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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무공 천재-481화 (478/705)

제477화

“내가… 졌구… 쿨럭… 나.”

진무열의 눈동자에는 패배감이 짙게 물들어 있었다.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되레 그에게서 홀가분하다는 느낌을 받은 이준이었다.

‘나한테 졌는데 저 눈빛은 뭐야.’

이마가 찌푸려졌다.

여전히 찜찜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보고 분노를 터트리더니.

이제는 세상만사를 초탈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악마의 모습만을 봤던 과거와는 많이 달랐다.

진무열은 기침을 토해 냈다.

각혈이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쿨럭! 마지막… 무공은… 쿨럭쿨럭!”

이준은 진무열이 기침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차츰 나아지자 그제서야 말했다.

“패천기공의 일공인 무공이에요.”

“…역시.”

이름만 어렴풋이 알 뿐.

직접 보지는 못했다.

무극기도 엄청난데 패천기공이란 무공은 신살이라 부르기 부족하지 않았다.

애초에 막을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으니까.

“…결국에는 신살의 무공까지 만드셨구나….”

진무열은 사부가 두려웠다.

그를 뛰어넘어 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파천혈신이라 불리는 사부는 괴물 그 자체.

그의 밑에서 있는 동안 한 번도 사부의 전력을 보지 못했다.

천마와 달마의 환생이라는 놈 둘이서 덤볐건만.

끈질기게 매달려도 고작 4일이었다.

그것도 필시 사부가 봐준 것이리라.

그런 괴물이 무극기도 모자라 더 뛰어난 무공인 패천기공을 만들었다.

어찌 두렵지 않을까.

그래서 더욱 홀가분하기도 했다.

사부와의 거래는 이루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나와 약조를 했으니 어길 리 없으시겠지….’

파천혈신이 냉혹하고 무정 하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소인배는 아니었다.

특히 사부의 소원을 이루는데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굳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리 없었다.

오히려 더 관대하게 행동할 거라고 예상했다.

“…하하.”

“저도 대답해 줬으니 하던 말이나 해 보세요.”

“넌… 그를 얼마나 믿고 있느냐.”

“누구요. 사부요?”

“그래.”

“제 부모님보다 더 믿을 수 있는 분이에요.”

“그 어떤 상황이 와도 말이냐.”

진무열은 이준의 눈을 직시하며 물었다.

“네.”

이준의 눈동자는 한치의 떨림도 없었다.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까지 했다.

파천혈신이라는 사부를 철석같이 믿는 모습이었다.

“그를 존경하는 듯 보이는구나.”

진무열의 목소리에는 부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싸울 때도 그렇고, 진무열은 무극자에게 애증의 모습을 많이 보였다.

이준으로선 진무열의 감정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런 목소리로 말하는 거예요. 그쪽이 먼저 사부를 뒤통수쳤으면서.”

“그랬지. 내가 사부를 먼저 쳤지….”

회한이 담긴 음성에 이준이 분노를 터트렸다.

“사부는 자신이 거뒀던 자들에 의해 죽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사문으로 돌아가 홀로 외롭게 여생을 마쳤고요. 당신은 후회라는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됩니다.”

평생을 고독하게 산 사부였다.

무림에 출두했을 때 처음으로 사모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악독한 놈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때 태어난 게 바로 파천혈신.

사부를 공포의 대상으로 만든 건 바로 무림이었다.

무림맹이 술수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파천혈신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리라.

“모든 걸 안다고 속단하지 마라. 네가 들었던 이야기가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준의 말에도 거짓이 섞여 있었다.

사부는 사문으로 돌아가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

스스로 금지에 몸을 묶고 평생을 갇혀 지냈다.

오직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며.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누가 고금제일인을 죽일 수 있겠나.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하여 내공이 사라질 법도 하지만.

사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기가 지독하게 강해졌다.

스스로 제어를 못 할 정도로 말이다.

이를 알고 있었던 사부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스스로를 묶는 것.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제가 모르는 뒷면이 있는 건가요?”

“그건… 때가 되면 알 것이다. 내가 네게 충고해 줄 수 있는 건 하나다. 그에게 마음을 주지도, 믿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랬다가는… 어쩌면 너도 나처럼 될지 모른다….”

사부는 언제나 매몰찼다.

무공을 익히면 칭찬도 해 줄 법도 하지만 냉혹한 말만 했다.

매번 사지로 몰아붙이는 건 기본.

몸 성할 날이 없을 만큼 훈련을 가혹하게 시켰다.

여기까지면 분노와 증오만을 키웠을 터인데….

수련으로 인해 깊이 곯아떨어지는 날이면 새벽 늦게 찾아와 상처 약을 손수 발라 주고 사라졌다.

파천혈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겉모습은 위압적이며 공포스러웠지만 속은 따뜻했다.

그 때문에 더 그에게 관심을 받고 싶었다.

애증이 생긴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

막내 제자란 이준도 자신과 같은 단계를 밟아 가고 있는 듯했다.

물론 자신을 대했던 행동과 이준을 대하는 사부의 태도가 완전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주세요.”

“보채지 않아도 곧 알게 쿨럭쿨럭…! 될 것이다….”

진무열이 곧이어 검은 피를 토해 냈다.

죽은 피에선 내장 조각도 보였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파천멸기도 몸에서 빠져나가니 젊었던 몸이 급속도로 노화했다.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사부를 너무 미워하지 마라…. 모두 내 가문의 과오로 생겨난 부작용 허억… 허억….”

진무열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곧 숨이 넘어갈 듯했다.

거칠게 몰아치던 숨이 갑자기 잠잠해졌다.

편안해진 그의 안색.

회광반조, 죽기 전에 평안해지는 현상이었다.

“마지막으로 내 할 일을 해야겠지.”

그가 단전에 남은 모든 내공을 쥐어짜며 외쳤다.

[신마회는 들어라! 파천멸기의 개방을 허한다. 눈앞에 있는 적을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백마존과 신마회의 무인들을 통해 닫힌 게이트의 틈을 열어 놓는 것.

진무열이 꼭 해야할 일이었다.

의도대로 파천멸기가 하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기운들.

SS급, 현경에 있는 백마존이 파천멸기를 개방하니.

서울 전역이 짙은 마기로 뒤덮였다.

뿐인가 남은 신마회의 무인들도 파천멸기의 파편을 전부 개방했다.

이를 확인한 진무열이 이준을 보며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웠다, 막내 사제야.”

진무열의 몸이 서서히 가루로 변했다.

그는 죽는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

* * *

번쩍-

고개를 숙이고 있던 괴인이 눈을 떴다.

지독한 살기가 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구나.”

괴인은 낙혈곡의 금지에 있는 무극자였다.

그가 생각했던 시간은 적어도 반년.

첫째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이준과 부딪혀야 했다.

이준은 자신의 모든 진전을 이어받은 녀석이었으니까.

아무런 대책 없이 무턱대고 싸움을 건다면 이준에게 필패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이준이 큰 성장을 못 이룰 터.

이건 무극자의 계획에 없었다.

그리고 첫째의 성격이라면 신중을 기했을 터인데.

“첫째가… 많이 급했나 보구나.”

아무래도 자신과의 약속을 어정쩡하게 이행한 듯싶었다.

“그래도 약조는 지켜 주마.”

퍽-

왼쪽 벽에 박힌 쇠사슬이 단번에 빠졌다.

다른 쪽 벽의 쇠사슬 또한 빠져나왔다.

그가 목에 감겨 있던 족쇄를 잡았다.

콰드득!

만년한철에 운철, 묵철이 전부 섞인 족쇄를 내공도 사용하지 않고 완력만을 사용해서 찌그러트렸다.

종잇장처럼 가볍게 우그러트린 후 분리한 무극자.

쾅!

그 조각을 땅에 내려놓자 굉음이 들렸다.

얼마나 무거운 족쇄인지.

바닥이 깊게 파였다.

족쇄가 풀리자 그의 몸에서 짙은 어둠이 흘러나왔다.

의도하지 않은 기운.

힘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둔다면 이 힘에 잡아 먹힐지도 모른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구나.”

그의 단전에서는 혼원신공이 밖으로 나가겠다고 아우성쳤다.

마치 제집이 아닌 것처럼 격렬하게 벗어나려 했다.

무극자의 신체는 역천마신지체.

마신지체라면 몰라도 역천마신지체는 혼원신공이 살 곳이 아니었다.

“그래도 제자를 보는데 단정하게 가야겠지.”

그가 금지의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또한 족쇄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문이었다.

현경에 다다른 고수조차도 흠집을 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단단했다.

하나 무극자에게는 그저 평범한 문.

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경력을 이기지 못한 문이 부서져 나갔다.

금지를 유유히 빠져나온 그가 마주한 건 절벽.

금지는 낙혈곡 절벽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무극자에겐 한낱 평지에 불과했다.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

낙혈곡 정상에 올라섰다.

얼마의 시간을 금지 안에서 보냈는지 모른다.

오랜만에 맡은 맑은 공기였거늘 어느새 짙은 마기로 가득 찼다.

* * *

현재 천마신교의 교주는 진운기였다.

백무열이 균열로 사라지니 그의 아들이 뒤를 이은 것이다.

커다란 대전 안.

진운기가 자리에 앉아 서책을 보고 있었다.

“교주님!”

대전 안으로 교주의 호위인 신마대주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균열이 열렸습니다.”

“균열이!?”

“장로들의 힘으로 보입니다.”

“아.”

진운기는 잡고 있던 서책을 힘없이 놓쳤다.

백마존의 힘이 균열에서 나왔다는 건.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아버지인 백무열이 죽었다는 소리였다.

진운기가 슬픔에 잠겼다.

평생을 파천혈신의 뒤에 가려져 산 사람.

모두가 천살신이란 명호로 불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천하제일인에 대한 예우였다.

천하제일인이지만 언제나 그의 앞에 있는 건 파천혈신이었다.

천하제일인인 진무열도 파천혈신 앞에서는 한낱 반딧불에 불과했다.

파천혈신을 넘어 보려고 지독히 수련한 아버지.

수련할수록 커다란 벽을 맞이해 좌절한 걸 수도 없이 보았다.

파천혈신은 무림에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산이었다.

때문에 아버지에게는 파천혈신의 제자란 꼬리표가 언제나 따라다녔다.

‘대체 저 너머에 무엇이 있기에 아버님이 죽는단 말이냐.’

진운기과 천마신교는 균열의 존재만 알뿐.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저 균열에 대해서는 아버지 진무결과 신마회 무인들만 알고 있었으니까.

천마신교는 저 너머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해선 안 됐다.

“혹, 그곳에 누군가가 나타났나?”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진운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균열이 열리면 누군가가 그곳에 나타날 거라 아버지가 말했다.

그를 아는 척도 해선 안 된다고 해서 멀찍이 떨어져 균열이 일어난 곳을 감시만 하고 있었다.

한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니 의아했다.

“계속 지켜봐.”

“존명!”

신마대주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산발을 한 괴인이 천마전 입구에 서 있었다.

“웬 놈이냐!”

신마대주가 검을 뽑았다.

이곳은 천마신교에서도 가장 경계가 삼엄한 천마전이었다.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치우거라.”

“흡!”

고작 말뿐이었다.

그 어떠한 기운도 보이지 않았건만.

신마대주는 칼을 버리고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그만이 아니었다.

권좌에 앉아 있던 진운기 또한 몸을 수그려야만 했다.

‘아버님 이외에 또 누가 이런 분위기를 보인단 말인가.’

진운기의 몸이 떨려왔다.

저벅-

괴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의 걸음걸이에 숨을 죽여야만 했다.

괴인이 진운기 앞에 섰다.

“운기냐.”

“…절… 어떻게…?”

“많이 늙었구나. 날 알아보지도 못하는 걸 보니.”

진운기가 고개를 들어 보려 했다.

쉽사리 고개를 들 순 없었지만 억지로 용기를 내어 봤다.

간신히 괴인의 눈을 본 진운기는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그리곤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대체 누구냐.’

이립(30살)도 안 된 얼굴을 가진 괴인에게서 칠흑 같은 어둠이 보였다.

이런 공포를 느낀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상대는 자신을 아는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시 욕탕을 빌리마.”

괴인은 마치 제집에 온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이곳의 원래 주인은 파천혈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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