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4화
곧장 권능이 발휘 되었다.
주경아를 속박하던 쇠사슬이 풀렸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책상에 펼쳐 놓은 책 속의 글자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도 자신에게 변화가 있다는 걸 느꼈을까.
어리둥절해 했다.
그것도 잠시.
속박이 풀리자 곧장 설극을 향해 쇄도했다.
쾅!
주경아의 장력이 설극의 복부에 박혔다.
그 힘에 의해 설극이 염라전의 기둥을 부수고 뒤로 나뒹굴었다.
설극이었다면 당연히 막을 수 있는 공격.
하나 그는 방어도 하지 않은 채 장력을 고스란히 맞아주었다.
주경아가 버럭 소리쳤다.
“왜 막지 않은 거에요!”
설극이 입에서 흐르는 피를 손목으로 닦으며 말했다.
“경아… 이제 그만해.”
“뭘 그만해요! 당신으로 인해 전 모든 것을 잃었어요!”
주경아가 악에 받쳐 외쳤다.
그동안 참았던 울분을 토해내는 듯 보였다.
“내가 잘못했어. 오해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설극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제대로 알고 행동했더라면.
백무생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다 죽여놓고 이제와서 잘못을 빌면 모든 게 해결될거라고 생각했나요?”
그녀는 설극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날 용서하지 않고 싶다면 그래도 좋아. 하지만 널 망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마.”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 이젠 제 지아비도 아니잖아요.”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설극과 주경아였다.
그때 천극자가 나섰다.
“네 마음을 이해한다.”
“아니요! 이해하지 못하세요.”
“태어나지 못한 아이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고 산 게 아니냐.”
“저 사람에 대한 복수심 중 하나에 불과해요.”
“네 마음을 속이지 말거라. 그 아이가 태어나지 못한 건 그만 잊는 게 어떠하냐.”
“그럴 수 없어요.”
주경아는 여전히 단호했다.
“네 죽은 아이가 환생했다해도?”
“…무슨 말이죠?”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천극자의 말을 정확히 들었음에도 다시 한번 물었다.
“말 그대로이니라. 환생말이다.”
“제 아이가 현재 환생해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다. 염라대왕에게 물어보거라.”
그녀의 시선이 염라대왕에게로 옮겨졌다.
염라대왕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천극자 말이 맞다. 태어나지 못한 아이가 현재 인계에 환생해 있다.”
“거짓말!”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버럭 소리쳤다.
“염왕인 내가 왜 네게 거짓말을 한단 말이냐.”
“모두 한통속이야! 날 속이고 있어.”
“어찌해야 믿겠느냐.”
천극자의 말에 주경아가 표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제 아이가 환생했다는 증거를 보여주세요.”
“그거야 쉽지.”
염라대왕이 직인인장으로 책상을 툭툭쳤다.
대전 중앙.
거대한 거울이 생겨나며 인계를 보여 주고 있었다.
좀 전까지 주경아가 있었던 장소였다.
거울에는 이준의 모습이 비추었다.
“이 거울은 전생경이다. 인간의 전생을 보여주는 거울이지.”
탕.
염라대왕의 직인인장이 책상을 때렸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거울 안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서서히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
거울 안의 주경아는 자신의 배를 조심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서 그런지. 네가 임신한 모습밖에 보이지 않구나.”
전생경이 주경아에게서 다시 이준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당신의 무공을 익힌 각성자인데….”
“경아… 준이가 우리의 아이래. 염라대왕이 가엾게 여겨 환생을 시켜준 거야.”
주경아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그러더니 몸이 옆으로 휘청였다.
“경아!”
“오지… 마세요.”
주경아가 팔을 뻗으며 달려오려는 설극을 막았다.
“믿을 수 없어….”
“못 믿겠다면 다른 한 사람을 더 보여주겠다. 염라대왕. 준이의 맞은편에 있는 마족을 보여주시게.”
“그놈은 왜?”
염라대왕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족은 마계 소속.
전생경에 과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보면 알 것이네.”
염라대왕이 전생경에 알제스 루퍼를 비추었다.
마족의 군주답게 전생경에는 과거의 모습이 비춰지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대로였다.
“아무런 변화도 없지 않나.”
“아니네. 전생경이 잠시 혼란이 와서 작동이 느렸을 뿐이야. 보시게.”
전생경의 화면이 일그러지면서 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생경을 보고 있는 설극과 주경아가 동시에 소리쳤다.
“백무생!”
“백무생!?”
“비극을 일으킨 원흉이 마족으로 둔갑해 있다.”
“저놈이 어찌?”
염라대왕조차 놀라는 얼굴이었다.
지옥 명부에서 사라진 망자 중 한 명.
계속 찾았으나 어딘가로 증발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계의 짓이 아닐까 하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마왕은 필요하지만, 인재는 없고, 그렇다고 다른 가문에 양보하자니 배는 아프고 말이야.”
마계에서 가장 마왕을 많이 배출한 가문은 오만.
루퍼 가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루퍼 가문이 타 가문에게 마왕의 자리를 뺏기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루퍼 가문의 가주의 몸이 안 좋아지기까지.
여러 악재가 겹쳤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게 흑마법.
마계에서조차 금지된 흑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마법이었다.
뛰어난 인계의 사람을 불러 자신의 몸에 영혼을 가두는 일.
그리고 그 영혼의 생명을 천천히 흡수하는 거였다.
인과율을 어기는 일이나.
마계가 지옥계를 생각이라도 할까.
오히려 질서가 어지럽히는 걸 즐기는 마계였다.
“흑마법으로 인간을 끌여들었는데 도리어 당한 거라고 보면 되겠군.”
“난 그리 생각하고 있네.”
백무생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무공, 명예, 부, 여자 등등등.
이런 탐욕이 도리어 백무생의 영혼을 강하게 만든 게 아닐까.
그래서 알제스 루퍼의 몸을 차지했다고 생각하는 천극자였다.
“옛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
“저 자를 죽여야겠습니다.”
설극이 살기를 토해냈다.
이 모든 게 백무생때문에 벌어진 일.
제 손으로 죽였지만 백무생을 다시 보니 살의가 치솟았다.
“이젠 저 아이에게 맡겨 보거라.”
천극자는 이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 * *
이준은 알제스 루퍼를 향해 투기를 뿜어냈다.
‘사부님의 원수.’
절대 살려둬선 안 됐다.
가장 고통스럽고 처참하게 죽여야 한다.
원한은 백배로 돌려줘야한다는 게 무극자 사부의 가르침이었으니까.
이준은 알제스 루퍼, 아니 백무생에게 쇄도하기 전에 몸을 점검했다.
‘마치 새로 태어난 느낌이야.’
몸이 전보다도 가벼워졌다.
속에 쌓여있는 노폐물이 하나도 없는 듯했다.
무엇보다 혼원신공이 달라져 있었다.
마의 완성체라고나 할까.
심연 밑바닥에 존재하는 어둠이었다.
이준은 상태창을 띄웠다.
[기본 정보]
칭호: 파천제
이름: 이준
나이: 21
잠재력: 등급 외(자연경 끝자락)
고유 스킬: +진천사신무(ex)
일반 스킬: 무.
특성: 무공천재(ex), 4대 성지 금역의 주인(ex), 마신지체(SSS)
[능력치]
체력: MAX
신체: MAX
힘: MAX
민첩: MAX
-특수항목-
내공: MAX
정신력: MAX
명성: MAX(파천자)
우호도: 사대성지(친밀), 금역의 몬스터(절대적인 복종)
-상태-
전투력 모든 속성 친화력, 마기 저항력, 모든 속성 저항력, 내공회복력, 무공이해도 - MAX
*사대 기보 세트(4/4)
[주(朱) 각성]
흑염(S) 사용 가능
[현(玄) 각성]
모든 속성 저항력 +1000%
[청(靑) 각성]
흑뢰(S)
모든 속성 공격력 +1000%
[백(白) 각성]
혼력 상승
모든 속성 숙련도 MAX
‘와.’
상태창이 미쳤다.
모든 게 다 맥스 상태.
더는 능력치를 올릴 수 없었다.
무공이나 특성 또한 간소화 됐다.
어지럽던 상태창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이제 기본 무공은 사용하지 못하나?’
다른 건 몰라도 모투술이나 흡성공은 정말 유용하게 사용했다.
적을 죽여 기억을 얻는 사기적인 스킬.
구천옥의 죄인을 죽일 때 정말 요긴하게 써먹었다.
아쉬웠던 나머지 모투술을 사용했던 기억대로 혼원신공을 끌어올리는데.
“억!”
수많은 이들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물밀듯 들어왔다.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려는데 하나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특성 ‘무공천재’가 발동했습니다.]
간단한 메시지였다.
이준은 손가락을 움직여 무공천재 특성을 눌렀다.
[무공천재]
등급: ex
설명: 세상의 모든 무공을 계승받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효과: 사신문의 무공을 제외한 모든 무공을 숙련도 MAX 상태로 사용 가능.
‘이래서 모투술이 사용됐구나’
그 어떤 특성보다 사기적이었다.
계승을 받지 않고도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이점이다.
“이젠 굳이 상태창을 열지 않아도 되겠다.”
능력치도 맥스.
몬스터의 우호도도 맥스.
게이트도 맥스.
무공도 맥스.
더는 얻을 게 없었다.
점검을 끝낸 이준이 백무생에게로 걸어갔다.
“무림맹주였던 자가 왜 마족의 모습을 하고 있데?”
“무슨 헛소리냐.”
“모른 척 하기는. 네가 백무생이라는 걸 태사부님께 다 들었어.”
“태사부?”
백무생이 반문해왔다.
사부의 스승이 된 자에게 붙여진 호칭이었다.
“네 사부가 누구냐. 설마 설극은 아니겠지?”
“맞아. 근데 왜 이름으로 부르고 지랄이냐. 사부한테 한주먹거리도 안 됐으면서 님자를 붙이라고.”
“그럼 주경아와 함께 없어진 자가 설극의 사부란 말이냐!?”
백무생이 기겁했다.
어쩐지 주경아를 그리 쉽게 잡는다고 했더니.
설극의 사부라면 이해가 갔다.
제 할 일을 끝내고 주경아와 함께 사라진 걸 보면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예측이 가능했다.
“설극의 사부가 사자의 일을 하고 있다니….”
백무생은 크나큰 착각을 했다.
설극의 사부가 구천옥을 탈출한 주경아를 잡으러 왔다고 말이다.
신계에서 파천혈신을 요주의 인물로 보는데.
그의 사부란 자가 고작 사자의 일을 할까.
백무생은 천극자가 전대의 신선제였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백무생의 중얼거림에 이준이 욕을 했다.
“병신인가. 어떻게 저 머리로 무림맹주를 했지?”
저 혼자 착각하고 있는 백무생이 멍청이로 보였다.
“감히 날 능멸하는 것이냐.”
“응. 널 능멸하는 건데요? 자신 있으면 들어오든가.”
천살성 왕휘의 기운이 없어져서 그런가.
이준은 굉장히 도발적인 말투를 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의 도발에 백무생이 눈알을 굴렸다.
‘저 버저리 같은 놈을 죽여 무공을 뺏을 수만 있다면!’
그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혹여나 있을 설극의 사부라는 존재 때문에.
요리조리 눈알을 돌리고 있는데 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사부님이라면 안 계셔. 지옥계로 가셨으니까 걱정 말고 들어와.”
이준이 백무생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이준의 행동에 백무생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오만방자한 놈.”
한참이나 어린.
그것도 신계에 속한 이들이 아닌 인계의 인간에게 모욕을 당했다.
절대 참을 수 없었으나.
‘선계와 지옥계 놈들은 모두 죽일 수 있지만 저놈이 문제다.’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도발하고 있는 이준.
지금 당장 찢어 죽이고 싶지만 불가능했다.
내상을 입어 이준을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참 의심 많은 사람이네. 아니면 약속해줘? 일대일로 떠서 내가 져도 널 건드리지 않기로?”
“그러하겠느냐.”
“겁나 조심성 있네. 들었죠? 제가 지면 저놈 건드리지 마세요.”
이준은 연아린을 향해 말했다.
“됐지? 이제 뜰까?”
“후회하지 말거라.”
“나한테 그렇게 말했던 놈들 죄다 지옥으로 떨어졌어, 병신아.”
쾅-
이준이 땅을 박차며 알제스 루퍼.
백무생에게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