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11화
사형준의 손에 무지막지한 내공이 맺혔다.
이를 본 안테로의 눈동자가 커졌다.
‘천벌이 내려진 상태에서 내공을 사용할 수 있더니 이제는 그보다 더 강한 기운을 운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그건 아니었다.
천벌이 장난도 아니고.
어떻게 힘을 숨기겠나.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공격을 막아도 목숨을 잃을 상황이었다.
사형준의 손에서 발출된 장력이 안테로를 향해 날아왔다.
그는 장력을 향해 단검을 내리그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러 차례나 그어진 단검.
열양의 기운을 담은 장력이 잘리면서 소멸 되었다.
그것도 잠시.
또 다른 장력이 날아왔다.
안테로는 단검을 움직여 장력을 잘랐다.
여지없이 소멸 되는 기운.
별볼일 없어 보였으나.
안테로의 걸음이 막힌 지는 꽤 오래되고 있었다.
‘천벌이 내려졌는데 저렇게 많은 기운을 사용하면 제풀에 지쳐 쓰러질 텐데 멍청하군.’
하나 그는 오히려 사형준을 욕했다.
천벌은 신의 권능.
각성자의 능력을 제한하는 절대의 힘이었다.
내공을 계속 사용하면 기존의 소모값보다 훨씬 크게 작용할 터.
보다 빠르게 지쳐갈 것이다.
심지어 무리해서 공격한다면 지치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 사실을 알기에 안테로는 여유를 부렸다.
‘계속 그렇게 힘을 사용해라.’
사형준의 내공이 전부 동나기를 말이다.
시간은 점점 흘렀다.
사형준의 공격은 계속 됐다.
안테로도 여전히 장력을 단검으로 벴다
그럴수록.
‘이제 슬슬 힘이 부칠 법도 한데….’
의문이 들었다.
사형준의 내공이 다 떨어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장력을 발출하고 있는 게 아닌가.
기세는 전과 같았다.
아니, 점점 기운이 강해지고 있었다.
천벌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힘을 사용했다.
‘이상해. 단 한번도 이런 적은 없었어.’
시간이 흐를수록 의문은 점점 커졌다.
떨어져야 할 상대의 내공이 여전했다.
자신은 급해지고 상대는 여유로워하는 게 보였다.
‘신의 권능에 대항하는 힘이 있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다!’
안테로가 격하게 부정했다.
신의 힘은 절대적.
인간이 거스를 수 없었다.
“무슨 속임수를 쓰는지 몰라도 당장 끝내주겠다.”
안테로는 신의 힘을 부정하게 만든 사형준에게 격분했다.
장력이 날아오든가 말든가.
그의 몸이 빛에 감싸였다.
신성력이 온 사방을 비추었다.
빛이 안테로를 숨겨주는 듯.
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장력은 아무도 없는 바닥에 폭사했다.
쾅!
바닥이 터지면서 커다란 굉음을 일으켰다.
소음과 빛에 숨은 안테로가 사형준의 지근거리에 나타났다.
바로 코앞.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신께 속죄해라!”
안테로의 단검이 빠른 속도로 사형준의 단전으로 향했다.
그때 사형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꽤 강하기는 하다만 그 정도로는 사신가를 넘볼 수 없다.”
사형준의 주먹에는 푸른색의 기운이 맺혀 있었다.
무지막지한 기운에 안테로가 흠칫했다.
하지만 그는 천벌을 믿었기에 뻗은 손을 회수하지 않았다.
사형준의 단전을 향해 그대로 팔을 뻗는 순간.
퍽 소리와 함께 안테로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커헉!”
권강, 천룡격이었다.
청룡격이라고도 불리는 최강의 권법.
상대의 외부는 물론 내부의 뼈를 바스라트리는 잔혹한 무공이었다.
“안테로 님!”
“안테로 님을 지켜라!”
철의 사제들이 쓰러진 안테로를 둘러쌌다.
안테로가 가슴을 부여잡고 힘겹게 일어났다.
“크윽.”
“안테로 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그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신성력이 모이지 않는다. 어떤 류의 무공이길래 천벌도 통하지 않는단 말인가!’
안테로는 SS등급의 사제였다.
신의 스킬인 천벌도 있어서 자기보다 훨씬 강한 각성자도 제압이 가능했다.
그런데 상대는 천벌이 통하지 않은 각성자였다.
‘이대로 물러나야 하다니.’
처음으로 임무를 실패하는 안테로였다.
굴욕이었다.
신의 대리인은 절대 패배해서는 안 됐다.
대리인이 패배하는 건 신의 권위가 떨어지는 일이었으니까.
안테로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적들의 전력을 잘못 판단한듯싶다. 돌아가서 재정비를 한다.”
“정말입니까?”
“천벌이 내려졌는데 물러나다니.”
“대신관께서 아시는 날에는….”
“대신관께서도 사신가의 각성자가 천벌을 이겨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모든 건 내가 책임을 질 테니 뒤로 물러난다.”
안테로와 사제들이 후퇴하려고 하자.
“어딜 도망치려고?”
김봉팔과 무극단이 그들의 퇴로를 싹 막아버렸다.
“감히 신의 사도인 내 앞길을 막는 것이냐!”
“이 새끼 아직도 상황 파악 못 했나보네.”
“그러게 말이오.”
“오는건 마음대로 왔어도 돌아가는 건 마음대로 못하지.”
그들이 있는 곳은 사신가의 앞마당.
무극단 뿐만 아니라 청룡단, 백호단, 현무단이 모두 있는 곳이었다.
“사신가를 넘본 새끼들은 어떻게 되는지 톡톡히 알려줘야지. 안 그러냐 애들아?”
“사신가란 말이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게 만들어 줄 생각이오. 흐흐.”
김봉팔의 말이 무극단이 히죽거렸다.
* * *
바다가 보이는 신전.
대신관은 신전 앞에 놓인 거대한 석상 앞에 앉아 있었다.
“으음….”
그가 신음했다.
그러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가 감았던 눈을 떴다.
“안테로의 기운이 작아졌어… 철의 사제들도 그렇고.”
그들의 신의 사도들이다.
각성자 등급도 S~SS급.
신의 스킬도 있기 때문에 어디 가서 위험에 처할 이들이 아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알아봐라.”
“예 대신관님.”
그의 곁에 있던 사제가 몸을 돌리려는데.
“그럴 필요 없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신관 아비도스가 몸을 돌렸다.
그의 앞에 나타난 한 청년.
그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파천제!?”
“날 알면서 헛짓거리를 벌이고 있네.”
“네가 여긴 어떻게?”
“정말 몰라?”
대신관은 상당히 당황한 듯 보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명만 알지 날 잘 모르구만.”
여태 어떻게 적을 죽여왔는지.
자신을 잘 안다면 여기에 나타난 이유도 알 터.
하지만 대신관으로 보이는 자는 모르는 눈치였다.
이준은 적을 상대할 때 언제나 우두머리부터 노렸다.
우두머리만 죽이면 나머지는 오합지졸.
알아서 세력이 분해가 된다.
그랬기에 이번에도 우두머리를 노렸는데 반응이 어이가 없었다.
“이런 놈이 날 노렸다니 자존심이 팍 상하네.”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행동부터 나선 이들.
명백한 무시.
파천제에 대한 모욕이었다.
[천벌이란 스킬을 너무 믿었나 보군. 이준의 무공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생각지도 않은 모양이야.]
대신관과 사제들은 천벌을 너무도 믿었다.
신의 스킬이니 당연했다.
심지어 그들은 신을 절대적으로 믿는 자들.
천벌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천벌을 받은 각성자는 죄다 죽었을 터.
절대적인 믿음이 있을 만했다.
대신관은 놀란 눈으로 이준을 보다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비, 빙룡족까지?”
그토록 찾던 드래곤이 손수 이곳으로 온 것이다.
“대신관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넋을 잃고 있던 대신관이 정신을 차렸다.
“모든 사제를 이곳으로 집결시켜라.”
“예!”
잠시 후.
신전에 있던 모든 사제들이 모였다.
꽤 많은 숫자였다.
족히 2천 명은 넘은 것 같았다.
“이러니까 힐러가 부족하지.”
치유계 각성자는 그 숫자가 적었다.
희귀 직업.
등급이 낮아도 어디서나 대우를 받았다.
그만큼 게이트를 공략하는데 필수적인 직업이었다.
특히 저 사제들같이 등급이 높은 각성자는 더욱 값어치가 뛰어났다.
“이준! 신의 권능이 펼쳐지기 전에 공격해야 해.”
“늦었어.”
그리에스가 마력을 끌어올리려 했으나.
그녀의 발아래에 맺힌 마법진이 유리처럼 깨졌다.
“언제 천벌이 펼쳐진 거지?”
“우리가 나타났을 때부터.”
괜히 대신관이 아니었다.
당황한 듯 보였으나 할 건 다 했다.
물론 이준은 대신관이 천벌이란 스킬을 사용했다는 걸 알았지만.
일부러 내뒀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상관없는 스킬이었으니까.
오히려 천벌이란 스킬 때문에 본인들이 더욱 공포를 느낄 것이다.
“천벌이 내려졌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태연하다니. 세계 1위 각성자답구나.”
“내가 천벌을 무서워해야 할 이유라도 있나?”
“신의 권능을 무시하는 것이냐?”
“정말 궁금해서 그래. 그 천벌이 사부님보다 무서운지 말이야.”
이준의 말에 대신관 아비도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 얼굴이었다.
“됐고. 마무리나 짓자.”
이준의 오만한 태도에 아비도스가 분노를 드러냈다.
신의 권능을 모독한 것도 모자라.
사도인 자신들에게 대항하려는 게 아닌가.
“괘씸한 놈. 빙룡족을 넘겨주기만 하면 목숨은 살려두려 했거늘.”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네 힘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깨닫게 해주마.”
대신관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신성력이었다.
대신관답게 성스러운 기운을 무지막지하게 뿜어냈다.
특이한 건 그저 빛이 아닌.
쩌억!
신성력의 속성화였다.
대신관 주위로 철이 솟아났다.
마치 철을 소환한 마법사 같았다.
대신관뿐만 아니라 사제들 또한 철을 사용했다.
“아둔한 자에게 천벌을!”
“천벌을 내리소서!”
그와 함께 사제들이 소리쳤다.
이준과 그리에스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어깨를 짓눌렀다.
“흐읍!”
그리에스가 격렬하게 저항했다.
무릎을 안 굽히겠다는 듯.
안간힘을 써서 버티지만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니.
상대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무릎이 꺾이며 바닥에 닿으려는 찰나.
이준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용신족이라며. 왜 이렇게 약해?”
이준은 태연했다.
신성력의 압박을 안 받는 것처럼 보였다.
“네가… 이상한 거야….”
그녀가 힘겨워하자 이준이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후웅-
바람이 대신관과 사제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시, 신성력이!?”
“어떻게 된 일이야?”
“대신관님. 신성력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리에스를 압박하던 힘도 사라졌다.
그녀가 격한 숨을 내뱉었다.
“허억… 허억….”
“천벌이란 게 지독하긴 한가 보네.”
이준이 고개를 돌려 대신관을 바라보았다.
대신관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었다.
“네놈 짓이냐?”
이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대신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천벌을 내렸다.
“신을 능멸한 자에게 천벌을!”
이번엔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이준을 관통했다.
쩌어억!
그 빛은 강철이 되어서 이준을 감쌌다.
“어떠냐, 이것이 바로 신의 힘이라는 것이다. 하하하.”
아비도스가 크게 웃었다.
드디어 신의 힘이 먹힌 것.
그제야 안심이 됐다.
아비도스가 흐뭇해하고 있는데.
쾅-
굉음과 함께 강철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천벌이 내려졌음에도 멀쩡한 파천제에 아비도스가 입을 떡 벌렸다.
“마, 말도 안 된다. 천벌을 받았음에도 내, 내공을 사용하다니.”
아비도스가 다시 한번 천벌을 내리려 했지만.
그보다 이준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컥!”
이준의 손에 아비도스의 목이 움켜잡혔다.
“네 신한테 전해. 널 추앙하는 놈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올려보내겠다고. 날 건드렸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지불 해야지.”
이준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는 아비도스의 목을 가차없이 꺾었다.
우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아비도스가 절명했다.
그가 아비도스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에 닿은 사제들.
아비도스가 죽자 사제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