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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무공 천재-609화 (609/705)

외전 제3부 3화.

“음….”

여자 아이가 눈을 떴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들.

부담스러운 건지 아니면 모르는 사람이라 그런지.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뒤로 물러났다.

“누, 누구세요?”

여자아이는 이불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러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곳이 어딘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하늘에서 뚝 떨어지더니 기절했잖아.”

“아, 상처.”

여자아이가 이불을 걷더니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굉장히 비싼 치료 포션을 먹어서 괜찮을 거야.”

“정말… 이네….”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큰 상처를 입었었다.

한데 어느새 상처가 아물어 있는 게 아닌가.

고갈된 마력도 차오르고 있었다.

“이제 네가 누군지 말해줄래?”

그녀는 아직 경계를 풀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채 이준을 유심히 봤다.

“나 나쁜 사람 아니야. 기절한 널 구해주고 치료까지 해줬잖아.”

이준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옆에서 초를 쳤다.

[나쁜 놈은 자기가 나쁜 놈인지 모른다. 제 입으로 당당히 말하다니. 얼굴이 두껍군.]

삼두의 중얼거림에 파랑이게 빽 소리쳤다.

[주인님 나쁜 개새끼 아니야!]

[너한테 그런 말을 가르친 게 나쁜 놈이라는 증거다.]

[아니라구! 나쁜 개새끼는 삼두야, 이 똥멍충아!]

틈만 나면 싸우는 두 녀석 때문에 이준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아.”

그리곤 포탈을 열었다.

“너흰 금역으로 가 있어.”

[싫어! 주인님이 옆에 있을 거야.]

[감히 나 지옥의 수문장을 하찮은 게이트로 보내려는 것이냐. 이 치욕 반드시 갚아주겠다.]

“가라.”

[싫어어어어!]

[칫. 안 먹히는군. 다음에는 다른 대사를 준비해야겠어.]

사라지면서도 진상짓을 하는 파랑이와 삼두였다.

포탈이 닫히자 조용해졌다.

“이제 좀 낫네. 시끄러웠지?”

“…이준.”

“어? 날 알아? 아까는 모르는 표정이었는데.”

“당황해서….”

“날 어떻게 아는 거야?”

“오랫동안 지켜봤어.”

“왜?”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래곤의 신.

용신족이 왜 자신을 지켜봤을까.

무엇 때문에?

“난 그리에스 에스터. 빙룡왕의 딸이야.”

더 이해가 안 됐다.

푸른 군주의 딸이면 하이 드래곤 중에서도 최상위 포식자가 아닐까.

그런데 큰 상처를 입고 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건지.

그녀가 말할 때까지 궁금증을 참고 기다렸다.

“내가 인계로 온 이유는… 이준 널 찾으러 왔어.”

“나?”

“응. 네가 필요해.”

“왜?”

“네가 흑룡왕의 기운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준은 그리에스 에스터를 빤히 보았다.

멀뚱멀뚱.

그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내가 왜 필요한지 자세히 말을 해줘야 이해하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처음부터 싹 말해봐.”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네가 필요해’이러면 누가 알겠다 하고 도와주겠나.

이해되게끔 말해야 생각해 보고 도와주는 걸 결정하지 않을까.

이준의 말에 그리에스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어느 날 내 아버지인 빙룡왕과 함께 다른 용군주도 눈을 떴어. 오랜 세월 잠만 청하던 분들이 말이야. 그런데 딱 한 분만이 소식이 없었어.”

“흑룡왕?”

“응. 그분은 우리가 인계에 살 때도, 용계에서 다시 태어날 때도 드래곤의 왕이셨던 분이야.”

처음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란투스 대륙에 살때도 영역 다툼은 종종 있었으나.

검은 군주, 흑룡왕이 나타나면 싸움을 멈췄다.

그는 태초의 드래곤.

모든 드래곤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허나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흑룡왕은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용계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용계의 비어있는 왕좌.

대군주의 자리가 계속 비어 있었다.

“우리 빙룡족은 흑룡왕의 흔적을 찾았지만 흑룡족과 백룡족, 녹룡족은 달랐어. 오히려 흑룡왕이 안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야.”

“응? 다른 종족은 몰라도 흑룡족은 흑룡왕을 받들지 않아?”

“흑룡왕은 흉포하고 흑룡족을 공포로 다스렸어. 말을 안 듣는 흑룡족이 있으면 가차 없이 죽이셨지. 그래서 흑룡족은 흑룡왕이 안 나타나길 바랄 거야.”

이준은 그리에스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사부님하고 닮은 마법서를 가지고 오셨네요.’

[고독한 존재는 같은 과를 알아보는 법. 하나 명심하거라. 아무리 흑룡왕이라도 이 사부는 이길 수 없니라. 크흠.]

이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틈만 나면 자기 자랑.

지겹지도 않나.

사모하는 여자분한테나 자신 있게 좀 하지.

맨날 제자 앞에서 폼을 잡는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졌어.”

“설마 흑룡왕을 찾는 빙룡족을 공격한 거야?”

“맞아. 세 종족이 손을 잡고 우리 빙룡족을 공격했어. 결과는….”

“안 봐도 뻔하네. 넌 간신히 살아서 도망쳤겠지.”

그리에스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불을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게 보였다.

“도망친 널 잡으러 오려나?”

“인계로는 오지 못할 거야. 용신족은 인계 밖으로 못 나와.”

“어째서?”

“흑룡왕의 계약 때문이야. 내가 아까 말했지? 흑룡왕은 힘으로 흑룡족을 눌렀다고. 다른 종족도 마찬가지야. 그분은 용신족으로 인해 세상이 어지럽혀지는 걸 원하지 않으셨어.”

드래곤이다.

그것도 하이 드래곤.

절대종인 파랑이가 무서워하는 종족.

이 하나만으로 엄청 강하다는 걸 증명했다.

만약 용신족이 인계로 온다면 어떻게 될까.

카오스 몬스터가 균열 밖으로 나온 것보다 훨씬 더 큰 재앙이 일어날 터다.

용계는 4대 신계처럼 제약을 받지 않았다.

중간계이면서도 그 윗줄에 있는 층계.

굉장히 자유로운 층계라 언제든 인계에 나타날 수 있었다.

그동안 용신족이 인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

흑룡왕이 용신족을 용계에 묶어 놨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 아닌가.”

“흑룡왕이 걸어놓은 결계가 깨지려 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필요하다는 거였네. 하지만 늦었는데… 난 검은 군주의 마력을 잃어버렸어.”

“뭐!?”

그리에스 에스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태사부 되시는 분이 마력을 걷어가셨거든.”

“그럴 수가! 네 안에는 분명 흑룡왕의 기운이 깃들어 있어.”

“이걸 말하는 건가?”

이준은 손을 활짝 편 채 기운을 모았다.

사신기의 내기가 손바닥에 회오리치며 몰려들었다.

“이게 흑룡왕의 기운이야!”

“미안하지만 이건 사신기로 만들어낸 내기야. 예전에 마력하고 섞여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닐까?”

그리에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이준 또한 쓰게 웃었다.

마력이 사라지기 전이었다면 몰라도 현재는 마력이 전무한 상태.

그리에스가 한발 늦었다고 생각했다.

* * *

“믿을 수 없어….”

다음 날 아침까지 그리에스는 현실을 부정했다.

검은 군주, 흑룡왕의 기운만이 용계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한데 믿었던 인간은 흑룡왕의 기운이 없어졌단다.

마지막 희망까지 무너진 것이다.

“너무 그렇게 안타까워 하지마.”

이준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자 삼두가 파랑이에게 작게 속삭였다.

[전혀 위로가 안 되는 것 같지?]

[응. 진심이 안 느껴져.]

[이번에는 나와 같은 생각이군.]

[주인님 MBTI가 ISTP라 그럴 거야.]

[요즘 인계에서 유행하는 성격 테스트 말이냐. 나도 잘 알지. ISTP가 공감능력이 그렇게 안 좋다며.]

[헐. 삼두도 알아? 너 개꼰대라 모를 줄 알았는데.]

[어린 것들한테 뒤처지지 않으려면 트렌드를 잘 파악해야 한다. 내가 지옥의 수문장을 억겁 동안 한 이유기도 하지. 크크.]

금역에 하루 가둬놨더니 둘이 동맹이라도 맺었나.

팩트로 두드리고 있었다.

“너희 다시 금역으로 가고 싶어?”

[헙! 난 아무 말 안 했어. 삼두가 주인님 공감 제로래.]

[방금전까지 좋았잖아 이 새끼야. 바로 배신이냐.]

파랑이가 이준의 주머니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네가 문제야. 조용히 안 있으면 확 버려버린다.”

[천만 애견인들이 화날 소리다. 감히 나를 버린다고 하다니!]

“자기가 스스로 애완견이라 인정하네. 으구 삼두야 위신 좀 지켜라. 명색에 지옥의 수문장이라는 녀석이.”

오늘도 동네북이 된 녀석.

삼두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내 언제고 너희 두 놈을 지옥계로 데려가고 말겠다.]

“네 속마음 다 들린다.”

삼두는 모른 척하며 꼬리를 살랑였다.

세 개의 머리에 작은 몸.

자칫 징그러워 보일 수 있으나.

삼두는 파랑이만큼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게 생겼다.

별개로 이준은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삼두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이제 어쩔 거야? 다시 돌아갈 수도 없잖아.”

“모르겠어….”

그리에스가 희망을 잃은 얼굴로 말했다.

돌아갈 집도 없고, 목표도 없는 그녀.

이준이 난감해하고 있을 때 삼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데리고 있으면 되지 않나.]

“내가 왜?”

[쓰러진 여자아이를 주운 건 너니까. 먼저 주운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있지.]

“그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니라고.”

[아무튼 사신가에 빈방은 많이 있을 거 아니냐. 그리고 너 요즘 한가하지 않나. 학교도 안 나가고 맨날 빈둥빈둥 놀고 있는 걸 모를 줄 알아?]

“너 갑자기 똑똑하다?”

이준의 말에 삼두가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평소에 날 어떻게 본 것이냐!]

파랑이랑 싸울 때 보면 지능의 의심스러울 정도로 낮았다.

한데 자신을 볼 때는 정확하지 않나.

‘지능이 오락가락하는 게 분명해.’

이준은 삼두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내 그리에스를 향해 말했다.

“갈 곳 없으면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낼래?”

“….”

“여기서 멍하니 있어봤자 해결되는 건 없어. 우리 집에서 천천히 해결책을 찾아봐.”

“네 기운을 다시 보여줘.”

“몇 번을 봐도 똑같아.”

[이준을 따라다니면서 어떤 기운을 가졌는지 파악해보든지.]

삼두의 말에 그리에스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아직 포기하긴 일러.”

삶의 희망을 잃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목표가 생기니 활기가 돈 거다.

“널 따라갈래.”

“날 귀찮게만 하지 마.”

“염려 안 해도 돼. 옆에서 관찰만 할게.”

[크크.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삼두가 음흉하게 웃었다.

이준의 옆에는 여자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녀석은 고자라도 된 건지.

여자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무공에 대한 탐구뿐.

오죽하면 신선제도 무공 수련 시간을 줄이라고까지 하겠나.

혼원문의 대가 끊길지 모르겠다며 탄식까지 했다.

이준의 이런 행동 때문에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에게 호감 있는 여자들끼리의 견제.

여기에 한 명이 더 추가될 예정이었다.

평화로운 요즘 삼두의 재밋거리 중 하나였다.

치정이야말로 가장 재밌는 일이었으니까.

삼두의 음흉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준은 암상에서 할 일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갔다.

* * *

“오늘 강의는 여기서 끝낼게요. 다음 주에 비무 시험 있는 거 알죠? 준비 열심히 해오세요.”

“네!”

박정연이 강의를 끝냈다.

그녀는 요즘 저기압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이준 님 학교에 안 나오시나?”

“나 오늘 정말 예쁘게 하고 왔는데.”

“이년아. 그런다고 이준 님이 널 볼 것 같아?”

“넌 더 어림없어.”

학생들이 강의에 집중하지 않았다.

다른 곳에 시선이 팔려 있었다.

세계 랭킹 1위이자, 사신가의 가주인 이준.

각사학의 모든 여자가 이준을 만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안 그래도 이준의 애매한 태도에 짜증 난 상태.

여학생의 관심까지 몰리니.

신경이 예민해졌다.

마음이 이렇게 속 좁았나 싶었다.

“야. 박정연.”

그때 박혁진이 그녀를 불렀다.

“저 새끼가 뒤지려고.”

“뭐냐 이 저기압. 살인 나기 일보 직전인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렀으면 넌 죽었다.”

박혁진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거리를 벌리고 있는 것.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했다.

“그게 말이야….”

“어물쩡거리지 말고 말해라.”

“학교에 준이가 왔는데.”

“준이가 왔어? 언제?”

저기압이던 박정연이 환하게 웃었다.

그녀가 미소 짓자 주변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 밝은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옆에 장난 아니게 예쁜 여자랑 함께야.”

파직-

그녀의 몸에서 뇌전이 흘렀다.

번쩍임과 동시에 박정연이 사라졌다.

“아이고 준아. 너 때문에 내 수명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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