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3화
[천살성이 마신지체의 몸에서 눈을 떴습니다.]
[마신지체가 천살성과 동화합니다.]
[마신지체로 인해 무극기의 소모 내공이 현격하게 줄어듭니다.]
[마기를 지닌 모든 이에 대한 제어력이 100% 상승했습니다.]
이준의 눈이 적안으로 번쩍였다.
지독한 살기가 진무열을 향해 뿜어졌다.
호흡할수록 살기는 짙어져만 갔다.
그의 입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무옥.”
대기가 일그러졌다.
어디선가 생겨난 회색 아지랑이가 진무열을 가둬 버렸다.
진무열은 역룡도로 자신을 가둔 회색 창살을 베었으나.
깡!
커다란 반동만 일어날 뿐.
창살은 잘리지 않았다.
대신 아지랑이가 서서히 조여 왔다.
진무열이 파천멸기로 호신강기를 만들었다.
회색 창살과 호신강기가 서로 맞닿은 순간.
콰앙-
폭음과 함께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이준은 앞을 가린 먼지를 향해 손을 내리그었다.
반월 모양의 강기가 먼지구름에 폭사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른쪽 발을 무릎 높이까지 들곤.
바닥을 강하게 때렸다.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강력한 파동.
곧이어 들려오는 굉음에 다시 한번 먼지구름이 위로 치솟았다.
“풍살.”
공격은 계속 되었다.
진무열이 대항하지 못하게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이준이 서 있는 곳에 폭풍이 불어닥쳤다.
그 폭풍은 칼날이 되어 무너진 건물하며, 쓰러진 나무하며.
가리지 않고 잘라 갔다.
마신지체로 인해 마기를 지닌 모든 이에 대한 제어력이 100% 상승했는데도.
진무열의 저항은 거샜다.
마치 100%란 제어력에 영향이 없는 듯 보였다.
물론 보이는 것만으로는 막상막하.
진무열이 방어에만 급급한 건 마기에 대한 제어력 덕분이었다.
만약 이 효과가 없었다면 진무열은 이미 방어을 거두고 공격했으리라.
무자비한 폭풍의 칼날이 멈출 때쯤.
이준의 말아 쥔 주먹이 앞으로 뻗어졌다.
“적익.”
손에서 벗어난 붉은 새가 날개를 활짝 펴며 모든 걸 불태웠다.
순식간에 불바다가 된 주변.
적익의 기세는 진무열에게서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됐다.
무옥에 이어 풍살을 막느라 내상을 입은 듯 보이는 진무열에게 적익이 부딪히려 하자.
진무열이 호신강기를 거두고 도에 파천멸기를 집어넣었다.
극에 달한 파천멸기가 도에서 뿌려졌다.
허공을 가르는 도에서 백 개가 넘는 검은 고리가 생성되었다.
도환.
강기를 압축해서 사용하는 기술로 내공 소모가 엄청났다.
검은 고리가 적익에 닿을 때마다 구멍이 뻥뻥 뚫렸다.
수십 개의 고리가 적익의 몸을 통과하며 이준에게 날아왔다.
이준은 그 고리를 손으로 쳐냈지만.
핏-
완전히 다 막지는 못했다.
고리가 팔과 다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상처를 만들어 냈다.
이준의 공격이 멈추었다.
진무열 또한 역룡도로 바닥을 지탱하면서 숨을 골랐다.
“…….”
“후욱….”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아니, 소강상태라 생각한 찰나.
두 사람의 신형이 서로를 향해 짓쳐 나갔다.
쾅-
쾅쾅-
이준의 주먹과 진무열의 역룡도가 부딪혔다.
무극기와 파천멸기가 서로를 죽일 듯 물어뜯었다.
1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
눈 깜짝할 사이에 백합을 넘겼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몸에 상처가 생겨났다.
얼마나 격렬한지.
진무열의 흑룡포가 너덜너덜해졌다.
반면에 이준의 무복은 의외로 깔끔했다.
옷자락이 여기저기 잘린 정도랄까.
이준이 입고 있는 무복은 무극자의 신물이었다.
혼원문의 4대 기보 중 하나인 청룡무의였다.
파천멸기로도 완전히 손상시킬 수 없는 게 바로 4대 기보.
이준은 템빨로 진무열에게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된 싸움.
부딪혔다 떨어졌다를 반복했다.
두 사람의 호흡은 점점 가빠졌다.
어두웠던 하늘이 밝아 오고 있었다.
새벽이 시작되자.
서서히 안개가 끼었다.
일반 안개가 아닌 듯.
두 사람의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내공으로 동체 시력을 높였음에도 잘 보이지 않는 시야.
그럼에도 이준과 진무열은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처럼 공격해 갔다.
* * *
서울 전역에 안개가 내려앉았다.
오대 가문과 마벽이 설치한 함정이 드디어 발동했다.
새벽이 올 때 나락의 투명실에 독액이 떨어지게끔 만들었다.
그 결과.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내공으로 안력을 높여도 안 보이게끔.
시야를 강력하게 방해하는 안개가 발생했다.
오대 가문과 마벽이 설치한 함정이라 그런지.
그들은 함정이 있는 곳을 피해 뒤로 빠진 상황이었다.
“살마.”
“말하시오.”
“용석이와 음살귀만 내보내도 괜찮겠어?”
“…….”
“살예란 무공을 새로 익혔다지만… 아직 AA급 끝자락밖에 안 되잖아. 저러다 죽으면 어떡하냐. 상대는 블랙급 몬스터야.”
혈마 류한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안개를 보았다.
저 안쪽으로 조용석과 음살귀.
그리고 웨어파드가 들어갔다.
함정을 이용해 적의 목을 조용히 따고 귀환하는 게 그들의 목표.
안개가 사라지기 전까지 암습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조용석과 웨어파드의 눈부신 활약이 필요했다.
이를 제안한 사람이 바로 이준.
조용석도 적극적으로 나섰기에 살마도 허락한 것이었다.
“알고 있소. 하지만 지금은 용석이를 믿는 수밖에 없지 않소. 녀석 옆에는 웨어파드도 있으니 괜찮을 거요.”
“차라리 우리도 합류할까?”
“그건 안 되오. 마벽이나 뇌전홍가는 살막의 살수처럼 적의 목을 조용히 따지 못하오. 적에게 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명분을 주면 도리어 용석이와 음살귀들이 위험하오.”
“용석이의 등급이 높아졌지만 잘 해낼 수 있을까….”
살예를 얻기 전, 조용석의 등급은 A급 끝자락이었다.
현재는 AA급 끝자락.
짧은 시간에 무려 세 단계의 무지막지한 성장을 이뤘지만 상대가 안 좋았다.
레드와 블랙급 몬스터들.
그리고 천외천의 무인이 암살 대상이었다.
천외천은 웨어파드들이 상대할 테지만 그들을 제외한다고 해도 남은 대상은 블랙급 몬스터였다.
AA급 끝자락이 블랙급 몬스터를 상대한다?
자살행위였다.
S급 각성자도 블랙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빡셌다.
그런데 AA급 끝자락인 조용석이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건 당연했다.
“살예를 믿을 수밖에 없소.”
살마 조민석은 아들의 무공을 보고 깨달았다.
자신이 배운 살영심법과 귀음검법, 유혼보는 쓰레기라고.
살예가 더해진 세 무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더 조용했으며 음험했고, 빠르고 날카로웠다.
살예와 비교하기도 민망한 자신의 무공이었다.
그만큼 살예는 암살에 있어서는 최고라 자부했다.
“정면충돌이 아닌 암살이라면 블랙급 몬스터도 충분하오.”
살수의 최고 장점은 바로 기습이었다.
정면 대결일 때는 오히려 자기 등급보다 낮은 자에게 당할 수도 있는 게 바로 살수.
하나 암살할 때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한 등급뿐만 아니라 두 등급.
운이 좋으면 세 등급까지도 죽일 수 있는 게 바로 살수였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다만, 천외천의 무인을 마주친다면… 목숨을 보장하긴 어려울 것이오.”
몬스터와 인간은 다르다.
특히 천외천의 무인은 더더욱 위험했다.
저들과 손을 나누고 느낀 점은 각성자들과 다르게 싸움의 경험치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
태어날 때부터 온종일 싸우기만 한 느낌이랄까.
그들은 아들의 암살을 막아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암살이 막히는 순간.
아들의 목숨은 끝이었다.
“웨어파드가 용석이를 잘 보호해 주길 비는 수밖에 없군.”
조민석은 아들이 들어간 안개 지역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공으로 청각을 높이며 귀를 기울였다.
* * *
조용석과 파들락은 나락의 투명실이 설치된 곳 앞에 서 있었다.
“긴장되나?”
파들락이 조용석을 향해 물었다.
“아닙니다.”
“거짓말은. 난 적과 싸울 때면 언제나 긴장한다. 이 긴장감은 다르게 말해서 고양감이라 할 수 있어.”
한 마디로 적을 이길 수 있다는 의지였다.
다른 생각은 일체 배제하고.
오직 적을 죽일 수 있다는 일념.
이 고양감이야말로 싸움의 원동력이었다.
“너 자신을 믿고 동료를 믿어라.”
“예.”
조용석은 여전히 긴장했다.
그렇다고 아예 몸이 딱딱하게 굳은 건 아니었다.
긴장과 흥분이 공존했다.
적을 상대로 살예를 정식으로 펼칠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파천자 님은 내 살예를 믿고 막중한 임무를 맡기셨어.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해’
이준의 말이라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조용석이었다.
상대가 어떻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내 이준의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생각했다.
“적이 함정에 든 것 같다.”
조용석의 눈이 이채로 빛났다.
“가는 겁니까?”
“명령권자는 내가 아니고 너다.”
파들락의 말에 조용석이 고개를 돌렸다.
300명의 음살귀와 웨어파드들이 그만을 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명령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파들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 몬스터들이 나락의 투명실에 걸려 죽어 나갔다.
독기가 안개와 섞여 몬스터를 괴롭혔다.
레드급 몬스터가 죽어 나가든 말든.
독기를 버틸 수 있는 블랙급 몬스터는 나락의 투명실을 건너오고 있었다.
몬스터를 먼저 보낸 천외천의 무인이 뒤늦게 따라붙었다.
“아직 대기인가.”
“예.”
파들락의 물음에 조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급 몬스터가 중간 지점에서 나락의 투명실을 밟자.
닿은 발이 독수에 녹아내렸다.
한 마리가 경로를 방해하니.
나머지 다른 몬스터들도 움직임이 어려워졌다.
그건 천외천의 무인도 마찬가지였다.
지독한 독연으로 인해 호흡을 멈추고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서 나아가지를 못하니.
그들도 발이 꼬인 것이다.
눈앞에 장애물은 있지, 호흡은 못 하지.
그렇다고 방해물을 제거하자니 공기 중의 독기가 폭발할 것 같지.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버렸다.
“지금입니다. 해독약을 먹고 함정에 진입하겠습니다”
조용석과 음살귀.
파들락과 웨어파드가 단환을 꺼내 꿀꺽 삼켰다.
나락의 독을 막아 주는 약이었다.
이 단환을 먹으면 독기 안에서도 자유롭게 호흡이 가능했다.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내가 그 뒤에 서지.”
파들락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졌다가 사라졌다.
캬아아아!
그러자 웨어파드들이 위협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백호의 수호성 파들락이 ‘쉐도우 윙’을 발동했습니다.]
[아군의 민첩이 +300만큼 상승합니다.]
[아군의 암살 확률이 200% 상승합니다.]
[아군의 신체 능력치가 50%만큼 하락합니다.]
[아군의 암살 실패시 모든 능력치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지속 시간: 30분)]
경공을 펼치던 조용석의 눈이 커졌다.
어마어마한 버프 효과였다.
암살자에게는 최고의 능력치인 민첩이 300이나 상승했다.
몸이 구름을 유영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건!”
“네 마음껏 활개 쳐 봐.”
믿음직스러운 파들락의 말에 조용석이 경공의 속도를 높였다.
암살 확률도 2배로 오른 상태라 자신감이 넘쳤다.
“이놈은 지나가겠습니다.”
“뒤에 애들한테 맡기지.”
나락의 실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몬스터를 앞지르고 지나갔다.
그 몬스터는 뒤를 따르고 있는 웨어파드의 손에 목이 따였다.
슥-
손톱에 의해 목이 잘리는데도 작은 바람 소리뿐이었다.
음살귀와 웨어파드들까지 함정에 다 들어왔다고 생각한 조용석이 모두에게 명령을 내렸다.
“사냥을 시작합니다.”
단환의 효과는 독기에 면역이 되는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락의 실에서 나온 뿌연 안개 안에서도 활발히 활동할 수 있게 안력을 높여 주기도 했다.
적은 눈 뜬 장님 상태라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조용석을 필두로 음살귀와 웨어파드들이 암살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