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무공 천재-594화 (594/705)

제577화

“우선 더 지켜보거라.”

“하지만 준이가 위험합니다.”

“그리 나약하게 가르쳤느냐?”

“그건 아니지만, 상대는 마왕이 된 경아 입니다. 완전한 상태에서도 상대하기 버거울 텐데 치명상을 당한 상태로는 그녀를 상대하지 못합니다. 잘못하다가는 경아의 손에 준이가 죽을 겁니다.”

무극자도 할 말을 다 했다.

사부가 어려웠으나 이준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사부의 눈치를 보다가는 제자가 죽을 판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천극자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이준 혼자라면 몰라도 그 안에는 천살성이 있었다.

현재는 천살성이 안 깨어난 상황.

이준에게 힘을 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 천살성이 깨어난다면 모든 게 달라질 터.

아깝게 왕의 권한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어허! 이 사부가 못 미더우냐.”

“아닙니다.”

눈을 감은 채 근엄한 목소리로 말하는 천극자였다.

“그럼 믿고 기다려 보거라. 극이 네가 제대로 키웠다면 이대로 죽진 않을 것이니라.”

천극자의 말에 무극자의 시선이 호숫가에 고정됐다.

물에 비치는 이준의 모습.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구천옥에 계시던 사부님이 나타나셨다. 마치 내가 강림할 것을 알기라도 하신 듯 막으셨어.’

사부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이준이 안 죽는다는 걸 어찌 저렇게 확신할까.

그럼에도 불안했다.

이준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사부의 얼굴을 보았다.

‘왜 슬픈 얼굴을 하고 계십니까 사부님.’

천극자 사부는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직 제자인 자신만이 사부의 마음을 알아채는 게 가능했다.

온화한 얼굴 속에 숨겨진 슬픔.

아픔이기도 했다.

사부의 시선은 이준에게로 꽂혀 있었다.

‘내가 준이를 바라볼 때의 감정이 느껴져.’

이준이 자신에 대한 비밀을 알기 전.

자신이 이준에게 보냈던 눈빛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준이를 보시는 겁니까.’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

천극자 사부의 슬픈 얼굴이 말을 못하게 했다.

“극아.”

천극자의 자애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네 사부님.”

“이 사부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뜬금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사부의 표정은 진심이 가득했다.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아이를 찾았는데 예전의 결과를 반복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

“물론… 입니다.”

“이 사부와 다시 한번 약속하거라.”

“무엇을 말입니까?”

“왕의 권한은 꼭 주경아를 위해서 쓰겠다고 말이다.”

천극자가 고개를 돌려 무극자의 눈을 보았다.

슬픔과 아픔이 담겨 있으면서도 굳건한 눈빛이었다.

무너지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였다.

“사부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없다. 그저 극이 네가 이제는 행복했으면 하면 바람뿐이다.”

“사부님…”

무극자는 가슴이 먹먹했다.

신선제가 되어도 천극자 사부는 오직 자신뿐이었다.

이런 사부가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어서 약속을 하거라.”

무극자는 호숫물에 비치는 이준과 천극자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말했다.

“사부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절대 어기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그러면 됐다.”

천극자가 걸음을 옮겼다.

그는 제 자리인양 너무도 당연하게 신선제의 자리에 털썩 앉았다.

“지옥계에서 신선계로 넘어오니 피곤하구나. 잠시 눈을 감으마.”

30초도 되지 않아 천극자가 노곤한 숨소리를 내쉬었다.

무극자는 천극자의 밑으로 가서 앉았다.

그 모습에 신선들이 경악했다.

“저, 전대 신선제님!”

“신선제의 사, 사부가 전대 신선제였다니!”

“믿기지 않아….”

신선들은 숨조차 죽이며 조용히 했다.

사라졌던 전대 신선제가 나타난 것도 기겁할 노릇인데 그의 제자가 현 신선제이니.

신선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법도 했다.

* * *

이준과 주경아에게서 벗어난 알제스 루퍼가 비릿하게 웃었다.

‘저놈이 죽어야 내가 설극의 무공을 흡수할 수 있지.’

그는 군주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었다.

오만의 군주가 마왕을 가장 많이 배출했던 이유.

가문의 심처에 보관된 하나의 흑마력 때문이었다.

이 흑마력은 그의 가문에서 이렇게 불렸다.

오만의 심장.

이게 있어야만 진정한 오만의 군주가 탄생한다.

만약 오만의 심장을 얻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군주밖에 되지 못한다.

알제스 루퍼는 오만의 심장을 얻은 군주였다.

그 때문에 마계 가문들의 위에 있는 것.

그리고 이준의 무공을 탐낼 수 있었던 것도 오만의 심장이 있어서였다.

오만의 심장에는 탐욕의 흑마력이 있었다.

오만의 심장에 기억된 건 무엇이든 따라 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

무공이든, 마력이든, 흑마력이든.

군주의 고유 기술이라도 훔칠 수 있었다.

하물며 설극의 무공을 훔치지 못하겠나.

당연히 얻을 거라 믿었다.

‘빨리 그 녀석을 죽여라.’

알제스 루퍼의 신경은 온통 주경아와 이준에게 가 있었다.

자신을 죽였던 무공을 얻는다는 희열이 머릿속을 지배했으니까.

그때였다.

“오만, 가만히 서서 뭐 하는 거죠? 제가 명령을 내렸을 텐데요.”

주경아의 외침에 알제스 루퍼가 정신을 차렸다.

“지금 각성을 시키려는 찰나였습니다.”

그가 주경아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비굴할 정도의 모습.

마왕에게 절대복종하는 군주의 행동이었다.

‘개 같은 년. 너 또한 저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왕의 권한을 사용한 주경아였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모를까.

만약 패배하면 모든 감당은 그녀가 해야 할 터다.

그녀는 뒷감당을 시키기 위한 존재였다.

왕의 권한을 사용해도 돌아오는 제약이 없더라면 그녀를 애초에 마왕자리에 앉히지도 않았을 거다.

하나 승패와 상관없이 제약이 가해지는 게 바로 왕의 권한.

그녀의 몸에 나타난 문신이 바로 그 증거였다.

‘쓸모를 다하고 사라져라. 널 대신해 내가 잘 이끌어 주겠다.’

피부에 새겨진 검은색의 실선들.

그 실선은 그녀의 온몸을 덮고 있었다.

얼굴까지 뒤덮은 상태.

왕의 권한을 실행하는 힘을 주는 대신 그녀의 이성을 차츰차츰 갉아 먹었다.

그녀의 동공이 검게 변한 것도 그 때문.

말투는 여전하나 어딘지 모르게 더욱 싸늘해졌다.

“크크. 모든 게 내 뜻대로 진행되고 있구나.”

알제스 루퍼가 자신만 들리게끔 중얼거리며 흑마력을 뿜어냈다.

신선들과 야차, 나찰에게 던져 줬던 마계 군단을 일깨웠다.

“종들은 들어라. 마왕께서 너희와 함께할지니. 어둠 속에 자고 있던 악마를 일깨우거라!”

알제스 루퍼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의 흑마력이 죽은 마족에게 흘러 들어갔다.

죽었던 마족이 꿈틀거렸다.

“무, 뭐야!?”

“분명 심장이 멎었는데!”

“저 많은 놈들이 되살아난다고?”

신선들의 눈이 커졌다.

마족만이 아닌 몬스터 전부가 일어나는 게 아닌가.

놈들은 전보다 한층 더 강해져 있었다.

“모두… 진을 이루세요.”

연아린이 신선들을 향해 외쳤다.

“설마 오행진을 말하는 겁니까?”

“군주도 아닌 놈들을 향해 오행진이라니.”

신선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이었다.

최고위 신선뿐만 아니라 하위 신선도 열 명의 마족은 상대할 수 있을 정도.

그만큼 무력에서 차이가 났다.

그런 그들에게 진법을 이루라고 했다.

자존심이 무척 상할 일이었다.

특히 그들이 펼치는 오행진은 각성자의 오행진과는 차원이 달랐다.

각성자의 오행진은 흉내만 내는 거라면.

신선들의 오행진은 근본 그 자체였다.

그들은 살아생전 구파일방의 전설들이었으니까.

전설들이 펼치는 진법이다.

파괴력은 엄청났다.

그래서 난적이 아니면 합격진을 잘 이루지 않았다.

“죽기 싫으면 진을 이루세요.”

연아린의 말이었다.

그녀의 자존심은 그들 못지 않았다.

아니, 무척 셌다.

최상위급 신선들이 죽기 전에도 그들과 말싸움할 때 한 치도 밀리지 않은 게 그녀였다.

무엇보다 오만하기까지.

그녀는 최상위 신선들의 무공을 깎아 내리기까지 했다.

그만큼 자존심이 강했는데…

“아니면 그냥 죽던가.”

캬아아아!

우리의 앞길을 막은 놈들은 살점을 하나하나 파먹어라!

좀비처럼 일어난 마계 군단이 일제히 마기를 터트렸다.

족히 1만은 넘어 보이는 이들의 기운이었다.

신선들도 위협을 느꼈다.

“공기가… 바뀌었어.”

연아린이 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눈에는 주경아와 이준이 들어왔다.

“저기로 가야 하는데….”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없었다.

이 많은 적을 뚫고 가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균열까지 먹은 몬스터는 이전과 다른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꽤 고전하겠어.”

그렇다고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은 연아린이었다.

마계 군단에게 죽는다면 최상위 신선으로서 체면이 안 서지 않을까.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이곳에서 죽을 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뇌가의 무공을 너희 마계에 똑똑히 새겨주마.”

그녀는 신선들과 함께 적에게 쇄도했다.

* * *

신선과 마계 군단이 치열한 싸움을 펼치고 있을 때.

한쪽에선 일방적인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컥!”

주경아의 마기가 이준의 복부를 때렸다.

“끈질기구나.”

만신창이가 된 그가 힘겹게 일어났다.

내부에선 독기가 가득 퍼지고 있는 상황.

혼원신공으로 막는 것만도 버거웠다.

그런데 외부에서 충격을 받으니.

독기가 탄력을 받아 내부를 휘젓고 다녔다.

“기습만 아니었어도….”

통탄스러웠다.

천살성의 힘을 빌려 주경아를 몰아붙였다.

아주 간발의 차이긴 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우위에 섰다.

주도권을 완전히 잡으려는 순간.

암습을 당하고 말았다.

암습만 아니라면 지금 고전하고 있는 사람은 주경아일 것이다.

“수하가 안 끼어들었어도 너는 내게 이기지 못해.”

퍽-

그녀가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채찍이 된 마기가 이준의 몸을 후려쳤다.

이준이 뒤로 내동댕이 쳐졌다.

“쿨럭쿨럭!”

그의 입에서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독이 얼마나 지독했으면 피가 바닥을 녹이기까지 하나.

마계의 마족.

신계에서 사용하는 독이다.

인간이 중독되고도 버티는 게 용했다.

“빌어…먹을 눈이 가물가물 하…네….”

앞이 흐렸다.

주경아의 형체만 보일 뿐.

정확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공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체력도 한계였다.

천살성의 강한 힘은 몸에 많은 무리가 갔으니까.

손의 떨림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려줬다.

“X발… 모두의 믿음을 저…버렸네….”

무극자 사부와 천살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 사람에게 주경아를 이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이 당해버렸다.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죽을 때가 다된 모양이구나.”

주경아가 손을 뻗었다.

이에 이준의 몸이 그녀의 손으로 빨려들어왔다.

그녀의 손에 잡힌 이준의 목이 잡혔다.

“큭.”

“네가 설극, 그자의 무공을 어떻게 계승 한지는 모르지만 그자와 연관됐으니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주겠다.”

주경아의 검은 눈동자가 번쩍였다.

그러자 그녀의 손을 타고 이준의 기운이 빨려 들어갔다.

같은 마기였다.

원래라면 이준의 무극기가 그녀의 기운을 먹어치웠을 테지만.

이준이 한계에 부딪혀서 그런지.

무극기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크으윽….”

그가 고통스러워했다.

발버둥 치는 것도 무리.

몸을 축 늘어트린 채 신음만을 내뱉었다.

반면 주경아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너… 엄청난 기운을 가지고 있었구나!”

너무도 강력하고 파멸적인 기운에 그녀는 더욱 흡공에 박차를 가했다.

이준의 기운이 바닥날 때쯤이었다.

그의 몸, 깊은 구석에서 대해가 나타났다.

“설마!?”

그녀는 이준의 몸속에 숨어 있던 기운을 곧바로 알아챘다.

지금이라도 죽이면 이 무시무시한 기운이 감쪽같이 사라질 터.

당장이라도 이준의 목을 부러트리려 했지만.

“놔.”

그녀의 귀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