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60화
“저, 저!”
“군단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서 가주님을 구하는 게….”
불의 군단장이 고민에 빠졌다.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상대를 놓친 게 아닌 보지 못한 것.
심각한 사안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신을 서슴없이 죽이는 인간.
자칫하다간 그의 손에 있는 주인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크으으… 네놈을 꼭 찢어발겨 주겠다.”
“내가 놓아줘도 그건 힘들어.”
상대는 주인을 농락할 정도로 여유가 넘쳐흘렀다.
“군단장!”
“보고만 계실 생각이십니까!”
수하들이 보챘다.
주인이 적의 손에 있는 걸 눈 뜨고 보지 못하겠다는 듯.
명령만 떨어지면 곧장 공격할 자세였다.
“큭…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죽여!”
우리엘이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이에 불의 군단이 손에 든 창을 일제히 던졌다.
한데 불의 군단장만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적은 예상을 벗어나는 인간.
강하기도 하지만 성격이 고약했다.
창을 던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불길하다. 아니, 저놈 자체가 불길해.’
불의 군단장이 찝찝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이준은 고개를 진심으로 갸웃거렸다.
“병신들인가.”
자신의 손에 있는 적의 주인.
그런데도 공격을 가했다.
미친 게 아닌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게 아니고 죄다 빠진 듯 보였다.
“재생 능력을 믿나 본데 애초에 쉽게 죽일 생각은 없었거든. 최대한 고통을 느끼게 하고 죽이려 했는데 잘됐네.”
이준이 날아오는 수천의 창을 향해 우리엘을 내밀었다.
신을 방패로 사용한 것.
이를 뒤늦게 깨달은 불의 군단장이 급하게 소리쳤다.
“고, 공격 중지! 당장 멈춰라!”
하나 이미 수천 개의 창이 손을 떠난 지 오래였다.
퍼벅퍽퍽!
“커헉!”
우리엘이 고슴도치가 되었다.
전신에 박힌 창.
심지어 얼굴에도 박혔다.
“신이 좋긴 하네. 인간이었으면 진작에 죽었을 텐데 숨 쉬고 있구만.”
이준이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우리엘의 몸에 박히는 창을 빼면 다른 창은 이준에게서 죄다 빗나갔다.
애초에 통하지 않은 공격이었다.
“저 개자식이!”
불의 군단장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움직였다.
중간에 공격 중지를 외쳤으나.
공격은 여전히 이어졌다.
그 때문에 부랴부랴 날아가 불의 군단이 던진 창을 막았다.
군단장 앞에 펼쳐진 불의 장막.
창이 장막을 뚫지 못하고 소멸 됐다.
군단장이란 직함을 괜히 달고 있는 게 아니었다.
공격이 끝났다.
더 이상 하늘에서 창의 비가 떨어지지 않았다.
“꽤 눈치가 빠른 놈이 있네?”
이준의 미소가 짙어졌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죽여보던가.”
“이익!”
불의 군단장이 이를 갈았다.
“아, 너는 무리니까 다른 놈 불러와. 천계에서 가장 강한 놈으로. 아니구나. 가장 강한 놈은 저기에 있지?”
이준이 미카엘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놈들한테 싹 연락 돌려. 천계를 능멸한 인간이 이곳에 있다고. 죄다 몰려왔으면 좋겠다. 내가 일일이 찾아가서 죽일 필요가 없이 말이야.”
오만했다.
지독하리만치 광오하기도 했다.
상대가 아닌 자신들이 써야 하는 말이었다.
한데 도리어 인간이 신을 내려보는 게 아닌가.
치욕스러웠다.
이건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천계 전체의 문제였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그런 말은 네가 아니라 내가 써야 하는 말이야.”
이준이 눈을 번들거렸다.
한쪽 눈은 회안이.
다른 눈은 적안이 번쩍였다.
주위로 강렬한 살기가 몰아쳤다.
“!?”
“천계 놈을 다 데려와. 그러면 네 주인을 살려주지.”
이준의 제안에 불군단장의 눈이 커졌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가짜 같아?”
그가 불군단장의 눈을 지그시 보았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심령을 통째로 뒤흔드는 강렬함.
불군단장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준의 시선을 피했다.
‘저놈은… 진짜다! 인간이라고 너무 얕봤어.’
이미 인간을 아득히 초월했다.
그러니 신의 권능도 통하지 않은 것.
인간이 아닌 동등한 신과 싸운다고 생각해야 했다.
‘라파엘 님과 라구엘 님에게 도움을 청한 후에 우린 뒤로 빠져서 후일을 도모하든지 해야겠어.’
같이 싸우고는 싶으나 주인의 상태가 심각했다.
아무리 재생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고통은 지속될 터.
최상의 컨디션으로 싸울 수 없었다.
“생각 끝났으면 빨리 실행에 옮겨. 최대한 빨리 데려와야 할 거야. 내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아.”
이준의 말이 끝나자.
불군단장이 우리엘을 향해 말했다.
“가주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지원군을 데려오겠습니다.”
우리엘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고통에 의해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이 모습 보이지? 사신기가 네 주인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어. 평생 병신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여.”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기대할게.”
* * *
불의 군단장이 병력을 이끌고 사라졌다.
미카엘과 우리엘이 붙잡힌 상황.
이준은 우리엘의 목덜미를 잡은 채 질질 끌었다.
그리곤 미카엘의 옆에 던졌다.
“크흑.”
그가 우리엘의 복부에도 파멸겁을 꽂아 넣었다.
흑염과 사신기가 우리엘의 신체 재생을 방해했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
우리엘에게 경고를 준 후.
로티틸에게 말을 걸었다.
‘혁진이랑 정연 누나는 어때?’
[혁진 님은 계속 운공 중이고 정연 님은 상태가 계속해서 안 좋아지고 있어요.]
이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정연 누나는 내상이 심할 뿐 목숨에는 지장 없었잖아?’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점점 안 좋아지고 있어요. 몸에서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주인님께 알릴까 생각하고 있을 때쯤 연락을 주셨어요.]
‘그 정도로 심각해?’
[네. 한 번 오셔서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알았어.’
금역의 문을 열기 전 안전장치를 설치했다.
우리엘의 몸에 박힌 파멸겁에 사신기를 집어넣자.
회색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더니.
그들이 있는 자리에 창살이 만들어졌다.
“도망칠 생각하지 마라.”
파멸겁이 만든 감옥.
우리엘의 몸에서 창을 빼내지 못한다면 감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준이 금역으로 들어갔다.
“백호 너, 나가서 감시 좀 해.”
“크앙!”
백호가 앙증맞은 어금니를 드러내며 포효했다.
이준의 명령에 반항한 것.
현재 백호는 사춘기였다.
같은 신수의 말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인 상태.
귀찮다는 뒷발로 귀를 긁고 있는데.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야.”
이준의 목소리에 자라목이 되었다.
쫑긋 세웠던 귀를 한껏 내리며 몸을 최대한 낮췄다.
꼬리는 살랑살랑.
배를 까뒤집으며 항복 선언을 했다.
애교를 부리는데.
“빨리 가.
이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백호가 빠르게 금역 밖으로 사라졌다.
그가 로티틸에게로 갔다.
로티틸은 마력으로 박정연의 체온을 내리고 있었다.
“현무 각주님. 누나의 상태를 말해보세요.”
“음양의 조화가 깨졌습니다. 지안이의 체질과는 정반대가 됐습니다.”
“구음지체의 반대면…”
“태양지체와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태양지체다.]
이의태의 대답과 함께 주경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음지체가 극음의 기운이 팽창하는 몸이라면 태양지체는 극양의 기운이 팽창한다고 보면 된다. 남자의 몸이라면 축복이지만… 여자의 몸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어.]
‘갑자기 이렇게 발현이 되나요? 너무 뜬금없는데.’
[미카엘이 개수작을 부렸을 게다.]
‘그 짧은 시간에요?’
[명색에 천계의 왕이다. 네가 아니면 그의 힘은 누구에게도 통할 거야.]
‘고칠 방법은 없나요?’
이지안의 구음절맥도 고쳐보았다.
태양지체에서 보이는 병을 못 고칠까.
방법만 알면 가능하리라 보았다.
[태양절맥은… 고치는 게 쉽지 않아. 무림 역사상 여자는 단 한 번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체질이다.]
고친 예가 없다는 소리였다.
이준이 몸을 일으켜 말없이 금역을 나갔다.
곧장 미카엘에게로 가서 멱살을 부여잡았다.
“정연 누나한테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거냐.”
“크크. 크하하하.”
미카엘이 크게 웃었다.
통쾌한 목소리였다.
“웃음이 나와?”
“이제야 눈치를 챈 것이냐.”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이준의 눈이 이글거렸다.
위기의 순간이면 오히려 이성이 차가워졌다.
하나 처음으로 표정에 감정을 드러냈다.
다급한 마음이었다.
“당장 원래대로 돌려놔. 그렇지 않으면.”
“으으….”
이준이 미카엘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경고했다.
“천계의 생명이란 생명은 죄다 없애버릴 거야. 네가 남겨둔 천계의 후계자들까지.”
신음하던 미카엘의 눈동자가 떨렸다.
인간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신선계나 지옥계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이미… 바꿔놓은 신체는 다시 원래대로 돌리는 건 나라도 불가능 크으으… 하다…”
“네 소원대로 천계에 속한 놈들은 죄다 죽여주지.”
이준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을 때였다.
[급한 불은 꺼야 하니 준이 네가 가진 물의 힘을 정연이에게 주는 게 어떻겠느냐.]
‘목숨만 살릴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어요.’
이준이 몸을 돌려 금역으로 갔다.
* * *
금역으로 돌아온 이준이 박정연의 단전에 손을 얹었다.
‘제발 괜찮아지길.’
자신의 내부를 관조하며 사신기로 물의 기운을 분리했다.
강철의 돌도 분리한 경험이 있으니.
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사신기에서 물의 기운을 떼어냈다.
그리고 박정연의 몸에 물의 기운을 흘려보냈다.
파직-
뇌령의 힘이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반쪽짜리긴 하나 강한 힘을 지닌 기운.
물의 기운을 밀어내며 격렬하게 싸웠다.
박정연의 몸이 들썩였다.
‘위험하겠어.’
이준이 사신기로 싸우고 있는 두 기운을 감쌌다.
사신기가 끼어드니.
격렬하게 치고받던 기운이 서서히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물의 힘은 이준이 이끄는 대로 따라 흘렀다.
‘됐다. 열이 내려가고 있어.’
박정연의 몸에서 뿜어내는 열기에 주변까지 뜨겁게 데웠는데.
화기가 점점 약해졌다.
‘다행이다.’
[물의 돌이라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가요?’
[너는 사신기를 지니고 있어서 다른 기운이 하찮게 보이는 거다.]
여태 보았던 기운 중 가장 강한 힘.
반쪽짜리 힘을 가진 미카엘도 사신기 앞에선 반딧불에 가까웠다.
[물의 힘이 상상을 초월하니. 아예 음양의 기운을 맞춰주거라.]
주경아의 말에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의 힘을 이끌며 박정연의 몸 구석구석을 누볐다.
태양절맥의 화기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끊어졌던 혈맥은 이어지고 새롭게 탄생했다.
전보다 더 단단하고 큰 통로로 말이다.
심지어 뇌령과 물의 힘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다행이다. 완전히 안정을 찾았어.’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걸 전화위복이라 하던가.
위기를 넘기니 새로운 힘을 갖게 됐다.
강력한 생명은 덤.
자연지기가 한층 성장했다.
전부 다 나았음에도 이준은 계속 박정연의 진기를 이끌었다.
‘이제 일어나.’
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꽂혀 있었다.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내 천천히 떠지는 눈꺼풀.
이준과 그녀가 눈을 맞췄다.
“일어났어?”
“네가 또 나를 도와줬구나…?”
“나 말고 누가 누나를 챙기겠어.”
“피…”
“걱정시키지 말고 일어나.”
“…난 지금이 좋은데.”
박정연이 이준을 향해 미소를 보였다.
거대한 힘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자 힘든 모양인지.
그녀의 얼굴은 아직까지 창백했다.
“여기서 쉬고 있어. 좀 나아지면 운기하고.”
“어디가?”
“남은 일이 있어.”
“안 가면… 안 돼?”
그녀가 이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빨리 올게.”
이준이 박정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마치 가장 소중한 것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다치지 마….”
“누구의 명령인데.”
이준이 미소를 보이며 굽혔던 무릎을 폈다.
“테구르.”
“옙 주인님!”
“잘 보살펴줘.”
“물론입습죠.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요.”
테구르가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했다.
이준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를 본 테구르는 몸이 굳고 말았다.
살기가 담겨 있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무언가가 느껴진 것.
눈치 빠른 테구르는 침을 꼴깍 삼켜야만 했다.
‘주인님한테 다 죽을 거야!’
테구르의 눈에 세상이 피와 강으로 변한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