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9화
[날 구해 줘서 고맙…!]
백호가 몸을 일으키며 감사의 인사를 하다가 놀라 했다.
[청룡과 주작, 현무의 힘까지! 넌 누구냐?]
이준의 몸에서는 백호의 기운만 뺀 나머지 신수의 힘이 흘렀다.
청룡무의, 혼원반지, 파멸겁.
이 신물을 한꺼번에 가진 인간은 딱 한 명.
무극자밖에 없었다.
인간은 신수의 힘을 감당할 수 없을뿐더러 세 가지 신물을 모두 착용하려면 마신지체나, 태양지체가 아니고선 불가능했다.
물론 무극자는 이 두 신체를 타고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재앙적인 힘으로 신물을 가졌던 인간.
무극자 이외의 인간은 신물을 착용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내 기운을 보면 감이 안 와?”
[기운?]
백호는 뒤늦게서야 이준이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알아차렸다.
[그가 드디어 전인을 찾았구나?]
“정답. 내가 널 정화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파멸겁과 혼원신공 덕분이야.”
[신물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전인이라… 태양지체냐? 아니면 마신지체냐? 네 모습을 보면 태양지체일 것 같은데.]
“마신지체야.”
[뭐라고!?]
“왜 그렇게 놀라.”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백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면서 경계를 했다.
“마신지체가 어때서?”
[정녕 마신지체가 어떤 신체인지 모른단 말이냐?]
“모든 마의 정점에 서 있는 신체잖아.”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혼원신공과 마신지체는 극악의 조합이다.]
“천살성 때문에?”
[맞다. 천살성이 마신지체를 만나면 피가 산과 강을 이룬다. 고대 시대 때부터 전해져 오는 불변의 법칙이다.]
“그건 문제없어. 나랑 잘살고 있거든.”
[네가 컨트롤 할 수 있다고 해서 자만하면 안 돼!]
백호가 버럭 소리쳤다.
심각한 표정을 한 채 말을 이었다.
[천살성은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운명 그 자체이지. 지금은 천살성과 잘 지내지만 기폭제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그때를 노리고 천살성이 깨어나 네 몸을 집어삼킬 것이다. 오직 태양지체만이 천살성의 운명을 피할 수 있어.]
마신지체를 타고난 인간은 살성의 운명을 가졌다.
무공을 가르치지 않더라도.
시골에 짱박혀서 촌뜨기가 되어 있더라도.
운명이 마신지체를 타고난 인간을 살귀로 만들었다.
헌데 피의 별인 천살성과 마신지체가 한 인간에게 있다면 어떻게 될까?
피를 보는 게 두 배로 늘어날까?
아니었다.
세상을 파멸시킬 것이다.
“네가 어떤 걱정을 하는지 알겠는데, 천살성은 나이기도 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이런 멍청한! 내 이야기를 뭐로 받아들인 것이냐!]
백호가 화를 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수에게 잔소리를 듣던 이준은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네가 마신지체가 아니었다면 이러지도 않는다. 하지만 천살성과 네 신체는 재앙 그 자체야. 알아 듣겠…!?]
백호는 말하다 말고 다시 한번 눈동자가 커졌다.
이준이 수호혼을 착용하는 게 아닌가.
[자, 잠깐! 전부 착용하면 네 몸이 버티지 못할 거다!]
백호가 황급히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이준이 이미 수호혼을 신었기 때문.
그의 몸에서 빛이 뿜어졌다.
네 가지 신물이 한곳에 모였으니 신물이 힘을 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빛이 사그라들자 백호가 당황스러워했다.
[너, 너! 괘, 괜찮은 것이냐?]
“와, 괜히 신물이 아니구나.”
내력이 넘쳐흘렀다.
환골탈태를 겪은 것처럼 몸이 깃털같이 가벼웠다.
무엇보다 제일 큰 효과를 본 건 바로.
[사신수의 힘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바람, 불, 물, 땅 모든 속성의 숙련도가 MAX로 변합니다.]
[전 능력치가 조정됩니다.]
……
……
……
[작게 열려 있던 상단전이 활짝 열렸습니다.]
[혼원신공(SSS)이 10성의 벽에 도달했습니다.]
상단전이 열려서 혼원신공이 단번에 10성의 벽에 다가섰다.
경지를 두 단계나 건너뛴 것.
누가 보면 정말 쉽게 강해진다고 생각할 메시지였다.
혼원신공이 10성의 벽에 달했다는 건 각성자의 등급으로 SS급 끝자락이란 소리니까.
무림의 경지로는 현경 끝자락이 지금 자신의 경지였다.
물론 좋은 메시지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
[10성의 벽을 깨려면 사신전의 마지막 관문에 도전하십시오.]
시험에 도전하라는 말이었다.
백호를 정화하는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무극자 사부의 혼력을 높였다.
사부가 영혼으로 있을 시간이 더 늘어났다는 말.
사부를 이승에 더 붙잡아 놓았는데 바로 관문에 도전하란다.
만약 관문을 통과한다면?
‘사부가 내 곁에 사라지시겠지.’
사부의 영혼은 소멸될 것이다.
이건 자신이 원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난 충분히 강해.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그때 관문에 들자.’
굳이 지금 시험에 들 필요가 있을까?
광기에 휩싸인 백호도 상대했다.
파랑이와 같이 싸우긴 했지만 그래도 상대는 신수 아닌가.
이 정도면 굉장히 강했다.
네 신물을 착용하고 경지가 두 단계나 상승하기도 했으니.
시험에 들 필요가 없었다.
[마신지체의 인간이라면 네 개의 신물에 대한 반발이 더 클 텐데….]
“뭘 기대한 거야?”
[저, 정말 괜찮은 것이냐?]
“보시다시피.”
[믿을 수 없다. 천살성이 깨어나야 정상인데.]
“천살성은 이미 깨어 있는데 무슨 소리야.”
[뭐라고!?]
“보여 줘?”
[그래. 내게 보이거라.]
“참 귀찮게 하네.”
이준이 말을 끝내는 순간!
화아악-
무극기와 함께 폭발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좀 전과 전혀 다른 이준.
그의 몸에선 죽음의 기운이 흘렀다.
살기였다.
천살성만이 이렇게 짙고 강한 살기를 내보일 수 있었다.
[어찌 이, 이런 일이!]
“됐지? 이제 정산할 시간이야.”
살인적인 살기는 온데간데없고, 고요한 바람만이 살랑였다.
[저, 정말 천살성을 컨트롤 하는 것이냐? 마신지체를 가진 네가?]
“컨트롤이 아니라 내가 천살성이고, 천살성이 나라니깐 그러네.”
[말도… 안 된다. 너 같은 놈은 들어보지도 못했어.]
“아, 됐어. 말 돌리지 말고 정산하자. 네가 광기에 휩쓸려 죽인 내 가솔들 어쩔 거야.”
[그건… 미안하게 됐다. 내 사과하지.]
“난 말로만 하는 사과 안 받아.”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흑염마조가 그러던데 사신수는 은혜를 꼭 갚아야 한다던데 맞아?”
[그렇다.]
특히 목숨에 대한 은혜는 무게가 무거웠다.
자신들이 무시한 인간에게 구함을 받은 것이니.
어떻게든 갚아 줘야 하는 게 사신수들만의 룰이었다.
아니면 사신수로서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니까.
“이들에게 힘 좀 줘.”
[전부에게 말이냐? 한 명에게는 줄 수 있지만 전부는 불가능하다.]
“내가 잘못 말했구나. 이들을 강하게 만들어 줘. 지금보다 두 배 정도로 말이야.”
[음….]
사신수로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네가 죽인 사람을 살려 달라는 것보다는 쉬운 부탁 아닌가?”
[명계로 건너간 인간을 살리는 것보다는 쉽지. 알았다. 대신 내 훈련을 버티지 못하면 버리겠다.]
“사 대주 들었지? 앞으로 백호가 무극대를 훈련 시킬 거야.”
“죄송합니다. 또 주군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내가 더 미안하지. 백호가 광기에 휩싸인 줄 알았다면 너흴 밖에 대기시켰을 거야.”
이준이 무극대와 게이트에 들어온 이유는 하나였다.
꽤 직책이 높은 지주 측 인원이 왔다.
그들을 통해 새로운 무공을 배우고 강해진 무극대를 시험하기 위해서 였다.
하나 시험은 해 보지도 못하고 백호에 의해 무극대원들만 희생됐다.
언제까지 자신 혼자 날뛸 수 없었기에.
무극대를 써먹으려 했던 건데 때를 잘못 선택했다.
“희생자의 가족은 사신가의 이름으로 잘 챙겨 줘.”
“그러겠습니다.”
이준이 사형준과 이야기를 끝내자 백호의 음성이 들려왔다.
[조건이 또 있다.]
“뭔데?”
[곁에서 너를 관찰해야겠다.]
“왜?”
[지금 본 것만으로는 네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사신수의 의무 중 하나는 천살성이 깨어나는지 지켜보는 거다. 널 감시할 이유는 충분하다.]
“졸지에 두 마리의 신수를 두게 생겼네.”
[두 마리?]
“흑염마조도 내 밑에 있어.”
[성화가 말이냐?]
“응.”
[하, 하긴 그놈은 인간을 주인으로 모신 전력이 있으니… 하지만 난 너를 감시할 목적이지 주인으로 둘 생각 따윈 없다.]
“그러면 나도 거절할게. 누가 날 감시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말이야.”
이준의 단호함에 백호가 흔들렸다.
백호에겐 마신지체에 천살성까지 지닌 이준의 감시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감시에 있어서는 곁에 있는 게 제일 좋았다.
또한 이준의 곁에는 지배자 종 몬스터까지 있었다.
그 혼란스러운 녀석은 왜 인간의 곁에 있는 걸까.
지배자 종 몬스터의 의중도 알아봐야 했다.
무극자를 제외하면 제일 눈여겨 봐야 하는 인간이었다.
[좋다. 네 밑으로 당분간 들어가겠다. 그러나 명심해라. 난 마조와는 달리 감시의 목적으로 곁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든지.”
[서쪽의 지배자 백호가 귀속을 청합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 (Y/N)]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호가 귀속되었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이제 정말 물어볼 질문을 해야 할 차례였다.
“카오스 몬스터한테 공격당한 이야기 좀 해 줘.”
[긴 이야기다. 그래도 들을 테냐?]
“나한테도 중요한 이야기야.”
카오스 몬스터는 천외천과 관련되어 있었다.
길어도 이야기를 듣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말해 주지. 난 현무를 찾기 위해…]
백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이준과 무극대는 귀를 기울였다.
* * *
“지주!”
“탈령존자께서는 안 바쁘세요? 절 계속 찾으시네요.”
“큰일 났습니다!”
“오늘은 어떤 일일까요?”
“화혼존자가 당한 것 같습니다. 연결됐던 끈이 떨어졌습니다.”
“계속 안 좋은 소식만 들리는 건 저만의 생각인가요? 천마강시의 완성을 코앞에 둬서 기분이 좋았는데 말이죠.”
지주의 눈이 검은빛으로 번뜩였다.
“죄송합니다.”
“탈령존자의 잘못이 아닌데 왜 사과하세요. 요번에도 이준이겠죠?”
“그밖에 없을 겁니다.”
“한국만 가면 죽어서 돌아오는 존자들이라… 그러면 포기해야지. 한국은 그냥 놔두세요.”
“호왕신은 어찌합니까? 인주가 노발대발할 텐데…”
그때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하 실험실로 인주가 찾아왔다.
“사저! 호왕신을 포기하다니 무슨 소리요.”
“한국은 그냥 내버려 두려고.”
“나와 거래가 있지 않았소.”
“지킬 생각이야.”
“한국에 가지 않으면 호왕신을 얻을 수 없는데 약속을 어떻게 지킨단 말이오?”
“우리가 가지 않고 이준을 이곳으로 오게 할 생각이야.”
지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의 미소에는 요사스러운 사기 묻어 나왔다.
음흉한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어떤 계획인지 말해 주시오.”
“일본 전역에 균열을 일으킬 생각이야. 일반 게이트부터 카오스 게이트까지.”
“그리고?”
“아시아 전역에 도움을 청해야지. 우리의 힘 가지고는 균열을 전부 막지 못한다고.”
“그때를 틈타 한국으로 가서 호왕신을 가져오자?”
“아니. 이준이 환혼존자를 죽였다면 호왕신을 얻지 않을까? 놈을 이곳으로 불러와서 호왕신을 강탈하면 돼.”
“이준이 호왕신을 얻지 않았다면 어찌 되오?”
“그때는 네가 한국으로 가서 가져오면 되잖아? 이준은 이곳에 있을 텐데 무슨 문제야.”
“좋은 생각이오. 난 또 사저가 나와 약속을 안 지키려는 줄 알았소.”
“놈을 맞을 준비나 해.”
“알겠소.”
“탈령존자는 지금 바로 균열을 일으키세요.”
“존명!”
인주와 탈령존자가 지하 실험실을 나갔다.
지주는 돌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예쁜 얼굴을 가진 시체.
살아 있을 때 남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여자일 듯했다.
“네가 이 더러운 기분을 풀어 주지 않으련?”
지주가 여자를 향해 중얼거렸다.
주술을 거는 듯 주문을 외웠다.
지주의 목소리가 사그라들 때쯤 시체처럼 누워 있던 여자가 눈을 떴다.
“여긴…?”
“일어났니? 아직 완성된 게 아니니 애써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 마.”
지주가 눈을 뜬 여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누구세요?”
“나? 네 주인이야.”
“전… 누군데요?”
“네 이름은 사사키 유우. 사사키 가문의 차녀이자 사독이란 이명을 가진 아이란다.”
지주가 천마강시로 만든 사람은 아시아 학원 대항전에서 죽은 사사키 유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