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화
가문 연맹 회의실 내부.
가주들은 자리에 앉아 쥐 죽은 듯이 있었다.
오로지 눈알만을 굴린 채 서로 전음을 오갔다.
‘원래부터 검제 님이 기운을 대놓고 드러냈소?’
‘그럴 리가. 기감을 철저히 감추시는 분 아니오.’
‘그럼 저 모습은 뭐란 말이요? 날카롭게 벼려진 하나의 칼 같소.’
검제는 가만히 있었으나 그의 주변은 뇌기로 요동쳤다.
제어를 한다고 했지만, 수련으로 인해 기운이 너무 강해진 상태였다.
정제되지 않은 패기로 인해 화가 잔뜩 나 있는 것처럼 보인 것뿐이다.
‘괴개 님은….’
‘말을 걸면 바로 독수를 뿌릴 것 같은 느낌입니다.’
‘S급은 기를 감출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저 두 분은 왜 저러시는 거지?’
‘우리에게 화라도 나셨나?’
‘저분들에게 가문 연맹회가 잘못한 게 있소?’
가주들은 전음을 하면서도 계속 눈치를 봤다.
검제뿐만 아니라 괴개도 똑같았다.
그의 몸에서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운.
마치 독기가 사방에 흩뿌려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독에 기반을 둔 심법.
검제처럼 패기를 뿜어내는 게 아니라, 음유하고 살기가 짙은 기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가주들은 검제와 괴개에게 그 어떤 말도 걸지 못했다.
“한 달 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반대로 이준은 말을 걸기 편했다.
특히 이준과 친한 진병철은 옆자리에 앉아 말을 붙였다.
가주들은 전음을 하다 말고 진병철과 이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두 분과 수련만 했어요.”
“역시! 괜히 창제란 이명을 가지신 게 아닙니다. 얼마나 더 강해지시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하시는지, 존경스럽습니다.”
진병철이 극찬을 했다.
그는 투존의 무공을 얻고 더욱 이준을 신처럼 받들었다.
지금이라면 가문의 합병 제안도 거절하지 않을 만큼 맹목적 믿음을 가지게 됐다.
“투존의 무공은 어떱니까?”
“천완심법과 철심각은 비교도 안 됩니다.”
“잘 익히시면 S급은 거저먹을 거예요. 진경수 학생의 재능이라면 머지않아 S급도 바라볼 겁니다.”
이준의 말을 듣고 있던 가주들의 눈이 커졌다.
투존의 무공을 진씨 가주가 얻었고, 두 부자가 현재 새로운 무공을 배웠다는 이야기였다.
투존의 무공은 소문만 무성했지 실체가 없었다.
도굴꾼들이 게이트를 돌아다니며 무공서를 찾아봐도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던 투존의 무공.
그게 진씨 가문으로 간 것이다.
“선생님만 믿고 있습니다. 우리 경수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무엇입니까?”
“벌써 겨울 방학 아닙니까? 경수 학생은 곧 졸업입니다.”
“아.”
진병철도 졸업은 미처 생각 못 했는지 낭패의 얼굴을 했다.
“유급이라도 시키겠습니다.”
“에이. 유급은 너무 하네요.”
“창제께 무공을 배울 수만 있다면 유급이 문제겠습니까? 학교의 제도라도 뜯어 고쳐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검왕 님?”
그 옆에서 진병철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던 박영섭이 헛기침하며 말했다.
“3학년이 유급해서 창제께 계속 배운다면 자칫 다른 아이들에게 갈 혜택이….”
“정원을 더 늘리면 되는 것 아닙니다. 검왕 님의 딸도 3학년인 걸로 아는데.”
“우리 딸이야 뭐, 할아버지에게 배워도 되지 않겠습니까. 다른 아이들에게 배울 기회가 돌아가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박영섭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심지어 살기까지.
시선을 보낸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의 아버지인 검제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입에는 육두문자가 무음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진병철이 옅게 웃었다.
“검제께서는 검왕과 뜻이 다른 모양입니다. 후후.”
“그래도 유급은 안 됩니다.”
“아….”
이준의 단호함에 진병철은 안타까워했다.
아들인 진경수가 이준의 밑에서 1년만 더 배운다면 엄청난 발전을 이룰 터.
하필이면 졸업이 다가와서 그의 밑에서 배운 날이 6개월도 되지 않았다.
하나 진병철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검제 님. 부속 대학을 하나 설립하는 게 어떠신지요? 자금은 저희가 지원하겠습니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검제를 설득하고 나섰다.
바깥일은 모두 검왕에게 위임한 그였지만 이번 일 만큼은 진병철과 뜻을 같이했다.
“좋은 생각이네. 무사고를 나와서 바로 현역으로 뛰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는데, 청춘을 보낼 수 있는 자율적인 분위기의 각성자 대학을 만드는 것도 좋겠어. 아니 그러냐 심호야.”
“교수의 한 자리를 창제가 맡아 준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지.”
괴개 또한 같은 의견이었다.
그의 손녀인 정예나도 졸업 예정자.
무사고의 부속 대학을 만드는 건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
“제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게 창제 님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지요. 최연소 교수라는 타이틀 탐나지 않습니까?”
진병철은 은근슬쩍 이준을 부추겼다.
그를 대해 본 바로는 이준은 은근히 명예와 돈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노골적으로 원하기도 했다.
고수는 명예와 권력에 관심이 없다고 알려졌는데 이준은 그 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호, 교수란 말이렷다? 받아들이거라.]
‘아직 대학을 짓지도 않았어요.’
[1년이 지나든, 2년이 지나든 대학이 완공되면 교수직으로 가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미리 수락하는 것이니라. 네게는 숨만 쉬어도 강해질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일이다.]
학생들을 가르칠수록 테크트리 포인트가 많이 올랐다.
지금도 포인트가 오르고 있었다.
[박정연의 내공이 +0.1 상승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박혁진의 정신력이 +0.1 상승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이젠 이런 자잘한 메시지까지 뜨는 상태였다.
만약 가르치는 학생들을 더 늘린다면 어떻게 될까.
무극자 사부의 말처럼 숨만 쉬어도 강해질 수 있었다.
‘교수라는 직함이 당기긴 하네요.’
[홀홀. 모든 명예를 독차지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이제야 좀 깨닫고 있구나.]
‘좋아요. 받아들이죠. 선생도 하는데 교수라고 못하겠어요? 그리고 몇 년 후의 이야기인데 미리 수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사부와 이야기를 나눈 이준은 결정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좋습니다. 그 교수직 받아들이죠.”
“현명한 선택을 하신 겁니다.”
“신기가주.”
“말씀하십시오. 검제 님.”
“각성자들을 위한 대학교 건립을 추진해 보게.”
“이번 일이 끝나면 바로 회의를 나눠 보겠습니다.”
검제의 제안이었다.
괴개 또한 이를 찬성했다.
오대 가문의 최종 후보인 진씨 가문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신기지가의 가주는?
그 어떠한 반대도 없었다.
오대 가문 중 무려 네 곳이 대학 설립에 찬성하는 꼴.
다른 가문에서 말린다고 지어지지 않을 건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대학이라면 자율 적인 곳이다.
커리큘럼도 무사고보다 훨씬 자유롭지 않을까.
그러면 창제의 수업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가주들도 반대할 필요는 없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때마침 회의실 문이 열리고 한민성이 들어왔다.
“중국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장소는 어딘가?”
“그게….”
“자기 나라로 오라고 하던가?”
“개잡놈들. 또 무슨 흉계를 꾸미려고.”
가주들의 목소리에 한민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북한의 평양에서 대장전을 하자고 합니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전원 일그러졌다.
* * *
옛날 북한이 있던 땅은 황폐화가 된 지 오래였다.
부산과 마찬가지로 북한 전체가 균열 지역이었다.
몬스터가 득실득실해 여기가 지구인지, 게이트 안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창제.”
“말씀하세요.”
“천외천이 왜 평양으로 무대를 정했는지 아시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검제의 물음에 이준이 고개를 저었다.
북한은 과거나 현재나 천외천과 접점이 없는 곳.
딱히 정보랄 게 없는 지역이었다.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 우리나라에 피해가 안 가면 좋은 거지.”
괴개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대장전을 벌이는 각성자의 수준은 손 한 번에 산을 날려 버릴 위력을 가졌다.
그런 이들이 한국에서 싸우면 아무리 마법으로 건물을 복원한다 하더라도 매우 큰 손실이었다.
하나 북한에서 싸운다면 피해는 전무.
오히려 한국에 좋았다.
그곳은 황폐한 땅이니까.
그렇다고 중국 땅에 가서 싸우는 것도 아니었으니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중국 자식들이 얼마나 음흉한지 모르나.”
“옛날에 숱하게 겪어 봐서 잘 알지.”
“그러니까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함정을 파 봤자 무대 주위 아니겠느냐.”
“천외천을 생각한다면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검제와 괴개는 평양으로 가는 내내 입씨름을 했다.
크르르르-
어디선가 짐승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에게 쏘아지는 시선들.
개성 지역을 점령한 몬스터의 눈빛이었다.
“살벌하네요.”
이준은 경공을 펼치면서 중얼거렸다.
부산의 균열 지역보다 오염이 심한 개성.
그 때문인지 몬스터의 강함도 남달랐다.
이준이 몬스터를 보고 살벌하다고 할 정도이니 오죽할까.
“우리가 북한을 수복하지 못한 이유가 강력한 몬스터 때문이지. 창제는 이곳에 처음 오는 것이오?”
“네. 실제로는 처음이에요.”
“내가 개성을 넘은 것도 30년 만이니 그럴 만하오.”
이준이 태어나기 전 1세대 각성자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싸웠다.
그중 한 곳이 바로 멸망한 북한이었다.
옛 우리의 영토였기에 몬스터에게 점령당한 곳을 수복하려고 1세대 각성자가 움직였지만 무리였다.
북한을 망하게 한 균열이 전역을 지배했던 탓.
몬스터를 죽이고 또 죽여도 게이트에서 계속 쏟아져 나왔다.
결국 북한을 수복하는 걸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이후로 북한 땅을 밟은 것이 30년 만인 검제와 괴개였다.
“감회가 새롭구먼.”
“여긴 변한 게 하나도 없어.”
경공을 멈췄다간 일제히 달려들 것 같은 몬스터들.
세 사람은 녀석들을 피해 북쪽으로 계속 올라갔다.
경공을 써서 달려온 끝에 평양에 도착했다.
서늘한 겨울 날씨와 적막감이 도는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웠다.
“저쪽도 오나 보네요.”
이준이 앞을 가리키자 다섯 사람이 모습을 보였다.
그들 중 가운데 있는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나이를 지닌 청년이었다.
“저들이… 천외천이란 말이오?”
“나이가 너무 어린데?”
“어려 보인다고 무시하면 안 돼요. 괴물들이에요.”
이준이 앞으로 나가 흰색 무복을 입은 청년에게 말했다.
“당신이 인주입니까?”
천외천에게 언제나 반말하던 이준이 말을 높였다.
“네가 창제란 아이군. TV에서 많이 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네요.”
“내 기를 읽은 것인가? 재밌군.”
“싸우면 더 재밌을 거예요.”
이준이 인주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무극자 사부의 막내 제자였던 남자를 드디어 만났다.
사부의 뒤통수를 친 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는데 꽤 반반해 보였다.
[저 모습은 가짜이니라.]
‘가짜요?’
[셋째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어. 100년을 훌쩍 넘게 살기 위해 기존의 껍질을 버리고 새로운 몸을 찾은 것이니라.]
‘이혼대법 같은 거죠?’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옛날부터 반반하게 생긴 얼굴을 부러워하더니 결국 얻었구나.]
‘원래는 어땠는데요.’
[추남이었다.]
“풉!”
이준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여유가 있는 모양이구나.”
인주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이준에게 말했다.
“뭔가 비웃는 모양이라 미안하네요.”
이준은 연신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다른 몸으로 혼을 옮겨서 못생겼던 한을 풀었다는 게 너무 웃겼다.
“그 웃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군. 내기의 조건은 기억하고 있지?”
“네. 승자가 모든 걸 가지는 거라고 들었어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굉장히 후회할 일이 발생할 거야.”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인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싸가지 없는 창제였다.
“바로 시작하죠. 그쪽은 누구를 내보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