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쉽게 말해서 누가 더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지 내기를 하잔 말이오?”
“맞아요.”
“흐음… 좋소이다.”
청운 스님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가 이준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가르치는 것에 자신 있기 때문.
신룡사에서 속가 제자를 교육했던 게 바로 청운이었다.
가르치는 것에 도가 튼 사람.
신룡사의 무공이 보법과 검법에 취약하다지만, 그에겐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무공의 결은 같다고 여겼으니까.
청운 스님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이준이 빙그레 웃었다.
‘걸려들었네요.’
[네가 보법은 뛰어날지 몰라도 검법은 잘,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표정을 보니 딱 그러네요. 무승부로 끝낼 생각인가 봅니다.’
[내 제자를 너무 얕봤구나. 끌끌.]
무극자 사부와 있으니, 사람을 보는 시야도 꽤 넓어진 듯싶었다.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지어도 예상이 된다고 해야 하나.
물론 무극자 사부가 먼저 넌지시 말해 주니 상대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옛날과는 달리 많이 성장한 것 같았다.
‘이 내기는 애초에 제가 이긴 게임이었는데 말이죠.’
이준이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허수를 보았다.
[허수]
나이: 17살
등급: B(완숙)
직업: 무사고 1학년
이명: 섬전도
호감도: MAX(충성)
특징: 참마도(각성)의 주인(S), 건곤미허신공(S)(4성), 연환패왕도(S)(5성), 천왕보(B)(8성)
언밸런스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등급은 고작 해봐야 B급 완숙.
패왕도가의 정예인 패왕대를 깨부수고 A급 각성자인 이민욱을 잡았다는게 말이 안 되는 상태창이다.
이 모든 게 S급 무공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젠 성취도가 절반을 넘어서려한다.
등급이 낮다 하더라도 A급 각성자로 이루어진 패왕대와 이민욱에게 질 수 없는 능력이었다.
[저 아이도 중단전만 뚫리면 벽을 몇 단계나 건너뛰겠구나.]
‘바로 A급 완숙에는 들어서겠죠?’
[그러겠지.]
‘확실히 S급 무공이 좋긴 하네요.’
천재 중의 천재라는 박혁진도 A급에 드는 건 2학년 들어와서였다.
그런데 박혁진보다 S급 무공이 하나 더 많다고 그 천재를 가뿐히 뛰어넘으려 한다.
물론 무공의 덕택도 컸지만, 특성이 한몫했다.
박혁진이 가진 건 명안이란 보조 특성.
그 사람이 지닌 잠재적 재능을 꿰뚫어 보는 특성을 지녔다.
싸움에는 최적화되지 않은 특성이었다.
그런데 허수는 어떤가.
참마도의 주인이란 특성을 가졌다.
한지유가 얻은 검후의 자격과도 맞먹는 그런 특성을 말이다.
[참마도(각성)의 주인]
종류: 특성
등급: S
설명: 각성된 참마도를 쥘 자격이 있는 자를 말합니다. 만약 자격을 갖춘 사람이 참마도(각성)을 쥐게 된다면 도법에 대한 재능을 따라올 자가 없을 겁니다.
효과: 도법에 대한 재능 MAX.
방학동안 짬을 내서 가르친 덕에 얻은 S급 특성이다.
허수의 재능을 완전히 개화시켜 줄 만한 것.
녀석이 B급 끝자락인 건 딱 하나.
내공을 어떤 식으로 효율적이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B급 완숙에 멈춰 있는 거다.
이것만 안다면 중단전을 열고, 바로 A급 완숙에 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가 먼저 학생을 고를까요 아니면 스님께서 먼저 고르시겠어요?”
“이준 선생이 먼저 고르시오. 난 그에 맞춰서 아이를 뽑겠소이다.”
“좋아요. 수야. 앞으로 나와 봐.”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허수가 이준의 곁으로 갔다.
등에 거대한 도를 둘러맨 허수.
키도 굉장히 커서 그 거대한 참마도가 아주 찰떡궁합이었다.
“흠. B급 완숙에 있군.”
청운 스님의 말에 학생들이 다시 한 번 들썩였다.
“B급 완숙?”
“헉! 인성이보다 더 높은 등급이잖아?”
“미친 거 아니야? 쟤 E급 아니었어?”
소식이 느린 1학년 학생들의 말이었다.
옆에선 답답하다는 얼굴로 그 학생들에게 핀잔을 줬다.
“언제 적 이야기냐? 세상사람 다 아는 이야기를 너희만 모르고 있으면 어떡해.”
“뭐?”
“허수가 A급 각성자 패력진권을 이겼잖아.”
“진짜야?”
“난 왜 그 소식을 못 들었지?”
소란이 더 커졌다.
패력진권을 17살 학생이 이겼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무극대의 대주 사형준이 빠르게 입막음을 한 부분도 있지만, 모든 걸 막긴 힘들었다.
허수가 이민욱을 벨 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봤으니.
조금은 세어나갈 수밖에.
“방학 때도 집에 못 가고 담임한테 잡혀서 폰도 뺏기고 수련하는 바람에 전혀 몰랐어.”
“원시생활했다던데 이해한다.”
“그런데 B급 절정이 어떻게 A급 패력진권을 이길 수 있어?”
“그게 의문이란 말이야.”
학생들이 불신 가득한 눈으로 허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이준이 청운 스님을 보고 말했다.
“바로 알아맞히셨네요?”
“신룡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상대의 경지를 파악하는 건 경지에 이르렀다오. 그러면 난 저 아이로 하겠소.”
청운스님이 가리킨 사람은 신창조가의 조관인이었다.
* * *
허수와 조관인은 B급 절정.
같은 등급에 있었다.
또한 두 사람은 검법이 주 무기가 아닌, 각각 도와 창을 썼다.
같은 등급에 서로 다른 무기.
경쟁을 하기엔 괜찮은 상대였다.
청운 스님이 조관인에게 검을 잡고 시범을 보였다.
그가 쓴 검법은 학교의 공용 무공인 칠절참흔.
C급 무공으로 철혈검가에서 기부한 검법이다.
그와 동시에 강당 바닥을 점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은 비류보였다.
B급 보법으로 화산파의 무공을 계승한 검산그룹이 이번에 특별히 기부한 무공이다.
내기의 조건은 바로 칠절참흔과 비류보를 가르쳐서 비무를 시키는 것.
두 사람은 이 두 가지 무공을 전부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공평한 내기가 되었다.
“허수야.”
“말씀하십시오.”
“칠절참흔은 말이야 연환패왕도와 흡사한 부분이 많아. 잘 봐.”
이준의 손엔 검이 없었다.
그저 검을 잡은 시늉을 하면서 칠절참흔의 초식을 펼쳤다.
팔을 뻗어 허공에 일곱 번을 휘둘렀다.
아주 천천히 그저 베었다.
허수가 볼 수 있게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총 일곱 번을 끊이지 않게 내려긋고 위로 올리길 반복했다.
연환 공격식.
칠절참흔과 연환패왕도가 비슷하다고 한 이유였다.
이준이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을 멈추며 팔을 휘두르는 것도 멈췄다.
칠절참흔의 검식이 끝나고 이준이 몸을 돌리자.
살랑이는 바람이 불더니 강당 바닥에 일곱 가닥의 선이 그려진 게 아닌가.
“봤지?”
“똑똑히 봤습니다.”
“비류보는.”
“그것도 봤습니다.”
“그럼 펼쳐 봐.
“넵!”
허수가 손에 든 검을 잡았다.
오랜만에 드니 어색해 했다.
그것도 잠시.
“후우우.”
심호흡을 하며 좀 전에 이준이 보여 줬던 검식을 떠올렸다.
연환패왕도와 같이, 끊임이 없어야하는 검법.
익숙하지 않아도 자신 있었다.
그는 S급 무공인 연환패왕도도 5성 가량 익힌 사람이었으니까.
C급 무공인 칠절참흔 정도면 누워서 떡 먹기였다.
비류보도 마찬가지.
이준이 펼친 걸 딱 한 번 봤음에도 머릿속에 선명히 남았다.
뇌에 비류보의 발걸음이 저장됐다고 해야 하나.
조금 전에 봤던 걸 토대로 허수가 움직였다.
그는 비류보를 펼치며 칠절참흔을 휘둘렀다.
이준보다는 섬세하고 정확하지 않지만 초식에 끊김이 없었다.
대신.
쌔애액!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 대신 공기가 찢기는 육중한 소리가 들렸다.
일곱 번을 휘두르고 멈춰 선 허수.
이준이 강당 바닥에 일곱 가닥의 선을 그은 곳에, 허수가 덧칠을 했다.
“초식은 그 정도면 잘 외웠고. 남은 시간은 알지?”
“또… 그것입니까?”
“이게 제일 효과적이거든.”
허수가 질색한 얼굴을 한 반면 이준은 싱글벙글 웃었다.
누군가를 훈련 시켜 주는 게 아주 즐거운 모양이다.
“선호야. 체육관 창고에 있는 구슬 좀 가져와.”
“알았어.”
남선호는 이준의 말에 재빨리 창고에 있는 구슬 박스를 가져왔다.
박스에 담겨진 구슬의 용도는 암기를 연마하는 각성자를 위해 있는 물건이다.
훈련할 때 이만큼 좋은 도구가 없었다.
“여기선 좀 무리겠고. 캡슐방으로 가자.”
사람들이 있는 상태에서 구슬을 던지는 건 무리가 있었다.
구슬 박스를 가지고 캡슐방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
강당에 있는 학생들이 우르르 캡슐방 앞으로 모여들었다.
학생들이 구경하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훈련을 시작했다.
“간다.”
“예!”
이준이 하나의 구슬을 던졌다.
슉!
엄청난 속도로 허수를 향해 날아갔다.
허수가 칠절검흔을 펼치려는데 구슬은 이미 허수의 목을 스친 후였다.
“늦어. 좀 더 빨리 움직여.”
“…예!”
이준이 다른 구슬을 집어 던졌다.
그가 던지려는 준비 자세를 취할 때 허수는 이미 칠절참흔을 펼치고 있었다.
구슬이 허수의 베기에 맞아 옆으로 튕겨졌다.
그 빠른 구슬을 막았음에도 허수는 전혀 좋아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그 이유가 드러났다.
처음에 던진, 캡슐방 벽에 박혔던 구슬이 튀어나와 허수의 뒤를 공격하는 게 아닌가.
허수가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지만.
퍽퍽!
앞과 뒤에서 날아온 구슬이 허수의 몸에 적중했다.
“컥!”
“허수야. 형 상당히 실망하려고 그런다.”
“죄송… 합니다. 바로 주십시오.”
그 말에 허수가 의지를 불태웠다.
허수가 제일 싫어하는 건 이준에게서 듣는 실망스럽다는 말이었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허수는 아픔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캡슐방을 보고 있는 1학년 학생들은 저마다 눈이 앞으로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X발. 저게 훈련이야?”
“내가 본 게 틀리지 않지?”
“폭행이지 무슨 훈련이야.”
그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같이 보고 있던 2학년 학생들이 입을 열었다.
“저게 폭행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각성자 접어라.”
“여기가 무슨 놀이터도 아니고, 너희 죽이려는 몬스터한테도 그딴 말이나 할래?”
“아직 중딩 티를 못 벗은 거지.”
“야야. 너무 뭐라 하지 마. 1학년들이 뭘 알겠냐. 저 훈련 때문에 한지유 팸이 천무대전 8강에 오른 것도 모르는데.”
1학년들은 2학년 선배들의 말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선배님.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안될까요?”
“잘 들어라. 저건 아주 기본 훈련이야. 훈련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한지유 팸 알지?”
“빙화 누님이랑 같이 다니 선배들이요? 알고 있어요.”
“이준하고 같이 훈련한 애들은 다 저 훈련을 했다는 말이야. 그것도 중력을 두세 배 늘려서.”
“그게 말이 돼요? 굳이 왜 저런 쓸모없는 훈련을…”
“우리들도 처음에는 다 너희처럼 생각했다. 쓸모없는 훈련? 직접 해 보면 그딴 개소리는 안 나올 거다.”
2학년들은 실제로 이준이 하는 훈련을 따라해 봤다.
중력의 두 배?
중력은 무슨.
그냥 구슬을 피하는 것도 존나 힘든 훈련이었다.
지옥 훈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수는 지금 그런 훈련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자기의 무공이 아닌, 이제 막 배운 무공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게 30분의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캡슐방에서 나온 두 사람.
이준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허수는 교복이 흠뻑 젖어 있었다.
마치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저래서 대련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러게. 체력이 완전히 바닥 난 것 같은데.”
학생들은 허수를 걱정했지만, 이준은 아무렇지 않게 비무를 강행했다.
“청운 스님. 저희는 준비 끝났습니다.”
“우리도 다 끝났소.”
청운 스님이 조관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스님답게 아주 인자한 모습.
조관인도 그에게 배우면서 많은 걸 느꼈는지 존경심이 담긴 눈빛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바로 시작하시죠. 이사장님이 심판을 보실래요?”
“그러죠. 전 학년은 모두 강당 2층 스탠드로 올라가 주세요.”
학생들은 바닥을 박차고 펄쩍 뛰어 2층으로 가서 좋은 자리를 먼저 선점했고, 선생들은 강당 벽으로 물러났다. 중앙에는 조관인과 허수만 남았다.
“그 꼴로 할 수 있겠어?”
“전 괜찮습니다.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패력진권 님을 이긴 상대인데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지. 하지만 이번 싸움은 내가 이길 거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팟! 팟!
서로를 향해 뛰어든 두 사람.
그들은 각자 칠절참흔과 비류보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