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부 4화
덜덜.
모든 신선이 몸을 떨었다.
칼날 위에 서 있는 느낌.
조금만 발을 삐끗하면 바로 죽는 목숨이었다.
연아린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턱을 타고 밑으로 뚝 떨어졌다.
‘저게…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사신선!’
그녀도 처음 접하는 무공이었다.
어렸을 적 그녀의 아버지에게 들어 보기만 했을 뿐이다.
‘…이런 무공이 어딨어?’
사신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선, 결을 지배했다.
이 결을 완벽하게 읽을 수 있다면 나타나는 현상.
바로 심즉살이다.
사물에만 결이 있는 게 아니었다.
공기, 바다, 하늘, 심지어 사람까지.
이 세상의 모든 게 결로 이루어졌다.
이 결에는 생명선이라는 게 존재했다.
결을 완벽하게 읽는다면 심즉살, 즉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상대를 손대지 않고 목숨을 취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결의 무공.
사신선의 극의였다.
‘상대는 최상위 신선들이라고.’
연아린은 경악했다.
이 무공을 창시한 이는 파천혈신의 사부인 천극자.
사신문의 문주인 천극자는 이미 무공이 하늘에 닿아 있다고 알려졌던 자.
그가 창안한 무공을 파천혈신에게서 보게 된 것이다.
그때였다.
“아린이 넌, 네 아비를 봐서 봐주마.”
무극자의 목소리였다.
호수 전체에 그어진 실선 속에서 연아린만이 자유로워졌다.
그녀의 근처에 있던 검회색의 실선들이 사라졌다.
“허어억…!”
그녀가 거친 숨을 토해 냈다.
경각에 달려있던 목숨이었다.
살았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한순간에 탁 풀렸다.
그녀는 선경 끝자락.
인계의 경지로는 자연경 완숙에 든 최상위 신선이었다.
그녀조차도 이럴진대 다른 신선은 어떻겠는가.
“으으….”
“어버버버….”
모두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인계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추태를 보이는 신선들.
몇몇 이들은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본좌의 질문에 대답하라.”
무극자의 목소리는 지옥계의 염라대왕보다 무서웠다.
만약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영혼을 소멸시킬 거라 확신한 신선들이었다.
하지만 두려움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진 상태라 신음만 내보일 뿐.
무극자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모두 죽여 주지.”
그의 눈이 번들거리는 순간!
신선들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실선이 빛을 발하는데.
“멈춰라아아!”
검은 장삼과 삿갓을 쓴 자가 일갈을 터트렸다.
빛을 뿜어내던 실선이 투명하게 돌아왔다.
삿갓을 쓴 남자의 일갈로 인해 실선이 원래의 색으로 돌아온 게 아니었다.
무극자가 스스로 멈춘 것.
그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보았다.
“저승사자?”
새로 등장한 남자의 정체는 저승사자였다.
지옥계의 왕.
염라대왕의 최측근이었다.
“염라대왕의 전언을 가지고 왔다.”
“왔다?”
무극자의 눈 옆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 모습을 본 연아린이 입을 틀어막았다.
‘저 병신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무극자는 예의를 중요시하는 사람.
인계의 말을 빌리자면 꼰대였다.
그것도 지독한 꼰대.
차기 꼰대 후보인 이준도 혀를 내두를 만큼 무극자의 꼰대력은 극상이었다.
또한 자기보다 약한 자가 반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반말하면 수가 틀어졌다.
그에게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했다.
최상위급 신선의 자리에 있는 연아린도 무극자에게 극진한 예를 보인 것도.
모두 그녀의 아버지가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이를 어길 바에는 그냥 죽는 게 낫다고 할 정도였다.
연아린은 저 저승사자의 미래가 눈에 선히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무극자가 뒷짐을 지었다.
그리고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갔다.
“헉!”
무극자의 신형이 저승사자의 앞에 있었다.
반응도 못 했는지.
저승사자가 식겁을 했다.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본좌가 늙어서 귀가 잘 안 들리는군.”
그의 번들거리는 눈을 본 저승사자가 이를 탁탁 부딪쳤다.
순식간에 뇌를 지배하는 건 공포였다.
“어….”
“이놈이나 저놈이나. 본좌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는 녀석이 없어. 쯧.”
무극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르신이 협박하니까 그렇죠!’
연아린은 육성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괜히 끼어들었다간 봉변을 당할지 몰랐으니까.
대신 그녀는 저승사자의 명복을 빌어 줬다.
우득.
우드득-
무극자가 손가락 마디의 뼈를 풀며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빨리 와서 나대지 그랬느냐. 하필 본좌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때 와 가지고 왜 변을 당하려고 하는지 쯧. 네 운을 탓하거라.”
무극자는 말을 다 하곤 모든 내공을 갈무리했다.
그 어떤 내공도 사용하지 않고자 내부에 묶어 놨다.
오로지 육체의 힘만으로 저승사자의 복부를 발로 힘껏 찼다.
* * *
쾅!
저승사자의 신형은 엄청난 속도로 호숫가 옆 바닥에 처박혔다.
“커헉!”
그는 신음을 흘릴 틈도 없었다.
어느새 앞에 나타난 무극자가 그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왜 대답을 못 하지? 본좌가 그리 만만하더냐?”
무극자가 저승사자를 신선경의 건물 쪽으로 던졌다.
만년한철이나 마정석보다 더 단단한 광물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한데 얼마나 세게 던졌는지.
건물을 여러 채 부수고도 날아가는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수 채의 건물을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고서야 바닥에 나뒹군 저승사자.
무극자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허. 똥고집이 있구나. 오랜만에 이런 녀석을 만나 보군.”
그의 말에 저승사자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말할 기회를 안 주잖아!’ 이런 얼굴이랄까.
저승사자가 어떻게든 입을 떼어 보려는데 무극자의 발이 먼저 움직였다.
퍽-
“컥!”
저승사자는 날아왔던 호숫가로 재차 처박혔다.
하나 이번에는 그냥 쓰러지게 두지 않았다.
무극자는 그가 쓰러지지 못하게 한 뒤.
급소만을 피해 주먹으로 몸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커헙!”
저승사자의 입에서 피와 내장 조각이 뿜어졌다.
구타를 멈출 법도 하나.
무극자의 손은 무자비하게 저승사자의 몸을 강타해 갔다.
다짜고짜 벌어진 일.
신선들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저, 저어!’
‘저승사자까지 아무렇지 않게 여긴단 말이냐.’
‘앞뒤가 없는 자다. 그러니 염라대왕의 최측근을 저리 대하는 것이지.’
‘절대 가까이해선 안 될 인물이야.’
저승사자는 신선계 소속이 아니었다.
지옥계 염라대왕의 직속.
저승사자를 건드리는 건 염라대왕과 척을 지는 것이다.
한데 파천혈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폭력을 가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행동하는 인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저 저승사자가 왜 남 같지 않지?’
‘구타가 끝나려면 한참이나 남았을 터인데.’
‘허 참으로 신기한 일이로다. 내공도 사용하지 않는데 상대방을 쓰러지지 못하게 붙잡고 있다. 저 기술은 본받을 만하구나.’
그 이후에도 타격음은 계속해서 들렸다.
무극자를 극도로 싫어하는 신선들에게는 공포를.
중도에 있는 신선들에게는 안도감을 안겨 주었다.
자기의 선택이 옳았구나 하고 말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서야 타격음이 멈췄다.
“본좌에게 어떤 식으로 예의를 갖춰야 하지?”
“파처혀시 어르시눌 뵈스무니다.”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놈들이 있지. 저기도 몇 명 있고.”
무극자의 시선이 신선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무극자의 눈을 황급히 피했다.
자칫하다간 자신이 저승사자의 처지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용건은?”
“여기에 이쓰무니다.”
저승사자가 품에 지닌 족자를 무극자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무극자가 그 족자를 활짝 펼쳤다.
족자에서 빛이 흘러나오더니 허공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음? 연결됐구만. 큼큼.]
화면에 비친 거대한 사람.
판관 모자를 쓴 거구의 남자가 목을 가다듬었다.
[설극 오랜만 응? 일사자의 얼굴이 왜 그러냐?]
남자는 지옥계를 다스리는 왕.
염라대왕이었다.
그가 무극자를 향해 말하려다가 저승사자의 얼굴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이….”
저승사자가 무극자의 눈치를 보았다.
염라대왕은 지옥계에 있고 옆에는 무극자가 있었다.
현재는 무극자가 더 무서웠기에 염라대왕에게 사실을 고하기 어려웠다.
이를 눈치챈 염라대왕이 인상을 찌푸렸다.
[설극 네 짓이구나?]
“이 녀석이 다짜고짜 하대를 하길래 버릇 좀 고쳐 줬소.”
무극자의 말투에 신선들이 헉하고 놀랐다.
‘저 괴물이 염라대왕에게는 존대를 했어.’
‘역시 염라. 지옥계를 관장하는 왕이다.’
‘그래. 아무리 파천혈신이라도 염라대왕은 무섭겠지.’
염라대왕을 바라보는 신선들의 표정이 대번에 바뀌었다.
부담스러운 눈길에 염라대왕 또한 이를 느꼈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상황.
그 파천혈신에게 존대를 받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이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 때문인지.
[일사자의 잘못은 본왕이 따로 벌하지.]
“그러시오.”
저승사자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염라대왕이라면 자신의 편을 들어 파천혈신을 벌할 거라 생각했는데.
도리어 자신을 벌한단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괜히 신선계로 왔다고 생각했다.
[흠 주위를 보니 그전에도 한바탕 한 것 같구나.]
“저 말코 놈들이 본좌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줘야 말이지.”
[그러다가 또 인간계로 쫓겨날지 모른다.]
“인계에 육신과 영혼이 없는데 날 어떻게 내려보낼 것이오? 환생이라도 시켜 주려고?”
[그럴 리가 있겠느냐.]
인간계의 영혼이 소멸되면 그 가루를 수집하는 이들이 바로 저승사자였다.
이 가루로 신계에서 살아갈 육신과 영혼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영혼 가루.
인간계의 영혼이 소멸되는 건 완전한 소멸이 아니었다.
일시적인 현상.
모든 영혼이 신계에 오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대신 신계에 올라 죽으면 그땐 완전한 소멸이나 다름없었다.
신선들이 죽는 걸 그토록 두려워한 것도 이 때문.
신계에서 죽으면 다신 환생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날 어떻게 인계로 보내려 하는 거요?”
[유도하지 말거라. 본왕이 네 뜻을 모를 것 같으냐.]
“눈치 한 번 빠르군.”
염라대왕이 나타났음에도 무극자는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되레 옛 친우를 만난 듯.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네가 여길 난장판으로 만든 이유는 당연히 주경아 때문이겠지?]
“그렇소. 그녀에 대해 말해 주시오.”
무극자의 눈에서 처음으로 애절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가 그토록 신선계에 오르려는 것도 모두 그녀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 강한 사내가.
신계에서 신살자란 별명을 얻은 인간이.
고작 한 여자를 찾기 위해 제 목숨을 버린 것이다.
[네게 그녀에 대해 말해 줄 참이었다.]
“정말이오?”
무극자가 눈을 빛냈다.
드디어 그녀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생각에 기쁘기만 했다.
[이걸 어디부터 설명해 줘야 할지 모르겠구나.]
염라대왕의 말에는 염려가 담겨 있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할 무극자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소?”
[서론부터 듣겠느냐. 아니면 결론부터 듣겠느냐.]
“결론부터 말해 주시오.”
[…….]
잠시 염라대왕이 침묵했다.
그도 조심스러웠다.
사실대로 말하면 무극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하나 말해야만 했다.
계속 숨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결국에는 무극자가 알게 될 터.
사실을 숨겼다는 게 알려지면 더 큰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러기 전에,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나았다.
[주경아는 신선계에 없다.]
“그러면 어디에 있소?”
[지옥계. 정확히는 구천옥에 있다.]
구천옥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신선계가 무너지는 듯 떨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