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4화
지잉-
이준은 4대 성지의 금역으로 들어와 몬스터를 불러 모았다.
“테구르, 로티틸, 샥쿠!”
그의 부름에 대장간에서 망치질하던 테구르가 일도 팽개치고 나왔다.
로티틸도 농사를 짓다 왔고, 샥쿠는 몬스터의 훈련을 멈추고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요. 주인님.”
테구르가 손을 비비며 몸을 낮추었다.
불의 신봉자가 되고도 비굴한 모습은 여전했다.
“장비는 어때?”
“보수는 끝났고, 장비는 업그레이드 중입니다요.”
“시간이 꽤 걸리네.”
“재료를 수급하는데 오래 걸립니다요. 페어리들은 농사는 잘하지만 광석을 캘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요. 광석을 캐려면 저희 스케먼이 움직여야 하는데 대장간에서 일할 일손도 부족합니다요.”
“몬스터가 더 필요하려나?”
“일의 효율성을 늘리려면 머릿수를 늘려야 합니다요.”
“스케먼은 너희가 다라고 했지?”
“그럽습죠.”
“너희랑 비슷하게 일하는 몬스터가 있을까?”
“한 종족이 있습니다요.”
“어떤 종족인데?”
“웨어파드입니다요.”
“웨어파드? 그 표범 탈을 쓴 미친 사냥개들?”
“주인님도 그 개새끼들을 아십니까요?”
“알다마다.”
웨어파드를 어떻게 모를까.
표범의 탈을 쓴 인간형 몬스터.
머리 하나는 끝장나게 좋았다.
신기지가를 폭삭 망하게 한 주범이기도 했다.
태생이 블루급 몬스터였지만, 놈들의 특기는 사냥.
사냥감을 정하면 어떻게든 목덜미를 물어뜯는 게 웨어파드였다.
등급을 두뇌로 커버 치는 녀석들.
요란하게 균열을 일으키지 않고 어둠을 틈타 신기지가의 각성자를 한 명씩 죽여 갔다.
암살을 반복.
그로 인해 겁에 질린 신기지가의 식객들은 모두 도망쳤다.
이 때문에 신기지가가 멸문의 길을 걸어가게 됐다.
모두 천외천이 벌인 짓.
웨어파드도 살기 위해 신기지가를 사냥한 것이다.
그때의 충격이 아직까지 생생했다.
오대 가문에 속한 신기지가가 블루급 몬스터에 의해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건 보지 않고는 믿기 힘든 일이었으니까.
“암살이랑 기습만 잘하는 놈들인 줄 알았는데 장인 기술도 가지고 있었어?”
“저희보다는 현저하게 떨어지지만 일꾼으로서 꽤 쓸 만합니다요.”
“웨어파드라… 좋아. 놈들을 데려올게.”
“그, 주인님!”
이준의 확신에 테구르가 다급히 그를 불렀다.
“왜?”
“웨어파드를 데려오시면 말입니다요.”
“뭔데 뜸을 들여?”
“제 밑 서열로 넣어 주시면 안 될깝쇼? 헤헤.”
테구르가 최대한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강아지가 배를 까고 뒤집어서 복종 또는 항복했다는 표현을 내보이는 것 같았다.
녀석의 마음을 이해한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데리고 오면 네 밑에 넣어 줄게.”
“감사합니다요! 충성을 다해 주인님을 모시겠습니다요!”
“그렇게 좋냐?”
“물론입습죠. 이제 막내 생활을 벗어나는 게 아닙니까요.”
불의 신봉자가 되어 블랙급 몬스터가 되었지만 전투 인원이 아니었다.
샥쿠와 페어리는 공격력으로는 레드와 블루급에서도 최상위에 속한 편.
녀석들의 등급이 블랙급이 되니, 여전히 테구르가 막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우리 테구르의 마음을 못 읽었네. 빨리 데리고 올 테니 그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어.”
“분부 받들겠습니다요!”
“가서 일 봐.”
“예!”
테구르가 경례를 하고 대장간으로 갔다.
다음은 로티틸이었다.
“식량 비축은 잘 돼?”
“2년 치 식량은 거뜬해요.”
“혹시 말이야 생명수가 이곳에 있으면 농사가 잘 될까?”
“물론이죠. 세계수 중에서도 생명수는 최고예요. 힐링과 더불어 곡식에도 숨을 불어 넣어 주거든요.”
“그렇단 말이지?”
“생명수는 왜요?”
“구해 오려고.”
“네에?”
“게이트에 세계수 하나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이준이 씩 웃었다.
게이트는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중세의 양식과 현대의 양식이 공존하는 공간.
그러면서 시골의 풍경도 보였다.
4대 성지의 금역은 이준에게 작은 지구가 되어 있었다.
바깥세상에 나가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된 것.
식량을 담당하는 로티틸도 한몫했다.
“세계수는 내가 가져올 테니까 로티틸도 수고해 주고.”
“넵!”
“샥쿠는….”
“문제없습니다.”
“넌 알아서 잘하니까 패스.”
“……”
샥쿠는 이준에게 칭찬을 받지 못해 언짢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주인에게 불만을 품는 건 죄라고 생각한 샥쿠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준이 게이트를 나가려는 그때였다.
“테구르한테 좋은 창 하나 더 달라고 해. 내가 말했다고 전하고.”
“주인님….”
창사에게 최고의 선물은 그에 맞는 무기를 선물해 주는 것.
이준도 창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입장이라 샥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간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샥쿠가 이준을 향해 절도있게 고개를 숙였다.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 * *
이준은 금역을 나와 다시 생명의 샘 게이트로 갔다.
쇠사슬이 풀려 있었으며 붉은색이었던 게이트가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다.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는 증거였다.
‘언데드 종이 수하로 오는 건 별로긴 한데 생명수를 포기할 순 없지.’
이준이 게이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주인이 없는 빈 게이트입니다.]
[게이트를 종속시키겠습니까? (Y/N)]
‘어.’
[레드존 게이트인 ‘생명의 샘’을 얻으셨습니다.]
[사신수의 호감을 얻고, 지배자 종의 주인으로 있는 당신에게 생명수가 호기심을 드러냅니다.]
[숨어 있는 보상이 있습니다. 획득하시겠습니까? (Y/N)]
‘어? 애들이 보상은 다 가져갔을 텐데.’
게이트를 클리어한 건 특별 1반 학생들이었다.
보스 몬스터를 잡고 보상을 얻었을 터.
그런데 뜻밖에도 숨어 있는 보상이 있었다.
‘개꿀이네.’
언제나 공짜는 좋은 법.
보상을 획득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모투술(S)을 획득하셨습니다.]
무공서였다.
허공에서 책 한 권이 자신의 손으로 떨어졌다.
‘무슨 내용이지?’
책을 펼쳐서 안의 내용을 봤다.
책의 첫 내용은 이랬다.
[모투술은 잡기에 불과하다. 하나 대성을 한다면 미래를 읽은 예언자가 될 것이다.]
이준은 책을 빠르게 훑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사람의 기억을 읽는 술법이라니! 미쳤어!”
대단한 책이었다.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
화장실을 갔던 게이트 담당관이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준은 책을 쥔 채 경공을 펼쳐, 이곳을 벗어났다.
높은 빌딩 위로 온 그가 책을 찢었다.
[모투술(S)을 배웠습니다.]
[앞으로 상대방의 기억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번 써 보고 싶네.”
손이 근질거렸다.
언제나 새로운 무공은 짜릿한 법.
더군다나 모투술 같은 희귀한 기술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제 자신은 전생의 기억과 상대방의 기억을 읽는 기술을 가졌다.
부족했던 전생의 기억을 보완해 주는 게 바로 모투술이었으니.
든든한 아군을 얻은 느낌이었다.
팟!
이준은 빌딩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게이트에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은 인간이 있습니다. 강제로 추방하시겠습니까?]
“아니 그대로 놔두고 출입 조건을 모두로 바꿔.”
[게이트 출입 조건을 전부 해제 했습니다.]
이러면 학생들의 시험을 지장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생명의 샘 게이트를 복종시켜서 언데드 종을 얻을 줄 알았건만 아니었다.
[레드급 몬스터 우드엘이 종속되었습니다.]
“우드엘!?”
우드엘은 트리형 요정 몬스터였다.
페어리와 같은 계열이라고 해야 할까.
자연에서 이 몬스터의 도움 없인 살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오늘 완전 계탔네.”
이준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가 볼 때 생명의 샘은 일반 게이트.
데스템플러가 나오는 것 빼고는 딱히 보상이 좋은 게이트가 아니었다.
전생의 기억에도 이곳에 특별한 아티팩트가 떨어졌다는 정보도 없었고 말이다.
한데 전생과는 많이 달랐다.
모투술과 우드엘이란 몬스터.
이 두 개를 얻은 걸 보니 생명의 샘 게이트는 일반 게이트가 아니었다.
오히려 특별한 게이트였다.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 우드엘이 기뻐합니다.]
[주인에게 모습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 (Y/N)]
“지금? 내 앞에 아니면 게이트 안에?”
이준이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애들 시험 끝나고 보자.”
자신 앞에 나타나면 별 탈이 없지만, 게이트에 있는 학생들 앞에 나타나면 싸움이 벌어질 터.
아군끼리 싸우게 할 순 없었다.
* * *
잠시 천막에서 나와 있는 한민성.
그는 비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또 가문의 식자재가 사라졌다고요?”
“네. 육고기랑 생선만 감쪽같이 없어졌습니다.”
“CCTV에도 안 잡혔으니 나한테 보고하러 온 거겠고. 이걸 어디 가서 말하지도 못하고 환장하겠어. 형님께선 뭐라고 하세요?”
“진법 연구에 한창이신지라…”
“건드릴 수 없겠군요. 휴우우 내 팔자야.”
한민성이 한숨을 푹 쉬었다.
가주도 아니면서 집안일은 모두 그가 처리했다.
신기학사 한지웅은 천외천을 때려잡을 진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형을 대신해 모든 일은 한민성이 도맡아 해야 했다.
“도둑놈의 그림자라도 찾으세요. 가솔들한테 도둑고양이를 못 잡으면 잠잘 생각은 하지 말라고 전하고요.”
“네!”
비선이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한민성의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명색에 오대 가문에 속한 신기지가였다.
한데 도둑고양이 하나 못 잡다니.
밖에 알려지면 가문의 명성이 땅에 떨어질 일이었다.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 휘유우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세요?”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 갔던 이준이 돌아왔다.
“암상에는 잘 갔다 오셨습니까?”
“네. 뜻밖의 소득을 봤어요. 아!”
이준이 한민성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한민성의 얼굴에 가득 뜬 수심.
걱정거리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자신에게 말을 안 하는 거 보니, 천외천의 일은 아닌 듯하고 그럼 가문과 관련된 일 아닐까?
아니면 개인적인 일이든지.
모토술을 배우니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호기심이 들었다.
‘물어봐도 안 알려 줄 것 같으니까 모투술을 써 볼까?’
마음을 먹은 이준이 한민성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자 한민성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너무 빨라.’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장면을 느리게 하지 않으면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할 것 같았다.
혼원신공을 사용해 최대한 장면을 느리게 하려고 애를 썼다.
‘존나 힘들어.’
무공을 펼쳐 싸울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모투술은 상단전을 이용한 술법.
상단전이 열려 있다곤 하나 아직 제대로 활용할 방법을 몰랐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 아프시기라도 한 건지…?”
한민성은 걱정한 얼굴을 한 채 물었다.
불러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준.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게 한민성의 눈에 들어왔다.
“이 선생님!”
한민성이 이준을 힘주어 불렀다.
“허억… 허억…!”
“괜찮으십니까?”
“시험할 게 있어서, 이제는 괜찮습니다.”
이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혼원신공으로 내기를 안정시켰다.
‘조금은 봤어.’
계속 시도를 하니 한민성의 기억을 읽는 데 성공했다.
아직은 숙련도가 부족할 뿐.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모투술 또한 개사기 기술에 속할 거다.
“이사장님. 최근 신기지가에 도둑고양이가 나타났죠?”
“이건 가솔만 아는 이야기인데…?”
“오면서 살짝 엿들었어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다 부끄럽군요. 고작 고기나 훔치는 도둑고양이도 못 잡는 가문이라니.”
“그 도둑고양이가 보통이 아닐지도 모르죠.”
“혹, 이 선생님께서는 도둑고양이가 누군지 아십니까?”
“누군지 예상은 하고 있어요.”
“누굽니까?”
“아직은 저녁이 아니니, 해가 지면 저랑 같이 잠시 신기지가에 갔다 오죠. 도둑고양이가 누군지 알려 드릴게요.”
“그래 주시겠습니까?”
“난감한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사는 거죠. 대신 지유한테 제가 도와줬다고 강조 좀 해 주세요. 나중에 부려 먹을 때 써먹어야 하니까요.”
“하하. 알겠습니다.”
한민성이 호탕하게 웃었다.
앓던 이가 빠진 얼굴이랄까.
창제가 나서준다니 근심 걱정이 사라진 표정이었다.
그보다 이준은 모투술의 가치를 확인해서 기뻤다.
또한 한민성의 기억을 읽음과 동시에 테구르가 부탁한 일을 처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신기지가의 도둑고양이는 웨어파드가 분명할 테니까.
전생의 기억으로도 이는 확신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