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63화
신선계 입구에 한 쌍의 남녀가 나타났다.
남자는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으나.
굉장히 잘생긴 미남이었다.
더럽고 냄새나는 옷이 가려질 정도였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깔끔한 무복을 입고 있었다.
공통된 점은 빛나는 얼굴이랄까.
두 사람 다 시선을 잡아끄는 미모를 가졌다.
“금정. 오랜만에 신선계에 온 소감이 어때?”
“아무 생각 없어요. 빨리 신왕성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에요.”
“무공 연마는 쉬엄쉬엄해. 그러다 탈 난다?”
“걸신을 따라잡으려면 멀었어요.”
“그건 불가능하니까 괜히 헛수고 하지 마.”
“꼭 해내고 말 거예요.”
“소용없을 텐데 열심히 해봐.”
남자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두 사람이 신선경에 올랐다.
신분증을 보여야 신선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두 사람은 유령이라도 된 듯.
아무런 제지도 없이 신선경에 올랐다.
“그런데요.”
“어떤 게 궁금한데 뜸을 들여?”
“정말 전대 신선제가 죽었을까요?”
걸신이라는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전대 신선제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심각해진 것.
걸신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윗분들 말로는 그래. 염라대왕이 신왕성에 보고를 했으니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닐까.”
“그자는 평생 저흴 괴롭히네요.”
금정의 말에 걸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대 신선제 천극자.
그는 신계 역사상 가장 강한 왕이었다.
역대를 봐도 그보다 강한 왕은 존재하지 않았다.
같은 위치에 있던 마계왕도 단숨에 처치하는 무력을 가졌다.
그런 그가 죽었다.
신왕성의 괴물들을 좌절하게 만든 그의 소멸.
가슴이 후련했다.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라도 살아있지 않을까.
신왕성은 지고한 위치에 있는 존재였다.
모든 권력의 정점에 있는 신왕성이!
천극자란 걸림돌 때문에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어야 했다.
그와의 충돌은 자살행위.
목을 뻣뻣하게 들고 다니던 신왕성의 명예가 땅에 처박힐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아니,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결과는 신왕성의 패배.
천극자란 장애물을 넘지 못했다.
이후론 4대 신계로부터 층계의 일을 보고만 받을 뿐.
이렇다 할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염왕이 거짓 보고를 올리지 않은 이상 천극자는 소멸했을 거야. 우린 주어진 임무만 완수하면 돼.”
신왕성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 층계에 다시 영향을 뻗치는 것.
첫 번째로 권위를 바로 세우는 거였다.
천극자로 인해 무너진 권위를 다시 세우는 일은 그의 제자인 파천혈신.
현 신선제를 벌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왕성을 위협하는 존재를 미리 제거하는 일이기도 했다.
“추잡해 보이긴 하지만 신왕성을 위한 일이니…”
금정은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녀로선 빈집을 터는 기분이었다.
천극자가 없어진 틈을 타서 그의 소중한 걸 빼앗으려 하니.
양심에 찔리기도 했다.
하나 이 모든 건 신왕성을 위한 일이었다.
그녀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마무리를 했을 것이다.
“빠르게 끝내고 돌아가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신선경에 도착 했다.
신선들은 맡은 일에 치여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한 건지.
투명 인간 취급을 하고 있었다.
그때 금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왕성에서 위험인물로 간주한 이유가 있어요. 저희를 알아봤어요.”
걸신이 고개를 돌려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신선경 호수 건너편.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자리에 앉아 자신들이 있는 곳을 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곳에 온 게 천만다행이군.”
걸신은 손에 든 담뱃대를 길게 들이마시곤 하얀 연기를 가득 내뱉었다.
* * *
“저기 저 손님들인가. 염라대왕한테는 알겠다고 전해.”
“그럼 가보겠습니다.”
지옥계에서 온 전령이 고개를 숙인 후 사라졌다.
설극이 옷을 털며 일어났다.
“신왕성에서 왔다고?”
그는 다짜고짜 걸신과 금정에게 반말을 했다.
그가 존대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뿐.
천극자인 사부밖에 없었다.
천극자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염라대왕이 반존대를 받았다.
“싹퉁머리가 없다고 하더니 웃어른을 보았으면 인사를 먼저 해야지.”
걸신은 아이를 달래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돌아오는 건 설극의 비웃음이었다.
“전대 신선제라고 나한테 대접을 받고 싶은가 본데 어림없다. 난 나보다 약한 놈은 취급 안 한다.”
도발적인 언사였다.
걸신과 금정을 모욕하는 발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걸신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놈이야.”
“날 제거하러 왔다지?”
설극의 음성이 신선계에 있는 신선들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
“신선제 님을 누가?”
“어떤 미친 놈이야.”
“개소리를 지껄인 놈이 누구일꼬.”
신선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걸신과 아미가 근처에 있었으나.
두 사람을 인식하지 못했다.
설극은 시끄러워진 신선들은 무시한 채 재차 물었다.
“여기서 싸울 테냐.”
그의 자신감 가득 담긴 말에 금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도 제 스승이 소멸 된지 모르는 건가?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나오는 걸까요?”
전대 신선제가 무려 두 명이나 있었다.
잔뜩 위축돼도 모자랄 판국에 오히려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게 아닌가.
“흠….”
걸신이 설극을 유심히 관찰했다.
강하긴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탈신경 완숙쯤에 있는 걸로 보이는데… 이 찝찝한 느낌은 뭐지?’
딱히 특별한 점은 없었다.
일대일로 싸우면 질 가능성도 있겠으나.
이대 일로 싸우면 무조건 자신들 쪽이 유리했다.
한데 불안한 느낌은 뭘까.
이유 없이 찜찜했다.
걸신이 생각에 잠긴 사이.
설극의 곁으로 주경아와 연아린이 다가왔다.
“저들은 누구죠?”
“위험해 보이는 자들인데…”
주경아와 연아린은 걸신과 금정의 기운을 눈치챘다.
공기를 타고 날아오는 살기.
좋은 의도로 신선경에 나타난 게 아니었다.
연아린은 저 두 사람의 복장을 살펴봤다.
“누더기 그리고 담뱃대에 십결 매듭이 있는 걸 보면 개방의 인물 같아요. 그런데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여자 또한 마찬가지.
아미파의 복장을 입고 있지만 그녀도 누구인지 예측이 안 갔다.
“걸신과 금정. 전대 신선제를 지녔던 놈들이다.”
설극의 말에 주경아와 연아린의 눈이 커졌다.
“가가께선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염라대왕이 급히 전령을 보냈어. 신왕성에서 사람이 올 거고 그게 걸신과 금정이라고 하더군.”
“그들이 왜요?”
“나를 제거하고 싶은 모양이야. 내가 저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여기고 있어.”
“싸워야 한다는 소리네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아는 뒤로 빠져 있어.”
“제가 가가께 짐이 되나요?”
“무슨 그런 소릴!”
“그러면 빠지란 말은 하지 마세요.”
“경아…”
설극이 감격한 표정으로 주경아를 쳐다봤다.
그녀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 한다.
어쩌면 위험한 싸움이 될 터인데 망설이지 않고 나서는 게 아닌가.
“가가가 없으면 준이의 든든한 뒷배경이 사라져서 그러는 거예요.”
“고마워. 경아. 하지만 여긴 내게….”
“했던 이야기 또 하게 하면 가만두지 않겠어요.”
주경아가 경고했다.
그녀는 이미 천마기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언제든 출수가 가능했다.
“하아… 내가 못나서 경아까지 나서게 하는군.”
설극이 한숨을 쉬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었으면 그녀가 나서려 하지 않을 터.
위험해 보이니 손을 거들려는 것이다.
설극과 주경아의 태도에 금정의 이성이 끊겼다.
“저 년놈들이 저흴 물로 보고 있는 거죠?”
금정의 검에서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금정천룡신공의 극의였다.
“제가 저년을 맡을게요. 걸신이 신선제를 맡아주세요.”
“얕보면 안 돼. 아마도 저 여자가 마왕이었던 주경아일 거야.”
“걸신도 절 무시하시나요?”
“그럴 리가. 그냥 주의하라는 말이지.”
“흥. 제 앞에서 나댄 대가를 치르게 하고 말 거예요.”
금정이 주경아의 앞에 섰다.
“네년이 마선이라는 계집이냐.”
“입이 험한 걸 보면 생전에 한 성깔 했나 보군요.”
“뭬야?”
“전대 신선제에 대한 예의는 여기까지. 이제 말 함부로 했다간 그 입 뚫어버리는 수가 있어.”
주경아의 내려다보는 말투에 금정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금정은 신선제였던 때에 존경을 한 몸에 받았었다.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았는지.
기억이 가물할 지경.
잘못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다시 말해보아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내게 뭐라고?”
“나이가 많은 게 자랑은 아닌데.”
“네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 아니지. 그 전에 소멸되려나?”
금정이 검을 휘둘렀다.
무색.
무음.
무형.
그 어떤 것도 없었다.
하나 주경아의 눈에 금정의 검기가 보이는지.
검기를 향해 활짝 핀 손을 뻗었다.
* * *
콰앙!
신선계에 굉음이 울렸다.
충격과 함께 지진이 일어났다.
“저쪽은 이미 시작했구만.”
걸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날 건드린 게 얼마나 큰일인지 신왕성은 아나?”
“마치 네가 신왕도 이길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사부님을 제외한다면 나보다 강한 자는 없다. 왜 인 줄 알아? 강한 놈들은 내 손에 전부 죽었으니까.”
화아악-
설극의 몸에서 파천멸기가 뿜어져 나왔다.
걸신의 기세와 그의 기세가 충돌했다.
“지독할 정도로 광오한 놈이야.”
걸신은 설극의 기세에 밀리지 않았다.
쿵.
먼저 움직인 사람은 걸신이었다.
그가 설극의 품으로 쇄도했다.
보법이 어지러웠다.
마치 술을 마신 사람처럼 휘청거렸다.
‘취팔선보군.’
설극은 걸신이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지근거리까지 오자 걸신의 담뱃대가 움직였다.
타구봉법이었다.
한데 왼손도 같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오른손은 타구봉법을 왼손으로는 백결신장을 사용하고 있어.’
무려 세 가지 무공을 동시에 구가하고 있었다.
취팔선보와 타구봉법 그리고 백결신장까지.
어느 하나 무결점인 무공이 펼쳐졌다.
뱀처럼 움직이는 타구봉법.
그물이 펼쳐지듯 촘촘하기 이를 데 없는 백결신장이 설극에게 폭사했다.
쾅!
“오만한 말을 할만해. 하나!”
걸신의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담뱃대가 검초를 뿌렸다.
연환식.
물 흐르듯 움직이는 담뱃대에서 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강기가 설극의 소매를 잘랐다.
어깨와 다리, 장포까지 가라지 않고 베었다.
심지어 설극의 어깨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피를 보니 살의가 꽃을 피우고 있어.”
설극의 두 눈이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그의 입가에 실선이 그려졌다.
그 순간!
“…!?”
걸신의 시야에서 설극이 사라졌다.
“거기냐.”
그가 몸을 옆으로 돌리며 담뱃대를 휘둘렀는데.
퍽-
뒤에서 나타난 설극이 걸신의 등을 걷어찼다.
다른 신선이었다면 신선경의 주변 환경을 부수면서 나가떨어졌겠지만.
걸신은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다가 우뚝 섰다.
“이번엔 놓치지 않겠어.”
그가 다시 한번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설극은 그의 손에 닿지 않았다.
대신.
쿵!
설극의 주먹을 담뱃대로 막았다.
쿵!
신선경의 호수가 출렁이며 주변으로 넘쳐흘렀다.
충격의 기파로 인해 세상이 흔들렸다.
설극과 걸신의 충돌은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이긴 듯해. 더욱 속도를 높이마.”
걸신의 팔이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다리 또한 마찬가지.
눈에 안 보일 정도로 공격이 이루어졌다.
담뱃대가 미친 듯 움직였다.
담뱃대를 타고 이동하는 한 마리의 황금용이 설극을 물어뜯었다.
황룡이 승천하며 설극을 갈기갈기 찢으려는 찰나.
“천극자 사부께서 말하길 용은 청룡이 으뜸이라고 하더군.”
설극의 전신에 뇌기가 맺히더니.
등 뒤에 그림자가 생겨났다.
용의 형상.
오직 청룡의 기로만 만들어진 파천멸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초식이나 틀이 없는.
오로지 설극의 전투 감각으로만 운용되는 무공.
아직 이름도 없는 힘이 신선계에 강림했다.
“사부님을 떠올리며 만든 무공이다.”
설극이 사라졌다.
그리고 걸신의 앞에 나타났다.
어느새 그의 손이 걸신의 가슴에 닿아있었다.
“이 무공에 죽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라.”
설극의 손을 타고 흐른 파천멸기가 일제히 뿜어졌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듯.
뇌전이 걸신의 등에 박혀 있었다.
“커헉!”
걸신의 입에서 피와 내장 조각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