다.

“끄아악...!”

걸레짝이 됐는데도 대겸을 놓기는커녕 고개를 들어 강엽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고개를 살살 가로저은 강엽이 한숨을 내뱉었다.

‘심극을 발할 틈을 주면 안 되겠군.’

혈산패군처럼 골치 아픈 심극을 꺼내면 강엽도 그 이상의 절기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요선이라는 대적이 남은 상황에서 내공을 소모하는 것은 몹시 부담스러운 일.

서걱!

복부를 뚫은 검을 뽑아 목을 날려버리자 금안의 빛도 꺼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정말 고마워, 진조의 후예.”

숨이 끊긴 혈안사군의 머리가 제 스스로 돌며 빙그레 웃는 모습.

강엽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요선?”

목소리는 혈안사군의 것이지만, 기척은 요선의 것이었다.

그 추측이 맞다는 듯 시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덕분에 잃어버린 내 눈을 되찾았어. 사실 함부로 빼내면 이 아이가 난리를 칠 것 같아서 그만뒀거든.”

강엽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한번 뇌기를 일으켜서 금안을 공격했지만 이미 늦었다.

마치 눈 자체가 살아있는 듯 호신강기를 두르면서 뇌기를 비껴낸 것.

“아아, 소용없어. 본녀가 설마 아무런 방비도 안 했겠니? 누구나 다 계획이 있는 법이야.”

직후 금안이 신기루처럼 녹아내리고, 태화문의 경내 가득 절대자의 의념이 흘러넘쳤다.

-심법진(心法陣) 만다라화엄경(曼陀羅華嚴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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