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호위 (10)
새벽 무렵 중경에 돌아온 강엽은 청송객잔에 들러 흑접의 살수들을 잡았음을 알린 뒤 다음날 늦은 밤이 되었을 때야 사원루에 갔다.
흑접이 꼭 밤에만 찾아오란 법은 없는 만큼 보표들과 낭인들은 밤낮없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물론 사람이 하루 종일 일만 할 수는 없기에 교대로 번을 섰는데, 강엽은 당연히 밤을 골랐다.
참고로 청수는 진시부터 미시까지, 하후진은 신시부터 해시까지 일하고 있었다.
강엽은 자시부터 묘시까지 일했는데, 인수인계를 위해 시간을 맞춰 갔을 땐 하후진이 팔짱을 낀 채 뚱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서 재미 좋았냐?”
“뭔 뚱딴지 같은 소리냐?”
“젠장, 혼자 흑접의 살수들을 족쳤을 거 아냐. 그놈들 주리를 트는 게 내가 되었어야 했는데...!”
“....”
강엽은 부들부들 떠는 하후진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다 화제를 돌려버렸다.
“홍가려는?”
“방에 있어.”
홍가려가 어디 있든 흑접이 쫓아올 거라면, 그녀를 옮기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물론 구태여 사원루에서 싸워야 하냐고 불평하는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이 홍가려의 생사에 쏠린 지금 그녀를 다른 데로 보낸다고 장사가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손님들이 홍가려의 생사만 신경이 팔려 술이나 가무는 뒷전일 텐데 무슨 놈의 장사가 되겠는가?
사원루주는 장경의 조언대로 세간의 이목을 사원루에 집중시키고자 했다.
홍가려가 살면 사는 대로, 죽으면 죽는 대로 화제가 되었다.
절세미녀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룰 테니까.
물론 강엽은 막대한 의뢰비가 걸린 만큼 홍가려가 죽도록 놔둘 생각이 없었다.
‘홍가려를 미끼로 흑접의 살수들을 낚는다.’
흑접이 흑무암쇄진을 갖고 있을지는 모른다.
하나 흑룡교의 술법을 받아들인 놈들이라면 무언가 단서를 쥐고 있을 수도 있겠지.
‘흑룡교의 술법을 받아들여 조직을 키운 놈들이라면 다른 비술에도 관심을 가졌을 테니.’
설령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흑룡교의 비술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나쁜 장사는 아니리라.
“그럼 수고하쇼. 난 쉴 테니까.”
하후진이 하품을 하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참, 그 여자 보면 무지 놀랄걸.”
“홍가려?”
“그래.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더니. 완전히 딴 사람이야, 딴 사람. 난 보자마자 심장 떨려 뒈지는 줄 알았다니까?”
짐짓 너스레를 떤 하후진이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의뢰를 하는 동안엔 사원루에서 머물기로 했기 때문에 사원루가 제공한 숙소에서 쉴 것이다.
하후진을 일별한 강엽이 홍가려가 머무르는 방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가를 좁혔다.
‘대체 얼마나 달라졌길래?’
하후진이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 * *
“오셨어요?”
강엽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같은 사람이 맞나?’
이틀 전에 만난 홍가려는 상당한 미인이었지만, 중경제일미라 추켜세울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한 홍가려가 수수하게 보이도록 변장했던 것이다.
사원루에 돌아온 홍가려의 얼굴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후진이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단번에 납득될 정도.
“과연.”
강엽이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사람이 달라졌는걸. 목소리가 같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물론 이목구비는 같지만 사람의 인상은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달라지는 법이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홍가려의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옅게나마 화장을 하고 입술에 연지를 바르자 뭇 사내들의 넋을 빼놓을 만한 절세미녀가 되었다.
홍가려가 도톰한 입술 끝을 당기며 웃었다.
“만족스러운데요.”
“뭐가?”
“음, 당신은 왠지...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숨길 것 같은 인상이었거든요.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짓는 걸 보니 꾸민 보람이 있네요.”
“....”
아무래도 흡혈귀가 된 영향으로 감정이 요동치는 일이 예전에 비하면 드물긴 했다.
그래도 일부러 감정을 숨기지는 않았는데 홍가려가 그런 인상을 받았단 말인가?
강엽의 표정이 묘해지자 홍가려가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눈치를 살폈다.
“...호, 혹시 불쾌했다면 사과드릴게요.”
사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냉혈한 같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홍가려가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지만, 원래 말이란 것은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괜찮다. 기분 나쁘진 않아.”
“그래도요.”
“정 그러면 나중에 한 곡조 들려주든지. 당신의 금음(琴音)이 중경 제일이라면서?”
홍가려의 금음 한 소절을 듣기 위해 은전을 갖다 바치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이런 데 별로 관심이 없는 강엽이지만, 중경 제일의 예인이 연주하는 금음은 어떨지 궁금하긴 했다.
“아, 혹시 듣고 싶은 곡이 있어요?”
“글쎄, 난 이쪽 분야는 잘 몰라서.”
“그럼 제가 알아서 연주하면 되죠?”
“그러든지. 근데 이건 좀 다른 질문이긴 한데... 혹시 대역을 쓸 생각은 없나?”
흑접이 술법으로 홍가려를 쫓아와도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헷갈리지 않겠나.
홍가려가 미려한 아미를 한데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로 분장한 사람들이 위험하잖아요.”
실은 사원루주가 비슷한 제안을 했지만,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고 싶지 않았던 홍가려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하긴 대역을 구하는 것도 일이긴 하지.’
생김새와 체형이 비슷하면서 무공이 고강한 여인을 구한다면 모를까.
하나 평범한 여인을 대역으로 세운다면 자칫 애꿎은 사람만 죽을 수 있었다.
홍가려가 이기적인 성격이었다면 아랑곳하지 않고 대역을 구했겠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죽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문득 강엽은 홍가려를 똑바로 응시했다.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이나 손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당신 뜻을 존중하지. 하지만 전처럼 돌발 행동을 하면 못 지켜줘.”
“윽, 그건... 아, 알았어요. 명심할게요.”
강엽의 단호한 눈빛을 받은 홍가려가 감히 변명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혔다.
* * *
홍가려는 철저히 통제받는 생활을 했다.
사방이 막힌 방에 격리된 채 다른 사람과의 만남도 최소화했다.
식사는 방에서만 해야 했고, 그마저 독이 없는지 철저히 검사한 뒤에 먹을 수 있었다.
그녀는 변소에 가는 것도, 씻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변의는 요강에 해결해야 했고, 세안은 시비가 뜨거운 물을 가져오면 대충 해결해야 했다.
평소에도 운신이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기에 이쯤은 능히 버틸 거라 자신했었지만....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에요.”
홍가려가 답답함을 토로했다.
처음에는 버틸 만했다. 하지만 며칠째 산책도 못하고, 바람을 쐬지도 못하니 죽을 맛이었다.
“으으, 이러다가는 살수들이 오기 전에 제가 먼저 복장이 터져서 죽겠어요.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시원한 바람 좀 쐬웠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사람이 답답해서 죽진 않아. 뇌옥에 갇힌 사람들은 몇 달, 몇 년은 햇볕도 못 보고 지낸다. 고작 며칠 정도로 엄살피우지 마.”
이런 부분에서 강엽은 타협하지 않았다.
교대로 일하는 청수와 하후진도 마찬가지였다. 흑접이 사원루에 침입하지 말란 법이 없었다.
홍가려가 바라는 것은 평상시라면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사소한 소원이지만, 흑접의 살수들에게는 그녀를 암살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홍가려도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기에 입술을 삐죽 내밀지언정 떼를 쓰진 않았다.
“그건 아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다른 사람들에게 보호받기만 하고 아무것도 못한다는 무력감.
시름을 잊기 위해 금을 타보기도 하고, 책을 읽어보기도 했고, 심법 수련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불길한 상상이 떠올라서 입 안이 바싹 마르고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났다.
입맛이 없어 밥도 잘 먹지 못했고, 잠자리에서도 뒤척이기만 할 뿐 깊이 잠들지 못했다. 어쩌다 잠에 들어도 악몽 때문에 금방 깼다.
새벽 내내 경계를 선 강엽은 그녀가 얼마나 큰 고통에 시달리는지 알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살 순 없겠지.’
고작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초췌해진 홍가려였다.
눈매는 퀭하고 뺨은 야위었다.
‘잠깐 산책하는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운 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홍가려는 더 답답해할 테고, 그녀의 답답함을 풀어주기 위해 많은 자유를 주어야 하리라.
그럼 자연히 경계가 헐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흑접이 원하는 게 그걸지도.’
지금쯤이면 이십구호를 포함한 살수들이 전멸했다는 것은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바로 홍가려를 죽이러 오지 않는 것은 이쪽에 변화가 있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놈들 입장에서도 시간은 많지 않을 거다.’
흑접은 살문이고, 살문의 사업은 청부살인이다.
시간을 끄는 것을 의뢰인이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시간을 끌면 흑접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는 여론도 나오겠지. 명성에 집착하는 놈들이니 시간을 너무 오래 끌지는 않을 거다.’
엄밀히 말해 시간은 그들의 편이었다.
홍가려의 불안 증세라는 변수만 없다면, 몇 달이고 사원루에서 농성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강엽은 변수를 원치 않았다.
인생이 변수의 연속이라고 해도 변수가 있다는 걸 알면서 그걸 내버려둘 이유는 없을 터.
“대련을 해보는 건 어때?”
“대련이요?”
홍가려의 눈이 동그레졌다.
“무공을 익혔다면서?”
“그, 그렇긴 한데... 다른 사람과 대련해본 적은 거의 없는데요. 열심히 수련한 것도 아니고요.”
그녀가 무공을 익힌 것은 어디까지나 건강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굳이 다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다른 사람과 대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강엽이 대련을 권한 이유는 홍가려를 수련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짜증나고 답답하다면서. 그걸 대련으로 풀라는 거다. 기진맥진할 때까지 싸우면 응어리도 좀 풀리고 밤에 잠도 잘 오겠지. 악몽을 꾸는 건 잡생각이 많아서야. 죽도록 구르면 잡생각도 안 난다.”
“.......”
생각지도 못한 과격한 해결 방안에 홍가려는 입을 떡 벌린 채 강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강엽의 말대로 홧병이 날 만큼 울화가 쌓이긴 했지만, 죽도록 굴려서 잡생각을 지워버리겠다니?
“아, 아니...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상식적으로 제가 당신 상대가 될 리가 없잖아요?”
“난 방어만 할 거다. 내공은 아예 안 쓸 거고, 한 손만 쓸 거야. 운신 반경도 대폭 제한하지.”
“....”
강엽이 한 발로 몇 발만 내딛으면 벗어날 수 있는 작은 원을 그리자 홍가려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무도에 뜻이 없고, 무공 차이도 많이 난다지만 저건 손발은 물론 몸통까지 묶어놓고 싸우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강엽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싸워도 될 것 같지만, 그럼 만약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 대처하는 게 늦어질 테니 그건 무리일 것 같고. 아, 그래. 한 발을 들고 싸우지.”
“하핫, 아예 손가락만 들고 싸우지 그래요?”
“그래도 되고.”
“예에?”
“손가락만으로 싸워도 된다고. 그래도 소지로 싸우는 건 그러니 검지는 써야....”
“후우.”
홍가려가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평상시였다면 거절했으리라. 하지만 마음속에 울화가 쌓인 데다, 강엽이 이토록 자신을 얕보는 말로 도발하니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
“잠깐만 나가봐요. 수련복으로 갈아입을 테니까.”
다시 고개를 들어올린 그녀의 눈은 깊은 빡침으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한 사내가 고층 누각의 창가에 앉아 있었다.
왠지 졸린 듯한 눈을 한 그는 더벅머리에 수염이 너저분하고, 옷차림까지 남루했다.
그가 들어온 고급 다루에 어울리는 인상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누구도, 심지어 종업원마저 사내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거나 나가달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내를 향해선 눈길도 주지 않았다. 종업원도 사내가 주문한 차를 대령했지만, 뒤돌자마자 사내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한데 다루의 사람들은 사내를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그가 앉은 자리를 은연중 꺼리듯이 접근하지 않았다.
사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젓가락을 들어 찻잔 안에 있는 내용물을 휘저었다.
그냥 있기는 뻘줌해서 주문한 건데, 딱히 차를 즐기지는 않는지라 별로 마실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때 사내의 귓가에 핀잔을 주는 소리가 들렸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마, 이 자식아.”
사내는 놀라지 않았다. 갑자기 다가온 목소리였지만, 여인의 기척 정도는 감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식탁에 다리를 떡하니 올려놓는 무도한 모습엔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 큰 처자가 뭐하는 짓이냐, 칠호.”
“뭐래.”
여인, 칠호가 심드렁하게 받아쳤다.
하얀 치마 사이로 드러난 종아리가 유려한 각선미를 뽐냈지만 사내 말고는 누구도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녀 역시 사람들의 인식에서 비껴간 존재였기 때문.
“다른 애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귀영이란 자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데... 좀 많이 늦는군.”
“어휴,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뭔 사람 하나 뒷조사하는 데 한 세월이야? 하여튼 요즘 애들 물이 흐려졌어. 나 때는 말이야, 응? 하루만 있으면 사돈의 팔촌의 족보까지 다 알아낼 수 있었는데!”
“꼰대 같은 소리 좀 하지 마라. 누가 들으면 오십 먹은 노강호인 줄 알겠군.”
“난 창창한 스물세 살이거든?”
코웃음을 친 칠호가 창가 아래의 경치를 돌아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전망은 좋네. 표적이 사는 곳이 훤히 보여. 중경제일미라고 했었지? 어떻게 생긴지 궁금해.”
“용모파기를 보지 않았나?”
“원래 미인의 실물은 한낱 종이에 옮겨담지 못하는 법이야. 나처럼 말이지.”
칠호가 깔깔거리며 웃자 사내는 혀를 찼지만, 그녀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칠호의 용모는 무척이나 빼어났으니까.
“이십구호의 흔적은?”
“찾았어. 걔네가 남긴 표식이 임봉산까지 이어졌던데... 현장에 가보니 시체가 있더라고. 딴엔 흔적을 지운 모양인데, 내 눈을 속이려면 백만 년은 이르지.”
“다른 흔적을 남기진 않았고?”
“권각술의 고수라는 건 알았어. 조법도 좀 쓰는 것 같고... 그리고 음공을 썼을지도?”
“음공?”
“죽은 놈들 귀에서 피가 흘러나온 흔적이 있어. 궁금해서 좀 해부해봤는데 고막은 물론이고 안쪽까지 완전히 망가졌더라.”
“홍가려를 찾으러 갔던 놈들 중에 귀영이 유난히 늦게 도착했지. 권각술과 조법까지 썼다면 그놈 짓이다. 음공까지 쓸 줄은 몰랐군.”
“아, 귀영. 그놈 소문은 들었어. 혜성처럼 나타난 놈이라던데.”
“사문이 일절 알려지지 않았다. 밑의 녀석들이 늦는 이유가 그놈의 뒷조사를 하기 때문이지.”
“어디 일인문파에서 배운 놈 아냐? 그럼 백날 조사해도 알기 어려울걸.”
“그래도 최대한 조사해봐야지.”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강호 무림은 넓고 수천 개의 문파들과 무맥들이 존재한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일인문파라면 칠호의 말처럼 알아내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팔호, 네 계획은 뭔데?”
서열은 칠호가 높다. 다만 그녀는 작전을 구상하는 일엔 재주가 없기 때문에 팔호가 그녀의 역할까지 도맡아서 살수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저쪽의 방비가 튼튼한 것 같은데... 설마 정면에서 들이박을 건 아닐 거 아냐.”
“당연히 그건 아니지.”
나른한 미소를 지은 팔호가 말했다.
“놈들이 무대를 마련해줬으니, 우린 무대를 휘젓고 놈들의 빈틈을 파고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