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2화
이준은 고개를 올려 하늘에 수놓아진 마법진을 보았다.
‘일정하지 않은 마력. 속성도 제각각이야. 강하긴 하네.’
서양 각성자가 가진 최대의 속성은 두 개.
서양 최고의 각성자라는 암흑대제나, 성결기사도 두 개의 속성밖에 없었다.
하나 베네로딕의 속성은 무려 네 개.
4대 원소를 전부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강한지 받아 볼까?’
이준은 무극기를 몸 밖으로 내보냈다.
그가 호신강기를 펼치는 모습이 보이자 베네로딕이 곧바로 공격을 가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라!”
허공에 뜬 수십 개의 마법진에서 각양각색의 마법이 뿜어져 나왔다.
파이어 볼, 윈드 미사일, 록 에로우 등.
1서클의 마법이 비처럼 쏟아졌다.
비록 1서클의 마법이나 베네로딕이 사용하자 1서클의 위력이 아니었다.
하나, 하나가 8서클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마력을 바탕으로 펼치는 공격.
이준을 향해 마법 폭격이 내려앉았다.
콰과콰광!
세상이 무너지는 굉음이 들렸다.
먼지구름이 일어났지만, 마법 폭격은 멈출 줄 몰랐다.
거대한 구체의 불이 지상으로 떨어지면 뒤를 이어 또다시 불덩이가 떨어졌다.
쉴 틈 없는 공격.
한참이나 마법이 쏟아지고서야 주변이 잠잠해졌다.
먼지가 걷혔다.
드넓게 펼쳐진 잔디 필드가 쑥대밭이 되었다.
곳곳에는 커다란 웅덩이가 생겼다.
“세상에!”
“4대 속성을 전부 사용했어….”
“성결기사나 암흑대제도 두 개의 속성밖에 감응하지 못하잖아!?”
베네로딕의 마법에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경악했다.
두 개의 속성을 감응한 것만으로도 엄청났다.
세 개의 속성을 감응한 사람은 전무할 정도.
게다가 두 개의 속성을 감응한 각성자라고 해도 세상에 두 명밖에 없었다.
한데 프랑스 마법 학회 산하 성마회의 탑주는 4대 속성을 전부 사용했으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바로 프랑스 마법 학회의 비밀 각성자인가?”
“탑주의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어.”
“다른 탑주들도 4대 속성을 전부 사용하는 거 아니야?”
“그, 그럴 수도….”
사람들이 놀라건 말건.
베네로딕은 자만하지 않았다.
안경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예상대로군.”
그의 표정은 나쁘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고작 1서클의 마법이다.
마력량으로 파괴력을 극대화했다 하더라도 상대는 SSS급 각성자.
상처 하나 없었다.
이준의 펼친 호신강기에 금도 가지 않았다.
“이런 하찮은 공격 말고, 네가 자신 있어 하는 마법을 펼쳐야지. 아니면.”
이준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베네로딕의 앞에 나타났다.
그가 손을 사선으로 그었다.
빛이 번쩍이더니 반월 모양의 검기가 베네로딕의 몸을 두 동강 내려 했다.
베네로딕은 이준이 눈앞에 나타나자 곧바로 텔레포트를 시전해서 그 자리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엄청난 반응 속도.
베네로딕이 아니라 다른 각성자였으면 그 자리에서 몸이 갈라졌으리라.
“네놈도 제대로 실력을 보여야 하지 않나? 이런 허접한 공격으로는 내 털끝도 건드리지 못한다.”
“이미 건드린 것 같은데?”
이준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베네로딕이 인상을 찌푸리는 사이 가슴 부위의 옷이 사선으로 잘려 나갔다.
벌어진 옷 사이로 붉은 피가 흘렀다.
“!?”
베네로딕의 눈이 커졌다.
‘분명 공격을 피했는데? 몸을 훑고 지나간 기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내가 너보다 강하니까 잘난 척하지 말고 제대로 힘 좀 써 봐.”
이준은 기회를 주겠다는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게만 할 수 있는 도발.
베네로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인정하지. 내가 너를 너무 얕보았다. 하지만 다음은 네게 기회가 없을 것이다.”
베네로딕이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팡팡.
그 지팡이가 두 번 땅바닥을 두드리자.
하늘을 뒤덮는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파직-
그곳에는 강력한 전류가 흘렀다.
“어디 이것도 버텨 보아라. 블러드 레인!”
하늘에서 새빨간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빗방울이 땅에 부딪힐 때마다 흙이든, 돌이든, 나무든, 잔디든.
가리지 않고 녹여버렸다.
이준과 베네로딕이 있는 필드 전체에 떨어지는 붉은 빗방울.
이준의 호신강기에 빗방울이 닿자.
폭음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 * *
“브, 블러드 레인!?”
한 구경꾼이 입을 떡 벌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 구경꾼에게로 향했다.
“혹시, 아는 마법이에요?”
“다들 저 전설의 마법을 모르는 겁니까?”
“무슨 마법인데요?”
“피의 비. 10서클의 마법으로 레드 드래곤이 제국을 멸망시킬 때 사용하는 마법이에요.”
“처음 들어 보는 마법인데 아시는 분 있나요?”
“저도 처음 들어 봅니다.”
그때였다.
“헉! 설마 ‘후작가 대공자는 10서클’에 나오는 그 전설의 마법?”
“맞습니다. 아이덴의 블랙 블러드 레인의 바탕이 되는 마법입니다.”
‘후작가 대공자는 10서클’이라는 판타지 소설을 읽어 본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후의 마법 중 하나.
각성자 등급으로 치자면 SS급을 넘어 SSS급에 해당하는 마법이었다.
저 마법이라면.
한국의 파천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소설 속 스킬이 각성자의 스킬이기도 하니까….”
“일반적인 마법만 있는 게 아니었군요.”
“각성자는 알면 알수록 신기해.”
“그런 게 뭐가 중요합니까. 마법 학회에서 블러드 레인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있다는 게 중요하지요.”
“옳소!”
“이번 싸움은 마법 학회의 승리로 끝나겠어.”
외국인들은 베네로딕의 승리를 장담했다.
10서클의 마법을 이길 각성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 누가 SSS급 마법을 맞고도 멀쩡하겠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전설의 마법을 눈에 최대한 담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어쩌면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대결이 끝날지도 모르니까.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것도 최대한 자제했다.
그런데.
쿵!
바닥을 타고 퍼지는 진동이 들린 순간!
하늘에서 내리던 피의 비가 뚝 그쳤다.
하늘에 수놓아진 마법진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졌다.
이에 베네로딕이 당황해했다.
“마법이 깨져…?”
그때 그의 귀로 이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후작가 대공자는 10서클’을 지겹도록 봤지. 아이덴이 사용하던 마법이었던가? 블랙 블러드 레인. 절규의 마법이라 불리는 광범위 스킬. 너는 하위 마법까지밖에 못 배웠지? 블랙 블러드 레인이었다면 좀 위험했을 수도 있었겠어.”
블러드 레인에도 이준은 멀쩡했다.이번에도 호신강기에는 금조차 가지 않았다.
“네놈이… 내 마법을 캔슬 시킨 거냐.”
“보시다시피?”
이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가 했다고 시인하자 베네로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놈은 파천혈신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 블러드 레인을 캔슬한단 말이야!?’
믿기지 않았다.
10서클 마법은 드래곤이 펼치는 마법이다.
인간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뜻.
한데 현대의 각성자라는 놈이 10서클의 마법을 버틴 것이다.
그것도 파천혈신을 흉내 내는 가짜가 말이다.
‘내가 가짜에게 밀려?’
파천혈신도 아닌, 그를 따라 하는 가짜에게 마법이 캔슬됐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거짓말! 무슨 사술을 펼친 지 모르겠다만 더는 못 설치게 해 주겠다!”
베네로딕이 재차 블러드 레인을 펼쳤다.
그는 괌 전체를 날려 버리려는 듯.
전보다 더 방대한 마력을 사용했다.
거기다가 흑마력까지 집어넣으니.
괌에 기의 폭풍이 몰아쳤다.
거센 바람에 나무가 뽑혀 날아갔다.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바람의 힘에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휩쓸렸다.
“피, 피해!”
재앙이 올 것 같은 느낌을 일찍 감지한 이들은 빠르게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러던 찰나.
쿵.
땅의 진동과 함께 재앙의 폭풍이 잠잠해졌다.
하늘에 펼쳐진 마법진도 사라졌다.
“……!?”
“자연과 연결된 마력을 끊어 버리면 마법도 어쩔 수 없이 중단되는구나?”
이준은 베네로딕이 사용하는 마법을 한 번 겪어 보자 깨달은 게 있었다.
내공을 익힌 무인이든 마나를 가진 마법사든.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수록 똑같은 방법으로 힘을 얻는다는 걸 알았다.
베네로딕의 마나 운용.
몸에 있는 마나와 공기 중에서 떠도는 자연의 힘을 합쳐서 마력을 높였다.
자연의 힘을 끌어다 쓰는 경지.
자연과 얼마나 동화하냐에 따라서 힘의 차이가 났다.
이준과 베네로딕은 똑같이 자연에서 힘을 얻었으나.
감응력에 차이가 있었다.
그가 베네로딕보다 감응력이 월등히 앞섰던 것.
그는 자연과 일체 된 상태.
그가 굳이 기를 감추지 않아도 평범한 일반인처럼 보이는 게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네, 네가 내 마나를 차단했다고? 그게 가능할 리 없다!”
“되니까 네 마법이 중단됐겠지. 아니면 다시 해 보든가. 마지막 기회를 줄게. 발악 한번 해 봐.”
이준의 선심에 베네로딕이 이성을 잃었다.
“오냐. 내 오늘 네게 지옥을 선사해 주겠다.”
“제발 그래 줘. 요즘 지옥을 안 본 지 꽤 돼서 심심해. 네가 날 재밌게 해 줄래?”
“그 주둥이가 널 파멸로 이끌 것이다.”
베네로딕은 흑마력까지 전력으로 표출했다.
그의 육체가 변했다.
팔과 다리가 가고일의 모습이 됐고 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마에는 두 개의 작은 뿔이 솟아올랐다.
그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파지지직-
검붉은 마법진이 순식간에 펼쳐지면서 붉은 비가 내렸다.
“소용없다니까.”
이준은 발을 무릎까지 들어 올리곤 땅을 향해 내리쳤다.
* * *
쾅!
땅이 갈라졌다.
공간까지 일그러지면서 게이트가 얼핏 보이기까지 했다.
“우웨에엑!”
악마화한 베네로딕이 피를 토했다.
왼쪽 몸이 통째로 날아갔다.
고작 진각 한 번으로 이 지경이 된 것이다.
“불멸의 마법사답게 몸 절반이 날아갔는데 피를 토하고 있네?”
이준이 베네로딕을 신기한 눈으로 보았다.
“사술… 이다!”
심지어 말까지 했다.
마나를 유지하는 심장까지 터졌는데 즉사하지 않았다.
“다들 너와 같이 반응하고 뒤지더라고.”
이준이 베네로딕에게 다가갔다.
그가 허리와 무릎을 굽혀 베네로딕을 내려다봤다.
“재밌는 사실 하나 가르쳐 줄까?”
“…….”
한쪽 남은 눈이 이준과 마주친 베네로딕이었다.
그 눈동자에는 흉포한 걸 넘어선 괴물이 숨어 있는 게 아닌가.
베네로딕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는데 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말한 파천혈신 말이야. 내 사부님이다?”
“미친! 무슨 말도 안 되는!”
“내가 사용한 파천멸기를 잘 생각해 봐. 뭔가 비슷하면서도 다르지 않아? 마치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잖아.”
이준은 순순히 자신의 정체를 말했다.
불멸의 마법사 베네로딕.
그는 죽지 않은 마법사였다.
심장이 부서져도 살 수 있는 인간.
하지만 이준은 이 불멸의 마법사를 죽일 수 있었다.
베네로딕에게 순순히 정체를 말한 이유기도 했다.
“…네놈이 익힌 게 정말 파천멸기였단 말이냐?”
“그렇다니까. 이름은 무극기. 사부님이 죽기 전에 남긴 걸작이래. 쩔지? 넌 이 무극기에 당한 거야. 영광으로 생각해.”
‘멍청한 놈. 자기 입으로 중요한 정보를 다 말하는구나. 돌아가서 탑에 파천혈신의 뒤를 이은 놈이 나타났다고 말해야겠군.’
하나 베네로딕은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너 지금 도망칠 생각을 품고 있지? 그리고 내가 개 멍청하다고 생각했을 테고 말이야. 그런데 난 널 죽일 수 있으니까 내 정체를 다 말한 거야.”
이준이 씩 웃으면서 그의 지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정확히는 지팡이에 박혀 있는 하나의 보석을 손가락으로 잡아 뜯었다.
“여기에 네 힘이 전부 들어 있지?”
베네로딕의 한쪽 남은 눈이 앞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대체 어떻게 자신의 약점을 알았는지 경악한 것이다.
파삭-
이준이 힘을 주자 보석이 부서졌다.
“아, 안 돼애애애!”
그와 함께 베네로딕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