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화
게이트를 나왔다.
방향을 잡고 신력권가가 있는 곳을 향해 무극군림보를 펼쳤다.
빌딩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마기가 진동하구나.]
익숙한 마기였다.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S급인가요?’
[그런 듯 싶구나.]
‘그동안 소식이 없었던 이유가 이 때문이군요.’
AA급에 있던 도왕이 S급으로 올라선 것 같았다.
멀리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은 S급에게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였으니까.
[조심하거라.]
그 말에는 많은 게 함축되어 있었다.
파천멸기의 파편에 대한 주의.
S급 각성자를 상대로 거만을 떨지 말라는 경고였다.
‘알겠습니다.’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곤 무극군림보를 전력으로 펼쳤다.
그의 신형이 잔상만을 남겼다.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
전력으로 펼치면 3일 만에 횡단할 수 있는 경공이다.
붉은 게이트에 신력권가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준이 거의 도착할 무렵.
쿵쿵!
진동이 점점 거세졌다.
앞에선 두 개의 거대한 기운이 연신 충돌하고 있었다.
‘한쪽은 도왕이고, 한쪽은… 아버지인가?’
신력권가에 적이 쳐들어 왔는데 가문에서 쥐 죽은 듯 박혀 있을 권왕이 아니었다.
그가 제일 사랑하는 건 신력권가.
남의 손에 무너지는 꼴을 절대 보지 못할 것이다.
이준이 다시 앞으로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에 도착한 이준.
도왕의 주먹이 쉴 새 없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곧 끝나겠어.’
이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크헉!”
쾅!
권왕의 신형이 뒤로 밀려나면서 건물에 처박혔다.
도왕이 권왕의 앞으로 걸어갔다.
“매제, 수련만 주구장창하더니 실전은 형편없는 거 아닌가?”
도왕의 입꼬리가 잔뜩 말려 올라갔다.
명백한 비웃음.
자기보다 약한 자를 내려다보는 오만함까지 깃들어 있었다.
“크흑…”
권왕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이따위 공격 한 번 허용했다고 싸우지 못할 그가 아니었다.
하지만 좀처럼 일어나질 못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 몸에 무슨 짓을!”
“난 매제의 몸에 아무 짓도 안 했다네.”
“그럼 이건 대체 뭐란, 쿨럭!”
권왕이 기침을 했다.
목구멍에서 피가 한 사발 뿜어져 나왔다.
“특별한 마공이란 원래 이런 것이지. 사마련 놈들과는 격이 다른 무공. 내가 괜히 패왕도가의 심법을 버린 게 아니지. 크크.”
도왕이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사람들의 얼굴을 볼 차례였다.
권왕이 나타나고 희망에 가득 차 있던 그들의 얼굴이 어떻게 변했을까.
주위를 한껏 둘러보았다.
예상대로 희망찬 얼굴이 절망에 빠져 있었다.
이곳에 있는 최고 각성자가 쓰러지니 이젠 기댈 곳이 사라진 모양이다.
“크크. 크하하하.”
도왕이 목청이 보일 정도로 고개를 들어 크게 웃었다.
“읏!”
“어억!”
“내공으로… 귀를 보호해!”
주변에 있는 각성자들이 귀를 막았다.
도왕의 웃음에는 진득할 정도로 살기가 가득한 내공이 담겨 있었다.
수준이 낮은 각성자는 내공으로 귀를 보호했음에도 바닥에 쓰러졌다.
그만큼 도왕의 내공이 엄청나다는 뜻.
신력권가의 사기가 극도로 떨어졌다.
반대로 패왕도가의 인원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고등급 각성자의 실력 차이.
이 하나 때문에 전장의 판도가 대번에 바뀌었다.
이제 패왕도가를 멸문에 이르게 한 적에게 천벌을 내릴 일만 남았다.
적사자단이 도를 꼬나 쥐고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그때.
쌔애액!
광소를 터트리고 있던 도왕에게로 돌 하나가 빠르게 날아가는 게 아닌가.
기습 공격에 놀랄 법하지만 고작 돌 하나.
웃음을 멈추며 손을 활짝 펴서 돌을 잡았다.
쥐새끼들의 발악이라 생각하던 도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손에 잡힌 돌.
가루로 만들려고 했지만 무언가의 기운에 감싸여 부서지지 않았다.
돌을 감싸던 기운이 사라지고 나서야 잘게 부서졌다.
도왕이 고개를 돌려 돌이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이준!”
그곳에는 창을 쥔 이준이 서 있었다.
* * *
“도련님!”
“가주!”
“이준 님!”
이준을 부르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절망에 빠졌던 이들의 얼굴이 다시 희망으로 물들었다.
김봉팔은 바닥에 털썩 앉았다.
“왜 이제야 오십니까. 깨톡을 한참 전에 보냈는데.”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나 깨톡을 보지 못했을까 봐 조마조마했던 것.
이준이 나타나서 천만다행이었다.
“보고 바로 오는 길이다. 불만이냐.”
“설마요. 어서 저 못된 새끼 좀 쳐 죽여 주십시오.”
“그럴 작정이야. 쉬고 있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준이 말을 마치고 천천히 걸어갔다.
신력권가의 각성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절하게 싸웠는지 상처가 가득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도왕과 적사자단뿐인데 신력권가의 공격대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전력을 복구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터.
짜증이 치솟았다.
“학교 일로도 바쁜데 가문의 전력에 공백이 생겼네.”
무엇보다 자신이 아끼는 사형준이 치명상을 당한 것 같았다.
이의태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음에 안 들어.”
이준이 홀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이 개자식! 잘 만났다. 내가 폐관에서 나오는 날만 얼마나 기다린 줄 아냐!”
이준을 보자 최태민이 이성을 잃었다.
찬란하고 빛나던 순간을 한순간의 나락으로 처박은 원흉.
강해져서 나온다면 꼭 이준부터 죽이리라 다짐한 최태민이었다.
이성을 잃고 광기만을 지닌 채 이준을 공격하려는 찰나.
이준의 팔이 움직였다.
아니, 창기를 날리려는 때쯤.
“멈춰라!”
도왕의 외침이 들렸다.
이준이 고개를 돌려 도왕을 보았다.
그의 발아래에 깔린 권왕.
“크으윽!”
도왕이 발에 힘을 주자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신음했다.
“그 창 움직이면 네 아버지가 무사하지 못할…!”
도왕은 끝내 말을 하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가 왕방울만 하게 커진 상태였다.
인질로 협박을 하는데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창을 휘두르는 게 아닌가.
곧이어 최태민의 비명이 들렸다.
“아아악!”
이준이 쏜 창기로 인해 최태민의 팔이 잘려 나갔다.
“죽여. 대신 너 포함해서 이곳에 있는 패왕도가는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싸그리 다 죽여 줄 테니까.”
이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아군에게는 무엇보다 든든한 방패이자, 적에게는 그 누구보다 무서운 사신이 된 게 이준이다.
여태껏 보여 줬던 그의 행보.
적이라 판단된다면 손속에 자비란 없었다.
그래서 사마련과 비슷하게 악독한 손속을 지녔다고 소문났던 게 아닌가.
도왕은 이 사실을 간과했다.
“태민아!”
“어으윽!”
최기범이 달려와 최태민의 팔에 천을 감쌌다.
응급 처치를 했지만 최태민은 여전히 고통스러워했다.
도왕이 놀란 것도 잠시.
그의 눈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광기와 분노가 가득했다.
“좋다. 네가 어디까지 가나 보자꾸나.”
콰직!
“크아아악!”
권왕이 최태민 못지않게 비명을 질렀다.
도왕의 발이 있었던 곳.
권왕의 단전을 도왕이 짓뭉개 버렸다.
단전이 깨지면 강한 각성자일수록 고통은 심했다.
어쩌면 목숨을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이제 어쩔테…”
도왕이 이준을 도발했다.
그래도 자기를 낳아 준 부모였다.
이준이라면 구하러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준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싸늘할 정도로 차가운 미소였다.
도왕은 이준이 권왕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하면 안 될 줄다리기를 해 버렸다.
이준의 손이 최태민을 향해 뻗어지자.
고통에 신음하고 있던 그가 허공을 붕 떠 이준의 손에 빨려 들어왔다.
허공섭물.
고등급의 각성자만 완벽하게 쓸 수 있는 고도의 수법이었다.
이준이 허공섭물을 썼단 사실보다 그의 손에 아들인 최태민이 들어갔단 사실에 더 놀랐다.
“뭐 하는 짓이냐!”
“뭐 하는 짓이긴.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것뿐이야.”
그가 최태민의 남은 팔을 손으로 잡았다.
“그만하지 못하겠느냐!”
쾅!
도왕이 버럭 소리치며 땅을 박찼다.
하지만 이준의 행동이 더 빨랐다.
“멍청한 네 아버지를 원망해라.”
최태민에게 그렇게 말하곤 남은 팔을 잡아 뜯었다.
“아, 안, 돼! 아아아악!”
푸확!
이준이 최태민의 팔을 잡아 뜯자 몸에서 분리가 됐다.
도를 쓰는 데 양쪽 팔이 사라졌다.
단전은 있어도 각성자 생명이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이것으로 끝났으면 다행.
이준은 최태민을 앞에 세워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이준의 지척에 다다른 도왕이 방패막이로 사용된 아들을 보자, 황급히 도를 회수하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조금이라도 거리가 있다면 모를까.
지근거리.
도왕은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쾅!
최태민이 실 끊긴 연처럼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한 번의 공격으로 아주 걸레짝이 되어 버렸다.
아들을 공격한 아버지.
도왕이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다.
“죽여 버리겠다. 이곳에 있는 너와 관련된 모든 놈들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주겠다!”
***
패왕도에서 줄기차게 뻗어 나온 마기가 한데로 뭉쳤다.
벽력도강.
도왕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공이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라!”
도왕이 패왕도로 이준의 머리를 갈랐다.
콰르릉-
뇌성과 함께 하늘에서 검은 벼락이 떨어졌다.
인간을 초월한 각성자의 힘.
S급 각성자 한 명이면 작은 나라는 가뿐히 세상에서 지워 버릴 수 있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벽력도강의 위력은 엄청났다.
콰아아앙!
주위 건물이 무너져 내리긴커녕.
벽력도강의 범위 안에 있는 사물들은 모조리 모래 알갱이로 변해 갔다.
그 초월적인 힘에 멀리서 넋을 잃고 바라보는 이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저런 힘을 낼 수 있는 거지?”
“S급은… 인간이 아니야….”
싸움 구경은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했다.
타인의 싸움 구경은 언제나 재밌다는 게 학계의 정설.
구경꾼들에게도 각성자라 꿀잼인 상황을 놓치는 건 손해였다.
특히 고등급 각성자의 싸움을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됐다.
한데 재미보다는 전신에 자꾸 소름이 돋았다.
그냥 싸움이 아닌, 전쟁.
서로가 죽이고 죽는 살육전이었다.
그들로선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저, 저기 좀 봐!”
빌딩 위에서 보고 있던 각성자가 이준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와…”
“저 공격을 아무렇지 않게 막아?”
“저게 가능한 일이야?”
도왕의 도강에는 산 몇 개를 날려버릴 거력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준은 그 힘을 가볍게 막은 것이다.
멀리서 구경꾼들이 놀라는 사이.
도왕의 눈 옆 근육이 꿈틀거렸다.
패왕도와 이준의 창.
파멸겁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상태.
도왕이 패왕도를 아래로 내리찍으며 힘을 주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게 다면 당신 나한테 죽어.”
이준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공과 내공의 대결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밀리기라도 하면 큰 내상을 입고 만다.
이준의 도발에 도왕이 버럭 소리쳤다.
“감히 너 따위가 나와 맞서려 하느냐!”
도왕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 아지랑이들은 자아가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이준의 몸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무언의 장벽에 가로막힌 듯.
검은 아지랑이가 이준의 몸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감히는 말이야. 상대보다 위에 있을 때 쓰는 말이야.”
이준의 말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도 거대한 회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도왕의 검은 아지랑이와는 질 자체가 틀린.
파천멸기의 파편이 아닌, 파천멸기를 이루는 본체.
혼원신공의 내기가 주위를 장악했다.
파천멸기의 파편은 혼원신공의 작은 조각이다.
흩어졌던 기운을 다시 찾으려는지, 회색의 기운이 검은 아지랑이를 먹어 치워갔다.
“봐. 이게 다면 당신 나한테 죽는다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