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특별반 학생들의 걱정과는 달리.
다크 엘프를 처치하는 건 아주 순조로웠다.
이준은 팔짱을 낀 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박정연의 정신력이 +1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
……
[한지유의 정신력이 +1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꾸준히 학생들의 능력치가 오르고 있었다.
덤으로 이준은 테크트리 보상을 받고.
그러니 흐뭇하지 않을쏘냐.
‘백호연격진의 숙련도가 이젠 절정에 달했네요.’
마치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교대하면서 공격하는 것에 어색함이 없었다.
첫 번째는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
상대가 바로 죽으면 모를까.
공격을 막으면 바로 반격이 온다.
방어를 도외시했으니 치명상을 입을 법도 하지만 다음 사람이 방어를 하고 다시 공격을 가한다.
이게 백호연격진의 원리.
한 명의 적을 상대하는데 효과적인 진법이나, 다수를 상대할 때도 쓰임새가 있었다.
지금과 같이 말이다.
“예은아. 내 차례야!”
검을 든 다크 엘프가 정예은의 공격을 막자.
정예나가 바로 비사장을 날렸다.
여기까진 기존의 진법과 동일한 공격 패턴이었다.
하지만 그다음은 달랐다.
펑!
비사장이 다크 엘프의 검에 의해 허공에서 터졌다.
그럼에도 정예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 공격을 해 갔다.
“누님 여기 처리하고 바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조금만 버티십시오.”
“알았어.”
퍼벙!
다크 엘프 전사는 정예나의 비사장을 모두 막아 냈다.
공격을 모두 무마시킨 상대가 정예나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데.
쾅!
정예나의 뒤편에서 거대한 도가 날아와 다크 엘프 전사의 얼굴에 꽂혔다.
도의 주인공은 허수였다.
정예은을 도와 후미의 공격을 막고 상대를 해치우자 곧바로 정예나를 도운 것.
중위를 맡은 허수의 역할이었다.
적 한 명을 상대할 땐 그저 시계 방향으로 돌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땐 다르게 상대해야 했다.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으론 죽일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으니까.
진법을 응용해야 했다.
그들은 노련한 아이들답게 싸울수록 발전해 갔다.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간 자칫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상황.
그럼에도 학생들은 진법의 응용에 주저함이 없었다.
특별반 학생들은 안 가르쳐도 알아서 했다.
[끌끌. 다 이 사부가 저 허접한 진법을 손봐 줘서 그런 것이니라.]
‘네네. 다 고금제일인인 사부님의 은덕입니다.’
[알면 되었느니라. 홀홀.]
학생들의 칭찬은 없었다.
무극자 사부의 눈엔 저들의 천재성이 성에 차지 않았다.
저 정도로는 옛 제자들의 발끝도 따라오지 못한다나 뭐라나.
차라리 제자들의 밑에 있는 놈들이 더 뛰어났다는 말까지 들었었다.
‘이런 사부가 나는 좀 칭찬해 준단 말이야.’
처음에는 핀잔을 주고 재능이 없다고 호통을 쳤지만.
이젠 간혹 가다가 칭찬을 주기도 했다.
자칭 고금제일인이 말이다.
‘참 알다가도 모르는 사람이라니깐.’
무극자 사부를 생각하면서 고개를 저은 이준.
그의 입가엔 작은 호선이 그려져 있었다.
순간 그는 무언가를 본 듯 몸을 움직였다.
학생들 중에서 백호연격진을 제일 잘 다뤘던 박은비네 조.
지금은 제일 뒤처진 상태였다.
특성과 재능 자체의 등급이 달랐기 때문이다.
박은비네 조가 여기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노력.
나머지 천재들과는 재능에서 차이가 나니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피나는 노력뿐이었다.
그 부분은 이준이 채워 주고 있었다.
박은비네 조에서 중위를 맡은 사람은 차경진.
그녀가 사력을 다해 전 방위를 커버하고 있었으나, 그녀도 전부를 커버하긴 힘들었다.
잠깐 호흡을 다지려는 순간!
남선호를 공격하는 다크 엘프 궁수의 활을 놓치고 말았다.
차경진이 아차 싶어 남선호를 부르려는데 이준이 활을 잡아챘다.
쌔애액-
퍽!
이준은 잡은 화살을 도로 상대에게 돌려주었다.
귀를 찢는 파공음이 들리며 화살을 쏜 다크 엘프 궁수에게 도로 화살이 날아가 꽂혔다.
“선호는 공격보단 방어에 치중해. 네가 무너지면 네 조는 끝장이야.”
“네!”
남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해서 박은비와 서혜지는 원거리 각성자다.
차경진과 남선호가 근거리 각성자인데 그중 차경진은 조를 조율하는 역할인 중위를 맡아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근거리 각성자는 남선호뿐.
만약 그조차 공격을 한다면 밸런스가 무너지고 만다.
방어가 없는 오로지 공격만을 가진 진법.
백호연격진이 공격에 특화되어 있다지만 공수 밸런스가 엉망인 진법은 아니다.
게다가 박은비네가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건 방어에 특화된 남선호가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었다.
“은비는 방어하지 말고 조를 믿고 공격만 해, 혜지는 차 선생님이랑 선호 서포터 잘하고.”
“네!”
“옛!”
박은비네 조는 이준이 말한 대로 다시 몬스터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완전히 흡수하진 못했지만, 얼추 따라 하려는 게 보였다.
확실히 남선호가 방어 위주로 행동하니 진법이 훨씬 안정적이었다.
“이대로 제단까지 전진해.”
* * *
“막아! 막으란 말이다! 이 신성한 제단을 뺏기면 우린 발라스 님께 끝장이다!”
제사단 중앙.
다크 엘프가 지팡이로 앞쪽을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모릭 니이임! 기병대가 전멸했습니다.”
“이익!”
지팡이를 들고 있는 다크 엘프 모릭이 기겁을 했다.
제단을 지키는 전사 중 제일 강한 이들.
그들이 죽었다는 건 인간들이 제단까지 오는데 얼마 안 걸린다는 이야기였다.
“어, 어떻게 합니까?”
“본진에선 연락이 없어?”
“소식이 끊긴 상태입니다.”
“절대! 여길 뺏길 순 없다. 제물을 풀어라.”
“발라스 님의 제물인데 괜찮을까요?”
“제단을 인간들의 손에 뺏기는 것보단 낫다.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어서 제물을 풀어!”
“넵!”
모릭의 말을 들은 다크 엘프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잠시 후.
“모, 몸이 말을 안 들어.”
“왜 이러는 거야. 팔이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어!”
새로 나타난 이들은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었다.
“자, 너희들에게 고귀한 힘을 주겠다. 이 힘을 받아 제단에 침입한 인간을 죽이고 오거라.”
쿵-
모릭이 지팡이로 바닥을 쳤다.
그러자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와 제단 중앙에 놓인 뱀의 석상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두 기운이 합쳐진 순간!
“뭐, 뭐야!?”
“으아아악!”
사로잡힌 사람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비명이 점차 가라앉고, 그들이 일어났다.
갑옷으로 중무장한 인간들.
하얗던 피부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눈 또한 제 색을 잃고 검게 번들거렸다.
“나의 전사들아. 제단에 침입한 인간을 죽이고 와라.”
“그오오오!”
몬스터로 변한 인간들이 몸을 돌려 제단에서 사라졌다.
한편.
제단 안쪽에서 커다란 힘을 느낀 이준이 희미하게 웃었다.
“거의 다 깼네.”
중간 보스전의 신호였다.
그동안은 패턴 없이 몬스터만 사냥했다.
이젠 패턴이 돌아왔다.
전생에 붉은 산맥을 못 깼던 이유.
그리고 나중에서야 클리어하게 된 게 다 이놈의 공략 패턴 때문이다.
“지금처럼 그냥 죽이면 계속 몬스터가 리젠되서 우리가 먼저 지칠 테지만 공략을 알면 식은 죽 먹기지.”
이준이 말하는 사이.
갑주를 입은 네 명의 다크 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뭇 위압적이었다.
기존에 보던 다크 엘프와는 달리.
꼭 오크의 몸을 연상시키는 근육 덩어리의 다크 엘프였다.
죄다 2m는 넘는 거대한 신체를 가진 놈들이었다.
여기에 육중한 갑옷도 한몫한 셈.
다크 엘프들이 뿜어내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이놈들을 대비해서 그동안 백호연격진을 갈고 닦은 거야. 잘 할 수 있지?”
“예!”
모두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크크크.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인간들이여.”
네 명의 다크 엘프 뒤로 왜소한 체구를 가진 모릭이 나타났다.
몸에 해골을 주렁주렁 단 채.
자기가 이곳의 보스.
제사장이라고 홍보를 하고 있었다.
“뭣들 하느냐, 어서 죽이지 않고!”
“크르르.”
쿵쿵쿵쿵.
네 명의 다크 엘프가 일제히 특별반 학생들에게 달려갔다.
“녀석들을 상대하다 보면 그로기 상태가 올 거야. 그때 공격을 중지하면 돼.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 줄게.”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준이 한 명의 다크 엘프에게 다가갔다.
우웅!
이준의 손에 회색의 소용돌이가 모이기 시작했다.
“도왕을 날려 버렸던 장법이야!”
그걸 본 박혁진이 소리쳤다.
실제로 보니 엄청났다.
회색의 아지랑이가 소용돌이치면서 손으로 몰려드는데, 공간이 일그러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얼마나 강한 힘을 모으면 저럴까.
학생들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준은 무극장법을 그대로 다크 엘프에게 꽂았다.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거대한 웅덩이가 생겼다.
그 중앙.
육중한 갑옷이 가루가 되어 무장해제 된 다크 엘프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예 죽여 버리면 리젠이 될 터.
이준이 그로기만 되게끔 힘을 조절했다.
“이 상태로 만들고 공격을 중단하면 돼. 오케이?”
학생들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 * *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모릭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제물로 만들어진 인형은 불사신이다.
눈앞에 보인 것처럼 허무하게 쓰러질 놈들이 아니었다.
서걱!
서걱!
그로기 상태가 되었어도 걱정하지 않았다.
다시 체력을 회복해 인간들을 공격할 테니까.
한데 인간들은 네 명의 다크 엘프를 그로기 상태로 만든 후.
동시에 목을 잘라 버렸다.
그 결과 불사신인 줄로만 알았던 녀석들이 잿빛이 되어 사라졌다.
“패턴만 알면 붉은 산맥을 클리어하는 건 껌이지.”
중간 보스를 해결하는 공략 패턴은 저 네 명의 다크 엘프를 그로기로 만든 후 동시에 목을 자르는 거였다.
이준은 혼자서도 이곳을 깰 수 있지만, 그의 목적은 학생들을 훈련 시키는 것.
그래야지만 테크트리 포인트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었다.
보라.
지금도 이렇게 포인트가 적립되는 걸.
[허수의 힘이 +1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허수의 연환패왕도가 6성에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3,000,000p가 지급됩니다.]
……
……
허수 한 명만이라면 이런 귀찮은 짓거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에 있는 학생만 무려 9명.
차경진 선생님까지 합하면 10명이다.
이들이 전부 발전하고 있으니, 보상은 한 명을 가르칠 때보다 최소 10배였다.
선생직을 수락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 정도의 보상에도 아쉬운 건 딱 하나.
박 씨 남매의 특성을 아직도 개화시키지 못한 것.
다른 때에는 쉽게 개화하던 특성이 죽어도 개방되지 않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아예 박 씨 남매한테 몰아줘야겠어.’
그렇게 마음을 정한 이준이 박혁진을 불렀다.
“혁진아.”
“응? 네? 응?”
“하나만 해.”
“그럴까? 헤헤.”
박혁진이 실없이 웃었다.
“네가 저놈 처리해.”
“나 혼자?”
“그냥 목만 따면 되는데?”
“중간 보스인데 뭐 이리 약해?”
“저놈은 허수아비야. 진짜 강한 놈은 보스 몬스터지.”
그 말도 맞지만 패턴을 알고 있으니 쉬운 것도 있었다.
여긴 게임이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도전해야 했다.
간신히 살아 돌아간다면 다행.
도전은 또다시 할 수 있었으니까.
하나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니 패턴을 알고 공략하는 것과 모르고 게이트를 공략하는 건 천지 차이였다.
공략을 몰랐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 깼을 터.
전생에 붉은 산맥이 많은 사상자를 낸 이유기도 했다.
“그렇구만. 이놈 처리하고 빨리 보스 몬스터에게 도전하자.”
“자, 잠깐!”
파지직-
서걱!
박혁진의 푸른 뇌전이 모릭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머리가 바닥에 굴러떨어진 순간!
모두에게 똑같은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중간 보스 몬스터인 모릭을 처치했습니다.]
[보상으로 모릭의 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현재 배분은 자율입니다.]
모릭의 아래에 떨어진 반짝이는 아이템들.
레드존 게이트라 그런지.
하나같이 A급으로 한가득 떨어져 있었다.
아티팩트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박혁진.
그런데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떠오른 메시지만 보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