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정말… 이준 선배님이 선생으로 부임해?”
“그러면 있잖아….”
“오왕하고 같은 서열에 있는 이준 선배님한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데?”
“헉!”
“맞네! 오왕과 같은 실력을 지닌 사람한테 무공을 배우는 거잖아!”
“와아아아!”
체육관 강당은 함성소리로 가득했다.
학생들이 서 있는 맨 앞 줄.
박혁진이 팔짱을 하며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이면서 뿌듯해 했다.
쟤가 ‘내’ 친구다 짜식들아 란 표정이었다.
“자자. 모두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한민성 이사장이 학생들의 함성을 자제시켰다.
그런데도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그러겠지.
무려 오왕과 같은 서열에 있는 이준이다.
각 가문의 수장들.
그들에게 무공 한 수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널렸다.
외국의 마법사들도 무공에 관심이 있어서 유학을 올 정도.
물론 현재는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하시만, 5년 후.
서양과 아시아의 전역 국가가 활발히 교류했다.
아무튼 AA급 각성자에게 배움을 청하기란 굉장히 어려웠다.
그런데 자기들과 같은 또래인 이준이 학교의 선생으로 부임했으니 얼마나 흥분될까.
학생들은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을 했다.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압니다. 이준 학생. 아니, 이젠 선생이지요. 이준 선생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죠.”
“예!”
한민성 이사장의 질문에 학생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두가 배우지 못합니다. 이준 선생에게 배우려면 그에 맞는 실력을 지녀야 합니다.”
“아…”
“하, 그럴 줄 알았다.”
“이번 인생은 틀렸어.”
학생들이 실망해 했다.
그들의 얼굴을 본 한민성 이사장이 작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배움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더 위 단계의 무공을 배우려면 그만큼 현재의 실력이 뒷받침 해 줘야 할 거고요. 이준 선생에게 배우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게 맞는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맞습니다.”
“이사장님, 질문 있습니다.”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신창조가의 후계자이자, 3학년인 조관인이었다.
“말씀하세요.”
“저희 학교가 실력 위주인 건 인정합니다. 그래도 오왕과 같은 서열에 있는 이준… 선생에게 배우는 건 모든 학생의 꿈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저도 배우고 싶을 지경이니까요.”
“F에서 C급 학생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실력을 올리지 못할 텐데 저들이 이준 선생에게 배우지 못하는 건 너무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조관인 학생은 1반 학생들이 엘리트로 이루어진 것처럼 엘리트들만이 이준 선생에게 배우는 걸 우려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한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관인이 하는 말이 맞는 말이었으니까.
이준의 부임 조건은 하나.
자기가 원하는 소수만 가르친다는 것.
이건 학생들이 불만을 제기할 만한 조건이었다.
그래서 이준만 초빙한 게 아닌, 다른 A급 선생들도 특별히 초빙한 거다.
초빙한 선생들도 자기가 담임으로 가르치고 싶은 학생들을 정하게 하면 어떨까.
그나마 불만의 목소리가 작아질 터다.
물론 아예 불만이 사라지는 건 불가능했다.
이사장은 이 부분을 노렸다.
“여러분이 더욱 분발해 줬으면 하기에 새로 부임한 선생들이 특별반을 만들어 학생을 뽑기로 했습니다.”
“예?”
끓어오르는 경쟁의식.
A급 각성자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들기 위해 수련을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기존의 선생들도 뛰어났지만, 이번에 초빙한 선생들은 현역에서도 아주 잘나가는 사람이다.
훈련도 실전같이 가르칠 터.
부작용도 적지 않을 거라 예상도 했다.
그들도 이준과 같이 조건을 달았으니까.
학생들도 몬스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선생들이 입을 모았다.
현장실습과 중간, 기말을 목숨이 위태로운 곳으로 보내 학생들을 강하게 키우는 게 이번 선생들의 목표였다.
이는 한민성도 동의한 부분이었다.
“선생님들은 이제부터 학생들을 뽑아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이준 선생님부터 뽑아 주세요.”
* * *
이준이 강당 아래를 내려 봤다.
꼴깍!
학생들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마른 침을 삼켰다.
이준이 선택한 사람이 그의 반 학생이 된다.
실력을 상승시키기 위한 천금 같은 기회였다.
학생들은 이준의 눈에 들려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선생에게 잘 보이기 위한 필살기.
하나, 이준의 눈은 박혁진에게 갔다.
예상했던 결과.
박혁진이 어깨를 으쓱하고 앞으로 나오려는데.
“검화 박정연을 제 반으로 들일까 해요.”
“저 자식이!”
박혁진이 민망한 표정으로 이준을 노려봤다.
“크크. 넌 줄 알았냐?”
“넌 이따 뒤졌다.”
이준과 박혁진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음 선생이 고를 차례.
이준이 한꺼번에 다 고르는 건 남들 보기에 형평성에 어긋날 것 같아 내린 처사였다.
다만, 이미 이준이 고른 학생의 명단은 선생들도 파악한 상황.
굳이 이준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으니 그들만 피해서 고르면 됐다.
각 가문에서 파견 나온 선생들도 이준의 편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선생들은 불만을 제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목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한지유와 박은비, 서혜지, 남선호까지. 이제 남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1학년 8반. 허수를 지목할게요.”
또 다시 체육관이 들썩였다.
허수가 이준을 따르는 건 무사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력과는 별개였다.
이때껏 지목한 학생들은 모두 한가락 하는 이들.
박은비, 서혜지, 남선호는 천무대전 8강 출신들이다.
허수는 어떤가.
천무대전도 기권했으며 학교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않았다.
도귀의 습격을 막아 내고 권왕의 동생을 두들겨 팼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의 원래 실력은 보잘 것 없었다.
즉, 지금 실력이 마땅찮아도 선택받을 수 있다는 뜻.
그저, 인맥을 잘 타서 기회를 얻은 것 뿐.
학생들은 허수를 질투했다.
“좋겠다. 나도 부끄러운 거 참고 이준 선배한테 들이댈걸.”
“X발. 또 인맥이냐.”
“더럽다 더러워.”
오직 남학생들만 허수를 질투하고 시기했다.
그들은 모르겠지.
허수는 그냥 운이 좋아 선택 받은 게 아니다.
그에겐 잠재력이 있었다.
그것도 전국에서 손꼽힐 만한.
허수는 이준의 지옥 훈련도 견뎌 낸 훌륭한 인재였다.
재능도 뛰어나, 전생에 그의 존재를 몰랐다 하더라도 이준은 허수를 발견했으면 꼭 뽑았을 사람이었다.
학생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이준은 허수의 등을 두드렸다.
“잘해 보자.”
“옙!”
이제 마지막 한 사람만 남았다.
바로 박혁진.
이준에게 제일 먼저 뽑힐 줄 알았던 박혁진이 마지막까지 남게 되었다.
학교의 아이돌.
엄친아의 대명사.
검룡이란 불세출의 천재인 자신에게 엿을 먹인 이준을 박혁진이 이를 갈며 노려봤다.
그와 눈이 마주친 이준이 뜨끔했다.
‘장난이 너무 심했나? 저러다 진짜 삐진 거 아니야?’
박혁진의 반응이 재밌어서 지명을 계속 뒤로 늦춘 결과.
그의 눈에선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건 정제된 고도의 살기.
몬스터나 사마련의 범죄자들에게나 뿜어 대는 박혁진의 살기였다.
‘안 뽑으면 거의 절교 각이네.’
그때였다.
이준은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옆에서 아주 뜨악할만한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공은 신룡사에서 파견나온 백보신권 청운이란 스님에게서 시작되었다.
“소승은 2학년 1반 검룡 박혁진을 우리 특별반으로 데려올까 하외다.”
“네? 저를요?”
이준에게 레이저를 쏘던 박혁진도.
선생들이 지목한 학생들의 표정을 보고 있던 한민성 이사장도.
동시에 눈이 커졌다.
이건 이야기가 달랐다.
박혁진이 고개를 돌려 이준을 쳐다봤지만, 그는 고개를 옆으로 저을 뿐이었다.
장난을 치다가 일이 꼬이고 말았다.
‘저분이 왜 혁진이를 고르는 거죠?’
이준이 한민성 이사장에게 전음을 했다.
‘나도 잘 모르네.’
계획대로 잘 가다가 삐끗했으니, 난감한 건 한민성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는 사이.
이준이 손을 들었다.
“저, 스님.”
“말씀하시오.”
“검룡을 제게 양보해 주면 안될까요?”
“허, 아무리 이준 선생의 부탁이라도 불가하오.”
이준은 난감해했다.
설마 부임하게 된 선생 중 한 명이 학생을 가로챌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난감해 하고 있을 때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중놈, 네게 호기심이 강한 모양이구나.]
‘무슨 호기심이요.’
[눈을 딱 보면 보이지 않느냐.]
이준이 청운 스님의 눈을 보았다.
그도 싫지 않은지 이준을 지그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청운 스님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웃고 있네요.’
하지만 이준이 보기에는 달랐다.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느낌이랄까. 비웃음이 아닌, 호감이라 해야 옳았다.
[저런 놈은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면 알아서 물러날 일이다.]
‘호기심… 호기심이라…’
[네가 아주 잘하는 것 있지 않느냐.]
‘뭐요?’
[내기. 네 실력을 보이면서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할 만한 걸 찾아 보거라.]
‘음….’
이준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호기심을 챙겨 주면서도 코를 납작하게 해 줄만한.
그리고 청운 스님과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는 계책이 떠올랐다.
[청운]
나이: 42살
등급: A(절정 끝자락)
직업: 스님(무사고 선생님)
이명: 백보신권
호감도: 50(호감)
특징: 반야신공(AA), 백보신권(AA), 나한십팔장(A), 나한보(C)
청운 스님의 무공 스킬들이 눈에 띄었다.
A급 무공을 가진 것만도 축복에 가까웠는데, A급 이상이 무려 세 개였다.
C급 보법이 미스.
보법만 괜찮으면 사기 캐와 다름없었다.
물론 그의 약점을 생각해 놨다.
‘신력권가를 비롯한 전 가문이 상위 무공을 얻기 위해서 엄청 노력했었지. 신룡사도 마찬가지였고.’
소림의 무공을 계승한 신룡사는 다른 가문과는 좀 다르게 혈족 계승이 이뤄졌다.
아니, 어떻게 보면 혈족 계승이 아니었다.
스님들이라 무공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대가 끊겼으니.
이를 방지하고자 속가 제자를 두었다.
소림의 무공을 계승한 이들이 가문을 세우고, 그들 중 몇몇은 신룡사로 출가를 했다.
그렇게 대는 계속 이어졌다.
‘신룡사가 그렇게 상위 무공에 열을 올렸던 건 상태창에서 나왔던 대로 보법과 검법이 취약하기 때문이야.’
청운 스님이 고른 이들은 보법과 검법이 취약하지 않은 학생들이었다.
이게 그의 발목을 잡을지 몰랐을 것이다.
누가 A급 각성자가 보법이 취약하다고 여길까.
그의 보법은 그저 내공과 등급이 높아, 성능의 떨어진 보법이 보완되게 보일 뿐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신룡사의 약점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
이준은 보법이, 그것도 특히나 검법은 신룡사에서 쥐약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스님. 저와 검룡을 걸고 내기 하나 하실래요?”
“어떤 내기 말이오?”
“보법과 검법 비무에서 이긴 사람이 검룡을 자기 반으로 데리고 오는 걸로요. 어때요?”
“허. 이준 선생. 애초에 이 게임은 성립이 불가능하오.”
“왜요?”
“난 A급에 불과한 각성자라오. 하나 이준 선생은 AA급 아니오. 내기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 아니오?”
“제가 말을 안 했군요. 저와 청운 스님이 붙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누가 붙소?”
청운 스님의 물음에 이준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는 이제 선생님이잖아요? 이 자리에서 똑같은 실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해. 단 30분만 가르치는 거죠. 선생의 안목, 지도 실력. 이 두 가지를 판가름 할 수 있잖아요? 어때요? 괜찮은 제안 아닌가요?”