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5화
“여보세요.”
[중소 가주들이 움직였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혈마의 전화를 받자마자 한민성이 자신에게 달려왔다.
“어디로요?”
[파천자 님이 계시는 방향입니다.]
“울릉도요?”
[예.]
“신종 자살법인가? 누구와 접촉했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죠?”
[천외천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긴 한데.”
[그 매국노들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공격해 오면 바다에 수장해 버려야지요.”
이준의 음성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수화기 너머에 있는 혈마에게까지 그 살기가 닿을 정도로.
[파천자께 가기 전에 저희 마벽이 해치워 버리겠습니다.]
“괜찮아요.”
[피라미를 잡는데 명검을 꺼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피라미를 통해서 자그마한 정보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 그만한 이득이 없죠. 그리고 무슨 깡으로 왔는지도 물어보고 싶고요.”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중소 가문 전부는 아니죠?”
[특별반 선생님들이 속한 가문은 모두 빠졌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정보 감사해요.”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혈마와 전화를 끊었다.
“신기 쪽에서도 이사장님께 연락이 왔나 보네요.”
“네. 그 작자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답니다.”
“참, 권력이 뭐라고.”
“권력의 맛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듭니다.”
특히 어정쩡한 힘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욱 발광한다.
중소 가문의 가주들이 딱 그 짝.
그러니 천외천과 손잡는 거겠지.
“중소 가주 중에 구심점을 이루는 인물이 누군지 아세요?”
“백씨 가문의 가주 백경입니다. 경지는 A급 완숙에 다다른 각성자입니다.”
백경은 전생에 딱히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 아니었다.
정보 단체에 있었던 자신이 모르는 걸 보면, 몬스터에게 죽었거나 천외천에 붙어서 목숨을 간신히 부지한 인물일 터.
현생은 자신으로 인해 처지가 변한 것이다.
“살려고 천외천한테 붙을 생각을 했는데 기어코 제 앞에 나타나는 걸 보면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에요.”
대체 믿는 구석이 뭘까.
백마존이라도 데려오는 걸까.
아니면 신기지가나 마벽의 정보가 잘못된 건가.
너무 황당해서 머리도 굴러가지 않을 때였다.
‘설마 내가 보고 싶어서?’
백마존이 지구로 넘어왔지만 바로 자취를 감췄다.
지주를 죽인 자신을 확인도 하지 않고 말이다.
힘이 있음에도 자세를 낮췄다.
‘백마존 중에 지주에 버금가는 사술을 쓰는 놈이 있긴 해.’
백마존의 정보가 전부 알려진 건 아니지만 하위 서열의 무공은 조금이나마 인지하고 있었다.
개중엔 사술사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지주의 사술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중소 가주들에게 사술을 펼쳤다면 그들의 눈을 통해서 날 볼 수 있어.’
여러 가지 추측 중에 이게 제일 확률이 높았다.
백마존이 이곳으로 직접 올 거면 지구에 넘어왔을 때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그저 자신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거다.
‘이게 아니고서야 중소 가주들이 내 앞에 나타날 일이 있나.’
이준은 자신의 추측을 확인하기 위해 한민성에게 물었다.
“중소 가주들이 은밀하게 움직였나요. 아니면 병력을 대거 데려온답니까?”
“병력과 같이 움직인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제 생각이 맞는 것 같네요.”
“예?”
“그들은 절 치러 오는 게 아니에요.”
“저도 그게 맘에 걸리긴 했지만 저들이 왜 이곳으로 오는지는 도통 감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사절단 자격으로 오는 것 같아요.”
한민성의 눈이 커졌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천외천에게 사절단이라는 게 있었나.
그들은 언제나 숨어서 간계를 벌이고, 각성자를 매수해 분란을 일으켰다.
그 탓인지 사절단이란 단어는 천외천과 어울리지 않았다.
“천외천은 사절단이 아예 없다고 생각해서 답이 안 나왔던 거군요.”
“저도 좀 어이가 없어요. 그러니까 병력과 함께 이쪽으로 오는 거겠지요.”
거기에 겸사겸사 중소 가주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려는 건 아닐까.
“나라를 배신하고도 뻔뻔한 작자들입니다.”
“중소 가주들은 백마존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요. AA급 각성자도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놈들인데 C에서 B급에 머물러 있는 각성자 단체를 정말로 받아 줄 거라 생각한 건가?”
백마존의 콧대는 하늘을 찔렀다.
그건 천외천의 세력 내에서도 유명했다.
무림맹, 사혈림의 인원조차 백마존을 꺼리는데 중소 가주들이 그들의 얼굴을 대신한다?
백마존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용만 당하다가 죽겠네요.”
백마존이 중소 가주가 필요한 이유는 딱 하나.
그들에게 달린 두 눈이었다.
아마도 자신을 확인하는 순간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그대로 폐기 처분할 게 뻔했다.
“쳇. 중소 가주를 통해 천외천의 정보 좀 알아내려고 했더니만, 아무것도 얻지 못할 듯싶어요.”
백마존을 모르는 한민성이라 이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으나 얼마 가지 않아, 이준의 뜻을 이해하고 말았다.
* * *
중소 가주들은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병력에 웃음꽃이 폈다.
이 얼마만의 외유인가.
그들은 오랜만에 어깨를 당당히 펴고 이동을 했다.
“흐으읍 하아아. 이 상쾌한 공기 오랜만입니다.”
“괜한 걱정을 했어요. 백 가주의 말마따나 별거 아니었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와 다른 괴물인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내가 뭐라고 했소. 백 가주의 말을 따르면 일이 쉽게 풀린다 하지 않았소.”
“천외천의 밑으로 들어가자는 제안에 지 가주가 제일 걱정하지 않았습니까.”
“크흠. 기억이 나지 않소.”
“하하하. 아무튼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그분들을 뵙고 싶습니다.”
중소 가주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천외천의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결단을 내리자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
그리고 천외천의 첫 지령으로 인해 한껏 들뜨기까지 한 상태였다.
그들이 맡은 첫 번째 임무는 바로 천외천의 뜻을 이준에게 전하는 일.
천외천의 대리인이 되었기에 중소 가주들은 병력을 이끌고 이준에게 향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분들이 정말 저희에게 무공을 내려 줄까요?”
“당연하지 않소.”
“도왕이나 검산의 회장도 천외천에게 힘을 받지 않았습니까? 저희에게도 그 힘을 똑같이 줄 겁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백 가주.”
모두가 백 가주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였다.
“거울로 그분들을 영접하지 않았소? 거짓말할 분이 아니오.”
“도왕에게 줬던 힘을 우리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전해 준 걸 보면 이건 일부분에 지나지 않은 것 같소.”
“그분들의 수하도 엄청 강해 보였습니다.”
“강하다 뿐이오. 오왕들을 씹어먹는 실력을 가진 느낌이었소. 내 생각으로는….”
“생각으로는?”
“그분들의 수하도 S급 각성자가 아니겠소?”
“헉! 수하가 S급 각성자라면.”
“그분들은 한참 위에 서 있지 않겠소?”
“S, SS급?”
“난 그렇게 생각하오.”
“이준 그놈이 천외천을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지 이제야 알겠소. 큭큭! 우리가 그 천외천의 산하로 들어갔으니 얼굴이 말이 아니겠소.”
가주들은 백 가주의 말에 흥분을 했다.
강한 자의 밑에 있을수록 떨어지는 콩고물도 클 터.
어쩌면 무공뿐만 아니라 더 큰 보상이 내려질지 몰랐다.
예를 들어 한국을 다스리게 한다든지, 일본을 다스리게 한다든지.
패주로 군림하게 해 줄 거란 기대감에 절로 몸이 떨렸다.
그들은 어느새 포항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이준이 타고 있는 배를 발견했다.
“우리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오.”
백 가주가 앞을 보며 말했다.
바다 한가운데에 정박해 있는 거대한 크루즈.
배 앞머리에는 이준이 뒷짐을 쥔 채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신기지가에서 우리의 움직임을 전한 모양입니다.”
“자기들끼리 다 해 처먹으려고 우리를 계속 주시해온 듯하오.”
“개자식들. 우리가 오대 가문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참에 자기들의 처지를 제대로 인지시켜 줍시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소.”
서로의 배가 가까워지자 백 가주가 이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말이 짧다?”
“어른이 아랫사람한테 말을 거는 거니 당연한 거지.”
백 가주의 태도에 이준의 곁에 있던 한민성이 버럭 소리쳤다.
“백 가주 당신 미쳤습니까? 예의를 차려도 모자랄 판국에 병력까지 이끌고 와서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한 이사장은 저 어린놈한테 고개를 숙이는 게 부끄럽지 않소? 대세를 잘 읽는 능력을 가지고 아직도 저놈의 옆에 있다니, 예전의 진법서생이 아닌 것 같소.”
“백 가주!”
“난 천외천에 투신했소. 이사장도 함께하겠다면 내 윗분들에게 잘 말해 주겠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한민성의 얼굴이 붉어졌다.
같은 가문 연맹회 소속이었다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답변 주길 바라오.”
백 가주가 이준을 보면서 한민성에게 말했다.
계속되는 도발에 이준이 피식 웃었다.
“이곳에 온 이유가 천외천의 말을 전하러 온 거야? 그래서 그렇게 기고만장한 거고?”
“눈치 없지는 않구나.”
예로부터 사절단으로 온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다.
말을 전하는 대리인을 건드리는 건 파렴치한 짓.
개망나니라도 사신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저리 막무가내로 나오는 게 아닐까.
하지만 백 가주는 사람을 잘못 봤다.
상대는 이준.
상식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준이 살기 어린 말을 뱉었다.
“이용만 당하다가 뒤질 것 같아서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명을 재촉하네.”
이후 그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곧바로 나오는 파육음.
우드득.
“크아악!”
이준의 손에 잡힌 백 가주의 머리가 배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난 애새끼라서 사절단에 대한 예의 같은 거 몰라.”
이준의 돌발행동에 가주들의 눈이 커졌다.
사신들을 공격하는 사람이 어딨나.
역사를 찾아봐도 사신을 죽이려 한 사람은 손에 꼽았다.
“이, 무슨!?”
“다, 당장 백 가주를 놓지 못해!”
놀란 가주를 향해 이준이 고개를 돌렸다.
웃고 있는 그의 얼굴.
비틀린 입매는 가주들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할 정도로 살기가 넘쳤다.
“그 입 안 닫으면 이놈처럼 될 거야.”
우드드득-
가주들의 귀에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준이 손아귀에 잡힌 백 가주의 머리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헙!”
“우, 우린 천외천의 사….”
“사신이면 뭐, 배알이 뒤틀리는데 내가 너희를 살려 줘야 하나? 법으로 정해졌어? 아니잖아.”
중소 가주들이 사신으로 왔든 말든.
이준은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을 도발한 이들에게 그에 걸맞은 무력을 행사할 뿐이었다.
* * *
“낄낄낄. 이놈 꽤 재밌는 놈이야.”
한 노인이 거울을 보면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거울에 한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느낌이 어떤데?”
“손속이 우리 못지않아. 행동에 거침이 없어.”
“애송이가 아니다 이거냐?”
“지주도 당했는데 애송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하지.”
거울을 보는 노인을 비롯하여 꽤 많은 인원이 방에 모여 있었다.
다양한 연령들.
아이부터 청년, 숙녀, 노인까지.
다양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노인을 향해 말했다.
“백마존, 그 녀석한테 말 좀 걸어 봐.”
“그래 볼까?”
“애초에 그러려고 쓰레기들한테 접촉한 거 아닌가?”
“그랬지. 낄낄.”
“우리도 저 녀석 반응 좀 보자.”
“알았다.”
거울을 보고 있는 노인의 동공이 확장됐다.
검은자가 흰자를 다 덮은 순간!
한 가주의 입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