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15화
이준은 조형 마법에 더욱 빠져 있었다.
하면 할수록 신기한 마법.
무공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오늘도 연무장에서 조형 마법을 수련하고 있는 그때였다.
그의 눈동자에 이상한 게 비추었다.
“용계의 입구가 열린 거야?”
흑룡족으로 보이는 검은 드래곤들이 흑염마조를 공격하고 있었다.
흑염마조가 드래곤을 잡아먹을 듯 보이나.
수적으로 불리했다.
흑염마조가 아무리 강하다지만 흑룡족도 하이 드래곤.
드래곤에게는 녀석들이 신이었다.
신과 신의 대결이라 흑염마조도 방심하면 안 됐다.
“놈들을 잡아 기억을 읽어야겠어.”
이준이 땅을 박차려는 순간.
흑룡족의 입에서 현무의 이야기도 나왔다.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현무에게는 백룡족이 갔단다.
어쩌면 현무도 위험한 상황에 처할지 몰랐다.
[너 어디에 있어?]
이준이 현무에게 말을 걸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아무런 일이 없는지.
곧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필리핀 쪽이었던가? 그건 왜?]
[네게 백룡족이 붙었대.]
[용신족이 나타난 거냐.]
[흑염마조는 흑룡족과 싸우고 있어.]
[우리에게 볼 일이 있나보군.]
이준은 현무가 당하게 둘 수 없었다.
몸이 두 개라면 현무를 도와줄 수 있겠지만.
몸은 하나였다.
난감해하고 있는 그때.
한지유가 독룡족을 쓰러트린 게 생각났다.
‘애들을 보내면 되겠어.’
옛날에는 약해서 자신이 보호를 해줘야 했다.
지금은 어떤가.
전생 각성을 해서 강해졌다.
신과 싸우는 게 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네 쪽으로 혁진이랑 정연 누나를 보낼 거야.]
[흥. 백룡족 따위 나 혼자서도 이길 수 있다.]
[자만하지 마. 그러다가 백호처럼 된다.]
현무가 버럭 화를 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자신 또한 백호처럼 되지 않으란 법이 없었다.
[알겠다.]
현무가 순순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가장 신중하고 현명한 신수이다.
현 상황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이준은 현무와 대화를 끊고 박혁진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준아. 웬일이야?
“너 필리핀 좀 다녀와라.”
-갑자기?
“가문에서 공문 내려온 거 봤지?”
-하이 드래곤이라는 용신족 말하는 거야?
“백룡족이 현무를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어.”
-용계가 열린 건가.
“그건 아직 모르겠어. 네가 필리핀으로 가서 현무를 보호해줘야겠다.”
-나 혼자?
“정연 누나랑 지유를 데려가.”
-심심하진 않겠다.
“가서 연락해.”
-오케.
박혁진과 전화를 끊었다.
녀석이 현무에게 간다니 안심했다.
나사가 하나 빠진 녀석이었으나.
능력은 차고 넘쳤다.
과거에도 검귀라 불리는 녀석이었으니까.
전생 각성을 한 지금은 뇌전검왕 그 자체였다.
팟-
이준이 땅을 박차며 앞으로 쏘아졌다.
흑염마조가 있는 곳을 향해 뻗어나갔다.
‘하필 중국 쪽이네. 가까웠으면 좋았을 텐데.’
이준이 구시렁거렸다.
그와 반대로 파랑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난다아아~]
이준의 주머니에서 얼굴만 빼꼼이는 파랑이였다.
두 귀가 바람에 뒤로 가 있었다.
파랑이의 반응에 삼두가 핀잔을 줬다.
[팔자 좋다.]
[삼두가 나한테 말할 처지는 아니야.]
파랑이가 삼두의 말을 받아쳤다.
[난 생각할 게 있어서 이렇게 있는 것이다.]
삼두도 이준의 주머니에 몸을 담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파랑이.
왼쪽에는 삼두가.
얼굴만을 내민 채였다.
“시끄러. 확, 놔두고 갈까 보다.”
[힝. 너 때문에 주인님한테 혼났잖아. 삼두 멍청이!]
[저 빌어먹을 여우 새끼가 누굴 탓하는 거냐.]
[몰라 몰라. 삼두 말 안 들려.]
파랑이와 삼두는 이준이 경공을 펼치는 내내 다투었다.
얼굴만 보면 싸우는 녀석들.
거의 앙숙이었다.
* * *
흑염마조와 흑룡족은 치열하게 싸웠다.
죽일 듯이 달려드는 흑룡족이었으나.
흑염마조는 이를 모두 받아쳤다.
‘이상해. 왜 내 목숨을 안 노리는 거지?’
흑룡족은 치명적인 부위만 노릴 뿐.
그 이상은 나가지 않았다.
마치 목숨을 살려두려는 것 같았다.
‘내게 원하는 게 있는 건가.’
흑염마조가 힘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지친 거냐.”
“큭큭. 사신수도 별거 없어.”
“우리보다 서열이 높은 건 신계의 비호 때문인 거냐.”
흑룡족이 흑염마조를 비웃었다.
그러면서도 공격은 끊임 없이 했다.
흑염마조의 화염이 흑룡족을 덮쳤다.
화르륵!
흑염은 흑룡족도 화들짝 놀라게 하는 힘이었다.
닿으면 웬만한 마력으로는 꺼트리지 못했다.
피하는 것만이 상책.
흑룡족이 날개를 펄럭이면서 재빠르게 흩어졌다.
흑염이 아슬아슬하게 흑룡족을 빗나갔다.
[입맛 산 놈들이군. 어디 날 죽여봐라.]
흑염마조가 버럭 소리쳤다.
그와 함께 흑염과 성화가 동시에 타올랐다.
힘이 빠진 줄로만 알았는데 기세가 오르자.
흑룡족도 당황해했다.
“여태 힘을 숨기고 있었다니.”
“으음….”
“예상 밖의 힘이야.”
“이러다가 우리의 피해가 더욱 커지겠어.”
자신들이 알던 흑염마조가 아니었다.
용계에서 지켜봤을 때는 이보다 더 약해 보였다.
한데 지금은 그때보다 세, 네 배의 힘을 보이는 게 아닌가.
“불의 힘을 포기해야 하는 거냐.”
“적룡족이 발작할 텐데 괜찮겠어?”
“약속은 지켜야 한다.”
“이러다 우리가 먼저 죽어.”
“그냥 죽이자.”
흑룡족의 의견이 갈렸다.
그러자 그들의 공격도 느슨해졌다.
흑염마조도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사실 힘에 부친 상황.
마지막으로 기운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다음은 없었다.
다행인 건 저들의 목적을 알아냈다.
‘내 불꽃을 노리는 거였군.’
적룡족이란 말이 들렸다.
불의 속성을 가진 하이 드래곤.
자신과 같은 속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인계에 모습을 드러낸 건 사신수인 우리들의 힘을 취하기 위해서였던 거야.’
용신족은 항상 불만이었다.
용계는 왜 신계에 속하지 않냐고 말이다.
신계는 딱 잘라 말했다.
용계는 신계에 속할 정도로 힘이 강하지 않다고.
이에 용신족이 격분했다.
하급 신들보다 강한 게 바로 용신족이었다.
힘이 약하다고 신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건 궤변.
다른 이유를 말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몇몇 용신족은 수긍을 할지 몰랐다.
하지만 힘이 약하다는 건 모든 용신족을 화나게 하는 답변이었다.
‘우리의 힘을 취하면 신계의 입장을 뒤집을 수도, 천계를 피해 몸을 숨기지 않아도 되겠지.’
흑룡족이 인계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였다.
흑염마조가 결론을 내린 사이.
“목숨이 끊어지지만 않으면 되지 않아?”
“그래. 숨만 붙여 놓자.”
“우린 적룡적에게 저놈만 주면 돼.”
“다음은 적룡적이 알아서 하겠지.”
흑룡족의 의견이 하나로 모였다.
느슨했던 공격이 다시 촘촘해지기 시작했다.
힘을 거의 다 사용한 흑염마조의 몸에는 상처가 계속 생겼다.
[시간을 너무 끌었다. 이대로는…]
흑염마조가 절망하는 순간.
화르륵-
하나의 창이 불쑥 튀어나와 그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파멸겁!]
파멸겁이 회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창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흑염마조와 연결됐다.
“저건 뭐냐.”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흑룡족이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저 멀리서 거대한 새가 보였다.
빙조였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새 위에는 인간이 타고 있었다.
[작은 주인!]
흑염마조는 이준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누가 우리 조를 괴롭히냐. 너야?”
이준 한 흑룡족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 큰 덩치가 강한 중력에 의해 끌려왔다.
안간힘을 써서 버티는 드래곤.
이준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 손에 잡히기 싫으면 뒈져.”
그의 팔짝 펴진 손이 오므려졌다.
콰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흑룡족이 종잇장 찌그러지듯.
우그러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화르륵!
우그러진 드래곤의 몸에 불이 붙었다.
흑염.
살이 탈 때까지.
마력이 전부 산화될 때까지.
타오르는 불꽃이 붙었다.
죽은 드래곤이 힘없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한 마리는 해치운 이준.
그의 손속에 흑룡족의 눈이 커졌다.
자신들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정도로 약하지 않았으니까.
그것도 인간에게 말이다.
그 인간이 특별하다 해도 손짓 한 번에 동족이 죽는 게 말이 되나.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 * *
[무공천재(EX)의 특성이 발동했습니다.]
[모투술을 사용합니다.]
[상단전의 힘이 모투술을 제어합니다.]
[지나갔던 과거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준은 흑룡족을 죽이고 곧바로 모투술을 사용했다.
녀석들이 어떻게 인계로 왔는지.
무슨 목적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흑룡족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물밀듯 들어왔다.
많은 정보량에도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상단전을 사용해도 버틸 수 있는 경지였다.
‘용계의 입구가 게이트였어? 이러니까 눈치를 채지 못하지.’
용계의 입구는 허공의 틈이 아니었다.
균열의 틈 속.
그중에서도 등급이 낮은 게이트였다.
그러니 용계의 틈을 찾지 못했던 것.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게이트는 너무 없어 보이잖아.’
균열은 몬스터들이나 나오는 공간.
드래곤의 신인 용신족이 비집고 나올만한 곳이 아니었다.
위신도 다 내팽개친 거다.
‘사신수의 목숨만 취하면 위신은 다시 세울 수도 있으니 그럴 만도 하네.’
저들의 목적은 사신수의 힘을 취하는 것.
용신족이 보다 강력해지는 걸 원했다.
여태 숨어있다가 모습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사신수를 죽일 확신이 없었다면 나타나지도 않았을 터다.
이준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흑룡족은 정신을 수습했다.
“파천제!”
“인간 따위가 신들의 일을 간섭한단 말이냐!”
“아무래도 너부터 죽여야겠다.”
“뭘 놀래. 이렇게 될 걸 몰랐던 거야?”
이준의 도발에 흑룡족이 목표를 바꿨다.
그를 향해 날아오는 흑룡족.
흑염마조가 뒤에서 소리쳤다.
[나도 있다는 걸 잊었느냐!]
성화가 흑룡족을 덮쳤다.
파멸겁으로 인해 힘을 조금은 회복한 흑염마조였다.
졸지에 이준과 사신수를 상대하게 된 흑룡족이었다.
하나 기죽지 않은 흑룡족.
그들은 용계에서도 가장 강한 전사들이었다.
이준과 흑염마조를 나누어 공격했다.
열 마리의 드래곤이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네.”
이준이 사신기를 뿜어냈다.
그의 주변에 돌풍이 불었다.
무시무시한 기파가 주위로 퍼져나가는데.
“허억!”
“저, 저건?”
“흐, 흑룡왕의 힘이….”
이준에게 달려들던 흑룡족이 기겁했다.
그에게서 보이는 기운은 바로 그들의 왕.
대군주 흑룡왕에게서 보이는 기운이었다.
“이럴 줄 알았지. 그리에스도 놀랐는데 너희라고 별수 있겠냐.”
이준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에스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이유가 바로 이 힘 때문.
그녀는 흑룡왕의 힘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다.
심장에 잠시 머물렀던 파르가의 숨결이.
사신기에 녹아 있었다.
그래서 그리에스도 착각했던 거다.
흑룡족이라고 다를까.
아니, 그리에스보다 더 놀랄 거다.
흑룡족은 흑룡왕을 섬기는 하이 드래곤이다.
흑룡왕의 기운을 보는데 감히 이빨을 드러낼 생각을 할까.
아니나 다를까.
“도, 도망쳐!”
“저 힘에 대적하면 안 돼.”
“용계로 돌아가자!”
흑룡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녀석들을 그냥 놔줄 이준이 아니었다.
흑룡족을 잡으려고 움직이려 하는데.
지잉-
녀석들이 각자 게이트를 소환해서 도망쳐버렸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와씨. 한 방 먹었네.”
게이트의 흔적이 사라졌다.
기감을 넓혔으나.
그 어디에도 균열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흑룡족이 사용한 건 바로 자신이 쓰는 게이트 소환 스킬.
저들은 자신과 같은 게이트의 주인이었다.
“용신족이 게이트 소환 스킬을 사용할 줄 몰랐어.”
강해지고 난 후.
처음으로 머리를 돌로 맞은 느낌이었다.
물론 흑룡족을 놓쳤지만 찾는 게 가능했다.
이미 흑룡족 한 마리를 죽여 기억을 훔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