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화
콰앙!
플레임 오크의 망치에 그 단단하던 쉘터에 구멍이 생겼다.
“크으으!”
녀석의 입에서 입김이 뿜어져 나오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아, 안 돼!”
“비상… 문을 작동해!”
한 명이 다급히 모니터 근처에 있는 빨간색 벨을 눌렀다.
철컥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쉘터의 사람들을 감싸듯, 사방에서 내려오는 문.
혹시나 쉘터의 방어벽이 무너졌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비상 투명 벽이었다.
“제, 제발!”
“가, 가만히 있어야 할 텐데.”
“빨리 좀 내려와라!”
사람들은 플레임 오크가 움직일까 조마조마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투명 벽은 아직 중간밖에 닫히지 않았다.
만약 몬스터가 움직인다면 끔찍한 상황이 펼쳐질 터.
1초가 다급한 상황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투명 벽은 느긋하게 닫히고 있었다.
1초가 1시간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플레임 오크가 먼저 움직였다.
쉘터의 벽을 깬 녀석이 아닌 그 뒤에서 달려온 녀석들이 투명 벽이 내려오지 못하게끔 손으로 잡았다.
끼익 소리가 들리면서 작동이 멈춘 투명 벽.
1/3 정도가 닫히지 않았다.
플레임 오크의 덩치가 커서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할 테지만 투명 벽을 부술 공간은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콰직 소리가 나며 방탄으로 된 투명 벽 한 편이 플레임 오크의 손에 날아갔다.
“어, 어떡해….”
“다… 죽을 거야….”
“도, 도망쳐야 해….”
말과는 달리 사람들은 누구 하나 도망치지 못했다.
두려움에 몸이 굳은 모양.
바지를 적시며 바닥으로 오줌이 흘러나왔다.
그들에겐 플레임 오크가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였다.
마주치면 안 될 몬스터.
화이트급 몬스터조차 만나면 두려울진데 레드급인 플레임 오크를 만났으니 오죽하겠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떤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취릭!”
“췩췩!”
플레임 오크가 돼지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흉측한 혀를 내밀곤 입맛을 다셨다.
녀석들에게 인간은 맛있는 고기였다.
별미가 눈앞에 있으니 입맛을 다시는 건 당연한 일.
“으아아악!”
한 명의 다리를 잡아다가 입에 넣으려는 순간!
일직선으로 빛이 번쩍이면서 다리를 잡은 손이 잘려 나갔다.
“꾸에에엑!”
손목이 잘린 플레임 오크가 초록색 액체를 흘렸다.
육중한 다리로 바닥을 쿵쾅대면서 아픔을 호소하는 녀석.
갑작스러운 공격에 다른 녀석들이 경계했다.
플레임 오크는 지능이 굉장히 높은 몬스터.
앞서 투명 벽이 바닥에 내려오기 전에 움직일 정도로 머리가 똑똑했다.
“너희들… 정말 위험한 놈들이구나?”
쉘터에 나타난 한 청년.
무사고에 있던 박혁진이 수원에 나타났다.
박혁진은 굉장히 유명한 각성자.
그의 얼굴을 사람들 모두가 알았다.
이준 이전에는 그가 제일 유명했으니까.
검제의 손자인 검룡을 모르면 대한민국에서 간첩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만큼 온 국민이 아는 박혁진이라 두려움에 떨고 있던 사람들이 소리쳤다.
“거, 검룡이야!”
“검룡이 나타났어!”
“사, 살려 주세요!”
두려움이 많이 컸을까.
한줄기 빛이 내려오니 사람들의 얼굴에 눈물과 콧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제가 구해 드릴게요.”
파지직-
검룡은 뇌전검왕의 유물인 천월을 어깨에 걸치면서 말했다.
몸에선 뇌기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가 익힌 뇌신공의 영향.
일반적인 뇌 속성이 아닌, 뇌 속성 중 제일 상위에 있는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그는 SS급 신공인 뇌신공을 익혀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번쩍!
다시 한 번 푸른 빛이 일어났다.
시야를 가렸던 빛이 사라지자 언제 움직였는지 박혁진이 사람들 앞으로 와 있었다.
여전히 어깨에 천월을 걸친 모습.
그가 뒤를 돌았을 때는.
“꾸어억!”
쿵.
플레임 오크가 피를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눈 깜짝할 새에 한 마리를 해치운 박혁진.
자신만만해 할 만한 실력이었다.
그동안 발전한 모습을 못 보여 줘서 그렇지, 박혁진은 이미 AA급에 도달해 있었다.
SS급 뇌신공 또한 4성에 있었기에 그 위력은 일반적인 AA급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뿐인가.
뇌신공을 온전히 담아낼 천월까지 있었으니 금상첨화.
박혁진은 강할 수밖에 없었다.
“세, 세상에!”
“플레임… 오크를 하, 한 방에 쓰러트렸어….”
“내, 내가 헛것을 보는 건가?”
사람들은 눈을 비비며 현실이 맞는지 구분을 했다.
부산 생존자가 말했던 플레임 오크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몬스터가 아니었다.
적어도 A급 각성자 수십 명은 상대할 수 있는 무력을 가졌다.
가문연맹회의 외곽 수비대가 몇 분도 버터지 못하고 무너질만큼 플레임 오크는 강했다.
헌데 너무도 가볍게 죽은 게 아닌가.
현역 각성자도 아닌 무사고를 다니는 학생에게 말이다.
검룡이 강한지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차기 검제로 내정된 후계자.
그러나 나이가 너무 어렸다.
아직 고등학생의 신분이라 경험이 부족하다는 게 사람들의 평가.
검제의 뒤를 이으려면 적어도 5년은 더 지나야 가능성이나 있을까 말까 했다.
“그게… 뭐가 중요해?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생겼는데.”
“마, 맞아! 검룡이라면 우릴 몬스터에게서 구해 줄 수 있을 거야!”
사람들이 환호했다.
검룡으로 인해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사람들의 환호에 부응을 하려는 건지.
박혁진이 들고 있는 천월이 허공에 휘둘러졌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속성인 뇌기가 사방에 흩날렸다.
뇌전검법 1식 절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걸 끊어내는 초식.
뇌기가 플레임 오크의 팔, 다리, 어깨, 등을 가리지 않고 지나갔다.
놈들이 피할 공간은 전무.
그저 목숨을 거둬가기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사방으로 흩날렸던 뇌기가 사라진 찰나!
푸확-
동시에 초록색 액체들이 허공으로 쏘아졌다.
쉘터로 들어온 플레임 오크 일곱 마리가 일제히 조각나 버렸다.
그나마 목숨을 간신히 부지한 한 마리.
“꾸윽… 푸르르!”
쉘터를 부순 플레임 오크가 거친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뇌 속성의 효과인 경직이 걸려 있기 때문.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인해 플레임 오크의 몸이 그대로 노출된 상태였다.
놈이 그로기 상태를 벗어나기 전에 박혁진의 천월이 앞으로 뻗어졌다.
아시아 학원 대항전에서 보여 줬던 신기.
한 줄기 뇌전이 되어 상대를 찌르는 초식인 2식 은사격이었다.
천월이 플레임 오크의 심장을 관통했다.
녀석은 신음도 토해 내지 못한 채 절명하고 말았다.
박혁진이 천월을 뽑았다.
검신에 전혀 묻지 않은 핏방울.
플레임 오크의 심장에서도 액체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작은 아지랑이가 하늘로 올라오는 게 다였다.
순식간에 플레임 오크를 전부 해치운 박혁진은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셨어요.”
박혁진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좀 전에 격한 움직임을 보였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이 쉘터는 이제 무용지물이니 대피 통로를 이용해서 다른 쉘터로 가세요. 제가 안내 안 해 드려도 가실 수 있죠?”
“예…? 네.”
“그럼 몸조심하세요.”
박혁진은 쿨하게 쉘터를 나갔다.
바람같이 왔다가 바람같이 사라진 검룡.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를 칭송하고도 남았을 테지만.
“몬스터가 오기 전에 다른 쉘터로 움직입시다.”
사람들에겐 여유가 없었다.
박혁진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쉘터 간에 이어진 통로로 바삐 움직였다.
* * *
박혁진은 이동하면서 흐뭇한 얼굴로 홀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특별 퀘스트 - 뇌령석을 지닌 자]
난이도: AA
설명: ‘천상의 동쪽’은 자신과 라이벌 관계인 성화의 남쪽과 사이가 굉장히 안 좋습니다. 최근 들어서 남쪽의 주인이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해 동쪽의 신물인 ‘뇌령석’을 지닌 당신을 테스트하려 합니다. 뇌령석을 가질 자격이 충분함을 증명하십시오.
완료 조건: 성화와 관련된 몬스터 전부 처치.(플레임 오크 종족, 테노용 종족, 크록 종족)
보상: 뇌령석 감정, 다음 퀘스트 부여, 천상의 동쪽 호감도 상승.
*성화와 관련된 몬스터를 많이 처치할수록 호감도가 많이 증가합니다.
뇌령석이 빛나면서 생긴 퀘스트였다.
‘천상의 동쪽… 이름 한번 멋지잖아?’
천상의 동쪽이 누군지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는 안다.
이 퀘스트가 심상치 않다는 것.
천상의 동쪽이 가리킨 성화와 관련된 몬스터는 플레임 오크, 테노용, 크록 종족이다.
그 녀석들은 하나 같이 최상위 몬스터에 속한 종.
위험한 몬스터와 반대되는 입장이라는 건 천상의 동쪽 또한 몬스터라는 게 아닌가?
거의 확실했다.
퀘스트의 종류는 여러 개가 있지만, 그중에 게이트의 이름이 나오는 건 딱 하나뿐.
바로 몬스터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퀘스트였다.
천상의 동쪽은 몬스터의 이름을 대신한 것.
특별 퀘스트를 완료하고 다음 퀘스트로 넘어가다 보면 이걸 자신에게 준 몬스터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도 준이처럼 몬스터랑 친해지는 거 아니야?’
보상에 떡하니 있는 호감도.
퀘스트를 완료하면 천상의 동쪽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소리였다.
‘흐흐흐. 어떤 종일까? 파랑이보다 귀여워야 준이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텐데.’
박혁진의 얼굴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의 평생 소원은 이준이 데리고 다니는 파랑이처럼 귀여운 몬스터를 갖는 것이다.
이 퀘스트를 클리어해 봐야 정확한 사실을 알 터.
생각과는 다를 수 있지만 제발 몬스터를 얻는 것과 관련된 퀘스트였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우선은 성화와 관련된 몬스터를 최대한 많이 해치워야 해.’
그가 이동하면서 홀로그램에 실시간으로 나오는 기사를 띄웠다.
몬스터가 이동하는 경로.
부산에서 출발해 벌써 경기도 외곽을 부수고 진격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몬스터가 움직이고 있을 터.
녀석들을 향해 경공을 펼쳤다.
잠시 후.
박혁진의 생각이 맞았다.
얼마 가지 않아 마주친 몬스터로 인해 걸음을 멈췄다.
그는 몬스터를 살펴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걸 어떻게 상대하지?”
하늘에는 익룡의 모습을 한 몬스터 떼가 줄줄이 어느 한 방향을 향해 날아가는 게 눈에 잡혔다.
각성자가 아무리 날고 긴다지만 하늘을 나는 몬스터를 상대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지상으로 떨어트리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
그래서 인상을 찌푸린 거다.
심지어 여긴 게이트 안이 아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
함부로 위력적인 무공을 사용하기 힘들었다.
혹시라도 대피를 못한 사람이 있으면 휩쓸릴 수 있으니까.
게이트 안이면 이런 생각도 안할 텐데, 이래서 몬스터가 게이트 밖으로 나오면 위험한 거다.
그리고 무공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공중의 몬스터를 떨어트리란 보장도 없고.
“괜히 퀘스트 난이도가 높은 게 아니야.”
뇌전검왕 퀘스트의 난이도인 S급 이외에 처음 받아 봤다.
이준으로 인해 운이 좋아 쉽게 퀘스트를 클리어한 거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뇌신공도 얻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을 것이다.
“음… 어쩌지?”
박혁진은 녀석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공중 몬스터라 까다로워서 퀘스트 난이도가 높구나란 생각을 한 거다.
심지어 그의 기감에 다른 몬스터까지 잡혔다.
“뭐야? 이젠 수중까지? 나한테 왜 이래?”
박혁진은 말하면서도 주변을 빠르게 스캔했다.
말과는 달리 그는 오직 퀘스트를 깰 생각밖에 없었다.
그의 명안이 번쩍였다.
그만이 보이는 특별한 감각.
하늘과 물이 교차한 지점에 하얗고 짙은 선이 보였다.
“저기다!”
그가 천월에 뇌신공의 뇌기를 담았다.
웅웅.
천월이 검명을 토해 내며 푸른 빛의 검강을 만들었다.
“윽…! 속이 타들어 갈 것 같은데?”
검강을 뽑으려면 막대한 내공을 사용해야 했다.
뇌신공은 굉장히 강력한 무공.
신체가 잘 받쳐 준다 하더라도 몸에 무리가 많이 갔다.
특히 아직 AA급 초입에 있는 박혁진이라 전뢰검법의 3식인 뇌강까지는 불가능했다.
3식과 비슷하게나마 연출을 하려는 것.
그는 찌푸려진 얼굴로 눈에 보이는 하얀 빛을 향해 천월을 그었다.
파지지직-
콰르르릉!
검강이 대기를 가름과 동시에 하늘에선 거대한 벼락 한 줄기가 떨어졌다.
천뢰제왕신공을 사용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위력의 낙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