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5화
“에이. 거짓말.”
이준은 흑염마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주작의 영역이 흑염마조의 것이라니.
그러면 왜 성화의 반쪽이 공격해 온다고 경고 메시지를 보내왔겠나.
있을 수 없을 일… 이다.
“자, 잠깐!”
성화의 반쪽.
이게 왜 이렇게 거슬릴까.
반쪽.
완전하지 않은 단어였다.
[이제야 눈치를 챈 건가?]
“말도 안 되잖아.”
그래 말도 안 됐다.
흑염마조가 주작의 반쪽이라니.
아무리 영물이라지만 녀석이 주작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왜 말이 안 되지? 내 능력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난 그냥 네가 태생이 블랙급 몬스터라 강하기만 한 줄 알았지. 최상위 블랙급일 줄 어떻게 알았겠냐.”
자그마한 새가 주작이란다.
이 말을 누가 믿을까.
그냥 아, 내가 정말 좋은 몬스터를 얻었구나. 이러고 말지.
[수치군. 본좌를 그리 낮게 평가했다니.]
이준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흑염마조도 그렇지만, 대체 사부란 사람은 인간이 맞나?
주작을 어떻게 평생 곁에 뒀을까?
사방신 같은 경우는 전설로만 내려온 설화와 같은 존재다.
듣기론 친구는 커녕 인간을 자신들의 아래로 여겼다 한다.
동반자가 될 수 없는 존재.
녀석들은 영물이 아닌, 신이었으니까.
“너… 정말 대단한 놈이었구나.”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군. 본좌를 받들어 모시거라, 작은 주인 놈아.]
이준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무극자가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사부님이란 분은 어쩜 그렇게 상상을 초월하시는 거예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런 말을 하면 세상을 초월한 사람의 인자한 웃음을 흘리며 등장할 무극자였다.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대화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야. 물어볼 게 있어.”
[말해라.]
“만약 성화의 반쪽을 처치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
[그 반쪽짜리 녀석의 기운을 흡수하면 내가 다시 완전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네가 당한다면?”
[녀석이 주작이 되겠지.]
흑염마조를 주작으로 만들려면 성화의 반쪽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성화의 반쪽과는 필히 싸워야 할 팔자.
남은 기간 힘을 키워 반쪽을 무찌를 생각을 해야 했다.
“흐흐. 내가 꼭 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줄게.”
[뭐지? 그 음흉한 미소는? 내가 예전에 큰 주인에게 봤던 미소랑 똑같은데?]
“음흉하다니. 그냥 네가 반쪽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안타까울 뿐이야.”
[흠. 이상해.]
흑염마조의 빠른 눈치.
이준은 녀석을 데리고 마지막 스테이지로 갔다.
주작의 깃털을 얻기 위한 관문.
흑염마조가 탐낸 걸 보면 녀석에게 꽤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 * *
그 무렵 부산 해운대.
폐허가 된 그곳에서 몬스터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몬스터들은 한곳으로 모였다.
해변가 부근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파지직-
허공에 스파크가 튀었다.
작은 구멍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하얀색이던 구멍이 초록색으로 물들었으며 파란색으로 변했다.
점점 색이 짙어지더니 빨간색으로 변했다가 종래엔 검어졌다.
커질대로 커진 구멍에서 한 마리의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플레임 오크.
이준이 쓸어버린 오크와는 어딘가 다른 점이 있었다.
덩치도 더 우락부락했으며 위압감이 엄청났다.
그를 보자 주변에 모였던 몬스터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성화의 지배자께서 명을 내리셨다. 자신을 사칭한 가짜 놈에게 본보기를 보이시란다.”
“우워어어어!”
“끼에에엑!”
여러 종족의 함성이 들렸다.
몬스터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전의를 불태웠다.
녀석들은 반쪽의 수하들.
프레임 오크는 이 녀석들의 수괴였다.
과거 부산을 초토화 시켰던 놈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게드락.
플레임 오크의 부족장이었다.
최하위 블랙급 보스 몬스터이기도 했다.
이곳에 모인 종족만 무려 열.
다양했지만 그 중에서 발언권을 가진 몬스터가 앞으로 나섰다.
“게드락 님.”
“말하라. 핵시.
악어의 모습을 한 인간형 몬스터인 크록.
수갈래의 꼬리가 머리카락을 대신하고 있었다.
악어 종족인 그가 플레임 오크 부족장을 향해 말했다.
“균열 오염을 일으키면서 갑니까?”
“곧바로 가짜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균열 오염을 만들고 차근차근 전진하는 게 나을 텐데요.”
익룡인 테노용 종족의 피그한의 목소리였다.
고위 몬스터답게 다 인간의 말을 하는 녀석들.
각자의 의견을 피력했다.
“가짜한테 본보기를 보이는 거라면 피그한의 말이 옳습니다.”
“균열 오염을 시키면서 전진하는 게 안전하기도 합니다, 군단장.”
게드락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성화의 지배자는 최대한 빨리 가짜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면 균열 오염을 안 시키기고 전진을 해야 할 터.
자신들에게 균열 오염은 굉장히 중요했다.
균열 오염은 몬스터가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이게 없다면 게이트 밖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사용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면 인근 주변부터 오염부터 시킨다.
“균열 오염을 시키고 전진을 한다면 얼마나 걸리나?”
“가짜가 있는 곳까지 닷새는 걸릴 듯합니다.”
악어 종족인 핵시의 말에 게드락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오래 걸린다. 삼일로 줄여라.”
“강으로 이동한다면 가능합니다.”
“좋다. 전 병력은 핵시를 따라 강으로 이동한다.”
핵시가 고개를 숙이고 물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녀석.
악어라 그런지 물 속에서 굉장히 빨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악어인 크록 종족은 불의 속성을 가진 몬스터였다.
상성인 물도 자유자재로 다니니 상대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놈들이었다.
“너희 테노용은 공중을 선점해라.”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대기를 최대한 오염시키고 전진해.”
기동성은 물보다 공중이 더 빨랐다.
여기 모인 전부가 선발대긴 하지만이 중에서도 제일 속도가 빠른 몬스터는 하늘을 나는 테노용 종족이었다.
그래서 녀석들에게 균열 오염을 지시한 것이다.
“가짜의 은신처에 도착하면 어떻게 할까요?”
“충격 좀 주고 거점에서 대기해.”
“알겠습니다.”
피그한이 날개를 펄럭였다.
익룡답게 하늘을 자유자재로 다녔다.
테노용 종적과 함께 전 몬스터가 게드락의 앞에서 사라졌다.
그는 뒤에 열린 게이트를 향해 소리쳤다.
“이곳에 우리들의 거점을 만든다.”
게이트 안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붉은 오크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해운대 해변가를 거점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나무와 돌이 닿은 땅은 보랏빛으로 빠르게 물들어 갔다.
이게 바로 균열 오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최후의 거점은 자신이 위치한 부산에 잡았다.
“언제든 진격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갖춰라.”
“취익!”
“췩췩!”
돼지 울음소리와 함께 오크들이 주변의 나무들을 벌목하며 나무 성체를 만들어갔다.
* * *
이준은 마지막 관문으로 왔다.
그가 걸어가고 있는 곳에는 용암 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닥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후끈거렸다.
“더위가 조금 느껴지네.”
1, 2 스테이지에선 전혀 느끼지 못했던 열기였는데 마지막 보스 방에 오니 피부가 따끔했다.
그래도 아직까진 열기에 몸이 둔해진다든지.
데미지를 입는 일은 없었다.
레드존 따위에서 타격을 받을 정도로 이준은 약하지 않았으니까.
걷다 보니 어느새 신전 끝에 도착했다.
첫 번째 스테이지와 마찬가지로 즐비한 석상들.
다른 게 있다면 테노용의 석상에선 전과 같이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석상이었다.
석상 끝에 우뚝 솟아 있는 한 돌기둥.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있어야 할 보스 몬스터는 물론 쫄따구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돌기둥 위에 불꽃이 둥실 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주작의 깃털이 확실했다.
이준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지막 스테이지에 있어야 할 보스 몬스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경계하며 천천히 주작의 깃털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륜의 신전이 있는 이유.
바로 저 주작의 깃털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다.
주작의 깃털을 보호해야할 보스 몬스터가 있어야 정상인데 왜 기척도 없을까?
기감을 확산시키고 여러 번 확인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마지막 스테이지에는 몬스터가 아예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준이 돌기둥을 밟고 주작의 깃털이 놓인 곳에 착지했다.
방해가 없이 목적지까지 도착하자 계속 의문이 든 것이다.
게이트는 예측할 수 없는 곳.
꼭 조용하거나 쉽게 보물을 얻으려 하면 곤혹을 치르기 십상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준이 손을 뻗었다.
[주작의 깃털을 획득하였습니다.]
주작의 깃털을 잡았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혹여나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비까지 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조야. 여기 보스 몬스터 없어?”
[본좌보다 작은 주인이 더 잘 알지 않나?]
“여기 보스 몬스터가 테노용 종족인데 없어서 물어봤지.”
[자리를 비웠나 보지.]
“이런 경우는 처음 겪어 보네.”
보스 몬스터랑 싸우지 않고 천고의 아티팩트를 얻었다.
주작의 기운이 담긴 깃털을 말이다.
다시 없는 꿀맛 같은 기회였다.
앞으로의 게이트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 번에도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으면 굉장히 아쉬울 것 같았다.
이준은 주작의 깃털을 자세히 살펴봤다.
활활 타오르는 깃털.
아주 영롱했다.
이 하나만으로도 레드존 게이트의 기운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거 지금 가질래?”
[뭘 물어봐 당연하지 않냐?]
흑염마조가 눈을 빛냈다.
주작의 깃털을 가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탐욕이 아닌 기쁨.
잃어버렸던 일부를 찾아서 다행이라는 안도였다.
“어디 주작의 깃털을 가지면 어떻게 변하는지 볼까?”
이준은 머리에 앉아 있는 흑염마조를 내려놨다.
그리고 주작의 깃털을 넘겼다.
화르륵!
주작의 깃털이 타올랐다.
빨간 불꽃을 뿜어내던 깃털이 검게 변했다.
깃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검은 불꽃만이 일렁였다.
“윽!”
이준이 뒤로 밀려났다.
고작 작은 불꽃이 일렁였는데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한서불침이라 뜨거움을 느끼지 않았던 그도 이번엔 화끈한 열기를 느끼고 말았다.
거리를 벌린 그.
때가 됐는지 흑염마조가 주둥아리를 활짝 벌렸다.
그러자 검은 불꽃이 녀석의 입으로 빨려갔다.
그럴 때마다 흑염마조의 눈동자가 검게 번들거렸다.
상당한 위압감.
자신이 알던 흑염마조가 아니었다.
녀석의 주위로 검은 불꽃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때 이준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경고! 흑염마조가 자신의 일부를 찾았습니다.]
[흑염마조가 자신의 일부를 흡수하면 성화의 반쪽이 대노할 것입니다.]
[성화의 반쪽과의 사이를 다신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 (Y/N)]
“반쪽 놈이 똥줄 타나 보네.”
이준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주작과는 적대도가 최악이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왔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주작은 흑염마조가 성장해서 좋을 게 없었다.
녀석이 성장해 버리면 위협을 느끼는 건 주작 본인.
그래서 계속 경고를 보내오는 것이다.
쳐들어온다고 통보까지 해 온 놈이 경고는 무슨.
이준은 메시지를 무시했다.
“이대로 진행해.”
이준의 말에 검은 불꽃은 흑염마조에게 완전히 흡수되었다.
검은 불꽃의 소용돌이가 더욱 거세졌다.
쿠구구구!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화염.
꺼질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몰아쳤다.
게이트를 아예 붕괴시키려는 듯했다.
검은 화염의 소용돌이에서 스파크까지 튀었다.
너무도 강력한 기운에 이준조차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흑염마조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상황.
이준이 서 있는 곳까지 화염의 폭풍이 몰아치자 호신강기까지 펼쳐야만 했다.
“미쳤네.”
상상 이상의 힘이었다.
이게 고작 힘의 일부분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괴물이 따로 없는 압도적인 기운.
괜히 사신수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이러다 게이트 통째로 무너지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